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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의 방

정영한 아키텍츠

이영조(비피아키텍츠 대표)
사진
윤준환
자료제공
정영한 아키텍츠
background

사이의 대화

원형의 부재

도심을 떠나 근교를 지나가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다. 나무가 무성한 숲이나 산비탈을 성절토하여 계단식 형태로 땅의 위계를 정하고 어김없이 ‘전원주택 필지분양’이라는 현수막을 내건 폭력적인 개발의 민낯이다. 게다가 각 개별 필지 위엔 정말 다양한 형태와 재질로 이루어진 국적불명의 집들이 들어서 있다. 미학적 아름다움, 대지 및 주변과의 관계를 논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조악하고 원형을 훼손했다. 최고의 하등의 가치를 찾을 수가 없고 도시의 수많은 단독주택들의 ‘나 잘난 아우성’과 다름이 없다.
정영한(정영한 아키텍츠 대표)이 건축가가 처음 대지를 접했을 때 어떻게 주변과 대지와의 관계를 풀어갈지, 주변과 단절된 대지에서의 건축은 어떻게 설정할지 충분히 난감했으리라 예상할 수 있었다. 건축가는 “건축가 3인에게 주어진 각 필지는 맞물려 있으나 서로 다른 위계로 인해 선명한 경계만 남았을 뿐 지형의 고유성은 이미 사라져버린 뒤였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그 경계에 건축을 대응하기 위한 배치는 무의미하며 오히려 새로운 배치로 ​질서를 만들고 그 경계를 지워내고자 했다”라고 이끌린다. 각 덩어리는 고유의 레벨을 가지는 설정이 아니라 기존 훼손을 인정하고 새로운 관계를 찾고자 했다는 건축가의 서론에서부터 물 위의 방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기하학에 의한 균형
평평한 대지에 3×3m 크기의 큐브 일곱 개가 회전과 변형의 기하학적 변주로 자리 잡으면서 비정형의 조각으로 잘린 대지 위에 뿌려진다. 일곱 개의 방들은 정교한 기하학의 질서 위에서 구조적 연결고리를 가지며 건축가에 의해 치밀하게 의도된 위계의 흐름에 이끌린다. 각 덩어리는 고유의 레벨을 가지는​ 동시에 수직적인 내적 분절을 이룬다. 두 개의 큐브의 기하학에서 이와 유사한 패턴을 읽을 수가 있다. 그러나 물 위의 방은 보다 작고 경쾌한 덩어리의 기하학이면서 동시에 땅속에 박힌 육중한 큐브가 아닌, 물 위에 부유하는 덩어리의 군집이기에 사용자에게 전달되는 공간감은 사뭇 다르다. 미묘한 변이와 비틀림이 가해진 평면과 단면을 오르내리다 보면 사용자는 다리 근육의 이완과 시각의 변화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충분히 강요된 경험의 패턴이지만 억지스럽지 않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시퀀스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호출한다.

정영한의 전작인 부산 초량동의 다섯 그루 나무에서 이미 검증된 작은 덩어리들의 기하학은 개별적인 다른 형태, 다른 재질로 이룬 매스의 변주였다. 오창에 위치한 물 위의 방에서는 엄격한 기하학의 질서로 똑같은 크기의 큐브의 외부 균형을 다루었다. 반면 내부는 기하학의 질서를 깨뜨리며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했다. 내부 공간을 점유하는 행동들은 기하학과 무관하기에 엄격한 질서를 최대한 흐리게 했다. 각 방들은 개별적으로 분리되지 않으며 사용자들이 원하는 대로 방의 용도는 유연하게 변화한다.
잘게 나누어진 입방체 면들의 파편으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방들은 일상에서의 도피를 은유한다. 한 개의 방을 점유하더라도 다른 방들과의 미묘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시각적 연속성을 가지며 충분히 독립적이면서도 동시에 하나의 긴 통로이기도 하다. 비선형적 긴 통로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한 문들은 밖으로 열린 다양한 크기와 높이를 가진 창문들이 유일하며 주변 경관과의 시각적 ‘들고 남’과 물과의 ‘들고 남’을 주선한다. 곧 협소한 공간의 절대적 불리함을 물과 경관의 적극적 연결로 충분히 극복할 뿐만 아니라 안과 밖의 경계를 흐리게 하는 건축가 고유의 고집스런 건축 언어에 어느덧 공감하게 된다. 다양하게 뚫린 창을 통해 주변의 경관은 내부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이를 통해 고정된 경관으로 읽히지 않으며 창으로 주변과의 관계를 맺고자 한다.

 

 

 


집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각각 자는 방, 먹는 방, 쉬는 방으로 구성되어 있지 여럿이 ​머리 맞대고 담소라도 나눌 만한 변변한 거실이 없다. 이에 대한 건축가의 변은 물로 이루어진 마당이 곧 거실이며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지붕 없는 방인 격이다. 물의 방은 건축가가 정밀하게 회전과 반복의 기하학 논리로 다듬은 큐브들을 오롯이 담고 있다.
그 방에서는 남쪽 면에 놓인 소나무 숲 사이로 살랑이는 바람소리, 하늘 위로 흘러가는 구름 그림자의 느린 움직임, 그리고 일렁이는 물에 비치는 빛의 파편들을 느낄 수 있다. 물을 통해서 건물과의 관계를 다채롭게 설정하고 주변의 풍광을 담아냄으로써 잠시 머무르는 동안이라도 도심 속 일상을 벗어난 경험을 주고자 한 건축가의 의도를 떠올리게 된다. 본디 우리 선조들의 여름놀이는 구중 계곡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넓은 바위 위에 앉아 풍류를 즐기는 것이 아니었던가?

자잘하게 부서지며 떨어지는 물소리의 부재가 아쉬웠으나, 설계 원안에서는 물 공간이 단계별로 형성되고 위부터 아래로 흘러내리도록 계획되어 있었는데 현실화되지 못했다는 건축가의 고백을 듣고 나서야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수영장이냐 연못이냐의 구분을 짓고자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으며 사용자에 따라 물 공간의 정의가 바뀔 수 있는 건축적 구조와 연결고리들이 흥미롭다. 집 안에 경관 요소로 물을 끌고 들어옴으로써 오창 저수지의 큰물과의 연속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굳이 ‘인피니티풀’이라는 단편적인 단어로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 방에서 창을 열고 나가면 풀로 연결되는 다이빙 데크가 마치 계곡물에 발을 담고 더위를 식히는 모습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주변 자연경관을 담고 있는 물을 통해 과거 ​경관으로의 회귀와 원시성의 환영을 통해 나르키소스의 신화적 경험을 하게 될지 모른다는 건축가의 이야기를 듣고, 어느새 물을 내려 보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건축가 세 명의 대화

건축가 세 명에게 주어진 개별 필지 중 하나로 출발했다는 태생적 관계의 관점에서 질문을 던져본다. 이미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지형으로 인해 서로 다른 공간의 위계로 분리되어 있었고 그 불편한 경계에 주목하고 싶지 않았던 건축가들은 대화를 시작했다. 그러나 계획 초반에 흥미롭고 도전적인 과제들이 난국에 봉착한다. 각자의 해석과 어쩔 수 없는 개별 입장으로 인해 적당한 거리를 두게 되고 결국엔 남겨진 건축들이 말없이 대변하는 현상이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물의 흐름을 매개로 하여 새로운 연결고리를 설정하고 세 개의 필지를 아우르는 물의 질서가 기존 경계를 지우면서 각 개별적인 건축들을 하나의 그림으로 담아낼 수 있으리라는 건축가의 역설과 상상만이 계속 맴돌고 있었다. 상상 속 물 위의 방은 점점 증식하여 세 필지 전체를 뒤덮고, 내 귓속엔 떨어지는 물소리의 환청들로 가득 차 있다. 세 명의 건축가들 사이에 대화는 부재했고 정영한 건축가의 외로운 독백과 물 위의 방 사이의 대화만 조용히 들려왔다. <진행 이지윤 기자> 

설계

정영한 아키텍츠(정영한)

설계담당

이정렬, 정성민, 허영환

위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성산2길 196-9

용도

단독주택

대지면적

402m2

건축면적

80.26m2

연면적

80.26m2

규모

지상1층

주차

1대

높이

4.1 ~ 4.6m

건폐율

19.97%

용적률

19.97%

구조

경량철골조 + 목구조

외부마감

알루미늄 패널

내부마감

비닐페인트, 자작합판, 콩자갈

시공

드웰링 파트너즈(이계준)

설계기간

2016. 12. ~ 2017. 5.

시공기간

2017. 6. ~ 2018. 2.

건축주

양태규

그래픽담당

허영환


정영한
정영한은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과를 졸업하였다. 2002년부터 개소하여 현재까지 다양한 실험적인 건축 프로젝트를 모색하고 있다. 2013년부터 장기 기획전시인 <최소의 집>의 총괄 전시기획을 맡고 진행 중에 있으며 2016년에는 문체부 주체의 <새로운 주거방식의 조각들: 한국현대사회의 도시주거>전의 초대작가로 선발되어 싱가포르 국립대학에서 전시를 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인사동의 체화의 풍경(2011)은 2013년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하였고 2014년에는 6×6주택으로 김수근 프리뷰상을 수상하였다. 최근에는 다섯그루 나무’로 2015 한국건축가협회(KIA) 올해의 베스트7 건축상 및 2016 부산다운 건축상을 동시에 수상하기도 하였다. 현재 광운대학교 건축과 겸임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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