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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강일 119 안전센터'

남정민

안기현
사진
최진보
자료제공
남정민
진행
김정은 편집장
background

차량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시민으로

 

서울시의 동쪽 끝에 위치한 강일 119 안전센터는 택지개발지구에 속하며, 새로 세워진 공동주택 단지들 사이에 있다. 주변의 판상형 아파트와는 대조적으로, 빨간 벽돌의 기단에 조심스레 앉힌 하얗고 경사진 작은 매스들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미건조한 가로 환경에 작은 볼륨들이 군집하여 만들어낸 익숙한 비례는 따뜻하고 친근하다. 여느 안전센터와는 다른 모습으로 주택에 자주 사용되는 소박한 벽돌과 좁고 길게 접힌 하얀 골강판은 배면의 녹지와 함께, 강하면서도 익숙한 대조를 이루며 도시와 관계 맺고, 풍요로운 도시 풍경에 이바지하고 있었다. ​

 

 

 

 


친근한 소방차 vs. 어색한 소방서

소방차는 인명을 구조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한편으로 어린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흔한 장난감 중 하나로,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면 거의 모든 집에서 볼 수 있다. 그런 이유인지, 소방차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하고 친근하다. 반면, 소방차의 집이라 할 수 있는 소방서(안전센터)는 우리에게 어떠한가? 단언하긴 어렵지만, 소방차와 비교하면 소방서는 어딘지 어색하다. 가장 큰 원인은 건물의 상징적 형상에서 비롯되는 것 아닐까? 보통의 건물과 다르게, 도로에 면한 크고 널찍한 차고, 간혹 개방된 주차 게이트를 통해 보이는 소방차, 그리고 대형 차량의 진 · 출입을 위한 전면 공간만으로도 단번에 안전센터의 존재를 인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 주변의 소방서 대부분은 건물 얼굴로 자리 잡은 119라는 표식과 빨간 페인트로 칠해져 소방서임을 아우성치고 있다. 어색하다 못해 기이함을 느끼며, 어느새 거부감이 들 정도이다. 안전센터를 포함한 소방서는 주민센터, 치안센터와 더불어 일정한 권역마다 필수적으로 생기는 공공기관이다. 공공건물로서 지역과 도시에 좀 더 친근한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마치 우리 기억 속의 소방차처럼 말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다른 나라의 도시에서 마주친 소방서들은 특별한 표식 없이, 주변 도시 맥락과 모습을 같이한다. 열린 차고문으로 보이는 소방차만으로도 소방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차량 중심 vs. 사람 중심

안전센터는 태생적으로 정형화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차고 공간이다. 다수의 소방 차량을 수용하기 위해 커다란 부피의 차고 계획이 필수적이다. 차고의 모든 차량은 서로의 간섭없이 출차 가능하고, 수시로 점검이 가능해야 한다. 둘째는 ‘골든타임’을 고려한 출동 우선의 동선체계이다. 이를 위해, 사무실과 대기실은 차고를 중심으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다른 말 같지만, 이것 또한 첫째와 동일하게 차고와 차량에서 비롯된다. 남정민은 차고와 차량에서 비롯되는 기본 조건들은 충족시키되 계획의 중심을 소방관들을 위한 공간을 구성하는 데서 시작한다. 필요조건인 높고 커다란 차고와 소방시설은 부피상 건물의 50%에 달하지만, 면적으로 계산하면 전체의 30%만을 차지한다. 나머지 60%가 넘는 면적은 소방관들의 일상 업무 공간(사무실, 민원 공간)과 거주 공간(대기실, 식당, 휴게실)으로 구성된다는 것을 확인한다. ‘차량’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라는 그의 콘셉트는 당연하면서도 필연적으로 공간을 재조직하는 데 아주 유효하게 작동한다. 

 

 

 



부분 vs. 전체

사람 중심의 강일 119 안전센터는 대기실, 휴게실 등의 공간 조합에서 시작된다. 오랜 시간 거주하는 소방관들의 쾌적한 환경을 위해 각각의 공간은 외기와 자연에 면하게 배치해야 했다. 쾌적한 공간을 위한 중정은 1층부터 수직적으로 위치하며, 사무 공간과 거주 공간, 사무 공간과 차고 공간, 거주 공간과 훈련 공간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전체를 연결한다. 중정은 단순한 물리적 연결을 넘어 소방차고의 높고 큰 볼륨을 작은 개별 생활공간들과 대등한 관계로 완충해주며, 하나의 건물로 만들어준다. 필요조건인 차량 공간을 확보하고, 동시에 사람 중심의 사무 및 거주 공간을 만족시키며 소방서를 재구성하게 되는 지점일 것이다. 1층부터 3층에 걸쳐 배치된 각각의 공간은 소방관들의 삶의 공간으로서 각각 작은 집처럼 개별적인 볼륨으로 계획되었다. 이 작은 단위 공간은 차량에서 사람으로, 사람에서 시민으로 전체를 조율하는 하나의 모듈처럼 전체에 적용된다. 이것은 부분에서 전체로, 전체에서 부분으로 상호작용하여 내외부에서 균등하게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경사지붕을 둔 집과 같은 소방관들의 개별 공간이 소방차고에도 적용되어 빛을 유입하고 공간에 변화를 만들어낸다. 기존의 차고중심의 소방서들과는 확연한 차별성을 갖게 된 것이다. 저층부에 사용된 적벽돌과 흰색 금속으로 마감된 2층의 공간, 그리고 둘 사이를 확연하게 구분 짓는 띠가 만드는 음영의 효과는 모든 이야기를 완성한다. “소방관들의 일상이 군집한 소방서”라는 남정민의 말 그대로, 안전센터의 새로운 유형과 아이텐티티의 제안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작게 구획된 소방관들을 위한(사람 중심) 공간을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건축가는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공간감을 확장하고자 했다. 이때 건축가가 선택한 방법은 여러 가지다. 첫째, 경사지붕의 볼륨을 통해 각 대기실의 높은 수직적 공간과 고측창을 갖게 된 점이다. 이를 통해 채광과 환기는 물론, 외부 공간과의 질서도 정립된다. 두 번째는 앞에서도 언급한 중정이다. 중정을 이용해 거의 모든 개별 공간은 최소 두 면에서 외기와 면할 기회가 주어진다. 동시에 출동동선과 정주 공간, 대기 공간과 차고 간의 교집합으로서의 중정은 각각의 작은 공간을 정렬시키고 조밀하게 연결한다. 세 번째는 개별 공간의 접면에 놓인 크기가 서로 다른 창이다. 개별 공간을 시각적ㆍ기능적으로 꿰어지게 만들며 느슨한 각각의 공간을 안전센터로 다시 집중시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마지막은 각 층에 배치된 조경(자연적 요소)이다. 1층의 중정, 중정과 연결된 2층의 베란다, 3층의 식당과 연결된 옥상 및 휴게 공간은 다양한 형태의 자연적 요소로 제공된다. 이런 삶의 공간에 대한 섬세한 배려는 건축가의 몇 번에 걸친 집합주택의 경험과 노하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건축 vs. 도시

최근 작은 공공건축물은 공공건축가들을 대상으로 제안 또는 지명공모전으로 진행되며 양질의 공공건축으로 도시에 좋은 영향을 주고 있다. 분명 강일 119 안전센터도 공공건축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계획의 모든 부분이 내부지향적이라는 점이다. 내부적으로 완결적이기에, 외부와의 접점이나 공공에 대한 배려를 발견하기 어렵다. 시민들을 위한 공적 공간이나 만날 수 있는 방식(소방차를 점검하는 모습, 소방관의 훈련 모습이 보여지는 등)이 함께 시도되지 않은 점이 아쉽다. 물론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며 항상 긴장된 대기 상태에 있는 소방관들을 위한 대기 공간과 휴게 공간의 배려가 우선이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이 보호하는 시민들과 직접 만나고 서로 친근해질 기회의 공간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공직에서 일하는 분들의 관습과 우리들에게 내재한 문화적 습성상 거부되기 쉽고, 설득하기 어려운 공간임이 자명함에도 말이다. 안전센터를 차량 중심에서 사람(소방관) 중심 공간으로 옮긴 것이 버전 2.0이라면, 시민들과의 접점을 고려한 익숙한 소방차가 있는 친근한 소방서가 버전 3.0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글 안기현 한양대학교 교수 / 진행 김정은 편집장)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남정민(고려대학교) + OA-Lab 건축연구소 + 팀 히치하이커 건축사사무소

설계담당

임홍량, 이경호(OA-Lab 건축연구소)

위치

서울시 강동구 고덕로98길 22

용도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1,243㎡

건축면적

592㎡

연면적

974㎡

규모

지상 3층

주차

4대

높이

11.4m

건폐율

47.6%

용적률

78.4%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아연도강판에 도장, 붉은 벽돌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벽지, 수성페인트, 타일

구조설계

터구조

기계설계

삼우엠이씨

전기설계

천일엠이씨

시공

민정토건

설계기간

2019. 7. ~ 2020. 2.

시공기간

2020. 4. ~ 12.

공사비

20억 8,585만 원

건축주

강동소방서


남정민
남정민은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OA-Lab 건축연구소를 통해 활동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디자인 연구와 실무를 통한 현실 적용 간의 상호 연계로 관찰과 실험에 기반한 디자인이 일상 속에서 삶의 경험을 담고, 사회와 물리적 환경 속에서 성공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 하버드대학교에서 건축설계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KVA, OMA, 샤프디 아키텍츠 등 다양한 사무소에서 인턴과 실무 경험을 한 후, 서울과학기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하버드대학원 졸업논문상 파이널리스트, 2009 미국건축가협회(MA주 챕터)의 주택공모전 대상, 2015 미국건축가협회(국제 챕터) 건축 부문 대상, 2018 젊은건축가상(문화체육관광부), 2021 대한건축학회 무애건축상 등을 받았다.
안기현
안기현은 현재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다. 한양대학교와 미국 버클리대학교를 졸업하였다. 공동설립한 에이앤엘스튜디오에서 다양한 스케일의 도시·건축·오브제와 관련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2016 젊은건축가상, 2019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하였다. 2016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의 공동 큐레이터를 역임하였으며, 2017년부터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