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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의 인생을 담은: 유동룡미술관

사진
김용관
자료제공
유동룡미술관
진행
한가람 기자

​「SPACE(공간)」2023년 4월호 (통권 665호) 

 

이타미 준의 인생을 담은: 유동룡미술관 

 

따스한 봄날에 방문한 유동룡미술관은 미술관 형태를 띤 이타미 준(유동룡)의 집 같았다. 낮고 긴 담을 끼고 돌아 담 안쪽을 따라 걷다 보면 단독주택 현관에서 볼 법한 나무 문과 마주한다. 그 너머 유리 중문에는 이타미 준을 상징하는 용 조형물이 문손잡이처럼 붙어 있다. 이 문을 통과해 실내로 들어선 순간 먹 향이 코끝을 스치는데, 마치 타인의 집에 배어 있는 고유한 향을 맡는 듯했다. 이 모든 경험을 기획하고 장면을 설계한 유이화(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를 만났다. 

 

 

유이화의 유동룡미술관 스케치 

 

인터뷰

유이화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 × 한가람 기자 ​ 

 

한가람(한): 2011년에 타계한 이타미 준은 유언장에 “내 이름을 딴 문화재단, 기념관, 건축상을 만들어라. 이 모든 책임은 내 딸 유이화에게 있다”고 남겼다. 

유이화(유): 사실 마지막에 한 줄이 더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 희망 사항이다.” 가족들과 유언을 읽어내려가다 다 같이 웃음이 터졌고 나에게 수고하라며 놀리듯 다독였다. 부담도 됐으나 아버지에게 감사했다. 내가 잘 할 거라는 신뢰가 있으니 그 말을 남긴 게 아니겠나. 안 그래도 일본의 아버지 자택을 자료관으로 간직하는 등 건축가 이타미 준을 기억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유언으로 책임을 껴안으면서 본격적인 일이 될지 몰랐다. (웃음)

 

한: 유언과 달리 작년 12월에 기념관이 아닌 미술관이 개관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유: 아버지는 기념관을 말했지만, 왠지 기념관은 시대 흐름과 동떨어지게 작가 자체를 박제해서 우상화하는 인상이 든다. 시대와 함께 호흡해가는 방향이 아버지가 원하는 바라고 생각해 미술관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미술관 자체가 단기적 공간이 아니기에 먼 미래까지 내다봐야 하고, 수익 사업보다는 공공에 기여하는 측면이 크다. 그렇기에 내 아버지니까 미술관을 짓는 게 아니라 공공에 어떤 사회적 메시지를 줘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했다. 이렇게 공간을 만들 명분을 찾고 각오하는 데 거의 6~7년을 썼다.

 

한: 사회적 메시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는데 어떤 답을 내렸나? ‘나의 오리지낼리티를 발견하는 곳’이라는 유동룡미술관의 소개 문구와도 연관 있을 듯하다.

유: 이타미 준은 당대 필요했던 메시지를 작품으로 꾸준히 전달한 건축가다. 그가 활동하던 1980년대 일본은 버블 경제의 영향으로 화려한 건물이 일색일 때다. 이타미 준은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지 않고 사람들이 상실하고 있는 것에 대해 꾸준히 건축과 글로 보여줬다. 지역성, 야성미, 자연과 같은 키워드처럼 ‘이타미 준만의 오리지낼리티’가 형성될 수 있던 이유는 자신만의 철학을 계속 발전시킨 덕분이다. 참고로 ‘오리지낼리티’는 아버지가 생전에 언급했던 단어다. 쉰 살이 넘었을 때 “건축이 비로소 재밌다”고, 예순 때는 “건축이 뭔지 알 것 같다”는 데에 이어 일흔이 지나서 “이제야 내 오리지낼리티가 뭔지 알 거 같다”는 말씀이 아직도 인상 깊다. 

한편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의 패러다임에 대다수가 자아를 지키지 못한 채 흔들리고 휩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자신을 찾는 시간과 기회가 필요하다. 그 사유 과정에서 이타미 준이라는 사람의 인생과 태도가 영감을 줄 수 있다고 여겨 미술관을 통해 공유하고자 했다.

 

 

유동룡미술관 외관

 

한: 이러한 공간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을 택했다. 제주도의 문화예술 사업 공모로 나온 부지이지만, 막연히 상상했던 대지 조건에 부합하기에 지원했으리라 짐작된다. 이 땅의 첫인상은 어땠나?

유: 주변에 무조건 자연이 있어야 했다. 사실 지자체에서 사거리의 코너 부지를 추천하기도 했다. 그 위치가 장사할 목으로는 좋을지언정 유동룡미술관이 자리할 곳은 대로변에서 떨어진 현 부지라고 간주해 역으로 제안했다.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백마가 수풀 사이에 서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건축적, 환경적으로 축이나 향을 따지는 절차를 기대했다면 아쉬울 수도 있겠으나 굉장히 직관적인 선택이었다. (웃음)

 

한: 백마가 서 있는 영상을 보니 자연이 한층 더 신비로워 보이면서 그 직관적 결정이 절로 납득될 정도다. 이곳에 설계한 건축에 대해 얘기해보면 좋겠다. 이타미 준의 첫 작품인 어머니의 집(1971)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유: 많은 분이 어머니의 집과 오버랩하기에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라고 답한 게 기사화됐더라. 이 미술관은 내 작품이기보다 철저히 이타미 준의 건축 사상이 배어 있는, 이타미 준다운 공간을 의도했기에 

사람들이 그의 여러 작품과 겹쳐 보는 듯하다. 사실 정해진 장소가 없을 때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 그린 마지막 스케치를 발전시키려는 마음도 막연히 있었다. 하지만 이 땅을 만나고 보니 맥락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계획을 접고 새롭게 설계했다. 

우선 부지 중앙에 타원을 그려 넣었다. 이타미 준은 제주도에서 건축을 할 때 “제주도 지형이 타원형에 가깝다는 의식 때문인지 스케치 또한 자연스럽게 타원형을 그리게 되는 것 같다”고 한 바 있다. 유동룡미술관에서 타원형 공간은 이타미 준을 보여주는 핵심 공간이다. 타원형의 1층은 이타미 준의 저서와 작품집을 모아 놓은 라이브러리, 2층은 제주도 대표작을 선보이는 상설 전시관이다. 주변으로는 기획 전시관, 부대시설 등을 배치했다. 무엇보다 중요했던 부분은 아버지의 교훈처럼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었다. 겸허한 자세로 대지에 자연스레 스며들고 바람에 순응하는 건축을 의식하며 발전해나갔다. 건물의 필요한 기능, 전시실의 층고 등을 갖추려 하니 어려움도 따랐다. 그럼에도 곶자왈 숲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 높이와 비율에 대해 수십 번의 모형을 만들며 스터디 했고 내외부의 피드백도 받았다. 

공사가 8개월간 멈춘 일도 있었다. 착공하며 흙을 걷으니 생각지도 못한 암반이 드러난 것이다. 제주말로 ‘빌레’라고 하는 평평한 암반인데 용암 줄기가 보인다. 이를 발견하고 빌레를 존중하는 배치로 다시 조정했다. 티 라운지는 곶자왈과 빌레를 같이 끌어안도록, 제일 큰 빌레 밭쪽에는 교실을 두고 통창이 열리도록 했다.

 

한: 그렇게 완성된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묘하게 집에 초대받은 느낌이 나더라. 또한 리셉션에서부터 전시를 보기까지의 경험이 보통의 미술관들과 다르다.

유: 의도를 정확히 간파했다. 직원들과도 “여기는 이타미 준의 집이고 손님을 환대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하고 있다. 집에 온 손님처럼 곳곳을 함께 둘러보며 소개해주지는 못해도 이곳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뮤지엄키트도 제작했다. 뮤지엄키트는 파우치 안에 전시·건축가·미술관 이용에 관한 리플릿 세 장과 미술관 내에서 열람 가능한 이타미 준 관련 서적 목록, 연필로 구성된다. 리셉션에서는 이 키트를 활용해 이곳을 즐기는 방법을 안내한다. 또 오디오 도슨트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여러 명이 오더라도 이어폰을 끼는 순간 혼자만의 사색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다. 천천히 음미하는 환경을 위해 입장 인원도 제한했다. 작년 12월 한 달간 제주도민을 상대로 무료 개방을 하며 이 작은 공간에 적절한 인원수와 이용 시간을 가늠해봤다. 현재 한 시간에 스무 명까지 예약받고 이용 시간은 두 시간이다. 리셉션에서 안내를 받은 후에는 타원형 공간을 둘러싼 계단을 통해 전시실로 올라가게 된다. 큰 건물이 아니기에 동선을 일부러 돌아가듯 길게 설정했고, 천창에서 비치는 햇빛은 자연을 느낌과 동시에 기대감을 북돋는 역할도 한다. 좁은 폭에는 일행이 있더라도 한 명씩 들어가길 바라는 의도가 담겼다.

 

 

1층 로비 

 

 

상설 전시관 

 

한: 2층에서는 개관전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을 11월 1일까지 개최한다. 1970년대 초기작부터 2000년대 제주도에서의 말년 작업을 아우르는데,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이타미 준: 바람의 조형〉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유: 2014년 전시는 이타미 준의 건축 경향이나 태도를 시기별로 애써 나눴는데, 그렇게 하고 나니 억지스러움을 깨달았다. 이번 전시는 기준을 두고 작품을 분류하기보다 자연스럽게 시간 순서대로 나열하고 타원형 공간에서 제주도의 작품들로 마무리되게끔 구성했다. 이는 일반인에게도 유명한 포도호텔(2001)이나 수·풍·석 미술관(2006), 방주교회(2009) 등을 완성하기까지 이타미 준이 어떠한 철학을 갖고 과정을 밟아왔는지 보여주는 흐름이다. 따라서 이타미 준의 마지막 오리지낼리티에 영향을 준 지역성, 소재 등에 대한 가치관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로 선정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비해 협소해서 전시품을 줄일 수밖에 없어 아쉬웠으나, 앞으로 이타미 준의 여러 면을 보여줄 계획이다. 그는 건축가일 뿐 아니라 화가이자 수집가였다. 그의 다양한 면모를 시대 흐름에 맞춰 부각해 이타미 준의 사상을 기초로 한 메시지를 사회에 전달하고자 한다. 

 

한: 관람객은 전시를 본 후 1층의 티 라운지와 라이브러리에서 시간을 보낸다.‘집으로의 환대’, ‘사유’라는 개념이 강하게 작동하면서도 이타미 준의 건축관을 놓치지 않은 공간 같았다.

유: 1층은 먹색을 주요 색상으로 잡았다. 이타미 준의 ‘먹’ 시리즈—먹의 집(1975)과 먹의 공간, 물의 공간(1997), 그리고 먹의 암(1998) 내부가 다 먹색이다. 그러나 한 건물 안에서도 먹색마다 재료가 다 다르다. 일본의 버블 경제 시기에 남들은 화려한 대리석을 쓸 때 이타미 준은 재료의 색을 어둡게 통일하면서도 그 소재들이 자연광을 만났을 때 각기 다른 ‘소리’를 내도록 했다. 유동룡미술관에서도 현무암, 나무, 패브릭 등의 다양한 먹색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아버지의 창작 공간이나 사무실이 먹색인 점을 고려해 라이브러리 이름을 ‘먹의 공간’이라 붙였다. 라이브러리에는 메모지를 준비해두고 뮤지엄키트에 동봉된 연필로 자신을 표현하고 기록할 수 있게 했다. 큰 창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은 먹색 테이블을 비추고, 1층 바닥 레벨보다 한 단 내려간 공간은 몰입을 돕는다. 

티 라운지는 아버지의 캐릭터가 반영됐다. 그는 차를 즐겨 마셨고 손님이 오면 늘 당신이 직접 차를 우렸다. 유동룡미술관의 손님에게도 비슷한 경험을 선사하고자 입장료에 차 한 잔 혹은 기념품과 교환할 수 있는 티켓을 포함시켰다. 제주도의 우연못이라는 차 브랜드와 협업해 시그니처 차도 만들었다. 아버지의 원고 제목이자 티 라운지의 이름이기도 한 ‘바람의 노래’를 표현한 차다. 커피는 마련하지 않았는데, 커피 머신 소리가 사유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 덕에 빌레가 보이는 창 옆에서 다기들이 달그락하는 소리를 배경으로 차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외에도 향과 음악을 통해 몰입을 더욱 극대화하도록 했다. 공간이라는 게 오감이 한꺼번에 인지되면서 채워지고 기억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입장하면서부터 다른 사람 집에 온 듯한 냄새가 났다고 했는데, 

이타미 준의 시그니처 향을 두 시간에 한 번씩 뿌리고 있다. (웃음) 아버지 서재에서는 먹이라든지 책 냄새가 뒤섞여 편안한 느낌을 줬는데 향기 작가 한서형이 이를 모티브로 향을 구현했다. 미술관에 흐르는 피아노 음악은 양방언이 맡았다. 양방언과 이타미 준은 서로 만난 적 없지만 그가 아버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음악가라는 확신이 있었다. 재일 교포임에도 한국 전통에 관해 공부하고 뿌리를 둔 접점이 있어서였다.

 

한: 1층에는 일반 방문객이 자유롭게 출입하기 어려운 공간도 있다. 이타미준 마스터클래스가 열리는 교실인데, 이타미준 마스터클래스는 약 2년 전 서울에서부터 이타미준 건축문화재단에서 해오던 활동이다. 교육의 지향점과 방식을 소개해 달라. 그리고 서울과 제주에서의 차이가 있다면?

유: 요즘 도시에서는 놀이터에 가도 흙과 돌을 만지기 어렵고 자연을 접하기 위해서는 어딘가로 멀리 가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일은 ‘자연과 친해지기’다. 바로 이 점이 이타미준 마스터클래스가 지향하는 바이자 타 건축학교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이타미준 마스터클래스의 주제는 돌, 흙, 나무, 종이로 이뤄진다. 돌을 예로 들면 제주도의 현무암, 강화도의 강화석, 이탈리아의 대리석이 다 다르지 않나. 수업을 하다 보면 차이에 대해 살펴보면서 자연스럽게 지질 수업으로 이어지고 여러 분야로 확장된다. 이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자연을, 그리고 세상을 보는 눈 자체가 달라지리라 믿는다. 나아가 이러한 시각을 갖추고 건축가가 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다를 것이다. 따라서 재단에서는 교육을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생각하고 운영해나가고 있다. 대상은 미취학 아동부터 청소년까지다. 유동룡미술관에서 미취학 아동 수업은 이미 진행 중이고 곧 초등학생 수업도 열린다. 방학 때는 청소년 수업도 계획 중이다. 제주도에서는 서울과 달리 해외 굴지의 어린이 건축학교와 MOU를 맺고 방과후 학교처럼 운영하려 한다. 동네에 대해 알려주고, 자연과 함께 건축을 알아가는 수업을 구상하고 있다. 교실에서 통창으로 빌레 밭을 보며 혹은 빌레 밭 위에서 실외 수업도 할 수 있게끔 철저히 자연 안에서 자연과 친해지는 걸 기본으로 할 예정이다.

 

 

티 라운지(바람의 노래) 

 

 

라이브러리(먹의 공간)

 

한: 개관 후 3~4개월이 지난 시점, 미술관 방문 후 제주 내에 다른 이타미 준의 건축물을 돌아보는 사람이 늘었다고 하더라. 

유: 의도한 바고 원하는 바다. (웃음) 아카이브 전시가 아닌 실체가 주는 감동이 또 있으니까. 그리고 건축 자체가 관광 콘텐츠로 활용되는 흐름은 굉장히 좋은 신호인 것 같다. 건축에 대한 대중의 눈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어서다. 그러면 그 수준에 맞추기 위해 건축계가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한: 마지막으로 남은 과업을 알려 달라. 이타미준 건축문화재단의 웹사이트에서 암시하는 시간의 집, 아버지의 유언 중 미완 상태로 남아 있는 건축상 말이다. 

유: 시간의 집은 유동룡미술관 라이브러리의 서울 버전처럼 현재 사무실로 쓰는 건물 1층을 활용해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쉬다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기획됐다. 예약제로 온전한 시간을 제공하는 등 구체적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건축상의 경우 객관적이고 공정한, 그리고 여러 대상을 포용할 수 있는 형태를 고민 중이다. 다만, 프로젝트가 속한 지역의 전통과 문화에 뿌리를 두고 본인만의 오리지낼리티가 묻어난 건축을 만들었는지가 초점이 되겠다. 그것이 이타미 준이 늘 이야기 했던 메시지니까. 수·풍·석 미술관이나 포도호텔이 시간이 흘렀음에도 계속 사랑받고 화제성을 가지는 현상을 보면 이타미 준의 사상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는다.

 

 

유동룡미술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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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화
유이화는 현재 ITM유이화건축사사무소 대표, 이타미준 건축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타미준건축연구소 서울지사를 설립한 2002년부터 이타미 준(유동룡)이 타계한 2011년까지 건축 작업을 함께한 바 있다. 독일 디자인
어워드(2019), iF 디자인 어워드(2018, 2016), 한국건축문화대상, JDC 어워드(2004) 등 다수의 건축상 수상 경력이 있다. 호텔, 리조트, 주거, 문화 및 업무 시설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건축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