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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보기, 연결하기: 중랑망우공간

정재헌 + 모노건축사사무소

정욱주
사진
박영채
자료제공
모노건축사사무소
진행
박지윤 기자

「SPACE(공간)」 2022년 8월호 (통권 657호) 

 

 


도시의 품으로 들어온 공동묘지 

‘망우리 공동묘지’가 ‘망우역사문화공원’보다 입에 더 잘 붙는다. 어릴 적 이곳은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가보았다고 얘기한 적 없는 부정적 인식의 장소였다. 나와도 평생 무관한 장소였는데 얼마 전 망우역사문화공원 내 위치한 중랑망우공간의 크리틱 요청을 받게 됐다. 무관하던 망우리 공동묘지와의 첫 인연이 생겼고, 조경가로서 건축 작품을 크리틱 하는 상황을 맞게 됐다. 조경가가 써야 할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조사를 시작했다. 우리 세대에게 익숙한 명칭인 망우리 공동묘지, 현 망우역사문화공원은 어둑하고 으스스한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다. 울창한 숲, 유명 인사들의 묘, 근사한 전망이 가득한 공원이다. 1933년 일제강점기 시절 주거지와 거리를 두고 입지했던 이 공동묘지는 서울이 팽창하면서 공원화되어 도시의 품으로 들어왔다. 도시와 묘지의 어색한 동거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워졌고, 봉분 사이로 산책하는 것도 일상이 됐다.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되고, 2016년 망우리 인문학길이 조성되는 등 기피 시설의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노력이 계속됐다. 그 방점으로 2022년 4월 중랑망우공간이 개관했다. 산지 능선에 입지한 중랑망우공간은 건축가 정재헌이 설계한 연면적 1,247.25㎡ , 2층 규모의 건축물이다. 모노건축사사무소의 설계 특징인 간결하고 비례 잡힌 조형미와 섬세한 디테일은 이 공간에도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음을 도면과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건축가와 함께할 답사를 준비하며 몇 가지 주안점을 선정했다. 첫 번째는 이 긴 건축물이 어떤 방식으로 지형에 안착했냐는 것이다. 한 방향 경사에 건물이 입지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이 건물은 능선에 입지한다. 분명 사이팅(siting)에 대한 풀이가 어려웠을 것이다. 두 번째도 능선 지형과 관련한 사항이다. 산지 능선에서 이 건축물의 주된 입면을 어떻게 설정했을지 궁금했다. 주변 콘텍스트에서 바라보았을 때 건축물이 생산하는 이미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세 번째는 이 건물을 통해 사방에 가득한 경관을 어떻게 담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조망의 도구로서 건축물의 성능을 확인할 참이다. 

 

 

 

능선에 위치한 파빌리온 

첫 방문이라 꽤 먼 듯 느껴졌지만, 이내 자료로 확인했던 중랑망우공간의 북서측 코너가 모습을 드러냈다. 넓은 도로에서 너무 쉽게 맞닥뜨린 첫인상은 다소 아쉽게 느껴졌다. 차분하고 조용하게 마음을 가라앉힐 분위기를 상상하며 올라갔으나 중랑망우공간과 접한 길에는 주차된 차가 가득했다. 등산객, 자전거 이용자, 강아지와 산책 나온 동네 주민 등 왁자지껄한 장면이 펼쳐졌다. 차분하기보다는 경쾌한 분위기였다. 건축가 정재헌이 이 건물을 긍정적 묘지(merry cemetery)라 명명한 이유가 이것일까? 미리 생각해둔 화두를 염두에 두고 건축 소요를 시작했다. 먼저 사이팅이다. 120m 길이의 직선적인 건축물이 경사면 도로와 만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건축가는 도로 경사를 영민하게 활용했다. 도로보다 낮은 대상지 남동부에 주차장을 배치해 외부에서 주차장을 감추는 효과를 냈고, 도로보다 높은 북서부에 건축물의 주된 매스를 배치해 올라오는 길에서 건축의 첫인상이 드러나도록 했다. 남동부 코너에는 도로와 건물 2층이 바로 연결되는 게이트를 설치했다. 건물의 양 끝이 지형을 만나는 방식은 옹벽과 경사를 활용하여 무난하게 처리됐지만, 건물의 후면은 다소 아쉬웠다. 1층 레벨보다 1m 정도 올라온 지형에 소나무를 심어 후면 배경으로 삼고자 했는데, 능선의 특징상 삼면으로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펼쳐져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소나무 마운딩은북동측 공원 전망을 방해하고 말았다. 두 번째 화두는 이미지다. 지형 여건상 건물을 투시할 수 있는 주요한 위치는 도로 주변이다. 온전히 건물의 입면을 마주 볼 수 있는 포인트는 건물 1층과 도로의 레벨이 같은 중간 지점이며, 이곳은 건물의 주 입구이기도 하다. 입구에서 보는 뷰에는 파사드가 드러나지 않는다. 건물은 뒤쪽으로 보이는 묘지들과 산세에 포커스를 양보하고 뷰 프레임의 역할을 수행한다. 건축의 매스가 드러나는 프로그램 공간들(사무실, 카페, 전시실, 화장실)은 한 발 뒤로 물러나 도드라지지 않고, 외기에 노출된 여러 복도의 합이 건축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건축보다는 골격이 주된 이미지를 형성하는 파빌리온의 구성에 가까웠다. 마지막 화두는 뷰다. 이 건물은 작정하고 사방의 뷰와 관계 맺겠다고 선언하는 듯하다. 1층의 보행은 회랑으로 유도된다. 주변이 복작한 분위기지만 추모공원임을 잊지 않으려는 듯, 무채색 회랑은 경쾌한 동시에 경건하게 연출됐다. 회랑 기둥의 그림자는 공간의 표정을 풍부하게 만들며, 하늘을 투영하는 정갈한 수반은 이를 배가한다. 2층과의 연결은 네 군데다. 그중 주차장과의 경계에 설치되어 2층 선형 테라스부터 1층을 스쳐 북측의 묘지 공간으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계단 구조는 주차장의 차폐와 층간 연결 기능을 수행할 뿐 아니라, 묘지와 하늘을 감각적으로 연결하여 경건한 사유를 유도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2층에는 사무실과 전시실이 있지만, 2층의 더 중요한 역할은 전망대로서의 기능이다. 우거진 숲과 회랑은 쾌적한 그늘을 제공하지만, 1층 레벨에서는 추모공원과 시각적으로 관계 맺기가 쉽지 않다. 2층은 햇볕에 노출되는 대신 주변의 풍경과 다양한 조우가 가능하다. 멀리 남산뿐 아니라 인왕산, 북한산, 수락산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실루엣을 볼 수 있으며, 가깝게는 망우산의 산세와 시야가 허락하는 각도에서 추모공원의 장면도 담을 수 있다. 경계 펜스는 전망 활동에 방해가 없도록 유리 혹은 평철로 간결하고 세련되게 설치됐다. 온전히 전망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다. 

 

 


공공 건축의 좌표 

좋은 건축은 설계자의 부연 없이도 의도가 이해되고 의도대로 사용된다고 생각한다. 중랑망우공간도 이용자들이 건축가의 의도에 공감하듯 사용할 것이라 판단한다. 건축가는 이 건물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매스로 존재를 드러내는 건물은 이 대지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건축물을 걷기와 보기 기능에 최적화하고 외부와의 연결을 극대화했다. 1층 회랑, 2층 펜스 등 정제된 구조 디자인이 제공되었기에 매스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고도 주변 환경과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양질의 건축이 태어났다. 하지만 아무리 감각 넘치는 건축가라고 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공공 건축 표현의 한계는 이 건물에도 예외 없이 드러났다. 민간 건축이었다면 시도도 할 수 없는 과감하고 투박한 시공 터치가 여기저기 발견됐다.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몇 가지 의문점도 해소됐다. 건축가 역시 필요 이상으로 넓은 길과 많은 주차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와 동시에 향후 주차 없는 보행 위주의 접근로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과 희망을 드러냈다. 1층 후면의 소나무 마운딩은 별개의 프로젝트임을 알게 됐다. 1층 포장의 끝이 대지 경계선이었고, 그 너머는 구리시의 소관이라 따로 진행됐다고 한다. 건축가가 가장 아쉬워할 부분이지만, 정재헌은 아쉬움보다는 다음 전투에 대한 의지를 보인다. 이 건물은 좌표 역할을 해야 하며, 이 좌표를 기준으로 한 걸음씩 더 나아가야 공공 건축의 미래가 있다는 이야기를 건넨다. 좌표론을 상기하며, 나 또한 공공재의 질적 향상을 위한 전의를 불태워본다. (글 정욱주 / 진행 박지윤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정재헌(경희대학교) + 모노건축사사무소

설계담당

김정호, 황소연, 김홍일, 김영찬

위치

서울시 중랑구 망우로 91길 2

용도

묘지 관련 시설

대지면적

116,826㎡

건축면적

935.52㎡

연면적

1,247.25㎡

규모

지상 2층

주차

29대

높이

8.9m

건폐율

0.8%

용적률

1.07%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산화발색 스테인리스스틸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페인트

구조설계

(주)은구조 기술사사무소

기계설계

주성엔지니어링

전기설계

한길엔지니어링

시공

시온종합건설산업

설계기간

2018.12. ~ 2021.3.

시공기간

2021.4. ~ 12.

건축주

서울특별시


정재헌
정재헌은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벨빌 국립건축학교에서 앙리 시리아니의 지도를
받았다. 미셸 카강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하여 1998년 아틀리에를 열었다. 현재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다음 세대를 이끌 건축가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모노건축사사무소와 함께 삶을 짓는 건축가로 디자인 열정을 쏟고 있다.
도천라일락집으로 서울시건축상 대상, 한국건축가협회상을 받는 등 완성도 높은 작품들로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양평 펼친집, 호시담, 판교 요철동, 오륙도 가원레스토랑, 동검리주택단지, 두물머리 주택 등이 있다.
정욱주
정욱주는 서울대학교 조경학 학사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고, 올린 파트너십, 필드 오퍼레이션즈 등 국내외 설계사무소에서 실무 경력을 쌓은 후, 2005년부터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에 재직 중이다. 2014년부터 (주)제이더블유랜드스케이프의 디자인 디렉터 활동도 겸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중앙도서관 옥상정원을 비롯하여, 디에이치 아너힐즈 헤리티지 가든, 성수동 우란문화재단 조경, 울릉도 코스모스 힐링스테이 조경, 상암동 JTBC 사옥 조경, 합천 황매산군립공원 마스터플랜, 해남 솔라시도 정원도시 기본구상 수립 등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 계획, 설계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