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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길

서현 + 소수건축

오은(시인)
사진
남궁선
자료제공
서현
background

전망을 전망하다

 

부안에 갔다. 위도에 갔다. 전망대에 갔다. 가는 일이 계속되었다. 시군구와 읍면동 같은 행정 구역 단위가 번갈아 떠올랐다. 땅은 다시 자잘한 땅으로 나뉘고 그 땅 하나하나마다 이름을 붙인 최초의 사람을 생각했다. 서울에 산다고 말할 때, 서울 어디에 사는지 추가적으로 질문이 따라붙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거기까지의 거리를 헤아리고 어떻게 오가는 게 상대에게 좋을지 가늠하는 마음씨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불씨가 될 것이다.

부안에 도착했다. 정확히 말하면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발이 닿았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이다. 거기서 위도로 향하는 여객선을 기다렸다. 컵라면을 후후 불어 먹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나무젓가락을 야무지게 움직여 라면 면발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광경을 바라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여행할 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찾아오는 소소한 기쁨들이 여행에 생기를 가져다준다.

 

 

 

숲길 전망대를 설계한 건축가 서현 선생과 함께 배를 타고 위도로 향했다. 위도는 허균이 쓴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율도국의 배경이 된 섬이라고 한다. 뭍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을 섬에서 이루고자 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니 아찔했다. 위도의 ‘위’자는 고슴도치를 뜻하는 위(蝟)를 쓴다고 하는데, 아마도 위에서 내려다본 모양이 고슴도치와 닮아서일 거다. 그 말 탓인지, 배를 타고 가는 길에 어슴푸레 보이는 나무들이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배에서 내리니 ‘파장금 마을’이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파장금(波長金)은 “파도가 길게 치면 금(金)이 들어온다”라는 뜻이란다. 만선(滿船)을 꿈꾸는 섬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이름이다. 위도에 오니 문득 박영근 시인의 시 「위도에서」가 떠올랐다. “수평선 끝에서 뜨거운 눈물이 달려온다/ 파도는 제 몸 위로 쓰러질 수 있을 뿐/ 안개를 두르고/ 돌아앉은 섬/ 몰라라/ 물길을 막고/ 침묵하는 섬/ 파도가 파도를 업고 달려온다”라는 구절이 눈앞에 라이브로 펼쳐지고 있었다.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차를 타고 10여 분을 이동했다. 위도에 거주하는 사람이 천 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위도에는 택시가 딱 한 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료가 없는 택시 기사는 얼마나 적적할까. 위도는 꾸무럭꾸무럭 생각이 피어오르 게 만드는 곳이었다. 개중 어떤 생각은 나중에 고슴도치의 가시처럼 뾰족해지리라. 차를 타고 도착한 곳에는 소나무 숲길이 펼쳐져 있었다. 이 숲길 어딘가에 전망대가 있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첫발이 자연스럽게 다음 발을 이끌었다. 발바닥이 숲길에 닿는 느낌이 마냥 좋았다.

 

 

전망대에 도착하고 적잖이 놀랐다. 우뚝 솟아오른 전망대를 생각했었는데, 숲길 전망대는 차라리 아늑했던 것이다. 전망대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서는 야트막하고 널찍한 계단을 올라야 했다. 계단에는 작은 구멍들이 나 있어 위뿐 아니라 옆과 아래도 언제든 살필 수 있었다. 계단과 계단 사이로 보이는 녹음(綠陰), 머리 위로 푸지게 쏟아지는 햇살 덕분에 발걸음은 점점 경쾌해지고 있었다. 기존의 전망대가 우러러보는 것이었다면 숲길 전망대는 어느 순간 “나타나는” 것이라는 서현 선생의 말씀을 듣고 고개를 절로 끄덕였다.

문득 앞서 품었던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라는 표현은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에 가는 발걸음 하나하나가 일종의 ‘전망’인 셈이었다. 전망대 위에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닌, 올라가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을 전망하는, 그야말로 색다른 경험이었다.

“공간은 일종의 그릇이에요. 누가 들어와서​ ​​채우느냐, 누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거죠.” 서현 선생의 말씀을 듣고 과정으로서의 건축이, 여정으로서의 여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 멋들어진 수평선 사진을 찍는 것도 남는 것이지만, 두 갈래로 뻗어 있는 계단들 중 내가 원하는 계단을 밟고 올라갔다가 다른 방향으로 내려오는 이 과정 자체가 더없이 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남지 않아도 기억은 굳게 남아 추억이 되니까.

일출이나 일몰을 보기 위해 먼 데서 숲길 전망대로 발걸음을 할 사람들을 떠올려보았다. 그들도 격포에서 위도로 오는 배를 기다릴 것이다. 출출하면 터미널에서 컵라면을 먹기도 할 것이다. 그런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자신만의 추억이 될 것이다. 숲길 전망대에 왔던 날을 두고두고 떠오르게 만들 것이다. “갔다 왔어”라고 말하는 단순 경험이 아니라 “가는 길에 벤치가 있었어”, “그때 숲길에서 짙은 솔잎 냄새가 났어”라고 말하는 입체적인 경험이 될 것이다.​ 

 

 

 

 

 

서현 선생이 쓴 『상상의 책꽂이』(효형출판, 2018)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등장한다. “문장이라는 건물에 들어서는 이 마을에서 필요한 상상력은 맥락을 새로 교직(交織)하는 서술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니 그건 마땅히 인문학적 상상력이라 불리겠다. 즐거운 작업이었다.” 위도에, 위도의 숲길 위에 전망대를 세우겠다는 마음도 그런 상상력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단순히 바다와 하늘을 잇는 것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전망대에 다다르는 여정에 개인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건축의 맥락 또한 사람들이 전망대를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변주가 이루어질 것이다. 각기 다른 사연이 담긴 즐거운 발걸음이 될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새우깡을 두 봉지 사서 갈매기들에게 던져주었다. 바닷바람 때문에​ 휘어져 날아가는 새우깡을 바라보며 어디에 도착할지 알 수 없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숲길에 왔다가 태양을 가까이 마주한 것처럼, 위도에 왔다가 문득 시를 떠올린 것처럼,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역설적으로 전망을 멈출 수 없었던 오늘처럼. 섬은 외따로 존재하지만, 외따로 존재하기에 섬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거기로 건너갈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만들어줄 것이다.​ 전망대에 올라 두 눈 가득 풍경을 담는 것만큼이나 전망대로 향하는 걸음 하나하나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몸소 느끼게 해줄 것이다. ‘어디에 가야 한다, 무엇을 봐야 한다’라는 의무가 아니라 ‘어디로 갈까? 무엇을 볼까?’라는 질문을 스스럼없이 던지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 르는 상념들이, 비로소 여행을 완성하는 것이리라.​​ <진행 박세미 기자>

설계

서현, 소수건축(고석홍, 김미희)

설계담당

박윤선, 김선아, 양형원

위치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면 대리 365-1

용도

공작물(전망대)

대지면적

648m2

건축면적

115.94m2

높이

9m

건폐율

17.89%

구조

철골조

외부마감

아연도 그레이팅, 백색 지정 녹방지 도장

구조설계

터구조

시공

(유)삼경건설, (유)미루건설, (주)럭키 강업

설계기간

2017. 5. ~ 9.

시공기간

2017. 9. ~ 11.

건축주

부안군


서현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 『건축을 묻다』, 『배흘림기둥의 고백』 등을 저술했다. 건원재, 시선재, 해심헌 등의 작업을 진행했고 현재 한양대학교 교수이다.
고석홍, 김미희
모두 한양대학교 건축대학원을 졸업했다. 광주 어번폴리 공모에서 ‘기억의 상자’로 당선되었으며 이후 동심원, 영서헌, 정중헌 등의 주거와 양평 살구마을 단독주택단지 등의 작업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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