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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일상에서 영감을: 조이트로프

CIID

주익현
사진
송유섭
자료제공
CIID
진행
윤예림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2022년 12월호 (통권 661호)

 

​‘일하는 공간’은 인류 역사와 함께 변화해왔다. 산업혁명 이후 근대화를 거치며 효율성만이 지고한 가치로 여겨지던 풍조에 오랜 성장통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에 민감하게 대응해야만 하는 시대 속에서 사회는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성장을 요구한다. 최근 IT산업의 급격한 발전을 기반으로 사옥을 건설하는 많은 기업이 직원의 창조성과 생산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사옥이 단지 ‘일’하는 곳, 기업의 아이덴티티를 담는 공간만이 아님을, 변화한 시대 정신이 반영된 업무 공간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조이트로프는 유튜브 콘텐츠를 기획, 생산하는 크리에이터들의 창의적인 업무와 다양한 전문가들 사이의 협업이 일어나는 곳이다. 콘텐츠 제작이라는 업무 특성상 직원들은 낮과 밤 구분 없이 긴 시간을 사옥 내에서 보내게 된다. 매시간 머리를 싸매고 아이디어를 내야 하는 직원들의 말랑한 창의력을 위해 건축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건폐율과 용적률, 높이와 일조 제한 등의 규제 안에서 최적의 크기, 최고의 밀도를 요구하는 도심 건축이 효율보다 우선할 가치는 무엇일까? 특히나 업무시설은 네모반듯한 공간으로 가구 배치의 효율을 높이고 분리된 수직 동선으로 획일화된 구조 체계를 갖추는 것이 마땅한 모습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곳을 설계하며 일 순위로 둔 과제는 효율이 아닌, 다채로운 공간 경험과 그로 인한 창의적 생산성의 향상이었다. 공감각적 경험을 통한 자극이 영감이 되고, 업무와 업무 간 피로를 다스릴 만한 여유가 있는 공간. 이러한 ‘일하는 공간’으로서 조이트로프가 줄 수 있는 경험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벽, 일상에 틈을

조이트로프는 제1종 전용주거지역이자 강남역과 신논현역을 잇는 상업지의 이면에 위치한다. 개발이 포화된 상업가의 흐름이 점차 스미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조용한 주택가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 곳이다. 업무시설이 주변 주택과 자연스레 조우하며 각자의 경계를 지킬 수 있도록 ‘벽’이라는 건축 장치를 이용했다. 인접 건축물의 마당과 벽, 창의 위치를 고려하여 철저히 계산된 비례와 개폐 범위로 구성된 파사드는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막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완전한 가림막으로 서 있는 대신, 한 켜 벌어진 틈새로 적당히 여과된 일상을 드러내면서 주거지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또한 오목한 곡선의 파사드는 오래된 주택의 주된 재료로 남아 있는 기와를 닮아, 이질감 없이 주변 경관에 녹아든다. 조이트로프의 견고한 벽은 빛의 방향에 따라 그때그때 다른 그림자를 연출하는 스크린이 되기도 하고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편집된 풍경을 보여주는 액자가 되기도 한다. 오랜 업무 시간 동안 마주해야 하는 ‘지루한 벽’이 기지개를 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날 때나 차를 마시러 갈 때, 일상의 틈에서 한 번씩 시선을 멈추고 ‘감상하는 벽’이 되길 바랐다.​ 

 

 

계단, 시선에 환기를

일반적인 사옥이 층마다 야외 공간, 즉 테라스를 가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조이트로프는 엘리베이터와 화장실의 배수관처럼 수직적인 연결이 필요한 곳을 한곳에 모아 공간의 활용성을 높이되 건물에 필연적인 ‘계단’을 야외에 배치해 산책로처럼 계획했다. 이로써 야외 공간에 대한 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한 셈이다. 계단은 양옆이 열려 있어 각 층을 이동할 때 마치 공중을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데, 그 끝은 서울의 스카이라인과 탁 트인 하늘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넓은 데크로 이어진다. 장시간 근거리 모니터 화면을 바라보며 일하는 크리에이터들이 잠시나마 비일상의 여유를 느끼길 바랐다. 사내 행사를 통해 소속감과 친밀감을 높이기에도 적절한 장소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행위만으로 내부와 외부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일하는 분위기에 환기가 이루어진다.

 

 

 

선큰, 한계에서 이야기를

3m 이상 높이 차를 이루는 전면 도로와 제1종 전용주거지역의 2층 이내의 건축제한, 클라이언트의 요구 면적으로 인해 건축물 절반이 지하에 묻히는 상황을 피할 수 없었다. 조이트로프는 환경적으로 기피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지하 공간에 건축물의 입구, 로비를 비롯한 주요 시설이 위치한다. 그러나 세 개의 선큰을 과감히 교차 배치해 빛과 자연환기로 쾌적하며 에너지 효율이 높은 환경을 조성했고, 높고 넓은 공간을 요하는 촬영 스튜디오에 알맞은 공간을 확보했다. 지하가 가지는 이점을 취하면서도 지하 같지 않은 공간이다. 건물을 사람의 시야가 아닌 하늘에서 바라보면 깊이가 다른 보이드 세 개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곳 선큰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경계를 가르는 벽과 계단이 중첩되어 답답하지 않은 장면이 펼쳐지고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새로운 시나리오가 떠오르게 된다.

 

 

 

 

‘조이트로프(zoetrope)’는 원기둥 안에 여러 장의 그림을 회전시켜 움직이는 듯한 환영을 만들어내는 장난감이다. 원기둥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연속적으로 바뀌는 그림들이 장면을 재생한다. 주거지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이 건축물은 바깥에서는 무심한 벽으로 인지되지만, 건축물 안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며 이어지는 유연한 시선과 내외부가 중첩된 장면들은 크리에이터에게 공감각적 기억을 축적한다. 벽과 계단, 선큰 세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건축물을 탐험하며 하루하루 쌓인 경험과 장면은 어느새 각자의 시나리오를 완성해 비로소 커다란 조이트로프를 즐길 수 있도록 유도한다. 조이트로프가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멈추지 않는 배경이 되어 풍부한 일상과 효율적인 업무환경을 제공하는 즐거운 놀이터가 되길 희망한다. (글 주익현 / 진행 윤예림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CIID(주익현)

설계담당

유재준

위치

서울시 강남구 봉은사로18길 36

용도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423.1㎡

건축면적

210.91㎡

연면적

867.56㎡

규모

지상 2층, 지하 2층

주차

6대

높이

10.6m

건폐율

49.84%

용적률

98.94%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철골조

외부마감

컬러강판, 박판세라믹타일, 흑벽돌

내부마감

컬러강판, 아크릴 패널

구조설계

SDM구조기술사사무소

기계,전기설계

(주)수양엔지니어링

시공

라우종합건설(주)

설계기간

2019. 5. ~ 2020. 1.

시공기간

2020. 1. ~ 2021. 4.

공사비

25억 원


주익현
주익현은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주)종합건축사사무소 건원, (주)로디자인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한국건축가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7년 CIID(Contemporary Idea for Interactive Design)를 설립, 도시의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가감 없이 수용하고 조율하며 공간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특히 건축가가 주도하기보다 건축주와 관련 전문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실리적이고 논리적인 건축 과정을 도식화하는 방법을 실험 중이다. 최근에는 개인의 소유와 자산의 개념을 넘어선 공공디자인의 일환으로 건축의 사회적 역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실현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