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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의 기술: 빛의 루

김재경

김재경(한양대학교 교수​)
사진
노경
자료제공
김재경건축연구소
진행
윤예림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2023년 1월호 (통권 662호)  ​​


 

진주 건축의 정체성

진주의 건축은 촉석루(14세기), 국립진주박물관(1984), 그리고 경남문화예술회관(1988)과 같은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에 비춰 평가받아야 하는 운명에 있다. 이것은 건축적 가치뿐만 아니라 전통의 해석에 관한 평가이기도 하다. 우리 건축에서 전통의 현대적 해석에 관한 논쟁은 늘 존재했다. 현대건축이 전통과 필연적 관계를 맺을 필요는 없지만, 진주의 건축이라면 다르다. 남강이 가진 기억과 촉석루의 역사성을 배경으로 국립진주박물관과 경남문화예술회관이 내보이는 전통 건축의 해석 방향은 이 도시의 건축이 갖춰야 할 정체성을 강하게 규정한다. 따라서 진주의 건축은 김중업과 김수근이 했던 도전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 더해 빛의 루의 대지가 가진 중요성은 프로젝트에 새로운 가치를 요구한다. 남강을 중심으로 진주 구도심을 도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북측에는 촉석루와 국립진주박물관이, 동쪽에는 경남문화예술회관이, 남쪽에는 미래에 새롭게 탄생할 구 진주역 문화재생 사업지가 위치한다. 십자형 도시 축의 서편에 자리한 대지는 그곳에 들어설 프로젝트의 규모와 상관없이 중요한 위상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입지의 중요성과 진주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새로운 건축 제안의 요구에 빛의 루는 ‘21세기 촉석루’를 제시한다.

 

법고창신(法古創新)

빛의 루는 전통을 계승이 아닌 창조의 시작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태도는 국립진주박물관과 경남문화회관에서도 보인다. 촉석루와 같은 전통 건축의 큰 지붕과 그것을 떠받치는 기둥이 진주는 물론 현대의 한국 건축에 영감의 대상이 된 것은 자명하다. 전통 건축의 가구식 목구조는 경남문화회관에서 콘크리트 기둥과 주두로 새롭게 탄생했다. 전통 건축에서 서까래가 만드는 깊은 처마는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수평의 선이 중첩된 지붕이 되었다. 두 거장의 작품은 당대 건축 양식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20세기 국제주의와 일본의 제관 양식, 이후 발현한 포스트모더니즘을 지역성에 접목해 탄생한 한국성은 진주의 근현대 건축유산에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그러나 빛의 루는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전통 건축의 요소를 차용해 형태적으로 변화시킨 두 선례와는 다르게 출발한다. 빛의 루는 목조건축의 복권을 선언한다. 전통 건축의 공포와 같은 가구식 구조 결구법은 디자인 컴퓨테이션을 통해 빛의 루를 지탱하는 여섯 개의 나무로 재탄생했다. 촉석루 전면의 여섯 개 기둥을 오마주한 나무 구조의 결구는 못과 접착제 사용을 최소화하고, 목재 부재들의 결합만으로 이루어져 전통 방식을 현대적으로 재현한다. 구조체는 형태가 모두 다른 비표준화 부재들만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조립하는 시공 현장을 위해 3차원 도면을 이용한 조립 매뉴얼을 개발했다. 또한 증강현실(AR)을 도입하여 시공의 효율성을 고려했다. 전통 건축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지만, 설계에서 제안하고 시공에서 구현한 방식은 온전히 최신 기술의 적극적 사용으로 가능한 것이다. 이로써 빛의 루는 전통 목구조가 우리 시대의 공학 목재와 디지털 패브리케이션으로 다시 탄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통 방식을 새롭게 해석하고, 구현하고, 적극적으로 기술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빛의 루는 과거와 현재의 하이브리드 건축이다.


현대의 누각

전통적으로 누각은 특정 계층의 사적인 회동이나 군사적인 관측을 목적으로 지어졌다. 요즘에 와서는 원래의 의미와 다르게 파빌리온이라는 서양 건축의 유형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사실 누각은 현대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건축 유형이다. 빛의 루는 누각의 의미를 재생한다. 전통 누각의 떠 있는 마루는 빛의 루에서 공공을 위한 플랫폼이 되었다. 시민들이 남강과 망진산 등 주변의 자연환경은 물론 도시의 풍경을 동시에 관조하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전면과 좌우측 3면의 유리 벽은 방문자들이 시간과 계절에 따라 변해가는 주변 환경을 여과 없이 경험하게 한다. 높은 가시광선 투과율과 단열 성능을 신중히 고려해 선정한 유리는 내외부의 경계를 흐리고 프로젝트에 개방성을 더한다. 나무 구조는 투명한 유리를 통해 외부로 투영돼 입면 요소로 인식된다. 구조가 내부 공간을 이루는 동시에 건물의 외관이 되는 것이다. 가을밤 남강에서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에서 ‘열림’의 개념은 반대가 된다. 내부 조명에 의해 건축 자체가 유등이 되어 남강을 비추고 도시를 위한 축제의 장이 된다. 조망과 입면의 상징성을 고려한 개방성과 내부 환경을 위한 기능성을 모두 충족하기 위해 프로젝트는 에너지 효율, 단열성, 기밀성을 면밀히 살펴 시공되었다. 유일하게 막힌 동측 벽은 내진을 위한 방편이자 ‘자연과 인공의 공존’이라는 의미를 담는 배경이 된다. 방문객이 진입하며 처음 마주하게 되는 동측 외부는 아침 햇살에 비친 망진산의 나무 그림자를 담고, 동측 내벽은 석양에 드리워진 나무 구조체의 그림자를 담는다. 벽 사이 개구부를 통해 방문자는 자연의 나무, 인공의 나무, 그리고 나무 그림자까지 세 가지의 다른 나무를 동시에 경험한다. 자연과 인공의 공존은 전통과 현대의 공존과 함께 빛의 루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한 메시지다. 촉석루가 몇 백 년을 지나 계속 발전했다면 어떤 모습을 지녔을까? 특정 계층을 위하거나 특수한 목적을 가졌던 누각 건축은 기술의 발전과 공공성의 대두로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과 다르게 진화했을지도 모른다. 빛의 루는 이러한 상상 속에서 만들어졌다. 빛의 루는 21세기 촉석루다. (글 김재경 한양대학교 교수 / 진행 윤예림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김재경(한양대학교)

설계담당

윤지선, 신진호, 정나영(JK-AR), 정창운(건축사사무소소윤), 조민구(해가패시브건축)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로 195

용도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268,212㎡

건축면적

109.98㎡

연면적

119.19㎡

규모

지상 1층

높이

6.21m

건폐율

0.041%

용적률

0.039%

구조

목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탄화목 SYP 사이딩, 알루미늄 지붕재

내부마감

자작나무 합판, 화이트오크 합판, T30 삼나무데크

구조설계

환구조

기계,전기설계

유성기술단

시공

대조건설

설계기간

2020. 12. ~ 2021. 8.

시공기간

2021. 8. ~ 2022. 5.

공사비

7억 원

건축주

진주시

조경설계

김재경건축연구소


김재경
김재경은 한양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이자 김재경건축연구소의 대표다. 기술을 이용해 지역성을 새롭게 해석한 건축을 추구한다. 한양대학교에서 건축공학을 공부하고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건축과 도시를 공부, 최우수 졸업 논문상을 받았다. 수상 경력으로 목조건축대전 대상(2022, 2019),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2022), 아키타이저 A+ 어워드(2021), 아키텍처 마스터 프라이즈(2020), 건축가협회 특별상(2019),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