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어딘가 즈음에서: 호지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서재원
사진
진효숙
자료제공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SPACE(공간)」2022년 12월호 (통권 661호)

 

소위 펜션이라 불리던 공간이 이제는 호텔방이 비싸서 대신 가던 부류가 아니게 되었다. 바닷가 앞에 줄지어 늘어선 풀빌라나 숲속 깊숙이 자리한 힐링 스테이, 이런 곳은 성수기 때면 예약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서 웬만큼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면 가고 싶어도 못 간다. 최근 들어 디자이너의 손을 거쳐 나오는 테마 펜션, 그보다는 ‘스테이’라 불리길 더 원하는, 고급스런 공간들이 여기저기 입소문만 나면 금세 인스타그램 성지가 되는 일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여기저기 찾아보는 맛은 있겠으나 건축가, 다시 말해 만들어내는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죄다 거대한 통창에 과하다면 과한 인테리어, 그리고 ‘스웨덴산 바디클렌저가 있다’는 식의 지극히 자극적인 표상들로 넘쳐나는 듯하여 왠지 모르게 석연찮은 느낌이다. 호지의 건축주 또한 이러한 것들에 피로감을 가진 채 사무실로 찾아왔다.

 

 

2년 전 가을에 처음 마주했던 땅은 그리 대단한 풍광이라고는 없는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다. 어릴 적 외할머니 댁에 놀러가면 보던 한적한 들판과 나즈막하고 어둑어둑한 뒷산 정도가 다였다. 해질녘이 되니 옆집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더욱 일상적이고 평온하게 대지를 가라앉혔다. ‘이 땅에 인위적인 무언가를 추가하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어쨌든, 대지 안까지 발을 들여보기로 했다. 허리춤까지 자란 무성한 잡풀들을 헤집으며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니 도로에서부터 완만히 가라앉은 천 평 가까이 되는 땅은 아늑하게 주변을 끌어안았다. 스펙터클한 풍경이 없는 모습은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곳에 어울릴 무언가를 지어야 한다면 주변 집들 이상의 크기가 되어선 안 되었고 세련되기보다는 둔탁해야 했으며, 시골에서 흔히 보던 것이었으면 했다. 시골은 도시만큼 빼곡하지 않으니 대개 스스로 자립한 오브제 같은 형태가 많다. 창고가 그렇고 비닐하우스가 그러하며 원두막이 그렇다. 그렇다고 재현하는 것은 안 되었다. 적당히 거리를 두면서도 아주 생경하지 않아야 했다. 그리하여 생겨난 단순한 대칭의 숙박동 건물들은 머무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기억을 소환하는 정도면 충분했다. 누군가에게는 팔각집이 유목민의 천막같이 보이기도 하고 팔각정처럼 느껴지며, 긴 집은 우유갑이나 곡물 창고처럼, 그리고 둥근집은 잘록한 나무토막 혹은 모자 쓴 얼굴처럼 보인다 한들 상관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콘크리트 외관을 가진 집들은 마치 상 위에 올려진 것 마냥 땅으로부터 살며시 떠 있어 장난감같이 가벼운 듯하다가도 덩어리째로 무겁다. 그렇게 숙박동 세 동과 커뮤니티 창고, 주인집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로 떨어져 있지만 이내 이들은 지름 30m의 원형 보행로와 최소한의 폭으로 접선처럼 연결된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날, 여기저기 고인 물웅덩이와 질퍽한 땅 위로 축 처진 식물들을 내려다보며 걸을 때면 오히려 장관이겠다. 그렇게 호지는 이성과 감성 어딘가에 정리되지 않은 채 대지에 머문다.

 

 

숙박동 세 동은 전원의 푸근한 ‘공간(空間)’이면 되었다. 대개 도시에서 놀러올 사람들이 사는 각박한 높이의 천장은 아니어야 했으며 볼륨이 풍부한 빛 상자면 더욱 좋다. 집 안 구석구석을 온종일 너울대는 그림자 녀석을 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만 때마침 저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면 더없이 완벽하다. 물론 각 집마다 주인장이 미리 골라놓은 음악을 틀고 창밖 파밭을 멍하니 보는 것도 황홀하다. 벽, 천장 할 것 없이 바닥까지 온통 나무로 사방을 둘러치니 무슨 악기 상자 안에 들어온 것도 같다. 게다가 낮고 펑퍼짐한 의자들은 높은 천장을 더 높게 한다. 공간구조가 대칭이라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지만 사과 궤짝을 뜯어 만든 듯한 부정형의 가구들이 그럴 필요 없다고 농담을 던진다. 집 밖으로 나가 보니 여기저기 자란, 이름이 어려운 색색의 풀들은 이미 곤충들의 서식처가 되었다. 집들은 모두 시멘트로 만든 창고처럼 무채색이다. 강한 햇빛이 내리쬐자 지붕면은 사라지고 가냘픈 끝 선만 물결치듯 남아 있다. 일상과 초현실 어딘가에 있는 것 같아 손목의 시계를 올려본다. 팔각집에는 팔각형 중정이 있다. 가족이 머물기에 적당한 공간은 화장실 통로를 중심에 두고 두 공간으로 나뉘지만 중정으로 난 창들이 나무 사이로 시선을 느슨하게 연결한다. 샤워실은 중정으로 완전히 열려 있어 저 멀리 지는 해가 살갗 솜털에 와 닿는다. 동틀녘 침대에서 눈을 떠보니 머리 높이 난 작은 창들이 가파르게 경사진 천장을 옅게 비춘다. 수도원에 온 듯한 착각도 든다. 긴 집은 길게 난 천창이 집 전체를 가로지르는데, 필요 없어 보이는 듯한 콘크리트 보 덩어리가 천창 사이사이 귀엽게 매달려 있다. 화장실이 중간에서 잠자는 곳과 거실을 나누지만 그 높이가 낮아 천장면 전체가 끊김 없이 흐른다. 천장이 모두 거울같이 나를 반사하는 것은 짓궂지만 그럴 만하다. 침대에 누우니 별이 보인다. 둥근집에는 천장에서부터 매달린 거대한 오브제가 있는데 얼핏 보면 미국 집의 벽난로 같다. 실은 주방 후드이지만 천창의 빛을 반사해 집 안으로 산란시킬 때 오히려 제 몫을 더 톡톡히 한다. 핏덩이처럼 붉은 대리석 벽을 머리맡에 두고 침대에 누우니 천장, 벽 할 것 없이 공간들이 내 발 아래로 모인다. 누운 건지 선 건지 잠시 헷갈린다. 커뮤니티 창고에서 아침을 먹고 길게 내민 처마 아래서 길게 늘어진 초목들의 그림자를 보니 잡히지 않는 무언가가 떠오를 듯 말 듯하다. 어딘가 모를 나의 기억들이 현실과 뒤범벅되어 뭐라 설명하기 힘들다. (글 서재원, 진행 방유경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서재원)

설계담당

선우욱

위치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신왕길 78

용도

단독주택, 숙박시설

대지면적

3,361㎡

건축면적

436.86㎡

연면적

399.71㎡

규모

지상 1층

주차

7대

높이

7m

건폐율

12.99%

용적률

11.89%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아연도 골강판

내부마감

무늬목 합판, 원목마루

구조설계

(주)이든구조컨설턴트

기계,전기설계

대도엔지니어링

시공

지음씨엠(주)

설계기간

2020. 12. ~ 2021. 8.

시공기간

2021. 9. ~ 2022. 6.

조경설계

안마당더랩

가구 디자인

씨오엠

브랜딩 · 그래픽 디자인

김정아


서재원
서재원은 단국대학교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대표다. 현대 한국 사회의 다면적 상황을 긍정적 포용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부조화와 조화, 구축과 비구축, 합리성과 비합리성, 풍자와 농담 등의 모순적 병치를 통해 한국 사회의 동시대성과 가능성을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 망원 빌라, 서교 근생, 망원동 단단집, 홍은동 남녀하우스 등이 있다. 2017년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여하는 젊은 건축가상을 받으면서 올해의 주목할 만한 건축가로 선정되었고, 2021년에 김태수 크리틱 펠로우십(TSK Critic Fellowship)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출강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