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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적 자연주의: 상하농원 수영장과 목욕장

로담A.I

김영옥
사진
노경
자료제공
로담A.I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환경은 사물의 영혼이다. 

모든 사물은 자신만의 표현을 가지며, 

그 표현은 사물의 외부로부터 사물에게로 온다. 

모든 사물은 세 줄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세 개의 줄이 사물을 형성한다. 

일정 분량의 재료, 우리가 사물을 지칭하는 방식, 

그리고 사물이 자리 잡고 있는 환경”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100년 전 페소아의 글에서 ‘사물’을 ‘건축’으로 고쳐 읽어본다.​ 

 

 

 

 

상하농원은 매일유업과 고창군의 협업으로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에 조성된 친환경 시범농원이다. 농어촌체험, 휴양마을사업의 일환으로 2009년부터 기획하여 2016년에 완공되었다. 농원은 총괄계획을 맡은 현대미술가 김범이 마을이 가지는 유기적 특성을 모델로, 이상적 고향마을에 대한 연상을 주제로 기획하고 실현한 결과이다. 상하파머스빌리지는 상하농원 개장 후 농원에 머물고 휴식하기 위한 세 개 시설을 추가로 계획하기 위해 2017년부터 5년간 진행된 프로젝트다. 농원과 강선달 저수지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숙소인 파머스빌리지(2018), 수영장(2020), 목욕장(2020)이 차례로 완공되었다. 

목욕장 대지는 파머스빌리지에서 북서쪽, 언덕의 일부를 평탄하게 다져놓은 부지였다. ​언덕의 지형을 복원한다는 상상을 하며, 대지 주변에 참나무 숲을 조성하고 그 안에 나즈막하게 자리한 목욕장을 계획했다. 숲 사이로 좁고 굽은 오솔길을 내려가면 농원 목초지가 내려다보이는 방향으로 입구가 보인다. 건물은 입구동, 동측동, 서측동 세 채로 분리하여 배치하고, 어긋난 ㄷ자 박공지붕으로 세 동을 하나로 연결했다. 긴 사다리꼴 형태의 마당 북측에는 연못을 만들고, 그 너머로 자연을 향해 열리도록 했다. 연못의 물은 동측동과 마당, 서측동으로 연결되어 순환하며, 건축과 원래 자연환경 사이에 자연스러운 경계를 형성한다. 목욕장은 특히 내부의 기능이 중요한 시설이다. 사용자들이 몸으로 직접 인지하는 내밀한 공간이기에, 신체감각에 따라 직관적으로 인식되는 동선과 기능이 중요하다. 따라서 공간의 흐름과 내부의 기능을 단순하게 설계하고 높이와 크기, 재료의 사용법을 세심하게 고려했다. 동측동과 서측동의 평면은 비슷하지만, 창을 내는 방식을 달리하여 창밖의 전망과 내부 빛의 차이로 인해 계절과 시간대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서로 다르게 인식된다. 목욕장은 계절별로 내부의 크기가 달라지고 공간의 인상이 변하는 건축이다. 실제 내부 면적은 작지만 내부와 외부 사이에 중간 영역을 최대한 크게 두어 환경에 따라 안과 밖의 경계를 조절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열린 입구, 처마, 마당, 전실, 빛 굴뚝, 노천탕, 문, 창, 연못, 식물, 물은 경계를 조절하는 의도된 장치이며, 자연과 건축의 경계를 조절하는 유연한 막이다. 참나무 숲이 무성해지면, 소박한 건축을 중심으로 사람과 자연이 좋은 기억과 관계를 만들어가는 장소가 되길 기대한다. 

 

 


 

타일▶ 타이거타일



 

 

수영장 대지는 오래된 메타세쿼이아를 경계로 하는 낮은 구릉지에 위치한다. 일부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평지와 연결하여 놀이시설과 야외 수영장을 계획했다. 설계 초기에는 수영장을 만드는 계획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1년 중 수영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간에 비해 시설 투자비와 관리의 문제가 있고, 자연을 훼손하는 범위가 커서 해당 부지에 과수원을 제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가능한 한 자연환경의 질서를 지키고 땅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다는 원칙을 계획의 중요한 주제로 두고 작업하게 되었다. 진입로는 기존 대지 환경의 높이 차로 인해 서로 높이가 다른 세 개의 길에서 시작한다. 이 길들은 메타세쿼이아 산책로에서 합쳐져 입구 마당으로 이어진다. 경사가 급한 서쪽 대지경계선을 따라 매표소, 스낵바, 대여소, 락커룸, 샤워실 등 필요 시설을 두고 지하에 설비와 관리 시설을 두어 수영장의 담장 역할을 하도록 했다. 대지 서쪽으로 여덟 채의 건물동을 어긋나게 배치하고 그 사이를 비워 동쪽 언덕에서 수영장을 지나 구시포 바닷가로 이어지는 동서 방향의 바람길을 만들었다. 남북으로 긴 대지 서쪽에 사선 방향으로 건물들이 길게 배치되면서, 하루 동안 빛의 변화에 따라 그림자의 방향이 바뀌며 공간의 다채로운 인상이 만들어진다. 건물은 기능적인 농촌 건축에 사용되는 단순한 구조로 설계했다. 일정한 기간에만 사용하는 건물의 특성상 기반시설의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자 했다. 대지 전체에 바닥 포장을 최소화하고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와 녹지를 두어 가능한 기존 지하수 체계를 유지하도록 계획했다. 고창 지역은 암석이 풍화된 적색토 구릉이 많은 곳이라 주변의 붉은 황토를 이용하여 옹벽과 바닥의 마감 재료로 활용했다. 황토벽과 바닥의 마른 흙은 한낮에 물줄기와 발자국에 젖은 흔적을 남기고, 바람과 나무의 그림자가 지는 배경이 된다. 

설계 초반, 리서치 과정에서 식물과 광물을 이용해 물의 자연정화가 가능한 내추럴 풀을 공공 수영장에 적용한 해외 사례를 발견하고 관련 전문기관과 실현 방법을 연구했다. 그러나 준비 과정에서 국내 공공 수영장 설치 기준에 부적합하여 적용이 불가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수영장의 크기와 배치는 여러 차례 수정되었고 ‘자연 속의 연못’, ‘웅덩이 같은 수영장’ 등을 떠올리며 계획했던 물놀이 공간의 조형과 형태는 끝내 실현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리 친환경적인 건축 방식과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건축 행위 자체는 자연에 대한 훼손을 전제할 수밖에 없다. 천천히 자연이 움직이는 속도를 기다리면서, 수영장과 목욕장이 원래 그곳에 있었던 환경처럼 자라는 풍경을 상상해본다.(글 김영옥 / 진행 방유경 기자)

 

 






 

벽체▶ 두라마루 콘크리트 벽돌 

바닥▶ 에드먼터 우드플로어링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로담A.I (김영옥)

설계담당

채효병, 홍진표, 이송학

위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용도

수영장, 목욕장

대지면적

수영장 ‐ 9,542㎡ / 목욕장 - 15,300㎡

건축면적

수영장 - 784.91㎡ / 목욕장 - 614.7㎡

연면적

수영장 ‐ 1,242.04㎡ / 목욕장 - 899.18㎡

규모

지상 1층, 지하 1층

주차

수영장 ‐ 72대 / 목욕장 ‐ 33대

높이

수영장 ‐ 4.7m / 목욕장 ‐ 6.99m

건폐율

수영장 ‐ 8.23% / 목욕장 ‐ 22.67%

용적률

수영장 ‐ 8.23% / 목욕장 ‐ 41.49%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철골조

외부마감

수영장 ‐ 노출콘크리트, 시멘트블록, 칩보드 무늬콘크리트, 아연도 골강판, 황토

내부마감

수영장 ‐ 노출콘크리트, 목재, 칩보드, 타일 / 목욕장 ‐ 노출콘크

구조설계

(주)중앙구조이엔지

기계설계

한국설비연구(주)

전기설계

(주)정명기술단

시공

(주)제효

설계기간

2018 ~ 2019

시공기간

2019 ~ 2020

건축주

상하농원개발(유)

조경설계

(주)비오이엔씨


김영옥
김영옥은 설계사무소 로담A.I 대표이자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 겸임교수이다. 건축과 도시와 색채를 공부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작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2000년에 로담건축(현 로담A.I)을 설립하고 첫 프로젝트인 문화공간 튜브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대표작으로는 상하농원 프로젝트, 석촌호수 프로젝트, 서원어린이집, 낙원동호텔, 잠실환경디자인 등이 있다. 집짓기와 살기에 대한 책인 『숨 쉬는 집』(2004) 과 『Works book 2000–2016』(2017), 『Works book 2017–2021』(2021)을 출간했고, 〈개별적 몽상가의 집〉 (2015), 〈댄싱파빌리온 돛대닻〉 (2015), 〈허약한 경계〉(2009)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현재 여주시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