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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기억을 위한 과정, '공간인흑석'

오브젝텀 건축사사무소

정이삭
사진
신경섭
자료제공
오브젝텀 건축사사무소
진행
김예람 기자
background

(사회와 건축가의) 새로운 기억을 위한 과정

 

 

젊은 건축가의 첫 번째 작업

2013년 을지로의 어느 골목, 나는 흥신소 같은 9평짜리 공간에 중고로 구매한 500×1,000mm가 채 안 되는 식당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학교 선배이자 졸업 동기였던 파트너와 사무소를 시작했다. 설계비가 없는 일임에도 건축가 시늉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일했다. 불합리한 사회의 요구에 대응해서 설명하는 과정이 설계업무 그 자체보다 많아 일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건축가로서 나와 사회의 첫 번째 관계가 설정됐다. 공간인흑석은 최재석 소장이 개소 후 완성한, 사실상 첫 번째 건축 작업이다. 이전의 몇몇 리모델링 등의 작업이 있지만, 첫 번째 신축 프로젝트이자 관의 허가가 필요한 건축 행위이기에 그렇게 봐도 무방할 것이다. 건물은 북서 측의 큰 도로와 북동 측의 인접 대지가 옆에 있어 대지 한 중앙에서 극단적으로 일조사선의 변화가 있다. 그 극단성을 그대로 건축물에 반영하고 싶었다는 이 젊은 건축가는 임대주택이지만 주변 경관이 좋으니, 작은 건물이라도 임차인들의 향유 영역이 내부에 한정되지 않기를 희망하며 다양한 테라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적률 허용치가 높지 않아 경사지를 최대로 활용하여 지하지만 지하 같지 않은 저층부 공간을 통해 지상의 낮은 법적 용적률 기준을 보완했다. 건축 허가의 과정은 지난했다. 허가권자는 상업지역으로부터 동떨어진 이곳에 근린생활 용도로 계획된 2개층이 추후 주택 등의 용도로 사용될 것을 우려하여 허가 요청을 반려했다. 내부에 한정되지 않는 공간의 활용을 원했던 건축가의 유일하고도 주된 설계 방향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테라스 공간도 허가권자 눈에는 기존의 수많은 다세대 및 다가구 주택의 불법 이용 사례와 같이, 준공 이후에 알루미늄 새시나 샌드위치 패널 등을 이용하여 실내 공간으로 변용하려는 속셈으로 보였을 것이다. 젊은 건축가는 법적으로 불가한 이유가 없음에도 허가권자가 불허하는 이유가 궁금했고 끈질기게 의뢰인을 대신하여 설계 방향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건축가는 이 소규모 건축물의 허가를 위해 경관심의에 굴토 자문까지 받았다고 한다. 이미 기존 건축물로 인해 조성된 지하 공간이라 굴토 심의를 받아야 하는 법적 의무는 없지만, 굴토 자문을 받아야 한다는 보완지침이 있었다고 한다. 고생 끝에 건축허가를 얻은 최재석이 의뢰인에게 찾아가 “저 좀 안아주세요”라고 하며 기뻐했다는 후일담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누군가는 문제없는 경로로 정해진 매뉴얼만 따라 쉽게 득하는 건축허가가 이 젊은 건축가에게는 일생일대의 사건이었던 것이다.

 

 

 

 

 

벽돌정보보기

 

 

젊은 의뢰인의 두 번째 작업

의뢰인은 최재석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이렇다 할 실적 하나 없는 젊은 건축가를 선택한 이유를 물었다. 의뢰인은 공간인흑석 맞은편에 건물을 처음 지었는데 그 당시 건축사로부터 안 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고 했다. 그 불가한 이유들이 하도 정교하고 능숙해서 의뢰인은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결국 남들과 같은 집을 짓게 됐다. 하지만 오브젝텀 건축사사무소의 최재석은 달랐다. 의뢰인이 어려운 부탁을 해도 그에게서는 언제나 해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 사회의 통념과 관성을 경험하지 않은 용감한 건축가이기에 그 요구를 수긍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건축가와의 대화 속에서 많은 피드백과 요청을 통해 자신과 작업이 발전할 것이라는 그의 믿음이 느껴졌다. 그는 오히려 그 어떤 계획에도 답하지 않는 설계공모가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고 말한다. 아직 어떤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피드백을 끌어내는 연륜이 부족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색이 없지만 그것을 찾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 속에서 아직은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찾겠다는 의지 또한 읽을 수 있었다. 

 

 

 

 

 

 

주방타일▶윤현상재 TO-01(TOFU WHITE) 73x73mm

 

창호​(주)아트윈 알루미늄시스템창호

 

 

새로운 기억

공간인흑석의 저층부를 주택이 아닌 무엇으로 채울 것이냐는 허가권자의 의문은 결국 의뢰인이 허가권자를 대상으로 한 시간짜리 공유경제 강의를 하며 해소됐다고 한다. 강의를 들은 허가권자가 “왜 이런 이야기를 진작에 하지 않았냐?”라고 말하자, 의뢰인의 구체적인 사업계획까지 건축가가 알아야 하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현명한 대답 같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이 땅의 건축가는 의뢰인의 사업계획을 알고 있어야 한다. 어떻게 이 주거지역에서 근린생활시설을 작동시킬 것인지, 그것이 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건축가는 의뢰인만큼 잘 이해해서 허가권자에게 알려줬어야 했다. 그것이 이 사회가 건축가에게 원하는 것이기에. 건축가는 건축을 매개로 이 사회와 대화하는 사람이다. 상대가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공부를 권하기에 앞서 알려주는 것이 성숙한 건축가다. 모든 건축가가 그렇게 조금씩 성숙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다.

종종 건축가들이 자신의 창의성을 재단하는 사회의 기준에 불만을 가진다. 하지만 이 사회가 삼고 있는 기준이 이전의 기억이라면, 그것이 몸 전체에 깊이 각인되어 규칙처럼 작동된다면, 우리는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달라진 것들을 설명해야 한다. 그런 방식으로 사회에 조금 더 나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더 나은 방식의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한다. 이 수고를 해야 하는 이유는 건축가가 사회의 자본으로 건축을 만들고, 현실에서 요청받아 건축하기 때문이며, 건축이 건축물로서 경험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건축물이 지어지는 과정의 경험으로 보다 성숙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글 정이삭 동양대학교 교수 / 진행 김예람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계

오브젝텀 건축사사무소(전혜진, 최재석)

설계담당

전혜진, 최재석

위치

서울시 동작구 흑석로5길 94

용도

다가구주택,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190㎡

건축면적

75.45㎡

연면적

324.64㎡

규모

지상 4층, 지하 1층

주차

3대

높이

15.45m

건폐율

39.71%

용적률

116.79%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적벽돌

내부마감

석고보드 위 수성페인트, 지정타일

구조설계

터구조

기계,전기설계

선이엔지

시공

브엘세바

설계기간

2018. 11. ~ 2019. 9.

시공기간

2019. 10. ~ 2020. 8.

건축주

이희춘, 남영희


전혜진, 최재석
전혜진은 2010년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한 후, aandd 건축사사무소에서 건축 및 인테리어 실무 경험을 쌓았다. 2015년 대한민국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현재 오브젝텀 건축사사무소 대표직을 맡고 있다.
최재석은 2011년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삶것에서 실무 경력을 쌓으면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스케일의 작업을 수행했다. 2018년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 수상자로 선정되었으며 현재 오브젝텀 건축사사무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이삭
정이삭은 2013년 에이코랩건축사사무소를 개소하였으며, 2017년부터 동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회적 건축 작업과 공공 연구를 하며, 건축 및 현대미술 전시에 기획자나 작가로 참여해왔다. 주요 작업으로는 연평도 도서관, 연남동 적벽돌 집, 노란 평상 등이 있고, 2016 베니스비엔날레(한국관 큐레이터 및 작가), 〈캠프 2020〉(총감독) 등의 전시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더 서울, 예술이 말하는 도시미시사』(공저, 2016)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