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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규칙적으로, 점진적으로: 설수빈

사진
닷킴필름
자료제공
설수빈
진행
최은화 기자

 

​설수빈, ‘​코리안 아르데코(Korean Art Deco)’​ 시리즈

 

 

 

규칙적으로, 점진적으로: 설수빈

 

인터뷰 설수빈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수빈씨 맞네요! 긴가민가했어요. 우리 구면이죠. 5년 전 광고대행사에서 저는 카피라이터, 작가님은 아트 직군으로 인턴십을 같이 했었죠. 지금은 기자와 가구디자이너로 다시 만났네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설수빈(설): 광고대행사 5년차에요. 아트 직군으로 입사했는데 TV, 신문, 라디오, 잡지 등 전통적인 광고 방식인 ATL보다는 그 외의 광고 방식인 BTL 관련 일을 주로 했어요. 특히 ‘브랜드 경험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전시 디자인, 공간 디자인 관련 일을 담당했어요. 회사에서는 결과물이 ‘파급 효과가 있을까? 잘 팔릴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프로젝트 규모도 너무 커서 제가 주도적으로 큰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워요. 그래서 가구 작업을 하면서 더 큰 해방감을 느껴요. 회사 업무과 가구 작업이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많아요. 둘 중에 하나가 막힐 때 다른 하나가 단서가 되어서 해결되기도 하고요. 두 일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최: 광고의 비주얼을 다루는 일과 가구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일 사이에는 큰 격차가 있을 것 같아요. 게다가 회사 다니면서 개인 작업을 한다니, 진짜 대단해요. 원래 전공은 뭐에요?

설: 학부 때 공간디자인을 전공했어요. 학교에서 따로 가구 수업을 듣진 않았고요. 2학년때쯤 디자인 가구를 취급하는 인엔디자인웍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조지 나카시마(George Nakashima), 프리츠 한센(Fritz Hansen), 클래시콘(Classicon) 등의 가구를 접했어요. 특히 에일린 그레이의 가구로 전시를 직접 기획하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그에 대해 공부하고 가구의 디테일에 매료되어버렸죠. 그 경험이 강렬해서 휴학하고 1년 동안 유니크마이스터에서 목공을 배웠어요. 그 이후로 조금씩 꾸준히 가구 작업을 했어요. 

 

 

설수빈, ‘U 스툴(U Stool)’, 410×410×630mm, 2019

 

 

최: 그러면 7~8년 정도 됐네요. 생각보다 시작이 빠르네요. 작년 2020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가구를 공개해서, 전 최근에 시작한 줄 알았어요. 그때 ‘코리안 아르데코’라는 콘셉트로 의자와 테이블을 소개했죠. 

설: 1~2년 전부터 유학 준비를 했어요. 원하는 학교에서 오퍼레터까지 잘 받았는데 팬데믹 때문에 입학 일정이 밀렸어요. 결심은 이미 다 한 상태인데, 발이 묶여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정체된 상태로 시간을 보내기는 싫어서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영 디자이너로 지원했어요. 이제까지 작업한 가구를 코리안 아르데코 라는 콘셉트로 묶어서 제출했고, 운 좋게 됐어요. 

 

최: 콘셉트와 작업의 선후관계가 의외인데요? 개념을 먼저 세우고 가구로 구체화한 게 아니라, 이미 완성된 작업들을 귀납적으로 하나의 개념으로 묶은 거네요?

설: 맞아요. 제 작업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어요. 어떻게 보면 스스로를 탐구하는 시간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내가 왜 가구를 하게 됐을까?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불편해하지? 등의 질문을 던졌죠. 1920년대에 왕성히 활동했던 에일린 그레이의 작업에 영감을 받아 가구를 시작했기 때문에, 늘 제가 아르데코 어휘를 사용하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정통 아르데코와는 뭔가 달랐죠. 아르데코는 형태적으로나 색채적으로나 더 과감해질 수 있고 화려해질 수 있는데, 저는 그런 과함을 의도적으로 걸러내고 거리를 두는 성향이 있어요. 항상 덜어내려고 애쓰고요. 그런 배경은 아마 한국에서 나고 자라면서 체화된 게 아닌가 해요.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 여기서 ‘자연스럽다’는 건 식물, 숲 등의 자연을 말하기 보다는 흘러가는 대로 이치를 따르는 것을 말해요. 코리안 아트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자연스러움’ 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아르데코의 언어를 한국의 절제미로 재해석하는 ‘코리안 아르데코’ 콘셉트를 정리하게 됐어요. 가구들이 만든 시점이 다 다른데, 신기하게도 그 개념으로 모이더라고요. 나름대로 잘 정리하지 않았나 싶어요. (웃음)

 

 

설수빈, ‘후프 체어(Hoop Chair)’, 596×780×686mm, 2020

 

 

최: 코리안 아르데코라는 개념을 선언한 이후에는 어떻게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지 궁금해요.

설: 최근 작업한 ‘링크 테이블(Link Table)’(2021)은 코리안 아르데코라는 개념을 정립한 이후에 만든 테이블이에요. 하지만 딱히 코리안 아르데코라는 개념에 딱 맞춰서 만들어야겠다 하는 생각은 없었어요. 다만 스스로 눈과 손에 익어버린 디자인 어휘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선 작업들과 유사한 형태가 결과물로 나오지 않았나 해요. 

 

최: 형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후프 체어(Hoop Chair)’(2020), ‘U 스툴(U Stool)’(2019), ‘문 미러(Moon Mirror)’(2020), ‘링크 테이블’에서 공통적으로 원과 반원이 등장해요. 얇은 획처럼 사용되기도 하고, 조금 더 두툼한 볼륨도 됐다가, 음각으로 남은 빈 공간이기도 하고, 접합부에 부분적으로 사용되는 등 동일한 형태지만 조금씩 다르게 사용되고 있어요. 이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어떤 고민을 거치시나요?

설: 과해지지 않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써요. 비율, 치수를 최대한 절제하고 통일하려고 해요. ‘후프 체어’는 수평으로 원 세 개가 병렬되고, 수직으로 원 두 개가 병렬되는 구조에요. 동일한 원주율로 맞췄어요. 통일감과 비례감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아르데코의 핵심인 대칭, 규칙 등에 더 가까워지지 않나 해요. 그런데 사실 제가 원을 아주 많이 사용하진 않아요. 직선과 원을 병행해서, 기본도형의 배치와 변주를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는데, 제 작업을 보는 사람들이 원을 더 많이 인식하는 것 같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직선과 원을 5:5로 사용했다고 치면 느낌으로는 7:3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그 부분이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최: 곡선은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곡선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아르데코하면 구불구불한 곡선도 떠오르거든요.

설: 곡선보다는 원의 요소를 더 좋아해요. 최대한 절제된 결과물을 내려고 하고, 간결한 규칙 하에 디자인하는 걸 추구하기 때문에 기본 도형인 원이 더 적합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직선보다 원이 다루기가 쉬운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스툴을 만드는 데에 하나는 직선으로만 디자인하고, 하나는 원을 더해 디자인하라고 한다면 저는 직선으로만 만들 때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완성도 높은 형태에 도달하는 것이.

 

설수빈, ‘링크 테이블(Link Table)’, 800×800×320mm​,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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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색깔도 궁금해요. 주로 무채색을 사용하고, 또 간간이 재료 본연의 색을 드러내기도 해요. 색깔은 어떻게 정하시나요?

설: 가구에는 형태, 비례, 조화, 구조 등 담긴 것이 아주 많아요. 또한 제 가구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강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모두 누르고 색깔이 우위에 서지 않기를 바라요. 너무 색깔을 과감하게 사용하면 전체 가구에서 색깔만 인상으로 남잖아요. 만약에 제 작업 중에 ‘후프 체어’를 기존의 검은색에서 노란색으로 바꾼다고 생각해보면, 그냥 ‘노란 의자’로 불리지 않을까요? (웃음)

 

최: 가구에 담고 싶은 것도, 가구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 것 같아요. 가구 작업을 통해 궁극적으로 가 닿고 싶은 것은 있나요?

설: 사람과 양방향적으로 상호작용을 주고 받는 가구를 만들고자 해요. 저는 되도록이면 가구마다 내러티브를 넣으려고 해요. 단순히 예쁜 가구, 편한 가구가 아니라 메시지가 있어서 가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일상에 미세한 자극을 주는 가구요. ‘링크 테이블’을 예로 들자면, 동일한 형태의 다리 네 개가 서로 기대고 연결되는 디자인이에요. 팬데믹으로 인해 다시금 체감하게 된 ‘함께’, ‘연결’, ‘단결’의 의미를 가구에 담고 싶었어요. 누군가가 집에서 이 테이블을 사용하다가, 어떠한 결정적인 순간 혹은 매일의 일상에 이 메시지가 떠오르면서 잠깐의 망설임이 있었으면 해요. 망설임이라는 건 변화의 순간을 코앞에 둔 시점이잖아요. 변화를 결심할 수 있도록 영감과 용기를 주는 매개체가 되는, 그런 역할을 하는 가구를 만들고 싶어요. 그게 코리안 아르데코라는 개념보다 제가 더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영역이에요. 

 

최: 이야기가 핵심이군요.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가 가구인 거고요. 

설: 네. 그런데 ‘아트 퍼니처’로 국한되기 보다는 ‘홈 퍼니처’의 영역에서 실현 되었으면 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리고 매일의 일상에서 더 가깝게 이야기들을 전하고 싶거든요. 그 안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까 싶어요. 

 

설수빈, ‘​그리드 체어(Grid Chair)’​, 420×420×840mm, 2020 & 설수빈, ‘​그리드 스툴(Grid Stool​)’, 420×420×500mm, 2020  

 

최: 어쩌면 가구 말고 다른 도구를 사용할 수도 있겠어요.

설: 그러면 정말 좋겠어요. 무대, 공간, 전시, 그래픽 등 관심 있는 게 참 많아요. 이번 여름에 영국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으로 유학을 가요. 그곳에서 최대한 다양한 분야를 접해보고 싶어요. 뷰로 베탁(Bureau Betak)의 스테이지 디자인도 정말 좋아하고, 올라퍼 앨리아슨(Olafur Eliasson)의 인터랙티브 아트도 좋아해요.

 

최: 몇 년 후에 ‘무대 디자이너 설수빈’이라는 타이틀을 보게 되면 ‘또 해냈구나!’라고 생각할게요. (웃음)

설: 생각만 해도 좋네요. 최근에 정구호 선생님께서 연출한 무대 공간을 인상 깊게 봤어요. 패션, 가구, 무대디자인 등 정말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활동하시는데, 정말 많이 자극을 받고있고, 앞으로 제가 갈 길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돼요. 처음 디자인을 시작했을 때는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요즘은 생각이 바뀌고있어요. 여러 갈래의 물길을 내면서 중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설수빈
설수빈은 동심원, 기본 형태의 반복, 대칭, 그리고 기하학적인 패턴을 특징으로 하는 아르데코 스타일에 간결함과 재료 고유의 특징을 중시하는 코리안 아트를 접목시켜 자신만의 디자인 언어인 ‘코리안 아르데코’로 해석한다. 그는 가구의 형태나 색상으로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내거나, 흥미로운 서사와 관점으로 사용자의 일상 속 작은 부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구를 만들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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