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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간결함의 최전선

사진
소목장세미(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소목장세미
background

유혜미의 가구는 간결하다. 있는 그대로의 재료 사용, 군더더기 없는 형태, 분리와 조립이 가능한 그녀의 가구는 무겁고 고정적인 기성제품과 달리 가볍고 변화무쌍하다. 이사를 자주 다니고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그 작은 공간만이라도 잘 가꾸고 싶은 요즘 세대에게 제격이다. 작가주의적 욕심이 보이지 않는 이 가구는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녀는 대학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자신이 필요해서 제작한 2층 침대를 시작으로 자연스럽게 가구를 만들게 되었다는 그녀는 1인 목공방 소목장세미를 통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유혜미, ‘독서기록대’ 

 

인터뷰 유혜미 × 최은화 

 

최은화(최):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하다가 가구로 방향을 틀었다. 순수미술을 배경으로 하는 만큼 가구에 조소적 요소를 가미한다든지 아트 퍼니처에 가까운 작업을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전혀 아니다. 간결한 형태, 이동과 분리가 가능한 구조, 가벼운 재료 등 이전 인터뷰에서 스스로 말했듯이 이렇게 ‘슈퍼노멀’한 작업을 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유혜미(유): 대학 시절에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오직 예술뿐이라고 여겼다. 그때는 순수미술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하지만 조금씩 현실감각이 생기더라. 졸업 후 미술계에 조금씩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비슷한 시기에 디자인 또한 예술의 한 영역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미술에서 벗어나 완전히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가구를 제작하는 것,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최: 2017년에 진행한 전시 <장식(Ornament)>에서 아돌프 로스가 언급한 ‘장식은 인간의 노동, 돈, 그리고 재료를 망쳐버리는 범죄’라는 표현을 서두에 제시했다. 장식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있는 것 같다. 

유: 역사적으로 장식은 부의 상징이다. 장식만 떼어놓고 보면 그 자체만으로 누군가의 디자인이고 작품이지만, 장식이 가구로 들어가면 부수적 요소로 전락한다. 가구는 최소한의 재료로 가장 간결한 형태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선 하나가 추가되면 재료 소모가 많아지고 작업 과정이 늘어나 노동력이 더 필요하며 돈도 더 많이 든다. 이 달갑지 않은 요소를 오늘날에도 반복할 필요가 있을까. 

 

최: 사용자의 손끝까지 고려한 디테일이 눈길을 끈다. 모서리가 열려 있어 종이를 한 장씩 쉽게 꺼낼 수 있는 ‘팔각 A4 종이 트레이’가 대표적이다. 소목장세미의 가구는, 우리가 불편한 줄도 모르고 지냈던 작은 부분들을 인지하게 해주고 또 바로 해결해준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는가? 

유: 돌아다니면서 이것저것 관찰한다. 예를 들어 카페에 가면, 천장 몰딩이 어떤 재료인지, 반지름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사람들이 주로 어떤 테이블과 의자를 이용하는지, 인기 없는 건 이유가 뭔지 등 일상을 관찰하고 그것들을 많이 기억해둔다. ‘팔각 A4 종이 트레이’는 한국 전통 문양과 가구에서 볼 수 있는 팔각 도형에서 시작됐다. 팔각형은 아름답고 완벽하다. 사실 자재를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사각형이 가장 좋지만, 모서리가 뾰족해서 손으로 만졌을 때 사용감이 좋지 않고 모서리 부분이 잘 깨지곤 한다. 이러한 이유로 트레이를 만들 때 사각형에서 모서리를 잘라내어 팔각형을 만들었다.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워졌고 종이를 꺼낼 때도 편리해졌다. 내가 만들었지만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다. 

 

최: 일상을 관찰하고 기억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 다른 관심사가 있는가? 

유: 스포츠 용품도 종종 구경한다. 스포츠를 위한 오브제는 디자인이 과학적일 수밖에 없다. 기능도 굉장히 구체적이다. 의자로 예를 들자면, 야외 활동을 위해 접고 펼 수 있고 팔걸이 옆에 물컵을 꽂아놓을 수 있는 식이다. 대부분 분리조립이 가능하고 무게도 가볍다. 색도 일반적인 가구에서는 볼 수 없는 과감한 색 조합이 많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실용적이며 미학적이다. 스포츠 용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A4 종이, A3 종이, 테이블, 스툴의 조합인 ‘뜀틀’을 만들었고, 초판서점을 위한 사다리 선반과 운동장 트랙 진열대도 제작했다. 

 

최: 주문제작 가구 작업이 많다. 주문의뢰를 받는 것부터 최종 완성물을 제작해 배송하는 것까지 작업의 전 과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다. 

유: 여러 악기를 특정 각도로 놓을 수 있는 테이블,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는 자신만의 방, 전시장에 놓을 디스플레이 가구 시리즈, 공간기획부터 가구제작까지 모든 걸 다 하는 카페 프로젝트 등 다양한 의뢰가 들어온다. 우선 대화를 많이 나눈다. 개인 의뢰자의 경우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로 시작해 긴 대화를 이어가며 라이프스타일과 공간 내에서의 동선까지 함께 고민한다. 카페는 ‘평소에 어떤 카페를 좋아하나’로 시작할 수 있겠다. 스케일에 관계없이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목장세미의 작업을 보고 찾아오기 때문에 자연스레 내가 쓰고 싶은 가구, 내 취향의 공간이 되곤 한다. 그래서 제작을 끝마치고 배송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항상 힘들다. 내가 사용하고 싶은 마음에 떠나 보내기 싫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잘못된 거다. 그건 팔면 안 된다. 나조차도 가지고 싶지 않은데 누가 가지고 싶어 할까. 

 

최: 1인 가구, 2030세대, 여성을 타깃으로 한다. 왜 그들에게 애정을 쏟는가? 

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가구를 만드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타깃을 정하진 않았다. 다만 내가 1인 가구이고, 2030세대이고, 여성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들을 위한 가구가 된 것 같다. 나의 가구 작업은 내가 쓰는 가구에서 출발했다. 개인적으로 지루함을 많이 느끼는 성향이 있어서, 가구를 자주 옮기고 방 배치도 바꾸고 싶은데 기성제품은 무거워서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가구 하나 옮기는 데 누군가를 불러야 하는 상황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비슷한 불편함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최: 초기에는 나무를 주로 사용한 반면 최근에는 금속을 활용한다. 재료에 변화를 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리고 나무와 금속을 다룰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 

유: 작업실이 문래동에 있는데 돌아다닐 때마다 금속이 보인다. 이 재료로 무엇을 만들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바문진’을 만들었다. 절단만 전문가가 하고 나머지는 모두 내가 한다. 최종 완성물의 무게를 예상하는 게 아직까지 쉽지 않다. 나무로 할 때는 ‘이 정도면 나 혼자 들 수 있겠네’ 정도의 감은 오는데, 금속은 정말 다르다. 그렇지만 나무와는 다른 즐거움이 있다. 나무는 한풀이 하듯 힘겹게 제작한다. 작업 과정 자체와 노동을 끝마칠 때의 뿌듯함이 있다. 반면 금속은 나의 디자인이 마치 다른 사람의 마법에 의해 순식간에 생겨난 것 같은 놀라움이 있다. 

 

최: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이 있다고 알고 있다. 개인적 관심인지 혹은 작업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하다. 

유: 페미니즘은 나와 뗄 수 없는 관계다. 대학 시절 페미니즘을 주제로 작업도 하고 글을 쓴 적도 있지만 요즘은 가구 작업에만 몰두하고 있다.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이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작업을 이어가고 여성 전문인으로서 자리 잡는 게 더 큰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지금의 내가 페미니스트로 잘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유혜미, ‘바문진’

 

 

유혜미, 초판서점의 사다리 선반 (©texture on texture​)

 

유혜미, 초판서점의 운동장 트랙 진열대 (©texture on texture​)


유혜미
유혜미는 홍익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한 뒤 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2012년부터 소목장세미를 통해 최소한의 조건들을 이용한 가구를 선보이며 주문제작 가구를 중심으로 생활가구, 인테리어 가구, 전시장 디스플레이, 공예품 등 다양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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