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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반복과 변주: 픽트 스튜디오

사진
장혜경, 박윤미술촬영
자료제공
픽트 스튜디오
진행
최은화 기자
background

제품디자인과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장혜경은 2016년 ‘공예부터 산업까지(From Craft to Industry)’를 뜻하는 픽트 스튜디오를 열었다. 그는 가구나 오브제에 잘 사용되지 않는 재료들에 주목하는데, 특히 재료들 간에 의외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자개와 레진으로 ‘네이커 시리즈’를, 대리석 파편과 레진을 결합해 ‘프레그먼트 시리즈’를, 황토와 볏짚과 제스모나이트를 이용해 ‘로에스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 장혜경을 만났다.

 

인터뷰 장혜경 픽트 스튜디오 대표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픽트 스튜디오의 첫 작업은 자개와 레진으로 만든 ‘네이커 시리즈’다. 개인적으로 자개로 만든 가구 하면 할머니 집에 있는 자개장이 먼저 떠오르는데, 이 작업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자개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장혜경(장): 학부 졸업작품을 고민하던 때였는데 한국적 디자인이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했다. ‘한국적인 게 뭐지?’라고 생각하면 막연해서 내가 지금 바로 접할 수 있는 것들의 리스트를 적었다. 자개, 황토, 숯 등 많은 재료가 명단에 올랐다. 하나씩 살펴보던 와중에 판재로 된 자개를 보게 됐다. 그전까지 내가 알고 있던 자개는 학, 거북이 등 구체적 형상이 있는 것들이었는데, 오롯이 조개 껍데기 무늬만 있는 걸 보니 새로웠다. 재료 자체만으로도 아름다웠다. 자개가 신기한 게, 뒤에 검은 배경이 있으면 파란색과 보라색이 도드라지고, 흰 배경이 있으면 아이보리색과 핑크색이 더 잘 보인다. 이런저런 재료 스터디를 하면서 재료 자체의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게 됐다. 재료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자개로 구체적 형상을 만들지 않고 비정형적 형태로 부셔서 사용한다.

 

최: 자개 본연의 모습을 부각하기 위해 그 주변도 세심하게 구성하는 듯하다. 함께 사용하는 재료의 종류와 제작 방식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장: 색이 있는 레진을 아래에 깔고, 자개를 배치하고, 그 위에 투명한 레진을 부어서 제작한다. 레진 같은 수지 계열의 소재는 항상 몰드가 필요한데, 캐스팅을 뜨는 과정을 단축하고자 몰드 자체를 제품의 일부로 만들었다. 금속 틀에 레진을 붓는 것으로 제작을 마칠 수 있게 했다. 학교에서 제품디자인,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그때 배운 효율성, 상업성, 생산성 등이 녹아 나온 것 같다.

 

최: 레진의 사용은 ‘프레그먼트 시리즈’로 이어진다. 대리석 파석을 사용한다는 점이 특이한데, 일단 돌은 어디서 구하는가?

장: 국내 대리석 수입회사인 ‘토탈석재산업’에서 연락을 받았다. 매일 최소 2톤의 대리석 파석이 나온다고 했다. 폐기물로 버리거나, 아주 싼값에 테라조 공장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며 파석들에 대한 고민을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해왔다. 처음엔 거절했다. 환경적으로 난센스이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버릴 뻔한 재료를 새롭게 쓰는 일일 수 있지만, 결국 플라스틱 계열인 레진을 이용해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차라리 사람들이 오랫동안 소장할 수 있는, 심미성을 극대화한 오브제와 가구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 파석을 이용하면 부재가 매번 다를 텐데, 이 변수를 어떻게 다루는가?

장: 크기도 다 다르고, 형태도 아주 거칠게 깨진 것부터 인위적으로 잘린 것까지 제각각이다. 게다가 종류까지 다양하다. 공장이 광주 곤지암에 있는데, 그곳에 가면 집채만 한 트럭이 있다. 돌을 하나씩 들춰보면서 직접 고른다. 자주 가다 보니 공장 직원들이 “쓰레기 줍는 사람 또 왔다”고 농담한다. (웃음) 주문이 먼저 들어온 경우에는 요구 사항에 맞는 톤앤매너의 돌을 고르고, 반대로 돌에서부터 출발하기도 한다. 파석은 웬만하면 주워온 모습 그대로 사용하려고 한다. 그리고 파석이 그때그때 다르다 보니, 오브제와 가구가 규격화될 수 없다. 매번 파석에 맞추어 크기도 조금씩 조정하고 그에 따라 몰드도 새로 만든다.

 

최: 노란색, 붉은색 등의 따뜻한 계열이 많은데 어떤 의도인가?

장: 황변 현상 때문이다. 어차피 색이 노랗게 바뀌게 된다면 미리 노란색이나 붉은색으로 조절해놓는 거다. 또한 레진은 뒤틀림에도 약하다. 부재가 커서 뒤틀림 현상이 우려되는 경우에는 모듈식으로 바꾸거나 레진과 함께 섞는 파티클의 양을 늘려서 휘는 정도를 낮춘다. 이처럼 필요와 조건에 따라 형태가 결정되는 걸 선호한다. 그 사이에서 심미성을 최대한 끌어내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최: ‘프레그먼트 시리즈’는 디지털 전시로 선보이기도 했다. 작업을 가상의 공간으로 옮기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장: 미국 뉴욕에 위치한 TRNK갤러리에서 올해 하반기에 전시를 하려고 했는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디지털 전시로 전환됐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좋은 매체라고 생각한다. 갤러리 측에서 렌더링 작업을 해줬는데, 사실 레진을 디지털로 구현하기가 쉽지 않다. 빛을 반사하는 성질도 있고, 재료 자체만으로도 투명, 반투명, 불투명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에 산업디자인이 아니라 이렇게 공예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는 미묘한 감도들이 다 전달되지 않아 아쉽기는 하다.

 

최: 앞선 작업들이 레진 중심이었다면, ‘로에스 시리즈’는 황토와 볏짚을 제스모나이트와 섞은 것이다. ‘랩크리트’와 함께진행한 작업인데, 픽트 스튜디오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장: 프로젝트는 공동기획으로 시작됐다. 나는 심미성을 기반으로 디테일한 구상과 감도를 조정하고, 랩크리트는 제작 가능성과 테크니션에 집중했다. 작업마다 내 포지션은 조금씩 달라진다. 디자이너나 기획자에 가까울 때도 있고 제작자일 때도 있다. 

 

최: 이제까지 선보인 작업들의 공통점은 여러 재료들을 섞어서 몰드에 굳히는 방식으로 제작한다는 점이다. 픽트 스튜디오에게 재료는 어떤 의미인가?

장: 작업의 출발점이 재료인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보통 가구나 오브제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재료에 호기심을 가질 때가 많다. 재료의 특성을 파악하고,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연구하는 데만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또 지속적으로 작업을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길어지다 보니 적어도 2~3년은 한 재료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 작가는 이 재료만 쓰는구나’ 하고 비춰지고 싶지는 않다. 물론 작가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데는 장점이 있겠지만 동시에 작업 영역을 한정 짓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살금살금 다른 것도 계속 테스트해보고 있다.

 

최: 하나의 시리즈 안에 작은 오브제부터 큰 가구까지 스케일이 다양한 작업이 있다. 같은 재료, 같은 기법으로 스케일에 변주를 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장: 주변 사람들은 오브제는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상품까지 제작하면 상대적으로 가구의 부가가치를 떨어트릴 수도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확장하는 걸 좋아한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 하면 그만큼 가 닿을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다. 작품 구입의 문턱을 낮출 수 있고, 인테리어 작업을 할 때에도 공간에 가구만 놓는 게 아니라 작은 소품부터 인테리어 자재까지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작업에 대해 설명할 때 렌더링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보다 샘플로 만든 재료 칩을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라 자연스럽게 작은 스케일의 오브제부터 제작하게 된다. 재료 칩 자체가 상품이 되기도 한다. 스케일에 변주를 주는 일은 앞으로도 지속할 것 같다.

 

픽트 스튜디오, ‘네이커 시리즈’, 자개, 크리스털 레진, 스테인리스 스틸, 금, 가변크기, 2017 (ⓒ박윤미술촬영)

 

픽트 스튜디오, ‘네이커 시리즈’, 자개, 크리스털 레진, 아크릴, 400×600×640, 2018 (ⓒ장혜경)

 

픽트 스튜디오, ‘프레그먼트 시리즈’, 대리석, 크리스털 레진, 가변크기, 2019 (ⓒ장혜경)

 

픽트 스튜디오, ‘프레그먼트 시리즈’, 대리석, 크리스털 레진, 나무, 430×330×480(스툴), 630×330×630(테이블), 2019 (ⓒ장혜경)

 

픽트 스튜디오 & 랩크리트, ‘로에스 시리즈’, 황토, 제스모나이트, Ø320×440, 2019​ (ⓒ장혜경)

 

 


장혜경
픽트 스튜디오는 ‘공예부터 산업까지’의 약자를 재구성하여 만든 이름으로,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다. 공예 요소를 기반으로 실험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현대적인 오브제와 가구를 제작하고 있다. 사물에 대한 호기심 어린 마음을 담아 픽트 스튜디오만의 심미성으로 새로운 시각을 제안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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