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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일상에서 마주한 시적인 순간

사진
노경, 박은지
자료제공
스튜디오 이제이
진행
최은화 기자

익숙하고 당연한 것들에 의문을 제기하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다. 바로 박은지가 운영하는 ‘스튜디오 이제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소장하는 책의 종류와 개수에는 변동이 있기 마련인데 책장은 왜 항상 고정적인 형태를 가질까? 마트료시카처럼 크고 작은 테이블 여러 개를 겹치고 또 펼쳐서 사용할 수 있는 네스팅 테이블은 왜 그 속성이 시각적으로 드러나지 않을까? 가구를 햇빛 아래에 두지 않더라도 가구 자체만으로 항상 빛의 따뜻한 느낌을 간직할 순 없을까? 질문에 대한 답으로 박은지는 ‘2013 탭 북케이스’, ‘2015 레이어드 테이블’, ‘프린티드 라이트’ 시리즈를 탄생시켰다. 가구와 실내건축을 전공한 이력을 바탕으로 오브제부터 의자, 테이블, 조명, 가방, 실내 인테리어에 이르는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는 박은지를 만났다. 

 


박은지, ‘2013 탭 북케이스’, 화이트오크, 스틸에 파우더 코팅, 1,000×300×1,100mm, 2013 (©박은지) 

 


박은지, ‘2015 레이어드 테이블’, 철봉에 파우더코팅, 화이트오크 플레이트, 500×500×550mm, 2015 (©박은지)

 

박은지, ‘2015 프린티드 라이트’, 자작나무 합판에 전사프린트, 300×300×430mm, 2015 (©노경) 

 

박은지, ‘2017 프린티드 라이트’, 렌티큘러 렌즈, 스테인리스 스틸에 거울마감, 350×250×550mm, 2017 (©노경)
 

 

 

인터뷰 박은지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홍익대학교에서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한 뒤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대학원에서 실내건축을 전공했다. 건축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있는가? 

박은지(박): 학부 시절에는 아트 퍼니처에 가까운 작업을 했다. 가구지만 예술 작품 같고, 예술 작품이면서 특정 기능이 있는 식이었다. 그러다 회의감이 든 순간이 찾아왔다. 가구를 만들 때, 놓일 공간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작업을 하더라도 갈 곳이 없거나 버려지곤 했기 때문이다. 가구와 공간의 관계는 내용물과 그릇의 관계인데, 그릇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내용물에 집중한들 한계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실내건축을 전공하게 되었다.  

 

최: 실내건축을 전공하며 공간에 대한 갈증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는가? 

박: 다른 학교와 비교해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실내건축과는 리노베이션에 주력한다. 새로운 건축물을 짓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건물의 구조를 살펴보고 주변 환경을 조사하며 사회적 문화적 가치를 발굴하여 일련의 논리를 갖춘 새로운 이야기를 제안하는데, 그 방대한 서사의 과정이 즐거웠다. 나는 작업을 시작할 때 항상 존재 이유에 대해 고민한다. 타당성을 잃게 되면 작업은 예쁜 쓰레기로 전락해버린다. 학부 때에는 ‘지금 만드는 가구가 과연 오랫동안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이 늘 있었는데 대학원에서 그런 부분들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최: 그러다 다시 본격적으로 가구 작업에 뛰어들었다. 첫 번째 작업인 ‘2013 탭 북케이스’를 만들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나? 

박: 대학원 졸업 후 미국과 한국에서 설계사무소에 다녔다. 주니어 아키텍트로서 리서치 작업, 도면 정리, 스키메틱 디자인 등을 했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이건 이렇게 바꾸면 재미있지 않을까, 저건 저럴 수도 있을 텐데 하고 아이디어를 내보곤 했지만 사실상 반영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아이디어들이 그냥 흘러가버리는 게 아쉬웠다. 그중 하나가 책을 정리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다. 책은 일반적으로 책장에 가로로 열지어 꽂힌다. 그렇게 되면 섹션별로 정확한 구획을 짓기가 어렵고, 보관하는 책의 부피에 따라 섹션의 크기가 매번 달라진다. 책을 한 줄에 다 꽂지 못하면 다음 줄로 넘겨야 한다. 이런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슬라이딩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서로 다른 섹션의 책들이 섞이지 않게 구획을 짓되, 그 구분선을 고정하지 않고 움직이게 만들어 책의 개수에 따라 조정되도록 했다. 수평 부재가 위아래로 움직이면 안전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수직 부재를 좌우로 움직이게끔 계획해 ‘2013 탭 북케이스’를 제작했다.  

 

최: 일상을 예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 ‘2015 레이어드 테이블’도 일반적인 네스팅 테이블과는 다르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데, 이 작업에서는 어떤 점에 주목했는가? 

박: 네스팅 테이블은 겹쳐지고 펼쳐지는데, 대개는 불투명하고 단단한 재료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고유한 속성이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아 아쉬웠다. 겹쳐지는 모습이 효과적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굵은 프레임으로 줄무늬 상판을 만들었다. 그런데 테이블에 구멍이 뚫려 있으면 물건을 놓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이를 해결해야 하는데, 별도의 잠금장치를 추가하거나 자석을 이용하는 것보다는 아주 간단한 방식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2015 레이어드 테이블’을 제작한 다음 실제로 사용해보면서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그러다가 종이를 지그재그로 접어서 프레임 위에 얹어봤는데 그대로 고정이 됐다.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부재의 두께를 늘려 나무로도 만들어 보고, 한 번만 꺾어서 알루미늄 판으로도 만들어봤다. 내 작업은 어디 하나에 꽂혀서 쭉 직진한다기보다는, 제작해놓고 이것도 붙여보고 저것도 시도해보는 식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내가 피하고 싶은 건 분명하다. 복잡하고 과한 건 피하려고 한다.  

 

최: ‘2015 레이어드 테이블’의 구조 또한 단순하다. 단순해질수록 디테일은 더 어려워진다고 알고 있다. 

박: 나는 대부분 제작을 외주로 맡기는데, 퀄리티를 매번 동일하게 내는 게 중요하다. 프레임 작업은 보통 용접을 하기 마련이지만, ‘2015 레이어드 테이블’은 용접을 최소화하기 위해 구멍을 뚫어서 부재를 끼우는 장구맞춤 기법으로 제작했다. 누가 만들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의 디테일이 나올 수 있도록 계획했다. 다만 제작 비용이 크다는 문제가 있어서,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연구 중이다.  

 

최: ‘프린티드 라이트’ 시리즈는 빛과 그림자라는 주제를 다룬다. 회화나 건축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인데, 직접적으로 가구 요소에 접목한 점이 흥미롭다. 이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박: 사진을 찍고 글을 써서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해둔다. 그 일기를 나중에 살펴보니 나도 인지하지 못했지만 빛이 일렁이는 모습을 많이 포착해놨더라. 실내에서 생활하다가 우연히 한쪽 벽에 맺힌 빛을 발견하게 되면 괜히 반갑고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실내에 화분을 많이 두는 것과는 전혀 다른 효과가 있다. 이렇듯 자연을 경험하는 시적인 순간을 가구로 재현하고자 했다. 전구를 연결해서 실질적으로 빛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자연광이 선사하는 따뜻한 느낌이 중요했다. 가구에 그림자 패턴을 적용해 마치 빛이 존재하는 듯한 효과를 만들어냈다. 

 

최: 그림자를 표현하는 기법에도 변화가 있었다. 2015년에는 합판에 전사로 프린트했다가 2017년에는 스테인리스 스틸에 렌티큘러 렌즈를 접착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져 실제로 빛이 일렁이는 듯하다. 

박: 처음에는 빛이 한쪽 코너에서 온다고 가정하고 뒷면은 그냥 어둡게 표현했다. 그러다가 스테인리스 스틸에 렌티큘러 렌즈를 접목하게 되었는데,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는 소재의 장점을 살리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예 두 개의 면을 없애버렸다. 육면체 중에서 수직 부재 두 개가 사라지고, 남은 수직 부재 두 개는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아래쪽으로 갈수록 부재 길이가 길어지도록 조정했다. 구조를 해결하고 난 다음 찾아온 문제는 바깥으로 드러나게 된 안쪽 면의 마감이었다. 온전히 빛만이 존재할 수 있도록, 나머지는 주변 환경에 녹아서 없어지게 거울로 마감했다.  

 

최: ‘프린티드 라이트’ 시리즈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듯하다. 중심으로서 유지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가? 

박: 빛의 따뜻한 느낌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이제까지는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사용했다면, 앞으로는 좀 더 추상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나가지 않을까 한다. 


박은지
박은지는 홍익대학교에서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한 뒤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에서 실내건축을 공부했다. 2013년부터 디자인 스튜디오 이제이를 통해 가구, 조명, 공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런던 100% 디자인, 홍콩 디자인 피어, 밀라노 살로네 데 모빌레를 비롯한 다수의 전시에 참여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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