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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투명 아크릴에서 발견한 잠재력

사진
안선근, 권혜민
자료제공
강지혜
진행
최은화 기자
background

강지혜의 시선은 투명한 아크릴을 향한다. 아크릴과 스테인리스 스틸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퓨어리티’ 시리즈는 아크릴의 굴절 효과를 탐구한다. 테이블, 의자, 파티션, 캐비닛 등의 가구는 무채색의 단단한 재료와 군더더기 없는 형태로 인해 차가운 인상을 주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 어떤 가구보다도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어느 공간에 놓이든 누가 사용하든 아크릴에 굴절상이 맺히기 때문이다. 아크릴은 스테인리스 스틸, 사용자, 주변 환경 등 모든 요소를 굴절시켜 가구의 일부로 담는다. 최근에는 레진과 아크릴을 조합하여 테이블을 만들고, 아크릴만을 사용해 의자를 만드는 등 끊임없이 물성에 대한 탐구를 이어가고 있는 강지혜를 만났다. ​

 


강지혜, ‘로우 테이블 01’, 아크릴, 스테인리스 스틸, 600×600×300mm, 2017 (©안선근)

 

인터뷰 강지혜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퓨어리티’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강지혜(강): 처음 아크릴을 사용한 건 대학교 졸업 전시 때다. 당시 전시 주제가 ‘정체성’이었는데, 판재로 된 아크릴을 사용해 ‘위즈덤’을 만들었다. 나의 정체성을 의자로 나타내고자 했다. 판 하나가 내 인생의 중요 사건 하나라고 보고, 여러 사건이 한데 모여 나의 정체성을 형성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사건에 대한 기억과 감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질되는 점을 아크릴의 굴절로 나타냈다. 그 과정에서 아크릴이라는 소재에 매료됐다. 학생 때는 특정 주제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에 집중했다면, 2017년부터는 아크릴이 가지고 있는 투명함, 반사, 굴절, 투과 등 소재의 특성과 효과에 주목해 ‘퓨어리티’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최: 초기에는 아크릴 판을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원기둥 형태의 아크릴에 집중하고 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부재를 선정하는 데 어떤 고민이 있었는가? 

강: 아크릴은 기성제품을 사용하고 있는데, 사실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넓은 편이다. 판재는 물론이고, 막대의 경우에도 단면 모양이 사각형, 마름모, 원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그 가운데 원형 단면은 굴절 효과를 가장 아름답게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특정 형상이 아크릴에 맺혀 굴절 이미지를 만들 때 그 모습이 부드럽고 유려하다. 아크릴 봉의 굵기 또한 중요한데, 너무 굵으면 굴절 이미지 자체가 적게 나타나고, 반대로 너무 가늘면 과한 느낌이 든다. 가구의 용도와 전체 형태의 비례를 고려해 굵기를 조절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40ø를 주로 사용한다. 극적인 효과를 내기 위해 ‘파티션 01’은 20ø를 사용한다.  

 

최: 아크릴은 동일한 굵기와 길이의 원기둥을 나열하는 방식을 고수하는 반면, 아크릴 열주와 조합되는 스테인리스 스틸은 선, 면, 볼륨을 다양하게 사용한다.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강: 나에게 아크릴은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재료다. 현재 굴절이라는 주제로 작업하고 있지만, 이는 재료가 가진 여러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굴절 자체만 떼어 놓고 보더라도 작업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예측조차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 도형부터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기본 도형이라는 전제는 지키되 최대한 다양한 시도를 하고자 의도적으로 선, 면, 볼륨이라는 다른 선택을 했다. ‘퓨어리티’ 시리즈의 시작인 ‘로우 테이블 01’에서는 스테인리스 스틸 판재를 배치할 때 아크릴과 교차되는 각도를 다양하게 계획했다. 각도에 따라 굴절 정도가 다른데, 교차 각도가 커질수록 더 극적인 효과가 난다.  

 

최: 아크릴의 굴절 효과라는 주제 자체는 명료하지만 작업의 결은 다채로운 것 같다. 

강: 사실 처음에는 단순하게 생각했다. 아크릴과 스테인리스 스틸이 만드는 굴절 이미지가 사용자의 움직임과 시각적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에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파고들수록 자꾸 새로운 게 나왔다. 우선 현재까지의 작업은 세 단계로 설명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아크릴, 스테인리스 스틸, 사용자가 맺는 삼자 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한다. ‘로우 테이블 01’, ‘사이드 테이블 01’, ‘스툴 01’은 가구 자체는 고정적이지만 사용자가 어디에서 관찰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굴절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다. 두 번째 단계는 아크릴과 사용자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 단계에서 사용자는 굴절을 관찰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스스로 굴절의 대상이 된다. ‘의자 01’, ‘파티션 01’은 가구를 사용하는 사용자의 모습이 굴절된 이미지로 아크릴에 맺힌다. 세 번째 단계는 사용자가 직접 가구를 움직이고 변화시키며 적극적으로 굴절 효과를 조정할 수 있다. ‘캐비닛 01’은 원형 도형을 좌우로 굴릴 수 있고 아크릴을 미닫이문처럼 움직일 수 있으며 수납하는 물건의 크기, 형태, 색깔 등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최: 굴절이라는 과학적 현상을 다루기 때문에 작업이 정교할 것 같지만, 동시에 한편으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강: 그렇다. 예측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특히 작업 초반에는 어려움이 더 컸다. 아크릴 단면의 형태를 다양하게 선택하기도 하고, 아크릴과 조합되는 재료도 금속, 나무 등 종류를 바꾸어 가며 굴절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모든 가구는 실물 크기로 제작하기에 앞서 1:10 스케일로 목업을 하지만, 여전히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지점이 존재한다. 

 

최: 구조나 하중에 대한 고민도 1:10 스케일 목업을 통해 해소하는가? 

강: 눈으로 감상하는 오브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앉고, 만지고, 물건을 얹는 등의 행위를 담는 실용품이기 때문에 구조가 매우 중요하다. 아크릴 몇 개를 이어 붙어야 의자 등받이로 적합할지, 무거운 아크릴을 스테인리스 스틸이 잘 받칠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한다. 쉽지는 않지만 하다 보면 수학 문제 푸는 것처럼 재미있다. 만약 조금이라도 불안한 구석이 있다면 실제 크기의 가구를 일이 년 정도 직접 사용해보며 안정성을 검토한다. 이 테스트 과정은 목업으로는 확인 불가능한 사용상의 불편함을 체크할 수 있다. 

 

최: 접합부가 보이지 않는 점 또한 굉장히 놀랍다. ‘퓨어리티’라는 이름처럼 아크릴과 스테인리스 스틸의 모습만이 순수하게 강조된다. 

강: 오롯이 소재의 특성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접합부를 숨긴다. 아크릴끼리의 접합은, 원기둥 길이 방향으로 기계 샌딩하여 최소한의 접합 면적을 확보한 다음 특수 접착제로 강력하게 붙이는 방법을 쓰고 있다. 아크릴과 스테인리스 스틸 간의 접합은 작품마다 다른데, ‘로우 테이블 01’ 같은 경우에는 아크릴에 홈을 파서 스테인리스 스틸 위에 얹었다. 아크릴의 하중이 충분히 무겁기 때문에 흔들림 없이 고정된다. 반대로 ‘체어 01’과 ‘파티션 01’은 스테인리스 스틸에 홈을 내어 아크릴을 끼웠다. 아크릴 봉이 완벽한 원기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양이 제각각 달라서 0.1mm 단위까지 실측해 정확히 뚫어야 한다. 

 

최: 작품 설명에 ‘투명성’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투명성이란 무엇인가? 

강: 불투명한 재료가 가진 명확성과는 달리 아크릴은 어떤 사람이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다르게 보여질 수 있는 유동성을 가진다. 단순히 시각적으로 뚫려 있는지 혹은 막혀 있는지의 문제를 넘어서, 의도와 예상을 넘어선 그 어떤 것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것이 투명성이라고 생각한다. 

 


강지혜, ‘캐비닛 01’, 아크릴, 스테인리스 스틸, 700×310×360mm, 2018 (©권혜민)

 


강지혜, ‘스툴 02’, 아크릴, 450×280×400mm, 2018 (©권혜민)

 


강지혜, ‘의자 01’, 아크릴, 스테인리스 스틸, 600×450×700mm, 2017 (©권혜민)

 


강지혜, ‘로우 테이블 01’, 아크릴, 스테인리스 스틸, 600×600×300mm, 2017 (©안선근)

 


강지혜
강지혜는 홍익대학교에서 목조형가구를 전공했다. 투명 아크릴의 굴절 이미지를 표현한 ‘퓨어리티’ 시리즈로 2018 공예 트렌드 페어에서 수상했고, 2019 월페이퍼 디자인 어워드에서도 수상했다. 소재의 고유한 성질을 확장해 오브제, 가구, 공간 등을 만드는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jihye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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