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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정밀함으로 빚은 안개의 불확실성

사진
516스튜디오, 손상우, 윤대훈, 정기훈
자료제공
손상우
진행
최은화 기자
background

손상우는 한지와 레진을 이용해 안개를 품은 가구를 선보인다. 단순한 형태의 볼륨 안에서 부유하는 한지의 모습을 보면 혹시 작가가 안개를 단숨에 얼려버린 마법을 부린 건 아닐까 싶지만 사실은 매일 반복되는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인터뷰 손상우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안개를 주제 삼아 가구 작업을 진행 중이다. 안개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

손상우(손): 안개는 불투명하고 부유하며 불확실하고도 모호하다. 문학, 영화, 회화 등에서 알 수 없는 상황이나 관계를 묘사할 때 혹은 몽환적 효과를 낼 때 사용된다. 신선, 구름, 꿈 등의 동양적 이미지도 짙다.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안개를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조금씩 친밀해지는 과정이 마치 처음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서 앞이 잘 보이지 않다가 서서히 안개가 걷히며 명확해지는 것과 흡사하다고 느꼈다. ‘티 테이블’을 계획할 때에도 작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차를 마시는 장면을 상상했다.

 

최: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가구를 통해서 조율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관계 자체를 가구로 해석한 건가?

손: 둘 다 해당된다. 안개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가구에 형상화했고, 가구를 사용하는 사람도 안개가 걷히는 듯한 경험을 겪기를 바랐다.

 

최: 추상적 형태의 안개를 물리적 결과물인 가구로 옮기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

손: 어떻게 하면 안개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동시에 가구로서의 기능과 구조를 충족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다가 레진과 한지의 조합을 떠올렸다. 어떻게 보면 안개를 가둔 셈이다. 일본 정원에서 자연물을 가두고 정갈하게 관리하는 데에서 힌트를 얻었다. 안개로 처음 작업한 ‘벤치(미스트 시리즈)’의 형태는 한옥의 구조에서도 영향을 받았다. 대들보와 기둥 그리고 주춧돌로 이어지는 병산서원 만대루의 무심하고도 육중한 덩어리감과 오라(aura)에 매료되었다. 이전까지는 나무를 이용해 유기적 형태의 가구를 제작했는데, 이후에는 다른 결을 가진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최: 작업 중에서 ‘티 테이블’과 ‘키리 커피테이블’의 높이가 120, 150, 200, 220, 320mm 등으로 다양하고 또 세부적으로 나뉘는 점이 흥미롭다.

손: 사각형, 원 등 단순한 형태만을 이용하기 때문에 크기와 비례가 매우 중요하다. 한 획의 위치가 10mm만 달라져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목업 작업을 통해 가장 조화로운 비례를 찾는다. 남들이 보면 똑같은 네모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나는 그 네모 안에서 혼자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거다. 크기에 대한 감이 오지 않을 때면 가구의 표준 규격을 참고하되, 적정 범위 안에서 조금씩 크기를 달리 해가면서 최적의 형태를 찾는 편이다. 

 

최: 레진을 이용하면서 신경 쓰는 부분이 많을 것 같다. 

손: 레진, 경화제, 한지를 섞어서 틀에 붓고 굳혀서 작업한다. 하지만 경화가 완료되었다고 해서 작업이 완성되는 건 아니다. 후가공이 남았다. 틀에 레진을 부으면 윗면이 가장 울퉁불퉁하고 마무리가 좋지 않다. 이 면을 포함해 입방체의 여섯 개 면을 모두 갈아서 매끈하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틀에서 바로 빼냈을 때에는 각각의 면이 수직, 수평이 안 맞다. 이 부분도 세밀한 조정이 필요하다. 손이 많이 간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최: 틀에 레진을 붓는 과정을 자세하게 알고 싶다. 작업의 크기에 따라서 작업 방식이 바뀌지는 않는가?

손: 레진이 경화되는 데에 한계가 있어서 원칙적으로는 하루에 10mm씩 부어야 하지만 크기에 따라 작업 방식이 달라진다. ‘벤치(미스트 시리즈)’를 작업할 때에는 ㄱ자 형태의 틀에 매일 10mm씩 레진과 한지를 적층해 ㄱ자 볼륨을 만든다. 반면 ‘키리 트레이테이블’은 우선 일정한 두께의 넓은 판재를 제작한다. 이후 부재의 크기에 맞게 판을 재단한 뒤 접착해서 조립해 완성한다. ‘티 테이블’에 사용되는 작은 볼륨을 만들 때에는 두께가 20~30mm 정도이지만 한번에 붓고 경화하는 시간을 넉넉하게 갖는다.

 

최: 요즘 레진을 사용한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지를 섞는 건 손상우뿐이다. 한지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는가? 그리고 어떤 종류의 한지를 사용하는가?

손: 레진과 섞을 때 한지 한 장을 통째로도 넣어봤지만 안개의 부유하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는 손으로 찢는 게 더 적합했다. 작업에 색을 더하고 싶을 때면 흰색 한지에 색을 칠하거나 색한지를 사용한다. 이 두 가지 방식으로 얻게 되는 효과가 다른데, 전자는 딱딱하고 선명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고 후자는 부드럽고 스미는 듯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요즘에는 주로 흰색 한지를 사용한다. 한지 매장에 가서 구입하기도 하고, 일본 닥종이 ‘와시’를 사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한지를 제작하는 업체가 많아져서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최: 안개를 주제로 한 첫 번째 작업은 벤치다. 이후 스툴과 테이블을 작업했고 작년 말에는 신작으로 화병을 선보였다. 작업의 크기가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손: 벤치를 제작할 때에는 작업 공간 자체가 커서 큰 규모의 작업을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었다. 요즘도 큰 가구를 하긴 한다. 다만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나만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데에 주력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내 작업을 알리고 싶다. 제작 과정이나 가격을 고려했을 때, 큰 작업 하나를 선보이는 것보다는 작은 작업 여러 개를 제작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작은 오브제부터 큰 가구까지 다양한 규모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최: 작업에 있어서 또 한 가지의 변화는 소재다. 작년 갤러리 밈에서 진행한 개인전 <포그 앤 스퀘어>에서는 느티나무, 오동나무, 스테인리스 스틸과 레진을 조합했다. 단일 재료를 사용할 때와 다른 재료를 함께 사용할 때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손: 레진을 적게 사용할수록 수작업의 양이 줄어든다. (웃음) 그리고 다른 재료를 함께 사용하면 구조적으로 더 안정적이다. 아무리 레진이 단단하게 굳더라도 유리처럼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개인전에서는 가구의 형태는 고정한 채 재료만 변주했다. 통일된 형태를 다른 재료와 색깔을 이용해 시리즈로 나열해 작업의 폭을 넓히고자 했다.

 

최: 앞으로 어떤 작업을 이어가고 싶은가?

손: 앞으로도 한지와 레진을 이용한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다만 소재를 다양하게 사용한다거나 형태적으로 혹은 표현 방법에 있어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자 한다. 5월에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 갤러리에서 전시를 선보일 예정이고, 7월에는 회화 작가와 협업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손상우, ‘키리 트레이테이블’, 한지, 합성수지, 280×280×220mm, 2018 (©손상우)

 

손상우, ‘미스트 시리즈 : 벤치-r08’, 한지, 합성수지, 물푸레나무, 1000×300×400mm, 2017 ​(©윤대훈)​

 

손상우, ‘키리 체어’, 한지, 합성수지, 320×320×600mm, 2019 ​(©손상우)​

 

손상우, ‘티 테이블’, 혼합재료, 300×320×220mm, 2019 ​(©정기훈)​

  


손상우
손상우는 경성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에서 가구디자인을 공부한 뒤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했다. 한지와 합성수지를 사용하여 안개의 형상을 표현한 ‘키리’ 시리즈를 통해 2018년 일본 마루누마 예술의 숲 국제 아티스트 레지던스 작가로 선정되었고 도쿄 아자부주반 갤러리, 서울 갤러리 밈 등에서 개인전 및 그룹전을 진행했다.
www.sonsangw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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