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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날카롭게, 위트있게

사진
나띵스튜디오, 최용준, 맹민화, 전산
자료제공
전산시스템
진행
최은화 기자
background

전산은 합판과 금속을 이용한 가구 및 공간 디자인 작업을 선보인다. 그의 작업에는 값비싼 재료도, 화려한 조형 요소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업을 자세히 살펴보면 면밀하게 계산된 구조와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때로는 노랑, 파랑, 빨강 등 원색을 과감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디자이너와 장인 사이, 건축과 가구 사이, 업계의 빈틈’을 파고드는 전산을 만났다.

 

전산, ‘컬러 사이드’ 시리즈, 2019 (©최용준)

 

전산, ‘컬러 사이드 스툴’, 나왕합판, HPL(포마이카), 천연하드오일 마감, 350×250×420mm, 2018 (©최용준)

 

전산, ‘스몰스토리지시리즈’, 나왕합판, 오일마감, 가변크기, 2018 (©​나띵스튜디오)


전산, ‘설거지 차’, 나왕원목에 오일마감, 아연 절곡 철물, 2400×1100×2100mm, 2017 (이미지 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르 코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 전시 전경, 2018 (©맹민화)

 

 

인터뷰 전산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전산시스템’을 설립하여 혼자 작업하고 있다. 회사 이름은 어떻게 지었는가?

전산(전): 본명이 전산이다. 어릴 때 별명이 많았다. 전산실, 전산용품, 전산체제 등 주로 컴퓨터 관련된 것들이었다. 회사 이름을 정할 때 말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결과물로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위트 있으면서도 믿음직스러운 이름으로 짓고자 했다. 본명인 ‘전산’을 앞에 걸었고 뒤에 붙기 적당한 ‘시스템’을 붙였다. 이름과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가구를 배송할 때 택배박스에 ‘전산시스템’이 적혀 있으니까 택배 기사님이 전자기기라고 생각하셨는지 ‘취급주의’ 스티커를 붙여 주시더라. (웃음)

 

최: 디자이너로서 전산이라는 이름을 알리는 데에 ‘설거지 차’가 큰 역할을 했다. 설거지라는 구체적인 주제를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는가?

전: 나는 항상 내 작업이 세상에서 쓸모가 있었으면 한다. 졸업 작품인 ‘설거지 차’를 할 때에도 가상의 클라이언트를 설정하지 않고 ‘마르쉐@’라는 도시형 농부시장을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시작했다. 우선 장소를 옮겨 다니는 이동식 장터의 특성에 맞게 해체와 조립이 가능한 구조로 계획했다. 다음으로 고려한 부분은 장터에서 발생하는 다양하고도 구체적인 행위들이다. 식자재를 판매하고, 음식을 조리하고, 식기를 세척하고, 사람들이 모여 앉아 식사하는 등 개별 행위를 관찰했고 해당 기능을 충족하는 가구를 총 32개 제작했다. 일반적으로 졸업 작품은 졸업 전시를 하고 나면 버려지는데 ‘설거지 차’는 실제로 마르쉐@에서 사용됐다. 이후에 다른 장소에서도 전시했고 몇 세트는 판매도 이뤄졌다.

 

최: ‘컬러 사이드 쉘브’와 ‘컬러 사이드 스툴’도 인기가 많다. 합판에 형형색색의 포마이카를 접착한 이 제품은 전시 공간과 상업 공간에서도 사용되지만, 주문을 받아 개인에게 판매하기도 한다. 

전: ‘컬러 사이드 쉘브’는 서점 겸 카페 ‘인덱스’에 설치한 모듈형 책장을 발전시킨 작업이다. 합판에 오일로만 마감한 책장인데, 조립식으로 디자인했던 까닭에 개별 부재를 색칠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듈 형태는 유지한 채 색깔만 입혀서 ‘티엠오 숍’에서 전시했다. 판매를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그 이후로 꾸준히 구입 의뢰가 들어온다. 지난 연말에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책장 선주문을 받았는데 167건이 들어왔다. 하나의 작업을 디테일하게 설계해놓으니 그게 제품이 되고, 판매가 이어지면서, 발주를 넣는 공장에 일자리까지 창출하는 효과가 있더라. 디자이너로서 사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음에 작은 뿌듯함을 느꼈다.

 

최: 포마이카 합판을 다룰 때 가장 유의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전: ‘컬러 사이드’ 시리즈에서는 부재를 끼우는 구조를 사용해 못과 피스의 사용은 최소화했다. ‘컬러 사이드 쉘브’는 뒤에서 봤을 때 세로 부재가 튀어 나와 있는데, 이는 충분한 길이가 확보되어야 부재끼리 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는 오일 마감하거나 포마이카를 접착한 합판을 서로 맞춰 끼우기만 하면 가구가 완성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5mm 두께의 합판을 구입하더라도 고급 자재가 아니다 보니 4mm부터 6mm까지 들쑥날쑥하다. 단단하게 끼워 맞춰야 하기 때문에 여유있게 홈을 파놓을 수도 없다. 후가공에 손이 많이 갈 수밖에 없다. 또한 격자 구조로 설계가 안 되는 가구의 경우 조립 순서를 조정하여 부재를 끼워 맞추고 피스로 조립한 후에 포마이카를 접착하기도 한다.​

 

최: 작업들이 대부분 조형적으로 단순하지만, 형태에 대한 고민이 분명 있을 것 같다.

전: 비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커피사회>에서 선보인 ‘스몰스토리지시리즈’를 예로 들 수 있다. 커피 용품을 수납하는 수납장 60여 개를 각기 다른 면 분할로 제작했다. 동일한 외형의 가구를 다르게 분할하여 다양한 변화를 주려고 했지만 나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습관적으로 가로변의 3분의 1 지점에 세로선을 긋고 있었다. 작업을 모아놓고 본 다음에야 내가 1:2의 비율을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최: , <커피사회>, <르 코르뷔지에: 빌라 사보아의 찬란한 시간들> 등 전시에도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전시 연출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전: 대부분의 전시 연출은 최저예산, 최단기간이라는 악조건에서 최고의 감각을 발휘해야 하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굉장히 힘들다. 전시가 끝나면 가구가 쓸모없어지기도 해서 허탈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전시는 특정한 조건들을 요구한다. 예를 들면, A작품과 B작품은 나란히 배치하고, C작품은 공중에 매달되 그 설치가 튀지 않아야 하며, D~G작품은 그림에 어울리는 액자를 만들어 달라는 식이다. 이러한 조건을 발판 삼아서 개인 작업과는 다른 결을 가진 작업을 진행할 수 있다. 전시는 나의 작업 범위를 넓혀주는 촉매제로 작용하기 때문에 선호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전시연출은 새로운 작업을 하나 한다는 마음으로 진행하고, 전시가 끝난 다음에도 사용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전시를 만들고자 한다.

 

최: 최근 1월에 시작한 전시 <호텔사회>에도 참여했다. 호텔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던 20세기의 사료들을 보여주는 ‘사물의 기억들’을 선보였다. 

전: 1905년 호텔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는 누군가의 사진, 여행을 다니며 수집한 도장, 여행 가방, 1960~70년대에 수상보트를 타고 사격과 카지노를 즐기는 모습 등을 아카이빙해 보여주는 작업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살펴보면 그 시대에 호텔과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일반 시민이 아니었다. 힘든 시기에 누군가는 이런 사치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일반적으로 사료를 전시하듯이 유리 쇼케이스 속에 넣어 소중하게 연출하고 싶지 않았다. 주어진 전시 공간이 ‘귀빈실’이라는 점도 의미 있게 다가왔다. 붉은색 카펫 바닥 위에 사료를 나열한 다음 유리를 덮어서 마무리했다. 사료의 위상을 뒤엎고자 했다.

 

최: 이번 작업도 숨가쁘게 진행되었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어떤 점에 집중해 작업을 진행했는가?

전: 전시 오프닝이 3일 남은 시점에 연락을 받았다. 주말까지 끼어 있어서 재료를 구입하거나 제작을 맡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스스로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절대 만들지 않는다’, ‘장비를 사용하지 않는다’, ‘모든 재료는 줍거나 기성 제품을 구입한다.’ 사료를 덮는 유리와 구슬은 기성 제품을 사온 것이고, 전시장에 설치한 파이프는 전시에 참여한 다른 작가가 사용하고 남은 걸 주워다가 세워 둔 것이다.

 

최: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묻고 싶다. 

전: 전산시스템을 두 가지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목표다. 첫 번째는 매번 새롭게 디자인을 하는 것, 두 번째는 미리 설계해둔 집기와 가구를 배치하는 선에서 작업을 마무리 짓는 것이다.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진 상태에서 꾸준히 새로운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


전산
전산은 파주타이포그라피 배곳에서 그래픽디자인을 전공했다. 소재와 가공의 흥미로운 조합을 찾아 가구를 제작하는 한편 미술가, 기획자, 건축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여 상업, 전시, 주거 공간을 디자인한다. 현재 ‘전산시스템’을 운영하며 공간・가구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jeonsansyste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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