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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꾸준함이라는 무기: 제로랩

사진
제로랩(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제로랩
진행
최은화 기자

제로랩, ‘스툴 365’, 혼합 재료, 2020 

 

<타이포잔치 2015>(문화역서울 284, 2015), <훈민정음과 한글 디자인>(국립한글박물관, 2017), <포춘랜드 - 금박>(아모레퍼시픽 본사, 2018), <아마추어 서울>(동대문디자인플라자, 2019) 등 굵직굵직한 전시에서 종횡무진하고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있다. 바로 제로랩(김동훈, 장태훈 공동대표)이다. 그들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전시뿐만 아니라 그래픽, 공간, 제품, 출판 등 장르 구분 없이 전방위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로 스튜디오 결성 10주년을 맞이한 제로랩을 만났다. 그리고 10주년 기념 프로젝트인 ‘스툴 365’에 대해 물었다.​

 

 

 

인터뷰 김동훈, 장태훈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올해 1월 1일부터 하루에 하나의 스툴을 인스타그램(@stool365)을 통해 선보이는 ‘스툴 365’를 진행 중이다. 이제까지 다양한 활동을 해온 만큼 10주년 기념 프로젝트를 계획할 때 형식에 대한 고민도 따랐을 것 같다. 왜 하필 스툴인가?

장태훈(장): 스튜디오를 시작할 때 ‘유명해지자’, ’꼭 이런 작업 하자’ 하는 목표는 없었다. ‘10년만 해보자’였다. 그런데 10년이 빨리 오더라. (웃음) 우리가 이 시간을 버텨온 이유에 대해 곱씹어보니, 뭔가를 엄청 잘한다거나, 감각이 뛰어나거나, 스타 기질이 있거나 하는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냥 묵묵히 해왔던 것 같다. 그런 꾸준함이 원동력이지 않나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10년의 꾸준함을 보여주기 위해 스툴을 만들어야지’ 했던 건 아니다. 김동훈이 ‘1년 동안 스툴 만들어 볼까?’ 하고 가볍게 던진 말로 시작됐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웬만한 스튜디오는 쉽게 할 수 없는,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직접 다 하는 스튜디오로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작하고 보니 지난 10년간 작업하며 쌓아온 작업 방식, 노하우, 디자인에 대한 태도 등이 다 녹아있더라.

 

최: 스툴에 대한 애정이 올해 갑자기 생긴 건 아니다. 대표적으로 2014년에는 ‘제로랩 스툴 워크숍’으로 스툴 제작 원데이 클래스를 열었고, <2017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에서 선보인 ‘스툴랩’을 통해서는 나무를 사용해 조금씩 다른 형태로 스툴을 변주해나갔다. 또한 <2018 SeMA 예술가 길드: 만랩>에서는 철제 조립 스툴을 선보였다. 이전 작업들과 이번 ‘스툴 365’ 프로젝트는 어떻게 같고 또 다른가?

김동훈(김): ‘제로랩 스툴 워크숍’은 우리의 제작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시작했던 프로젝트고, ‘스툴랩’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쌓아온 스툴 작업의 아카이빙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다. 철제 스툴 때는 상업적으로 발전시키려는 목적이 더해졌다. 이번 ‘스툴 365’는 그 연장선에 있다. 경험의 공유, 아카이빙, 제품 개발, 전시까지 다 아우르는 형태로 계획했고 현재진행형이다.

: 앞선 작업들은 실용 영역에 더 맞닿아있다. 제작 기간, 비용, 여러 조건을 고려한 결과였다면, ‘스툴 365’는 이벤트적 성격이 강하다. 우리끼리 10주년을 자축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아직 안 죽었어’ 하면서 드러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웃음)

 

최: 전시 작업으로 가구를 제작할 때에는 그것이 놓일 공간, 함께 배치될 오브제나 전시품, 클라이언트의 요구 사항 등에 결과물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면 ‘스툴 365’ 프로젝트에서는 모든 선택이 오롯이 본인들의 몫이다. 클라이언트이자 디자이너이자 제작자로서의 역할을 한번에 수행하고 있는 셈인데, 어떻게 중심을 잡고 있는가?

: 다양한 롤 플레잉이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은 아니다. 전시 작업을 하다 보면 참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작가, 디자이너, 실장, 계약된 용역업체 등 우리에게 주어지는 역할이 다양한 편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줄타기하는 게 익숙하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그냥 자연스럽게 했다. 다만 우리가 항상 중심을 잡는 건 있다. 우리는 디자이너라는 지점이다.

: 디자이너로서의 중심을 잡는 건 스튜디오 운영에서도 중요하다. 제로랩이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직접 하고 워크숍까지 운영하기 때문에 간혹 제작에 치우친 스튜디오로 비쳐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제작은 디자인을 보여주기 위한 수단이다.

 

최: 그 이야기를 들으니 제로랩이 바라는 디자이너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진다.

: 스튜디오 초창기부터 ‘디자인의 경계를 나누지 말자’를 결심했고 또 지금도 실천 중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디자이너’라고만 말한다. 그래픽디자이너, 공간디자이너, 제품디자이너가 아니다. 디자인에는 다양한 장르가 있는데 때로는 범위가 행동을 제약한다고 느낄 때가 있다. 제로랩이 줄곧 그래왔듯이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하는 스튜디오로 존재하고자 한다.

: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는 요구라고 생각한다. 나 자신으로부터 오는 요구를 다루는 사람은 작가고, 외부의 조건이나 요구를 다루면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다만 디자이너는 그 조건 속에 자신의 욕망을 녹여내는 것이 매우 중요한 활동이 된다. 제로랩은 그런 디자이너가 아닐까 싶다.

 

 

 

‘제로랩 스툴 워크숍’ 포스터 

 

<2017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 전경 (©Cheongju Craft Biennale)

 

<2018 SeMA 예술가 길드: 만랩> 전시 전경 

 

 

 

최: 두 디자이너 간의 협업과 분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또한 작업 성향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 예전부터 프로젝트 단위로 작업을 나눠서 각자 진행해왔다. ‘스툴 365’도 마찬가지다. 일주일씩 번갈아가면서 디자인부터 제작, 사진 촬영과 인스타그램 업로드까지 각자 알아서 한다. 우리끼리는 각자 작업의 미묘한 차이를 잘 본다. 형태나 제작 방식으로 구분되진 않는다. 나는 김동훈에 비해 몸집이 커서 구조를 과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편이고 김동훈은 적정한 수준으로 작업을 하는 편이다. 반대로 크기는 내 스툴이 전반적으로 작은데 내 몸이 크다 보니 작아지고 싶다는 욕망이 나도 모르게 투영되는것 같다.(웃음) 평소에는 시각적으로 봤을 때 불안하거나, 구조가 조금이라도 걱정되면 못 참는다. 그래도 이번 ‘스툴 365’에서는 다리가 하나인 스툴도 시도해봤다. 평소에 잘 안 하던 것도 새롭게 도전해보고자 했다.

 

최: 제작 기간은 어떤가?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되는 건​ 하루에 하나지만, 실제로 구상부터 결과물이 나오기까지는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리는가? 그리고 자신이 스스로 세운 작업의 속도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가?

: 하나 만드는 데 짧으면 30분, 길면 1시간 30분. 경기도 포천에 있는 작업실에 한번 나가면 보통 3~4시간 정도 작업하는데 나는 평균적으로 2~3개 정도 만들고 김동훈은 3~4개 정도 만든다. 시스템과 환경이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스케치를 잘 안 한다. 머리로 생각하고 바로 3D프로그램으로 5~10분 만에 모델링하고, 재단 도면을 출력한 다음, 재료를 자르고 조립하면 완성이다.

 

최: 하루에 하나를 선보인다는 것 외에도 총 365개의 스툴을 만드는 긴 호흡을 이어가기 위해 세운 원칙도 있을 것 같다.

: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진지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개별 스툴마다 의미나 이론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반대로 그런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큰 고민 없이, 꾸준하게, 연습하듯이 작업하고자 했다. 그래서 작업실에 가서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냥 한다. 사실 처음부터 확신이 선 것은 아니다. 처음 한 달은 인스타그램을 비공개로 해놓고 우리 둘만 작업을 진행했다.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없진 않았다. 그런데 한 달 해보니까 그냥 하면 되겠구나 싶었다. 2월부터 인스타그램을 공개계정으로 바꾸고, 계속 이어가고 있다.

 

최: 하지만 늘 같은 호흡으로 작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까지 작업한 스툴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작업에 대한 에피소드를 듣고 싶다.

: 첫째 딸이 만들기를 좋아한다. 아이가 택배 박스로 의자를 만든 적이 있는데, 그걸 크기만 조정해서 목재로 만들려고 했다. 딸이 만든 거라 평소보다 더 정성을 쏟았다. 잘하고 싶어서 생각이 많아졌다. 평소에 잘 안 하던 접합 방식인 촉을 이용해서 꾸역꾸역 만들다가 도저히 안 풀려서 에라이! 하면서 한 번 집어 던진 적이 있다. 욕심을 내면 그렇게 된다. 다음 날 다시 만들었다. (웃음) 얼마 전에 김동훈도 하나 집어던졌다.

: 나 또한 마찬가지로 시간은 부족한데 조립이 잘 안 되거나, CNC 커팅에 실수가 있거나 하면 화가 난다. 재미있게 하자고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어느 순간 스트레스가 될 때도 있다. (웃음)

 

최: 작업실에 목공용, 금속용 기계가 다 갖춰져 있고 이번 프로젝트에서도 나무와 금속이 주로 사용된다. 제작을 외부에 맡기지 않고 주어진 장비와 환경 안에서 직접 하고 있는데, 이런 이유로 새로운 표현 방식을 떠올리기 힘들 때가 있진 않을지 궁금하다.

: 모든 작업을 다 내부에서 처리하지는 않는다. 철판을 레이저로 절단하거나 판금하는 건 외주를 준다. 그런데 사실 모든 공정을 외주로 해결한다고 해서 엄청난 자유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작업을 내부에서 직접 할 때는 주어진 환경 안에서만큼은 최대한 자유로울 수 있는 일종의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물성이나 기법이 반복되는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최대한 여러 표현을 하고자 노력한다. 스툴에서 제일 중요한 부위는 상판과 다리의 접합부라고 생각하는데 이번 프로젝트에서 볼트너트, 피스, 본드, 억지끼움, 쐐기 등 다양한 방식을 사용했다. 지난 10년간의 작업들에서 군데군데 적용했던 기법들을 다 끌어모으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 해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어라, 이게 내가 알고 있던 게 맞나?’ 하면서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마치 구구단을 다시 외우는 것 같은 기분이다.

: 늘 우리가 이용해왔던 목공과 용접 기술로 스툴을 제작하고 있다. 익숙한 기술을 이용해 작업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빠르게,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면서 프로젝트로 발현시키고 있지 않나 싶다. 아예 새롭고 특이한 기술은 없지만 ‘스툴 365’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취향을 생각하며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제품으로 양산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오롯이 한 사람만을 위해서 다양한 컬러를 조합하는 식이다.

 

최: 인스타그램과 전시를 통해서 ‘스툴 365’ 프로젝트가 소개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 ‘스툴 365’ 다음에는 52주 동안 테이블을 하나씩 제작하는 ‘테이블 52’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365개의 스툴과 52개의 테이블이 조합된다면 그 경우의 수가 엄청날 거다. 그다음에는 ‘책장 12’가 될 수도 있겠다. 실생활에서 사용될 수 있는 오브제를 구축해서 브랜드로 확장하고 싶다.

 

최: 어떻게 이렇게 성실하고 부지런할 수가 있나. 비결이 무엇인가?

: 성실한가? 잘 모르겠다. (웃음) 다만 꾸준함은 중요한 것 같다. 제로랩을 ‘크게 키우자’가 아닌 ‘길게 가자’를 목표로 삼았던 것과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이렇게 프로젝트를 주기적으로 진행하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 우리가 많이 미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실 엄청 게으르다. (웃음) 그냥 해야 되니까 했던 것 같다. 밥을 매일 먹는다고 부지런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과 같다. 지금은 스툴이지만 제로랩을 하면서 매일 해오던 일이라 사실 특별할 것도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게 나름의 비결이 아닐까.

 

최: 또 다음 10년이 금방 찾아올 것 같다. 20주년을 맞은 제로랩은 어떤 모습일 것 같은가? 20주년 기념 프로젝트를 미리 상상해본다면?

: 어떤 모습일지 정말 상상이 안 된다. 그때도 여전히 우리 스스로를 갈아 넣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지 않을까? (웃음) 10년 후에도 디렉팅만 하는 디자이너보다는 실제로 작업하는 디자이너였으면 한다.

: 우리끼리 40살 정도에는 제발 제작은 그만하고 기획을 하자고 말했는데 40살이 된 지금도 제작을 하고 있는 걸 보니 20주년 때에도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걱정이다. (웃음) 20년간의 경험을 담아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면 매우 좋을 것 같다.​

 

제로랩, ‘스툴 365’, 혼합 재료, 2020 


김동훈, 장태훈
김동훈과 장태훈은 디자인스튜디오 제로랩의 디자이너이다. 경계의 구분없이 다양한 도구를 활용하여 디자인을 하고 있으며,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한 기획도 진행하고 있다.
https://zero-la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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