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Interview] 자연을 차용한 기준의 재정립

사진
권복주, 박윤, 한호
자료제공
이시산
진행
최은화 기자

가구의 크기와 형태는 일반적으로 사람의 인체 치수와 동작 범위, 수납하는 물건에 따라 결정된다. 인체공학적이며 합리적으로 도출된 이 기준은 책장 폭은 300mm으로, 책상 높이는 700mm으로 표준화시키는 진리로 작용하곤 한다. 하지만 이시산은 인위적 기준 대신 무위적 재료인 돌을 이용해 새롭게 가구를 조직한다. 강과 산에서 채집한 돌을 자연 상태 그대로 사용하여 가구 요소로 탈바꿈시킨다. 인터뷰 중에 그는 ‘창조’라는 단어 대신 ‘발견’과 ‘주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자연에 따라 행하고 인위를 가하지 않는다는 뜻의 ‘무위’를 자주 언급했다. 돌과 스테인리스스틸을 조합해 ‘무위(無爲)’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는 이시산을 만났다.

 

이시산, ‘균형’, 철판에 파우더 코팅, 클램프, 자연석, 1300×450×650mm, 2019 (ⓒ권복주)

 

이시산, ‘스툴(무위)’, 스테인리스스틸에 바이브레이션 마감, 자연석, 360×360×450mm, 2019 (ⓒ한호)

 

이시산, ‘의자(무위)’, 스테인리스스틸에 바이브레이션 마감, 자연석, 450×410×900mm, 2019 (​ⓒ박윤)

 

이시산, ‘무위’시리즈, 스테인리스스틸에 바이브레이션 마감, 자연석, 가변크기, 2019 (​ⓒ한호)

 

 

인터뷰 이시산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작업에 돌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원래 자연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이시산(이): 현재 충주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지역적 영향이 있는 듯하다. 대도시처럼 놀 거리는 많지 않지만 대신에 강과 산이 지천에 펼쳐져 있다. 주어진 환경으로 눈을 돌리다 보니 자연스레 민물낚시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종종 낚싯대를 들고 강가를 찾는다. 낚시 장소는 달라지지만 어떤 곳이든 돌은 항상 있고, 발견하는 돌마다 형태와 질감이 각기 다른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최: 돌을 단순히 관찰하는 것과 돌을 이용해 가구를 제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어떤 생각의 전환이 있었는가?

이: 클라이언트도, 주어진 조건도 없이 가구를 제작하는 데에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 낚시를 할 때마다 관찰하던 돌이 떠올랐다. 돌이라는 자연물 자체가 새로운 규격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은 자연현상에 의해 대지에서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그 형태와 크기가 자연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사람이 흉내낼 수 없는 차원의 일이다. 돌의 형태와 비례를 이용해 가구의 치수를 결정하게 된다면 오늘날 대량생산되는 제품과는 다른 의미를 가질 거라 예상했다. 또한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닌 돌을 이용한다면 세상에 하나뿐인 가구를 만들 수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최: 자연물을 기준 삼아 가구의 치수를 결정하는 점이 흥미롭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는가?

이: 일반적으로 가구를 제작할 때에는 우선 형태부터 정하고 그 다음에 세부 치수를 결정하는데, 나는 역순으로 작업한다. 돌의 치수에 맞춰 나머지 부재의 크기와 높이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무위’ 시리즈의 의자는 좌판 아래가 돌과 수납공간으로 구성되는데, 키 큰 돌을 사용할 경우에는 수납공간이 낮아지고 반대로 작은 돌을 쓰면 수납공간의 높이가 넉넉하게 확보된다. 좌판 높이는 450mm로 고정하되 그 길이가 어떤 비례감을 가질지는 돌에 따라 좌우된다.

 

최: 돌이 현재 작업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돌을 고르는 일이 관건일 것 같다.

이: 가구의 형태를 계획하는 단계에서부터 돌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때로는 구조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계획하고 어떤 경우에는 심미적 효과에 집중한다. 디자인​ 과정에서 가구의 치수 또한 결정하는데, 이 치수를 기준으로 돌의 크기도 적정 범위를 설정한다. 가구가 커질수록 돌도 커지는데, 의자보다 테이블에 더 큰 돌을 사용하는 식이다. 돌을 선정할 때는, 미리 채집해놓은 여러 개의 돌을 늘어놓고 그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돌 하나를 최종적으로 선정한다.

 

최: ‘아름답다’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다. 본인이 생각하는 아름다운 돌이란 어떤 것인가?

이: 명제화된 문장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강가의 돌은 둥글둥글하고 산에 있는 돌은 뾰족뾰족한데, 둘 중에 더 아름다운 것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선택을 내리지 못할 거다. 아름다움에 기준을 설정하는 일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돌은 그냥 돌이라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여러 개의 돌 중에서 “이번 가구에는 이 돌이 잘 어울릴 것 같네” 하며 작업하는데, 아무래도 감각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다.

 

최: 있는 그대로의 자연물을 이용할 거라면, 오로지 자연물만으로 가구를 구성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산업재료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이질적 재료를 조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돌을 두드러지게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했다. ‘무위’ 시리즈는 자연물인 돌과 산업재료인 스테인리스스틸의 대비를 통해 가공되지 않은 돌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고자 했다. 돌은 일부러 더 비정형적 형태인 것을 고르고, 스테인리스스틸은 반대로 기본 도형으로만 디자인해 극명한 대비를 줬다. 또 다른 작업인 ‘균형’에서는 클램프를 추가했는데 이 작업 또한 주인공은 돌이다. 테이블은 돌의 하중이 없으면 옆으로 쓰러진다. 돌이 해당 위치에 있어야만 구조적으로 안정된다. 이러한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해 돌의 존재를 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최: 작업마다 돌의 형태, 크기, 무게 등이 매번 달라져 구조도 큰 문제일 것 같다.

이: 시각적으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구조가 많다. 재료 자체가 무겁고 날카로워서 구조적 측면에 더 신중을 기하게 된다. 예를 들어 캔틸레버 구조로 만든 테이블은, 가로로 매달리는 상판에 가해지는 힘과 세로로 서 있는 다리가 버티는 힘이 적어도 1:1을 이루도록 한다. 여기서 시각적 속임수를 하나 썼는데, 다리는 속이 꽉 차있는 반면 상판은 가볍게 만들기 위해 안을 비웠다. 힘의 평형으로 가구가 자립할 수 있게 되었더라도 만일 상판에 다른 물건을 얹으면 쓰러지게 되는데, 이때 돌의 하중으로 눌러준다. 최근 작업한 테이블에는 35kg 돌을 사용했다. 책, 휴대폰, 컵 등을 편하게 올려 사용할 수 있다.

 

최: 돌에 후가공을 하는가? 구멍을 뚫거나 연결부재를 덧대지는 않는가?

이: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그라인더로 돌의 한쪽 면을 평평하게 깎고 드릴로 구멍도 뚫었다. 하지만 그렇게 제작한 인센스 홀더와 화병은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질 않았다. 가공하면서 돌이 깨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렇게 돌을 부수면서까지 작업해야 하나 싶어 자괴감이 들었다. 가공이 필요하면 처음부터 대리석을 사용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 이후부터는 자연에서 온 돌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테이블과 의자에 사용된 돌은 후가공 없이 놓거나 얹은 게 전부다. 이런 이유로 작업이 지나치게 원시적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무위적 상태의 돌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최: 돌과 금속을 사용하는 모습에서 이우환의 ‘관계항’ 작업이 떠오른다. 

이: 재료 조합이 비슷해 그런 인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이우환의 작업은 철과 돌이라는 두 물질의 관계를 다룬다. 철과 돌은 서로 상반되는 성질처럼 보이지만, 철이라는 재료가 만들어질 때 돌의 성분 중 일부분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두 물질의 관계를 주목하는 작업이다. 내 작업은 무위적 재료인 돌에 더 집중한다. 자연이 만들어낸 형태를 통해 가구의 치수와 기능을 결정하고 이에 따라 사람의 행위가 바뀌게 되는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최: 어떤 디자이너이고 싶은가?

이: 우선 올해는 ‘무위’ 시리즈를 계속해서 발전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영원히 돌로만 작업하는 디자이너에 그치고 싶지는 않다.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가구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나아가 원래 전공이 실내디자인인 만큼 나만의 색깔을 담은 공간 작업도 진행하고자 한다.

 


이시산
이시산은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는 가공되지 않은 자연석과 가공된 스테인리스스틸을 사용하여 ‘무위(無爲)’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오브제, 가구 그리고 공간까지 작업을 이어나가며 디자이너로서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는 중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