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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촘촘히 쌓아 올린 기억의 층위

사진
조늘해, 지요한
자료제공
황형신
진행
최은화 기자

황형신은 이삿짐 박스로 사용되는 폴리프로필렌 판재로 가구를 만든다. 폴리프로필렌을 층층이 쌓아서 열을 가하면 표면이 녹으면서 서로 엉겨 붙는데, 식으면 돌처럼 단단해져 스툴, 의자, 테이블, 선반 등의 ‘레이어드’ 시리즈가 된다. 구조적 형태와 모노톤의 색감으로 인해 플라스틱으로 만들었을 것이란 생각이 쉽게 들지 않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플라스틱 골판지의 구멍이 표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근에는 형태를 고정한 채 재료에 변주를 주고, 한 가지 기법을 서로 다른 재료에 적용하는 등 여러 가지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황형신, ‘의자 03(PP레이어드 시리즈)’, 폴리프로필렌, 300×600×1100mm, 2014 (©지요한)​


황형신, ‘아연의자 10(레이어드스틸)’, 아연도금강판, 300×600×1100mm, 2018 (©조늘해)​​

 

 

인터뷰 황형신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초기 작업을 살펴보면 벽돌, 콘크리트 조각, 플라스틱을 비롯한 다양한 재료 사용이 눈에 띈다. 전공이 목조형가구학인 만큼 우선 나무를 다루었을 법도 한데, 일찍이 다른 재료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는가? 

황형신(황): 학부 때 나무를 잘 다루지 못했다. (웃음) 1학년 때 공구 다루는 법을 배우고 2학년 때 스툴을 만들었는데, 그때 나무를 사용해야 했다. 잘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도구 다루는 방법도 손에 익어야 하는데, 그 당시에는 단기간에 많은 양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나무에 지쳐서 다른 재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재건축 현장에서 벽돌도 주워 오고, 콘크리트를 조합해보기도 하고, 플라스틱도 갈아봤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대학원 때부터 다시 나무를 다루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가리는 재료 없이 다양한 재료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최: 재료 선정의 기준은 무엇인가? 또한 최근 관심을 두는 재료가 있는가? 

황: 예전에는 다른 사람들이 안 쓰는 재료를 찾았다. 새로운 시도, 새로운 이미지를 갈망했다. 하지만 요즘은 내 스스로 깊이를 가지기 위해 노력한다. 신소재를 발굴하기보다는 이미 존재하는 재료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최근에는 천연 재료인 돌, 나무, 금속에 눈길이 간다. 

 

최: 폴리프로필렌 판재의 사용도 독특하다. 가구에 잘 사용되는 재료는 아닌데, ‘레이어드’ 시리즈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황: 시작은 학부 때 만든 암체어다. 흰색 종이 골판지를 겹쳐서 의자를 만들었는데, 만들고 나서 한동안 묵혀 두었다. 앞서 말한 대로 이런저런 시도를 하던 와중에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왔다. 남해에 있는 카페에 회전문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는데, 그때 골판지를 다시 끄집어냈다. 다만 종이 골판지는 내구성이 약하기 때문에 대체재로 플라스틱 골판지인 폴리프로필렌을 사용했다. 골판지의 단면을 살펴보면, 위아래에 막이 있고 그 사이는 지그재그로 된 틈이 있어서 눈높이를 맞추면 골판지 너머가 보인다. 회전문 또한, 문은 존재하지만 그 너머의 장면이 보인다. 사용자의 눈높이, 움직임, 각도에 따라서 투과되는 이미지가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한다. 이것을 다시 일이 년 정도 묵혔다가 대학원 졸업 작품에서 발전시켰고 이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 

 

최: 그 말을 들으니 ‘레이어드’ 시리즈는 꾸준히 진화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는가? 

황: 처음에는 열과 변형을 조절하는 데 서툴렀다. 의도와 달리 우글쭈글한 모습이 나오기도 하고 디테일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만들고자 하는 형태에 얼마만큼의 재료가 필요할지, 특정 요소에 열을 가할지 말지, 작업 순서를 무엇부터 해야 할지 등 다양한 변수에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제는 자체 제작한 가열 도구를 이용하여 능숙하게 작업하고 있다. 작업 효율도 개선됐다. 처음에는 정직하게 수평면을 층층이 쌓아 올라가느라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는데, 요즘은 단위 블록을 미리 만들어놓고 블록들을 조합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다.  

 

최: 목업은 어떻게 진행하는가? 폴리프로필렌이 작은 스케일로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대처하는가? 

황: 종이 골판지를 사용한다. 디지털 모델링보다는 직접 손으로 재료를 만지며 실물로 제작하는 데 중점을 둔다. 실제 크기의 가구를 제작할 때와 마찬가지로, 종이 골판지를 사용해 낱장을 겹쳐가며 작업하기 때문에 이 블록과 저 블록을 조립할 때 문제가 없는지 살펴볼 수 있다. 작업 효율과 전체 형태의 비례를 목업 단계에서 확인한다.  

 

최: 폴리프로필렌에서 발견한 매력은 무엇인가? 

황: 건축과 도시에서 영감을 받는다. 모노톤의 색감, 기하학적 건물의 형태, 건물의 양각과 음각이 만드는 음영의 이미지 등에 관심이 많다. 검은색 폴리프로필렌을 층층이 쌓아 올린 ‘레이어드’ 시리즈가 고층 건물을 닮았다고 생각한다. 가구 표면에 기공이 일정한 배열로 드러나는 모습도 마치 건물 입면에 창문이 다닥다닥 나 있는 듯하다. 

 

최: 건축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다. 

황: 페터 춤토르와 마리오 보타를 굉장히 좋아한다. 건축에 대한 고민, 재료를 다루는 방식, 긴 호흡으로 작업을 이어가는 태도 등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이번 여름휴가를 스위스로 다녀왔는데, 오로지 건축 기행뿐이었다. 춤토르의 테르메 발스에 가서 그 지역 돌을 반듯하게 쌓아 올린 모습에 완전히 매료됐다. 내 작업과 연결하며 혼자 설레기도 했다. 보타의 산 지오반니 바티스타 교회도 인상적이었다. 내 숙원 사업 중 하나가 이 교회를 실제로 가 보는 것이었는데, 이번에 너무 충만한 경험을 해서 다른 건 안 봐도 되겠다 싶었다.  

 

최: 작년 지갤러리에서 진행한 개인전 <레이어드스틸>에서는 쌓기라는 기법만 유지한 채 금속을 사용해 ‘레이어드’ 시리즈를 선보였다. 

황: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가구를 조형성은 유지한 채 재료만 바꿔서 스테인리스 스틸로 표현했다. 재료 변화로 인해 구조 방식도 바뀌었다. 내부에 구조체를 만들어 하중을 지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층층이 쌓아 올리지 않아도 동일한 형태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제작 과정도 수월했다. 

 

최: 최근 작업인 ‘커프(Keft)’ 시리즈도 궁금하다. 교차되는 두 부재가 정확한 크기와 곡률을 가져야만 접합이 가능할 것 같은데, 어떻게 제작하는가? 

황: ‘레이어드’ 시리즈에서 곡선을 만들 때 폴리프로필렌의 한쪽 면에만 칼집을 내서 구부린다. 이 기법을 나무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시작한 게 ‘커프’ 시리즈다. 일정한 간격과 깊이로 틈을 내여 곡선을 만드는 ‘거단곡목(keft bending)’이라는 기법으로 스툴을 제작했다.  

 

최: 부재 가장자리를 따라 있는 바느질 무늬처럼 보이는 게 커팅된 흔적인가? 

황: 그렇다. 컴퓨터 수치 제어(CNC) 기계로 가공된 흔적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냈다.  

 

최: 이미지만 봤을 때는 출발점이 각기 다른 것 같은데 작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다음에 어떤 작업을 이어갈지 궁금하다. 

황: 거창한 목표는 없다. 아마 이전 작업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이나 놓쳤던 부분을 살펴보지 않을까 싶다. 세세한 변화는 있겠지만 이제까지 진행해온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 같다. 종이 골판지에서 플라스틱 골판지를 사용한 것처럼, 비례를 조금 비트는 것처럼 말이다. 앞선 기억들을 반복적으로 순환시키며 조금씩 나만의 색깔을 가지고자 한다. 

 


황형신, ‘스툴 01(레이어드스틸)’, 스테인리스 스틸, 300×300×450mm, 2018 (©조늘해)​​

황형신, ‘콘솔 02(커프 시리즈)’, 자작나무합판, 900×300×900mm, 2016 (©지요한)​​

황형신, ‘스툴 04(커프 시리즈)’, 자작나무합판, 가변크기, 2016 (©조늘해)​​


황형신
황형신은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폴리프로필렌, 금속 등을 사용하여 다양한 오브제를 제작하는 ‘레이어드’ 시리즈를 통해 국내외에서 전시 및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베이징 아트페어, 커틀로그 파리, 금호미술관, 밀라노 트리엔날레, 두바이 디자인데이스 등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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