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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기억 위에 쌓아올린 놀이터: 맘껏숲&하우스

사진
노경
자료제공
일상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아이부터 노인까지, 전주 시민의 쉼터로 사랑받았던 덕진공원에 지난 5월 새로운 공간이 문을 열었다.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공간 조성사업을 통해 완성된 맘껏숲&하우스다. 사업의 총괄디자이너를 맡은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교수)과 맘껏하우스를 설계한 김헌(일상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을 만나 놀이터 조성의 배경과 작업 과정에 대해 들어보았다.

 

 

인터뷰 김아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김헌 일상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 × 방유경 기자 

 

 

 

 

방유경: 유니세프에서 진행한 아동친화 공간조성 사업 초기부터 연구와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총괄디자이너로 함께 참여해왔다. 사업의 취지와 진행 과정을 간략히 소개해 달라. 

김아연: 유니세프는 전 세계 도시를 대상으로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진행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어린이는 맘껏 쉬고 놀 권리가 있다’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근거하여, 도시에서 공간을 만들고 사용하는 의사결정 과정에 아이들의 의견이 존중되고 구현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인증을 받으려면 실제 제도, 행정을 포괄하는 지방자치단체의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유니세프는 인증을 통과한 도시에 다양한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데, 아동친화 공간사업은 서울의 맘껏놀이터(2017), 군산 맘껏광장(2019)에 이어 전주에서 세 번째로 진행됐다. 

 

방유경: 서울, 군산에 이어 전주에서 작업하면서 특별히 고려한 도시 맥락이나 특징은 무엇인가? 

김아연: 맘껏 시리즈를 진행하면서 여러 지역에 똑같은 시설을 만들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전주에서는 주변에 숲이 많은 특성을 살려 생태놀이터 성격을 강화하고자 했다. 지난 경험을 통해 우리나라 놀이터 사업이 너무 유아 중심이라, 상대적으로 청소년들이 공원과 놀이에서 소외받고 있다고 느꼈다. 법적으로 아동은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데, 여기에 맞춰 이번에는 청소년과 어린이 모두를 위한 놀이터를 만들기로 했다. 전주는 아동친화도시로서 ‘야호’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있고, 야호놀이터, 야호학교 등 시 차원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에 관심을 가지고 사업을 

펼치고 있어, 행정의 전폭적인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기획 단계에서 청소년들과 워크숍을 진행하고 맘껏숲 안에 나무 아지트를 만들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아이들과 소통하며 그들의 필요에 더 공감할 수 있었다.

 

방유경: 숲을 테마로 한 놀이터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건물(맘껏하우스)을 만들게 됐다고 들었다. 건축과 조경이 놀이라는 행위를 중심으로 연결된 사례인데, 어떻게 두 사람이 합을 맞추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김아연: 서울과 군산의 경험을 통해, 어린이의 놀이 공간이 실내 공간과 적절하게 연계되지 않으면 활성화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다. 날씨에 상관없이 놀 수 있는 공간, 보호자가 안전하게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공간, 운영자가 상주하는 공간이 필요했던 거다. 처음 전주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건물은 계획에 없었다. 그래서 초반부터 행정을 설득해야 했다. 급한 대로 컨테이너 몇 동을 그려 넣은 계획안을 들고 시장님께 건축물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웃음) 다음 과제는 건축가를 찾는 일이었다. 여러 프로젝트를 하며 지역을 떠돌다 보니, 나 같은 외지인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기억과 애착을 가진 전주 출신 건축가에게 작업을 맡겨야겠다고 판단했다. 주변을 수소문하다 알게 된 분이 앞에 있는 김헌이었다. 이전까지 일면식도 없었다. 건축설계는 김헌이, 조경설계는 스튜디오101(대표 김현민)이 맡았는데, 진정성 있는 전문가들을 찾아내 팀을 꾸린 것이 나의 중요한 역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헌: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 대지 위치를 듣고 무조건 참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주 사람에게 덕진공원은 특별한 장소다. 내 부모님 세대에는 유일한 공원이자 도시 속 쉼터였다. 공원 중앙에 연지라는 큰 호수가 있는데, 부모님의 데이트 장소였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웃음) 지금 놀이터가 들어선 곳은 2001년 문을 닫은 야외 수영장 자리다. 전주에 하나뿐인 야외 수영장이라 내 또래의 전주 사람이라면 다들 추억이 있는 곳이다.

 

방유경: 과거의 장소성 위에 놀이터라는 현재의 장소성을 통합하는 과정도 중요했을 것 같다. 

김아연: 전주 시민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덕진공원을 거쳐간다고 들었다. 이 장소성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원은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즐거워야 하는데, 지금 덕진공원의 콘텐츠는 다소 노인 중심이라는 느낌이 있다. 아이들이 유입돼야 공원 역시 살아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놀이터가 들어서기에 최적의 위치가 아니었나 싶다.

김헌: 아쉽게도 수영장 시설은 지하로 묻거나 대부분 철거된 상태에서 작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공사 중에 땅을 파다 수영장 구조물이 나오면 옛 생각이 떠올라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다. 쉬는 날이면 아이들과 이곳에 놀러오는데 “아빠가 어렸을 때 여기가 수영장이었어”, “저기 연못에서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오리배 타셨대”라고 추억을 말해주곤 한다. 3대의 기억이 쌓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간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옴을 경험하고 있다.

 

 

 

 

 


방유경: 아이들 중심의 공간인 만큼 놀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했는지 궁금하다. 시선이나 동선 등 건물과 야외 공간이 소통하기 위해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고려했나?​ 

​김아연: 놀이터를 생각할 때 학교 놀이터나 아파트 단지 놀이터가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조합놀이대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정해진 패턴으로 놀고 사고한다. 이곳에는 그런 시설이 없다. 언덕, 물웅덩이, 나무 등 시설이 아닌 자연이 중심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스스로 놀거리를 찾고 궁리해야 한다. 일본 플레이파크를 답사할 때, 아이들이 나무 아래 흙을 너무 파내는 바람에 나무 뿌리가 다 드러난 곳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어른 눈에 재미없어 보여도 아이들은 이것을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 그걸 깨달을 때까지 어른들이 기다리지 못할 뿐이다. 한편으로, 다년간 유아 대상의 놀이터를 경험하면서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스스로 위험을 통제하는 방법을 발견해나가는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다양한 신체 경험을 통해 스스로 안전의 경계를 탐색하면서 통제력을 학습하고 자아의 경계를 형성한다고 한다. 평평했던 대지에 잔디 언덕을 만들고 다양한 난이도의 공간을 만든 것 역시 같은 목적이었다. 놀이에서는 다양성과 연속성이 중요하다. 중간에 끊기면 안 된다. 대부분의 놀이터가 순환 동선으로 계획되는 이유다. 높낮이가 있는 잔디 언덕과 건물을 오가며 맘껏 뛰어다니는 풍경을 상상했다. 

김헌: 건축적으로는 처음부터 건물이 건물로 인식되지 않길 바랐다. 실내 공간의 면적을 최대한 줄이고, 실내 공간 또한 야외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연속된 흐름이 중요하다 보니 실내와 실외 중간의 영역이 설계의 핵심이었다. 프레임으로 틈을 만들어 시각적, 청각적 연결을 시도하고, 건물 안에서 움직임을 최대한 증폭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건물을 일종의 놀이기구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잔디 언덕에서 브리지를 건너 2층으로 들어왔다가 실내 원형 계단을 통과해 1층으로 내려가는 동선, 2층에서 브리지를 건너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는 동선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양한 움직임을 수용하고자 했다. 그래서 실내에서도 신발을 신고 다닐 수 있게 계획했었는데, 아쉽게도 안전 및 위생 관리 문제로 실현되지 못했다.

 

방유경: 어린이 시설을 설계하면서 느낀 어려움은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다.

김헌: 어린이 공간과 관련된 안전이라는 제도적 잣대가 경우에 따라 창의적인 디자인을 제한하는 요인이 된다고 느꼈다. 설계를 의뢰할 때는 해외 유치원 사례를 가져와 지붕에서 아이들이 뛰어다니거나 위태로운 난간에 걸터앉아 있는 사진을 보여주던 건축주가 막상 설계를 진행하면 태도가 바뀌는 모습을 종종 경험했다. 안전을 위해 난간을 1.8m로 높여 달라고 하거나, 야외 흙놀이 공간을 위생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설계에서 빼달라고 요청하는 식이다. 맘껏하우스 역시 잔디 언덕에 설치된 미끄럼틀이 원래는 건물과 연결된 한 부분으로 계획됐다. 하지만 미끄럼틀이 건물 안에 포함되는 순간 건물 전체가 어린이 놀이시설 안전인증 대상이 되는 터라 분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시공이나 자재의 안전성 등 중요한 기준들은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다만 공간을 다루는 측면에서 이상적인 요구와 현실 사이의 괴리가 아직 큰 것 같다.

김아연: 어린이 시설에서 안전에 대한 문제는 제도 개선 이전에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해외의 경우 제도를 만들 때 어떻게 놀아야 한다는 정신에서 출발해서 어떤 것이 위험(hazard)하고 어떤 것은 위험(risk)을 감수해야 하는지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한 상태에서 법이 제정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놀이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상태에서, 인증의 가부 여부를 판가름하는 해외 법제도의 틀만 가져오다 보니 한계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맘껏숲&하우스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사례로 알려져, 공간 환경을 만드는 건축가와 전문가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방유경: 긴 시간 여러 팀들과 협업하며 작업을 마친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놀이터 공간과 관련해 계획이나 바람이 있다면? 

김아연: 아쉽게도 당분간 유사한 아동친화 공간사업은 진행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수년 간 해온 작업이 참고할 만한 사례로 세간에 소개되고 있는 상황은 무척 고무적이다. 다만 놀이터 혁신이 디자인 측면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기 때문이다. 깔끔하게 정돈된 풍경보다 아이들이 쓰면서 기존 디자인과 질서를 해체하고 망가지는 변화를 수용하는 것이 놀이터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김헌: 맘껏하우스에 올 때마다 의도대로 이뤄지지 못한 부분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현재 건물 옆에 다른 건축가가 설계한 작은 부속건물이 세워지고 있는데, 처음부터 통합적으로 설계했다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밀려온다. 잠시 쓰다 사라지는 공간이 아니라 오래 유지되는 공공시설이라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다. 고향인 전주로 돌아와 작업한 지 3년 정도 됐는데, 앞으로도 지역의 현실과 더 가깝게 소통하는 건축을 하고 싶다. ​

 

 

 


 


▲ SPACE, 스페이스, 공간


김아연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 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건축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의 중간 영역에서, 국내외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 설계와 연구, 자연의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업을 수행해왔다.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적·생태적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 여긴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헌
김헌은 전북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했다. 2016년 공동대표인 최정인과 함께 일상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2018년부터 사무소를 서울에서 전주로 옮기고 작은 동네책방과 사무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건축이 어려운 담론에서 벗어나 개개인의 일상을 공유하고 담아내는 과정이 되도록 작업하고 있다. 삼연재로 2020 건축문화대상 신진건축사 부문 최우수상을, 선유도리조트로 2020 전북건축문화대전 비주거 부문 금상을, 맘껏숲&하우스로 2021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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