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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호의 공간에서 조망의 공간으로 '인왕산 초소책방'

사진
김용순
자료제공
이충기
진행
최은화 기자
background

지난 2020년, 50년간 인왕산 자락을 지키던 초소 건물 두 곳이 공공건물로 개방됐다. ‘인왕3분초 쉼터’와 ‘인왕산 초소책방’이다. 그중 인왕산 초소책방은 이충기(서울시립대학교 교수)와 공명건축사사무소(대표 김진숙)가 설계한 곳으로, 리노베이션과 증축이 함께 진행되어 옛 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는 한편 이전에는 없던 투명함과 개방감이 생겼다. 내밀하게 닫힌 방호의 공간이 주변 자연경관을 끌어안는 조망의 공간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살펴보자.

 

 

 

 

 

인터뷰 이충기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 최은화 기자

 

최은화(최): ‘인왕산 초소책방’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원래 초소였던 건물을 책방으로 바꿨다. 기존 초소는 어떤 배경에서, 어떤 이유로 지어진 건물인가?

이충기(이): 1968년에 국가안보에 위협을 받은 사건들이 있었다. 북한 무장 군인들이 청와대 습격을 시도한 1.21 사태와 동해 앞바다에서 미 해군의 정보수집함이 납치된 푸에블로호 사건이었다. 이후 불안을 느낀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유사시를 대비하여 남산1호터널, 남산3호터널, 삼일고가도로 등을 만들면서 도시 구조에 굵직한 변화가 있었다. 이 초소도 그 시기에, 청와대를 장거리에서 보호하기 위해, 즉 방호의 목적으로 지어졌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제대로 지어지지 못했고 건축물대장에 등록조차 안 되어 있던 건물이다.

 

최: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지어진 1층 규모의 기존 건물은 50년간 초소로 사용됐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용되던 곳인가? 어떤 건축적 특징이 있었나?

이: 기존 건물은 정확히 말하자면 ‘기지’라 할 수 있다. 방호 근무를 서는 경찰들이 공중전화 박스 같은 개인 ‘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선 뒤에 복귀해서 잠을 자고 밥을 먹는 생활 공간이었다. 단층 건물이었던 이곳은 층고가 다른 두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층고가 높은 공간에는 2층 침대가 여러 개 놓여 있었고, 층고가 낮은 공간에는 화장실과 식당 그리고 샤워실이 있었다. 도로를 향해서는 키 높은 담장이 쳐 있어서 외부인은 아예 볼 수조차 없는 폐쇄적인 건물이었다.

 

최: 2018년 정부가 방호구역을 변경하여 인왕산 초소를 개방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이곳을 포함해 총 2개소의 기지를 리노베이션하기 위해 2018년 9월 TF가 꾸려졌다. 종로구청 공원녹지과, 서울시 푸른도시국, 도시공간개선단이 주축이 되었는데 각각 어떤 역할을 했는가? 별도의 설계 지침은 없었나?

이: 주관은 서울시 푸른도시국, 시행은 종로구 공원녹지과였다. 그리고 당시 서울시 총괄건축가였던 김영준을 중심으로 도시공간개선단이 이 프로젝트를 담당해 줄 건축가를 찾았다. 다만 이렇게 진행된 공공 프로젝트 선례가 없다 보니, TF도 “공공을 위해 열린 공간으로 만들어 달라”는 정도의 요청만 할 뿐이었다. 용도도 특정되지 않아 책방이라는 프로그램도 내가 직접 제안했다. 시공이 완료된 이후에는 관리 부처가 종로구 공원녹지과에서 종로구 시설관리공단으로 변경되었고, 민간 운영자를 모집해서 임대 계약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운영자가 카페, 책방, 음식점을 포함하는 용도로 생각했다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다 보니 순식간에 카페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더숲 초소책방’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운영되고 있다.

 

최: 처음 책방으로 계획할 당시에 이곳이 어떻게 사용되기를 바랐나? 폐쇄적인 방호시설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로 바꿀 때 고려한 사항들은 무엇인가?

이: 공공을 위한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심리, 이용 행태에 대해 많이 고민을 했다. 개인을 위한 장소라면 취향과 필요에 맞춰진 공간을 제안하면 되는데, 공공 공간은 다르다. 인왕산 초소책방의 경우,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인왕산을 오르내리는 등산객이다. 그들은 자연을 보러, 바깥 풍경을 즐기러, 더위와 추위를 모두 느끼러 오는 사람들이다. 과연 그 사람들이 완벽하게 조성된 실내 공간을 필요로 할까?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반대로 따뜻한, 그런 도심 속 여느 공간과 같은 곳을 원할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연과 경관을 위해 이곳을 찾는다. 한가롭게 스탠드에 앉아서 책을 읽고, 하늘을 보고, 뚜렷한 목적이 없더라도 지나가면서 들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공중화장실도 중요했다. 인왕산 길에 화장실이 하나도 없어 대부분 숲에 들어가 자연 방뇨를 하는 상황이었다. 기능적으로 꼭 필요한 시설이기 때문에 길과 가장 가까이 면한 입구에 화장실을 배치했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산책이나 등산을 하다가 이곳에 들러서 화장실도 가고 주변 풍경을 보며 잠시 쉬기도 하고 때로는 일행들을 만나기도 하는 그런 장소이길 바랐다. 뒤로는 산과 나무와 바위가 있고, 앞으로는 서울 도심이 한눈에 들어오는 경관이 아주 뛰어난 장소다. 그렇기 때문에 건축적으로 무언가를 많이 덧붙이기보다는 과거의 시간을 가늠하고 현재의 경관을 바라보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장소에 개인의 기억이 결합되면 그 감동은 아주 오래간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추억을 만들어가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

 

최: 프로젝트는 크게 두 부분으로, 기존 건물을 골조만 남기고 리노베이션한 부분과 새로운 공간을 덧댄 증축 부분이 있다. 각각 철근콘크리트조, 철골조로 구조가 다르다.

이: 바깥을 향하고 야외와 맞닿는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개방적이고 투명한 공간으로 계획했다. 기존 건물은 원래 있던 철근콘크리트 구조체에 탄소섬유 내진보강을 하고, 신설 유리 외벽을 기존 벽체보다 안쪽으로 후퇴시켰다. 실내 공간의 면적은 줄어들었지만 처마가 생긴 듯한 효과가 생겼다. 증축 공간은 철골을 이용해 가늘고 가볍게 구조를 세우고 유리로 감쌌다. 기존 철근콘크리트조와 다른 철골구조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곳이 리노베이션됐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기존 것과 새것을 구분할 수 있다. 또한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대지가 협소해서 콘크리트 공사를 할 만한 여유 공간이 없었다. 철골 부재를 공장에서 가져와서 현장에서 조립해서 시공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이유로, 작은 규모의 건물에는 잘 사용되지 않는 철골을 증축 건물에 사용했다. 

 

최: 이곳을 경관을 위한 장소로 만들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건축적 전략을 취했는가? 조망의 방식과 위치를 세밀하게 계획했다고 알고 있다.

이: 우선 1층의 셋백(set-back)부터 이야기하자면, 일종의 처마를 만든 셈이다. 처마는 풍경을 한정하는 요소다. 한옥에서처럼 아래에는 바닥선, 위로는 처마선이 있어서 적절히 가려진 풍경을 안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처마 아래 공간의 외벽에는 길이 약 15.5m, 높이 3.4m의 슬라이딩 도어를 달았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슬라이딩 도어를 다 열고 남쪽으로는 주변 수목을 보고, 북쪽을 향해 바위를 볼 수 있다. 특히 북쪽으로는 건물 내부, 나무 데크, 바위까지 동일한 높이로 펼쳐지는 공간이라 특히 자연과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 2층 증축부의 철골구조 부재도 자세히 살펴보면 코너 부분의 창호 프레임은 대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렇게 하면 건물 외부에서 유리끼리 깔끔하게 접할 수 있어서 내부에서 경관을 바라보는 데에 유리하다. 또한 2층 스탠드 공간에는 북쪽과 나란하게 천창을 두어서 투명성을 더 높였다. 비록 지금은 운영의 문제로 차양막으로 덮어놔 바위와 하늘을 함께 볼 수 없긴 하다. 스탠드 공간으로 만든 2층 증축 공간은 독서 모임이나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염두에 두고 계획했으나, 오로지 카페로만 이용되고 있어 안타깝다. 사실은 책장과 주방 가구도 다 디자인했었다. 투명하고 열린 느낌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앞뒤로 뚫린 책장을 디자인해서 제작까지 했는데, 이 또한 아쉽게도 지금은 운영상 다른 것으로 교체됐다. 

 

최: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기존 건물에서 구조체 이외에도 철문, 일부 벽체, 기름탱크를 남겼다. 어떻게 보면 장식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이것들을 왜 전시하고자 했는가? 

이: 루이스 칸은 벽돌 하나도 무엇이 되고 싶어 한다고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던가? 기존 건물도 벽돌이든 문이든 어떤 의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기억과 흔적의 장치를 남기고자 했다. 오랜 시간 동안 초소로 사용된 건물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잘 모른다. 그래서 몇몇 요소를 단서로 남겨두고, 표지판도 작게 달았다. 그것 외에도 바위 위에 시멘트로 만들어진 옛날 초소도 하나 남아 있다. 또한 1층에 있는 기둥 중 하나도 원래 모습대로 남겨두었다. 구조 보강이 필요 없는 것은 그대로 유지했다. 

 

최: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는 아무리 치밀하게 계획을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일이 종종 발생한다. 또 공공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한계도 있었을 것 같다.

이: 현장 소장이 두 번이나 바뀌어서 총 세 명의 담당자가 공사를 진행했다.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 됐는지 시공 오류가 많았다. 이번 프로젝트는 최대한 덜어내고, 투명하게 만드는 게 핵심인데 시공 업체가 관성적으로 천장을 깔끔하게 마감재로 덮어놓고, 기둥도 모르타르를 다 발라서 정리까지 해놨더라. 심지어는 창호 프레임이 들어오기도 전에 창호보다 높게 바닥 공사를 해놓기도 했다. 다시 걷어내고 오류를 잡는 데에 시간을 많이 보냈다.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지금 이 정도로 완성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오픈 이후 조금씩 바뀐 부분이 적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잘 사용되고 있어서 기쁘다. 건축가로서 보람은 이런 게 아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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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기
이충기는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시 도시재생 명예시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서울건축문화제 총감독 등을 역임했다. 최근에는 리모델링 건축과 마을가꾸기, 공공디자인 등의 사회·공공적 활동과 도시,건축의 재생 및 재활용 분야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으로는 수연목서, 진집, 선벽원, 대연교회, 제주전문건설회관, 진광교회, 옥계휴게소, 인삼랜드휴게소, 가나안교회, 경주실내체육관, 금동주택, 동다, 수애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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