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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한국 건축에서 ‘일본’이라는 문제

조현정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 9호(1967년 7월호) ▶ e-매거진보기 


「SPACE(공간)」2022년 5월호 (통권 654호)  ​ 

 

1967년 7월 「SPACE(공간)」 9호는 일본 현대건축 특집호로 꾸며졌다. 한국은 식민지 시기 동안 일본을 통해 서구 모더니즘 건축을 도입했고, 해방 이후에도 일본 건축의 영향은 학제와 법령, 인적, 기술적 측면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해방 후 한국 건축가들에게 일본 건축의 위상은 과거 유일하고 배타적인 모델의 지위에서 여러 참조할 만한 외국의 사례들 중 하나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참조 대상이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유명 건축가들의 작품집이나 자전적 에세이의 번역서들을 제외하고는 일본 현대건축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를 국내에서 찾아보기란 그다지 쉽지 않다. 일본 건축에 대한 논의의 상대적 부재는 단순한 우연이라기보다는, 한국 건축에 드리워진 일본의 그림자를 부정하고자 하는 후기식민주의적 욕망의 결과로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볼 때, 창간 만 1년도 안 되어 해외 건축에 대한 첫 번째 특집으로 일본 현대건축을 다룬 「SPACE」 9호는 대단히 예외적이고 귀한 자료이다. 가장 비중 있게 다뤄진 건축가는 ‘일본적이면서 모던한 건축’을 기치로 내걸고 국제적인 스타 건축가의 반열에 올라선 단게 겐조이다. 이어 도시와 건축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며 서구 건축가들을 매료시키던 기쿠타케 기요노리, 구로카와 기쇼, 마키 후미히코, 오타카 마사토 등 메타볼리즘 그룹의 작품이 집중적으로 소개되었다. 이외에도 르 코르뷔지에 사무실 출신 3인방 마에카와 구니오, 사카쿠라 준조, 요시자카 타카마사, 하버드대학교에서 수학한 아시하라 요시노부, 교토국제회관으로 이름을 알린 오타니 사치오, 소주택 설계에 특화된 이케베 기요시, 일본 외부에는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아웃사이더’ 시라이 세이이치, 포스트모던 건축의 기수로 성장하게 되는 이소자키 아라타 등 동시대 일본 건축을 대표하는 건축가들이 총망라되었다. 

 

「SPACE」 9호, 9쪽


 

일본 현대건축에 대한 한국 건축계의 관심과 총체적인 이해를 보여준 「SPACE」 9호는 1960년대 중반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4.19혁명으로 대일 교류를 전면 금지한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1960년대의 한국 사회는 다시 ‘일본’과 조우하게 된다. 일단 교류의 물꼬가 터지자 일본의 대중문화는 젊은이들을 매료시키며 일본 문학과 문학 열풍을 가져왔다. 한편에서는 일본 문화의 수용과 소비가 민족정기를 말살시킬 것이라고 지적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일본에 대한 지나친 피해의식과 열등감을 경고했다.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은 전국적인 반일 시위를 이끌어내며 한국 사회를 민족주의 열기에 휩싸이게 했다. 그러나 일본의 자본과 산업, 기술은 별다른 저항 없이 한국 경제를 빠르게 잠식시켰고, 일본이 배상금 명목으로 지급한 청구권 자금은 박정희 정권이 사활을 걸고 추진한 경제개발의 주된 동력이 되었다. 이때 유입된 자본과 기술을 통해 경제성장을 위한 국가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가 바로 김수근이 수장으로 있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였다. 다시 조우한 일본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태도는 선망과 멸시, 열등감과 우월감이 뒤섞인 ‘분열증’적 성격을 갖는다.▼1 일본에 대한 양가적이고 복합적인 정서는 「SPACE」 9호의 기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SPACE」 9호, 3, 5~27쪽

 

이 호의 필진으로는 김병현, 유걸, 이상순, 원정수 등 당시 20~30대였던 유망한 젊은 건축가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식민지 시대에 건축 교육을 받지 않은 세대로서 일어에 능숙하지 못했지만, 미국 건축이나 프랑스 건축처럼 외국 건축의 하나로서 일본 건축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이해를 갖고 있었다. 동년배인 윤승중의 회고에 따르면 선배 세대처럼 일본어를 능숙하게 읽을 수 있는 ‘어드벤티지’는 없었지만, 당시 손쉽게 구할 수 있던 「신건축」, 「국제건축」, 「건축문화」 등 일본의 건축 잡지들을 꾸준히 챙겨보았다고 한다.▼2

 

먼저 총론 격에 해당하는 김병현의 글은 일본 현대건축의 흐름과 쟁점을 개괄한다. 그는 전후 일본 건축의 가장 중요한 이슈를 전통논쟁으로 꼽고, 이와 관련된 건축에 대한 객관적인 소개를 넘어 주관적인 논평을 시도한다. 즉 일본 전통 건축의 외형적 모티프를 차용한 이와모토 히로유키의 국립극장(1966)이나 야마다 마모루의 국립무도관(1964) 등의 작품을 비판하고, 대신 정신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에서의 전통을 추상화한 시라이 세이이치의 선조사(善照寺, 1958)를 높이 평가했다. 일본 전통논쟁에 대한 비상한 관심은 당시 한국 건축계가 고건축의 모방을 요강으로 내건 국립종합박물관 설계공모로 인해 한바탕 몸살을 겪었던 사정을 떠올린다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필진 중 유일하게 일본을 직접 방문했던 이상순은 자신이 경험한 동시대 일본의 건축과 도시에 대한 생생한 인상을 전달한다. 한국의 바우하우스를 표방했던 신조형파 그룹의 구성원이기도 했던 이상순은 당시 철도청 시설국 소속으로 일본 국철에서 두 달간 연수하며 일본 전역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막 완공된 가스미가세키 빌딩의 위용, 세련되고 호화로운 상업건물, 오사카 근교에 들어선 센리 신도시 등을 소개한 그의 글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한 일본 대도시의 에너지와 활력이 잘 담겨 있다. 

 

이상순의 글이 국제적인 수준을 달성한 일본 건축에 대한 매혹과 선망의 정서를 보여준다면, 유걸의 글은 일본 건축이 이룬 성취를 평가절하하려는 욕망을 드러낸다. 유걸은 일본 건축의 특징이 사람을 현혹하는 인위적인 디테일에 있다고 보고, 건축의 진정성과 조형적 완결성, 독자적인 비전의 결핍을 독특한 디테일이나 소재, 색으로 보완했다고 혹평한다. 유걸은 자신이 흠모했던 루이스 칸의 ‘어니스트’한 건축을 오리지낼리티의 기준으로 삼고, 일본 건축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사이비’ 건축이라고 폄하했다.

 

「SPACE」 9호, 28~51쪽 

 

결론 격에 해당하는 원정수의 글은 한국 건축에서 일본이 무엇인가라는 논쟁적인 주제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이고 차분하게 다룬다. 그는 단기간에 세계적인 수준을 달성한 일본 건축의 사례가 한국 건축가들에게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 건축에 드리워진 일본적인 색채를 어떻게 지울 것인가가 당시 건축가들이 당면한 과제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공교롭게도 이 특집호가 출간된 직후, 한국 건축계는 부여박물관을 둘러싼 왜색 논란에 휘말리게 된다. 김수근 팀이 설계한 부여박물관이 일본 신사를 연상시킨다는 지적에서 시작된 이 논쟁은 1967년 8월부터 약 한 달간 일간지 문화면을 도배하며 건축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가져왔다.▼3 무엇보다도 건물이 일본 군국주의의 건축적 상징인 신사를 떠올리게 한다는 점이 한일협정 이후 팽배했던 반일 정서를 자극했다. 설계자인 김수근이 일본에서 유학했다는 점도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부여박물관을 ‘신사의 데포르메’라고 혹평한 김중업은 설계자가 일본에서 공부하며 받은 영향을 충분히 여과시켜 독창적인 창작에 이르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일본의 땟물을 깨끗이 닦고 자기 길을 개척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4 한편에서는 ‘식민지 잔재’, ‘망령적인 축조’ 같은 자극적인 어휘를 동원하며 부여박물관의 철거를 요구했고, 다른 한편에서는 지나친 열등감이나 쇼비니즘을 경계하며 건축가의 창작의 자유를 강조했다. 부여박물관이 왜색이냐 아니냐의 시비는 건축계의 알력 다툼을 넘어, 건축 전문가와 일반 대중, 창작자의 자유를 강조하는 예술계와 민족정기를 중시하는 역사학계, 식민 지배를 겪은 구세대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젊은 세대 등 다양한 집단의 갈등으로 이어지며 한국 사회를 분열시켰다. 

 

「SPACE」 9호, 25쪽


 

부여박물관을 둘러싼 공방은 국립종합박물관 설계공모를 둘러싼 갈등과 함께 한국 건축에서 전통 계승의 문제와 정체성에 대한 논쟁을 촉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부여박물관 왜색 논란은 당사자인 김수근뿐 아니라 한국 건축계 전반에 상당한 외상으로 남게 되었다. 건축가들은 혹여나 자기 작품이 일본적이라고 비난받을까 자체적인 검열을 하게 되었고, 이는 당연히 자유로운 조형적 표현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일본 건축에 대해 관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일은 자제되었고, 한국 건축에 끼친 일본의 영향이나 한국 건축에 있어서 일본성이라는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다. 원정수가 지적했듯이, 일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일은 한국 현대건축의 정체성을 수립하기 위한 선행조건이다. 그러나 ‘일본’에 대한 객관적인 논의 자체가 사라졌고, 이는 오랫동안 한국 건축사 서술 전반에 있어서 약한 고리가 되고 있다. 일본에 대한 논의가 재개된 것은 한국 건축, 나아가 한국 사회 전반의 위상이 드높아진 비교적 최근에 들어서이다. 「SPACE」에서도 일본 건축 그룹 ‘간사이 6’을 대대적으로 소개하거나 동일본대지진 이후의 건축 동향을 다루는 등 이웃 일본의 건축을 다루는 데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터부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5 일본 건축에 대한 이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이라는 타자가 한국 현대건축의 성립과 전개에 있어서 어떠한 형성력으로 작용했는가에 관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 조현정 / 진행 김정은 편집장)

 

다음 호에는 김현섭이 「SPACE」 6호(1967년 4월호)에 게재된 특집 ‘건축가 박길룡: 24주기를 맞이하며’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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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권보드래·천정환, 『1960년대를 묻다: 박정희 시대의 문화정치와 지성』 , 천년의 상상, 2012, 531쪽.

2 우동선·최원준·전봉희, 『윤승중 구술집』 , 마티, 2014, 209쪽.

3 부여박물관 논쟁과 관련된 자료를 정리하고 각계 인사와 건축가들의 의견을 청취해 「SPACE(공간)」12호(1967년 10월호) 부여박물관 특집호가 꾸려졌다.

4 「SPACE」 12호, 14쪽.

5 ‘간사이 6’과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 건축은 각각 「SPACE」 518호(2011년 1월호)와 537호(2012년 8월호)에서 다뤄졌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조현정
조현정은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일본 건축사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과 미술의 접점, 한국과 일본 건축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일본 현대건축의 흐름을 정리한 『전후 일본 건축』을 썼고, 공저로 『국가 아방가르드의 유령』, 『김중업 다이얼로그』, 『파빌리온: 도시에 감정을 채우다』, 『아키토피아의 실험』, 『시대의 눈』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1900년 이후의 미술사』(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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