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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잘 알지도 못하면서: 조성렬의 한남동 송씨댁

서재원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
진행
김정은 편집장

 

통권79호​(1973년 10월) ▶ e-매거진 보기
 

 

여전히 그렇지만 연유를 알 수 없는 추상적 조형이 난무하던 1960~1970년대의 주택들을 훑어보던 중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눈에 거슬리던 집이 하나 있었다. 한남동 송씨댁이라 이름 붙여진 이 집은 우선 형태에서부터 시선을 잡아끈다. 무슨 개구리 눈도 아니고 스포츠카에 달린 팝업 헤드램프처럼 지붕 위로 불쑥 튀어 올라온 창들과 집 전체를 뒤덮은 경사지붕은 마치 동물이 튀어나올 듯, 숲 속에나 있을 법한 만화 같은 모습을 띠고 있다. 지붕이 그대로 땅바닥까지 내려오다 보니 포대기를 덮은 것 같기도 하고 고대 움막의 느낌마저 풍기면서 매우 이국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물론 건축적으로 보면 과도한 조형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나 당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신념 아래 코르뷔지에식의 ‘볼륨의 단면적 관입’이나 라이트풍의 ‘수평적 유동성’ 등의 ‘空間(공간)’을 신봉하던 여타의 주택들과는 확연히 차별화돼 보인다. 근본적으로 ‘형태에 기능을 욱여넣은’ 디자인 과정은 건축가들 사이에서 불문율처럼 주류를 이루던 반(反)형태주의에 일격을 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주택이 소개된 「SPACE(공간)」 79호(1973년 10월호) 지면에는 소위 ‘도면의 꽃’이라 불리던 단면도는 없고 입면도 스케치만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추측에 힘을 더 실어주며 건축가가 남긴 추후 작품집에도 단면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한남동 송씨댁’, 「SPACE」 79호, 55쪽. 

 

 

‘한남동 송씨댁’, 「SPACE」 79호, 56쪽.
 

 

한남동 송씨댁은 똑같이 닮은 크고 작은 두 개의 등변 직각삼각형이 엎어진 채 서로 사이 좋게 나란히 붙어 있다. 지붕을 뚫고 수직으로 불쑥 올라온 창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크기의 삼각형들까지 합해서 보면 기하학의 프랙탈적 유희가 나타난다. 더욱 그러한 시각적 효과를 가중시키는 것은 45도의 지붕 각도 때문인데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당시 경사지붕 자체는 흔한 유형이었지만 대개는 목조로 구성하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물매는 평균 3/10 정도를 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고 이는 자재의 한계와 경제성 그리고 한국적 기후와 정서에 기인한 것이기에 큰 논란의 여지가 없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한남동 송씨댁에서 집착스럽게 보이는 지붕의 각도는 시대의 통상적 구법과 정서에서 모두 벗어난 것이다. 지금도 쉽지 않은 45도 경사 슬래브 지붕을 만들면서까지 기하학적 이미지에 몰두했던 것을 생각해볼 때 확연히 본인만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집은 건축가가 원했던 대로 단순한 도형만을 통해 움막처럼 보이는 데 성공함으로써 구상과 추상 사이에 머물며 미스터리한 아우라를 풍긴다. 집의 그러한 모습은 진입 시에 잘 보이도록 의도되어 있다. 이처럼 엄격한 형태 구성원리에 의해 행태가 주어질 경우 문제는 기능의 해결인데 평면을 통해 보이는 공간구성은 기능뿐만 아니라 꽤 흥미로운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물론 원래 대지가 가진 레벨의 차이가 결정적 한몫을 했지만 그러한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풀어낸 건축가의 안목은 예사롭지 않다. 내부 공간은 남쪽으로 추정되는 낮은 레벨 쪽으로 정원과 연결되는 거실 등의 공용 공간을 두고 높은 쪽으로는 현관과 부엌, 식모 방 등 서비스 공간들이 들어서 있는 명쾌한 구성이다. 거실 위로는 2층 어린이 방들이 모여 있어 외형에서 큰 삼각형의 덩어리를 이루고 부엌 쪽은 단층구성으로 작은 삼각형을 이루면서 조닝과 조형이 자연스럽게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두 공간의 중심에 놓인 계단인데 전형적인 돌음 계단처럼 단조로워 보이지만 공간의 경험으로 보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계단은 층계참에서 여러 공간으로 연결되다 보니 거의 복도의 연장에 가까워 보인다. 식사 공간에서부터 연속되어 계단 가운데를 나누는 ㄱ자 벽체로 인해 스킵 플로어의 공간들은 서로 연결되면서도 시선적으로는 닫혀 있어, 결과적으로 보면 집안에 긴 복도가 수직으로 있는 셈이다. 이는 거주자가 공간 구조를 한눈에 읽기 어렵게 만듦으로써 심리적 긴장감을 높인다. 또한 거실 한 켠으로 돌출된 계단은 기능적이기보다는 장식의 역할을 더하며 돌음 계단의 기능을 느슨하게 해체한다. 마치 아돌프 로스 주택의 일부분을 보는 듯한 인상마저 드는데 그렇다 보니 낮은​레벨에 놓인 벽으로 꽉 막힌 두 공간이 같은 레벨에 위치한다는 점은 다소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지만 필자에게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거실과 복도를 나누는 계단 바로 앞의 문이다. 이 문은 집을 거의 수평으로뿐만 아니라 수직으로도 두 동강 내고 있는데 이것이 생소해 보이는 이유는 문의 위치 때문이다. 보통은 현관 앞에 중문을 두어 현관 영역과 거실 영역을 분리하는 데 반해 이 집은 중문이 집의 한가운데 있는 격이다. 충분히 이 ‘가운데 문’이 현관 쪽으로 당겨지고 식당과 계단 간에 개방적인 관계를 만들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폐쇄적인 구성을 한 것은 건축가의 관심이 단순히 형태 유희에만 있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단순한 제스처로 내부 공간은 미로처럼 꼬여 공간의 대비를 극대화하고 형태와 공간의 일대일 관계를 방해한다. 현관에 들어서서 다소 낮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끝에 마주한 문을 열면 맞게 되는 낮게 깔린 거실은, 거주자 입장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경험일 것이다. 거실로 몇 계단을 내려와 소파에 앉아 다시금 약간 올려다보게 되는 식사 공간도 기분 좋은 생경함일 듯하다.

 

‘한남동 송씨댁’, 「SPACE」 79호, 57쪽. 

 

 

‘한남동 송씨댁’, 「SPACE」 79호, 58쪽.
 

 

전체적으로 형태와 평면의 관계를 볼 때 한남동 송씨댁은 공간을 덧붙여가며 조형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조형에 맞춰 공간을 나누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당시 건축가들의 다소 감성적인 프로세스와는 상당히 다른 접근이라고 봐야 한다. 이는 1927년 르 코르뷔지에가 제시한 주택구성의 4원칙 중 제2원칙, 빌라 스테인에 가까운 것으로 르 코르뷔지에는 이를 두고 가장 어렵지만 정신적인 만족을 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일종의 게임인 셈이다. 한남동 송씨댁은 제2원칙의 직사각형 볼륨이 삼각형으로 바뀐 것에 약간의 위트까지 더하고 있다. 그리하여 집은 정신적 만족뿐 아니라 보는 이의 즐거움, 조형적 완결성, 수학적 엄밀함, 공간의 정합성에 키치한 대중성까지 갖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공간과 기능에 따른 형태를 겸허히 발견하고 약간의 조작을 통해 아름다운 비례를 만드는 데 익숙했던 (비)윤리적 태도와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별종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집의 주인은 누구였을까?

 

거실 전경 (렌더링: 전준호)

 

 

 

식당을 바라본 모습 (렌더링: 전준호)
 

 

 

계단을 중심으로 한 공간구성 (다이어그램: 전준호)
 

 

 

1960년대 한국 패션계의 한 축을 담당했던 패션 디자이너 트로아 조(본명 조영자)는 친오빠인 건축가 조성렬에게 본인이 기거할 집의 설계를 의뢰한다. 조성렬은 1992년 출간된 그의 작품집에서 아래와 같이 회고하고 있다.

 

“건축설계는 건축가와 건축주의 인간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시작되어야 한다. 건축가는 살 사람에 대한 이해와 정이 있음으로 해서 더 좋은 집을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건축주가 친한 사람, 가까운 사람일 때는 집 짓는 얘기를 시작할 때부터 흥이 생기며 꿈의 집, 살기 좋은 집을 짓기 위해 신이 나서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평소 좋은 건축예술이 나오기 위해 건축주가 지녀야 하는 안목과 소양을 강조하던 조성렬에게 외국생활을 경험한 패션 디자이너 친동생은 더 없이 완벽한 클라이언트로 본인의 디자인을 십분 발휘할 좋은 기회였을 터이다. 1973년 완공된 한남동 송씨댁은 마침 그가 자신의 건축론 ‘큐비즘’을 검증할 마지막 프로젝트이자 본격적인 ‘큐빅 운동’을 전개하기 위한 파일럿 프로젝트였던 셈이다. 조성렬은 1972년 신세계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고 36세 나이에 작품집을 출간했다. 이 때 김수근은 서문에 ‘자기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는 최초의 작가’로 전제하고 ‘순수한 작가로서의 자세에서 흐트러짐 없이 철저하게 자기세계를 관리해온 완벽주의자’라고 썼다. 조성렬은 그만큼 치열한 작가이면서도 치밀한 전략가였던 것이다.

 

1936년 전남 벌교의 넉넉지 못한 농가에서 태어난 조성렬은 교회 장학금을 받아 기독교 중ㆍ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어려서부터 그림에 소질을 보여 여러 미술전에 입상하였다. 이를 계기로 미술교사를 꿈꾸면서 그래픽 디자인과 도학(圖學)에 매진하다가 뒤늦게 홍익대학교 건축과에 들어간다. 정인국, 엄덕문으로부터 ‘건축’을 배웠고, 김수근에게서는 ‘건축가’를 보았다. 1964년에 졸업하였으나 취직이 어려워 을지로 인쇄소에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이듬해 신세계 백화점에 공채로 입사한다. 그 후로 자연스럽게 실내건축과 디스플레이 영역에 몰입하여 한국 무역박람회 삼성관 파빌리온(1968), 신세계 백화점 연말 외부 조명 장식(1969) 그리고 개인 작업실에서의 작업 애플싸롱(1966), 뉴욕제화(1972), 파인힐(1971) 등으로 이름을 알린다. 본격적으로 1973년부터는 큐빅 디자인 연구소를 정식으로 개업하여 제2의 도약을 하며 썬큰가든 빌딩(1982), 연경빌딩(1987), TCA빌딩(1988) 등으로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하고, 독립기념관 전시설계(1983), 88올림픽 홍보전시관(1985) 등의 프로젝트로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으며 승승장구 해나간다. 그러나 한편에선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던 듯하다. 유치한 듯한 큐빅 조형, 수퍼 그래픽과 강렬한 색채의 대비, 화려한 장식 조명 이런 것들이 나름 ‘(한국)건축가의 정도’를 밟아왔던 동료 건축가들에게는 ‘가벼운 커머셜리즘에 빠진 재능있는 실내장식가’ 정도로 애써 치부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그가 ‘스폰서 비즈니스’를 표방하며 파인힐 레스토랑을 직접 경영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조성렬은, 

 

“세상에 커머셜리즘이 왜 지탄을 받아야 합니까? 오히려 철저하고 완벽한 상업주의에서 건강하고 떳떳한 이미지를 가꾸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러한 생각을 숨기고 뒤로 어설프게 하는 것 때문에 혼탁해진다고 확신합니다.” 라고 주장하며 우회로를 택하지 않는다.

 

몇 차례 출간된 작품집에 그가 쓴 글들의 제목만 봐도 그는 누구보다도 작가였으며, 건축가였고 디자이너였으며, 이상주의자임과 동시에 냉혹한 현실주의자이자 오피니언 리더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시기에 활동한 어느 한 건축가가 1992년 조성렬에 대해 쓴 한 쪽짜리 비평에서 보인 다소 냉담한 태도는 필자에게 여러 가지 여운을 남긴다. 내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쓸데없는 망상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글 서재원 / 진행 김정은 편집장)

 

다음 호에는 조현정이 「SPACE」 302호(1992년 11월호)에 게재된 김중업의 프랑스대사관을 다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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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집: 조성렬 작품선’, 「SPACE(공간)」 69호(1972년 10월호), 1~51쪽.

2 ‘특집: 한국의 모더니즘’, 「SPACE」 306호(1993년 4월호), 21~95쪽.

3 편집부, 『조성렬; 큐비즘의 조형세계』, 한림출판사, 1992.

4 조성렬, 『CHO, SUNG-YUL ART & ARCHITECTURE』 , 산업도서출판공사, 1999.

5 “건축가 조성렬 (이세기의 인물탐구: 145)”, 「서울신문」 1997년 9월 6일.​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서재원
서재원은 단국대학교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현재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다. 현대사회의 다면적 상황을 ‘비판적 수용’의 관점 아래 애증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부조화와 조화, 합리성과 비합리성, 풍자와 농담 등의 모순적 병치를 통해 한국 사회의 ‘동시대성’을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7년에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며 올해의 주목할 만한 건축가로 선정되었고,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와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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