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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현대건축의 한국성: 전통논쟁에서 한국학파의 제창까지

김현섭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 4호(1967년 2월호)의 표지



한국 현대건축 논의의 출발점에 전통논쟁이 있었고 이후의 건축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상황은 1966년 11월 「SPACE(공간)」 창간 직후부터 지면에 여실히 반영된다. 그 궤적을 추적하는 일은 한국 현대건축론의 밑그림을 생생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척 중요한데, 「SPACE」를 발행하던 김수근과 공간그룹의 개념이 어디로까지 뻗어가게 되는지 드러낸다는 점에서도 뜻깊다. 이 두 가지 그림은 대체로 겹쳐지지만 후자, 즉 김수근과 공간그룹의 건축 논의가 전자를 견인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966년과 1967년 국립종합박물관(현 국립민속박물관)과 부여박물관(현 국립부여박물관)이 촉발한 전통논쟁이 이후 십수 년 반복되다가, 1980년대 후반 ‘한국성’이라는 말로 논의를 확장하는 구도다. 그런데 그 사이 김수근은 ‘궁극공간’을 발표하고(1971년 범태평양건축상 기념강연), ‘한국학파’를 구상했으며(1978년 한국건축가협회 토론회), 건축의 ‘네거티비즘’을 주창한다(1980년 UIA 제4지역 도쿄 컨퍼런스). 전통론에서 진화한 한국 현대건축론의 일면이다.

“상세조건 5-1항. 건물외형은 ... 그 자체가 어떤 문화재의 외형을 모방한 것으로서 콤포지션 및 질감이 그대로 나타나게 할 것이며 여러 동의 조화된 문화재 건축을 모방해도 좋음. ... 단 내부시설은 한식을 가미한 초현대시설로 한다.” 1966년 한국의 건축계는 국립종합박물관의 공모 방식과 전통양식 문제로 시끄러운 한 해를 보냈다. 1월 8일 문화재관리국의 설계공모 발표, 3월 10일 강봉진 안으로의 당선작 선정, 그리고 11월 22일 기공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논란을 낳았기 때문이다. 「SPACE」는 그해 말 좌담회를 개최해 국립종합박물관의 전통모방을 신랄하게 비판하고(사회: 윤승중, 패널: 김중업, 김수근, 이구), ‘건축, 전통을 계승하는 길은?’이라는 제목으로 「SPACE」 3호(1967년 1월호)에 게재했다. 그리고 이 문제를 「SPACE」 4호(1967년 2월호) 특집으로 집중 조명한다. 특집 제목은 ‘한국 현대건축을 위한 심포지엄: 시리즈 1. 국립종합박물관의 경우’. 이 섹션은 여러 쪽에 걸친 당선안 및 실시안 도면에 이어 심사위원 정인국의 변호적 입장, 모집공고에서 기공식까지의 경위와 여기 수반된 논란, 건축계와 문화계 인사들의 논평 및 대담 등으로 구성됐다. 물론, 글 전체에는 현대적 조건을 무시한 채 법주사 팔상전 등 여러 전통건축물의 외형만을 본뜬 것에 대한 비판이 관통했다. 대안은 이경성의 평론 ‘전통과 창조’로 귀결된 모양새다. 지금으로서는 너무 당연한 명제지만, 전통계승의 바른 길은 그 ‘정신’을 ‘현대의 눈’으로 ‘세계적 위치’에서 ‘재창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집 전반에서 우리는 당대 건축가들의 무기력 또한 읽게 된다. 팔상전이나 영남루에 버금가는 건축물을 지은 적이 있느냐는 문화재관리국장의 질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말하자면 대담 제목인 ‘현대건축에의 불신’에 대한 무기력 말이다. 그런데 현대건축을 불신하는 당시 풍조를 불식하기 위한 담론 형성이야말로 「SPACE」의 존재 근거일 것이다. 「SPACE」가 전통과 현대의 구도를 펼쳐내는 가운데, ‘현대’에 방점을 찍게 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특집의 제목도 ‘현대건축’을 내세우고 있지 않나. 실무 건축가들의 목소리가 주축인 까닭도 있는데, 「SPACE」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 학계와 달랐다는 알랭 들리센의 주장도 이와 무관치 않다.▼1 같은 해 10월, 「SPACE」 12호(1967년 10월호)는 부여박물관 왜색시비를 이 특집 두 번째 편으로 다룬다. ‘한국 현대건축을 위한 심포지엄: 시리즈 2. 전통계승과 비평의 당위’. 8월 19일자 「동아일보」 기사로 촉발된 이 스캔들은 신문지상과 건축계를 달구며 한 달가량 지속됐었다. 한 해를 끌어온 국립종합박물관 논쟁에 비하면 짧게 끝난 셈인데, 익히 주지하는 논란의 전모를 재론할 필요는 없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간파해야 할 바는 한국 건축가들의 전통계승 인식이 일정 정도는 진전했다는 사실이다. 부여박물관의 왜색시비는 전통 그대로의 모방이 아닌 현대적 재해석 과정에서 불거진 문제이기 때문이다.▼2 그 해석의 차이가 국립종합박물관 논쟁에서 같은 진영에 있었던 (혹은 그렇게 믿었던) 동료들로부터의 날선 비판을 가져오게 했던 것이다. 이 왜색시비는 「SPACE」로 하여금 앞서 제기됐던 현대건축 창작의 문제를 다시 조명하고, ‘비평의 부재’를 확인해 ‘비평의 당위’를 역설케 한 계기가 됐다. 김원은 ‘건축비평의 보편적 당위’라는 특집 마지막 글에서 이 논란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 그간의 질 낮은 토론을 ‘비평의 차원으로’ 끌어올릴 기회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비평은 지식인의 책무로서의 앙가주망인데, 비평가는 건축가와 함께 현대건축을 창작하는 일에 기여할 수 있다는 취지이다.▼3




(위) ‘한국 현대건축을 위한 심포지엄: 시리즈 1. 국립종합박물관의 경우’, 「SPACE」 4호, 6~7쪽. 

(아래)「SPACE」 4호 특집에 수록된 이경성의 평론 ‘전통과 창조’의 첫 페이지(28쪽)와 원정수·김상기·유걸이 참여한 정담 ‘현대건축에의 불신’의 첫 페이지(31쪽).



1967년 「SPACE」가 보도한 전통논쟁은 이후 반복될 전통계승 논의의 바탕이 된다. 새로운 특집▼4을 통해서든, 「SPACE」 100호를 기념해 모집한 평론▼5을 통해서든, 공간대상 토론회▼6를 통해서든, 현대건축이 전통을 수용하는 방법에 대한 인식은 점차 확대됐다. 비록 이론과 실제 사이에 괴리도 컸고, 군사정부하에서의 퇴행도 여전했지만 말이다. 이희태의 국립극장(1966~1973)과 엄덕문의 세종문화회관(1973~1977)은 「SPACE」가 비판적 논의의 대상으로 삼은 1970년대 대표적 공공건축물인데, 1980년대에 들어서면 김기웅의 전주시청사(1981~1983)와 독립기념관(1983~1987)에서 보듯 전통 요소의 차용이 훨씬 자유로워지며 포스트모던적 경향을 띠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사이 현대건축의 전통계승 논의가 ‘한국성’에 관한 것으로 넓어졌음을 감지할 필요가 있다. 1960년대에도 ‘한국적인 것’이라는 말이 없지 않았고, 사실 내재적으로는 이미 ‘한국성’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7 하지만 「SPACE」가 본격적으로 이 말을 채택해 다룬 것은 김수근 사후인 1987년, 세 차례에 걸친 연재특집 ‘한국 현대건축: 한국성의 재발견’을 통해서다. 이 시리즈의 머리글 ‘한국성 모색을 위한 철학적 고려’[「SPACE」 238호(1987년 6월호)]에서 ​소흥렬은 건축의 한국성을 ‘전통적 한국성’, ‘예술적 한국성’, ‘이념적 한국성’으로 구분한다. 그리고는 한국성이 전통주의적 입장을 뛰어넘어 예술의 보편적 가치를 담아야 하며, 결국은 시대의 이념을 나타내야 함을 주장했다. 이런 ‘이념적 한국성’에 대한 논지는 1960년대 제기됐던 바를, 예컨대 이경성이 전통의 정신을 현대적으로 재창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바를 한층 체계화한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논의 개념이 ‘전통성’에서 ‘한국성’으로 확장됨으로써 건축가들의 창작의 폭은 넓어졌는데, ‘정신’ 혹은 ‘이념’이라는 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숙제로 남은 셈이다.

 

 



(위) ‘특집: 전통계승과 한국 현대건축의 반성’, 「SPACE」 131호(1978년 5월호), 21~22쪽.

(아래) 조영무, ‘공간그룹의 이념체계의 시안: 시간과 공간과 인간 ... 창조의 공간’, 「SPACE」 150/151호(1979년 12월, 1980년 1월 합본호), 50, 53쪽.

 

 

1960~1980년대 전통성-한국성 논의의 지속과 확장은 한국 건축계 전반의 일반해적 좌표라 할 만하다. 이를 매개하고 주도한 것이 「SPACE」이지만, 김수근과 공간그룹 자체의 건축적 향방은 개별 설계조직으로서 특수해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전체 구도를 보자면 일반해를 바탕으로 특수해가 나왔으나, 이 특수해가 일반해를 앞질러 주도했다고 할까. 1971년 김수근이 발표한 ‘궁극공간’은 “인간환경의 본질은 물리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내면적·정신적인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둔다. 그가 전통에서 문방(文房)과 정자를 주시한 까닭은 그 외형이 아닌 공간이 담는 ‘사색’과 ‘평정’, 그리고 ‘청유’라는 정신성 때문이었다[「SPACE」 56호(1971년 7월호)]. 이는 부여박물관 왜색시비로 호되게 일격을 당했던 그가 퇴각하여 몰두해야 할 전통의 가치였을 것이다. ‘네거티비즘’은 바로 이 ‘궁극공간’을 포괄한 개념인데, 유·불·도의 전통사상에 뿌리를 둔다[「SPACE」 162호(1980년 12월호)]. 이렇게 보면 김수근의 특수해는 일반해를 이끌 만한 매력을 지녔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1978년 12월 한국건축가협회 토론회에서 그가 제안한 ‘한국학파’는 이후의 논의에서 지나치게 특수화됨으로써 일반해적 좌표 가운데 자리를 얻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8 그의 논지를 재구성한다면, 한국학파는 ‘한국의 멋(Hα)을 가미한 건축문화의 창조를 통해 세계 인류에 기여하는 집단’으로 규정할 만하다. ‘한국의 멋’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텐데, 여기까지는 무척 고무적이다. 그러나 그가 설정한 함수관계 A=f(H+S)t+Hα에▼9 수학적 결정론의 우려가 내포됐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우려는 조영무에게서 표면화된 듯하다. 그가 공간그룹의 이념체계를 이론화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도식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다.▼10 다른 한편으로, 한국학파의 지속을 위한 조영무의 야심찬 기획은 아득한 상고시대에 기반한 국수적 민족주의로 흐름으로써 세계적 보편성과도 접속하지 못했던 것 같다. 김수근 타계 수년 후에 있었던 공간포럼 강의 ‘문화원형의 탐구로부터 한국학파의 제창까지’에서 그는 한국학파의 계승을 지향하지만 오히려 이중의 신화로써 이론적 한계를 노출한다[「SPACE」 266호(1989년 10월호)]. 상고의 ‘환단건축’이라는 신화에 대한 현대적 계승자로 김수근과 공간그룹을 신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듬해, 같은 포럼에서 승효상이 발표한 ‘건축가 김수근론’이 ‘멋의 공간(Hα-space)’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소박한 리얼리티를 담았다고 생각된다[「SPACE」 272호(1990년 4월호)]. 비록 이 역시도 김수근 신화에 일정 부분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1960년대의 전통논쟁으로부터 1980년대의 한국학파 구상에 이르기까지, 「SPACE」가 펼쳐 보인 논의의 장은 일관되게 한국 현대건축의 창작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기의 한국건축은 어떤 한국성을 담아야 할까? 혹은 그런 게 여전히 필요할까? 이 논의는 다음 기회로 돌리자.(글 김현섭 진행 방유경 기자)

 

 


(왼쪽 위) ‘특집: 한국현대건축: 한국성의 재발견 1 한국성의 본질과 원형’, 「SPACE」 238호(1987년 6월호), 35쪽.

(오른쪽 위) 소흥렬, ‘한국성 모색을 위한 철학적 고려’, 「SPACE」 238호, 36쪽.
(왼쪽 아래) 조영무, 공간포럼 ‘문화원형의 탐구로부터 한국학파의 제창까지’, 「SPACE」 266호(1989년 10월호), 164쪽.

(오른쪽 아래) 승효상, 공간포럼 ‘건축가 김수근론’, 「SPACE」 272호(1990년 4월호), 158쪽.

 

다음 호에는 박정현이 「SPACE」 261호(1989년 5월호)에 게재된  ‘포스트 모더니즘의 좌표인식과 과제’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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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알랭 들리센에 따르면, 1960~1980년대 「SPACE」는 ‘아카데미의 역사서술’과는 달리 ‘공식적 역사’를 ‘대중문화’와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즉 과거를 대중화하고 미학화함으로써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필진 가운데 아카데미의 역사가가 없지는 않았으나 전체 목소리의 소수에 불과했다. 또한 「SPACE」에 게재된 과거의 이미지들에는 굳이 연대가 표기될 필요가 없었고, 텍스트에는 개념의 출처가 반드시 명기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들리센은 「SPACE」가 자체의 방식에 따라 ‘기억의 장소’로 작동했음에 주목한다. 

2 이 건물은 1965년 착공했으며, 왜색시비 당시에는 일부만이 완성된 상태였다.

3 사실 본격적인 비평의 필요성은 이미 「SPACE」 3호(1967년 1월호) 좌담회에서 이구의 발언으로 적극 표출됐었다. 그러나 「SPACE」가 (혹은 한국 건축계가) 건축비평을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십수 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건축비평’을 특집으로 한 「SPACE」 205호(1984년 7월호) 및 이 특집을 다룬 「SPACE」 643호(2021년 6월호)의 ‘리-비지트 「SPACE」 6’ 참조.

4 ‘건축에 있어서 전통계승’, 「SPACE」 96호(1975년 5월호), 3~26쪽; ‘전통계승과 한국 현대건축의 반성’, 「SPACE」 131호(1978년 5월호), 21~37쪽.

5 박영호, ‘한국건축 전통론 소고’, 「SPACE」 100호(1975년 9월호), 117~123쪽. 6 소흥렬·원정수·윤승중·김수근, ‘제3회 공간대상 건축상 공개토론회 ‐ 살아있는 인간, 전통과 현대의 접점’, 「SPACE」 138호(1978년 12월호), 9~11쪽.

7 “독창적인 것을 만드는 일이 논의되면 의례히 한국적인 것을 찾고 한국적인 것은 전통에서 이끌어 내야 한다는 주장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 이러한 전통에 대한 안이한 생각이야말로 창조적인 작업을 망치는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SPACE」 4호(1967년 2월호) 특집 대담 섹션 ‘현대건축에의 불신’에서 원정수 발언(31쪽). 

8 조영무는 토론회 전체를 스케치하며 김수근의 기조논문 ‘건축창조와 문화의 매개문제’를 조명한다. 

조영무, ‘한국건축가협회 1978년도 건축토론회: 전문직으로서의 건축가’, 「SPACE」 139호(1979년 1월호), 109~116쪽. 한국건축가협회는 김수근의 것을 포함한 기조논문 네 편을 협회지인  「건축가」 1978년 11월호에 미리 출판했고, 다음 호인 1979년 1월호에 토론회 전문을 실었다.

9 A는 건축, f(H+S)는 인간과 공간의 함수, t는 시간, Hα(Heritage α)는 멋을 뜻한다. 이 수식이 토론회 현장에서는 A=f(S×T×M)+Hα로 약간 조정됐다. f(S×T×M)는 물론 공간, 시간, 인간의 함수다. 

10 조영무, ‘공간그룹의 이념체계의 시안: 시간과 공간과 인간 ... 창조의 공간’, 「SPACE」 150/151호(1979년 12월, 1980년 1월 합본호), 50~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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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PACE, 스페이스, 공간


김현섭
김현섭은 영국 셰필드대학교에서 박사 및 박사후과정으로 유럽 근대건축을 연구했고, 2008년부터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건축 역사가이자 비평가로서 한국 현대건축에 관한 비판적 역사 서술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건축수업: 서양 근대건축사』(공저, 2016), 『건축을 사유하다: 건축이론 입문』(역서, 2017), ‘DDP Controversy and the Dilemma of H-Sang Seung’s “Landscript”’(2018), ‘The Hanok Paradox: Modernity and Myth in the Revival of the Traditional Korean House’(2019) 등 다수의 단행본과 논문을 국내외에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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