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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누가 포스트모더니즘을 두려워했는가

박정현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공간)」261호(1989년 5월호)의 표지

 

 

‘포스트’는 더 이상 실천의 전략이나 비평을 위한 효율적 도구가 아니다. 한때 최신 사조의 대명사로 모던, 모더니즘, 마르크스주의, 역사, 구조주의 등 온갖 단어 앞에서 뽐내던 이 단어는 이제 당대를 나타내기에도 하나로는 힘에 부친다. 포스트를 낡아버리게 만든 자본주의의 가속력은 포스트 앞에 포스트를 하나 더 붙였다. 포스트 포스트모던. 우리가 지금 딛고 서 있는 세상은 근대든 현대든 모던이라고 하는 시대가 지났음은 물론이고 그 이후에 도달했다는 진단이 이제 낯설지 않다. 보편적 해방을 이야기한 모던, 보편이 폭력일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대적인 것과 다원적인 것에서 가치를 발견한 포스트모던, 가치의 다원성이 정체성 정치의 덫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나 그렇다고 다시 그 이전으로 회귀할 수는 없기에 포스트 포스트모던이라는 설명이다. 역사는 진자의 왕복운동이 아니라 나선형을 그리며 보편과 특수, 중앙과 주변을 선회하며 나아간다. 포스트가 창작의 열망이나 비평의 불안을 자아내지 않고 특정한 시대의 현상을 포착하는 역사적 용어로 물러난 지금,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결산을 치를 필요가 있다. 건축 잡지의 최전성기, 갖은 이론과 비평이 어느 때보다 난무하고, 텍스트가 도면 위의 선과 도형에 명령을 내리던 시절, 한국 건축은 무엇을 소화하고 무엇을 생산했는지, 또 무엇을 배척하고 은폐했는지 대차대조표를 손에 쥐어야 한다. 이 짧은 글은 이를 위한 탐문이다. 포스트의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던, 건축의 포스트가 전 지구적 포스트와 만나 보기 드문 담론의 폭발을 야기한 1989년 「SPACE(공간)」가 이번 재방문의 목적지다.

 

 

편집부, ‘포스트모더니즘의 좌표인식과 과제’, 「SPACE」 261호, 32~33쪽. 

 

 

정치경제적 변화를 지면으로 옮기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던 「SPACE」였지만, 1989년의 변동에 둔감할 수는 없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 1988년 서울올림픽, 1989년 소련 및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 같은 격변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8년 7월 「SPACE」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환경문화’라는 1년여에 걸친 야심 찬 기획을 마련한다. 이 기획은 “근대화 과정은 유감스럽게도 한국인의 자각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자생적 변화이기보다는 급변했던 한국 정세에 휩쓸린 타율적 변화였다. … 이 과정에서 전통사회가 붕괴되면서 문화 주역의 몰락과 대체, 고유문화의 말살과 왜곡, 다국적 외래문화의 범람 등의 현상이 일어났고, 그 결과 자생적, 능동적 문화 ‘수용’보다는 일방적, 피동적 문화 ‘접변’이 발생하였다”는 진단으로 시작한다.▼1 쇄신과 수용, 전통과 외래 등의 키워드에서 낯설고 새로운 것들이 고수해온 근거를 흔들고 있는 시대의 분위기와 기획이 전제하고 있는 기본적인 문제설정의 방향을 감지할 수 있다. 「SPACE」 261호(1989년 5월호)에 수록된 일곱 번째 특집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좌표인식과 과제’였다. 

 

1980년대 초반,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 건축에서 형태 요소를 차용한 건축가(예컨대 김기웅)나 최신 경향에 예민했던 학생들(예를 들자면 양남철, 최윤경, 이현수: 1982년 제1회 건축대전 대상)이 자신이 한 작업의 근거로 동원하면서 등장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산발적으로 이루어지던, 또 해외 건축의 새로운 흐름으로써 중성적·긍정적으로 여겨지던 포스트모더니즘론은, 봇물 터지듯 논의가 폭발한 1987년을 기점으로 바뀐다. 이때 건축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는 다른 포스트 담론과 마찬가지로, 포스트가 가능하기 위한 전제, 포스트 이론의 핵심과 본질이 무엇인지 따져 묻기 시작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을 말하기 위해서는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SPACE」의 포스트모더니즘 특집 역시 한국의 ‘근대화’ 과정이라는 밑그림 속에서 이루어졌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한국에서 직선적인 시간 논리(흔히 헤겔-마르크스적이라고 부르는)로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지 않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이는 없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싫든 좋든 구체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로 설정되었던 모더니즘과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니었다. 근대성은 완성되거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이었다. 1987년 각 분야별 민주화와 개혁 바람은 뚜렷한 목표를 지향했고, 이는 근대성의 논리와 더 친화력이 높았다. 모더니즘이 분명한 진영 논리를 가능케 한 반면, 상대주의적인 포스트모더니즘은 진영 자체를 흐리는 것이었다. 때문에 역사의 이행단계를 법칙으로 간주하고 유일한 중심을 믿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누구보다 포스트모더니즘에 적대적이었다. 인문사회학과는 달리 마르크스의 영향이 지배적이지는 않았지만 건축도 사정은 비슷했다. 자율적 기율로서 건축이 여전히 부재하고, 공학과 기술도 미비하다고 여겼던 많은 건축가들에게 포스트모더니즘의 수용은 단순한 형식 어휘의 문제가 아니었다. 제도, 기술, 의미 등 여러 측면에서 근대건축은 여전히 도달해야 할 가치였다.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에도 포스트모더니즘은 거의 예외 없이 모더니즘 다음에 도래하는(해야 하는) 것이었다. 수없이 리오타르를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독자들은 모더니즘 안에 포스트모더니즘이 있음을,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안의 공백이라는 것을, 모더니즘은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리오타르의 핵심 테제를 당시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희봉, ‘포스트모던 건축: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SPACE」 261호, 60~61, 64~65쪽.​​ 

 

 

「SPACE」의 특집에는 임창복, 손세관, 도창환, 이희봉, 이일훈, 박길룡, 이용흠, 김종성 등이 글을 기고했다. 대단히 화려한 필진 구성이다. 한국성과 포스트모더니즘을 빼고 나면 이들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는 주제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만큼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두를 호출해내는 강력한 소환장이자, 답변자의 인식과 정체성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였다. 필자들 가운데 이희봉이 가장 포스트모더니즘에 적대적이었다. “포스트모던의 역사주의나 신토착주의에서처럼 형태에서 모티브를 이리저리 뜯어 붙여서 어떤 느낌의 유발을 꾀할 것이 아니라, 속 내용에서 원리를 캐내 이론화해야 할 것이다. … 더 이상 포스트모던은 잡지에서 다루지 말자.”▼2 지나치게 단호한 입장이지만, 이런 태도가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니었다. 누구보다 새로운 기술과 개방적 태도를 옹호한 유걸조차 “말초적이고 당치도 않아 보이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지적이고 질서 있는 모더니즘을 배경으로 할 때에만 공명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극복하고자 했던 차가웁고 합리적이며 절제적인 ‘현대’라는 것 없이는, 이 반(反)현대는 공허한 미친 짓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3 김종성도 모던으로 되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현대건축의 제일 중요한 구성요소가 ‘공간’이며 역사적으로 건축의 영역이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었겠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다시 말해서 순수한 건축적 가치관으로 돌아가서 모더니즘을 진화시키는 것이 건축가들의 사명이다.”▼4 포스트모더니즘이 건축의 외피에서 이루어지는 언어의 코딩과 디코딩에 관한 것인데 반해, 건축의 본질인 ‘공간’을 다루는 모더니즘에 천착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물론 모든 이들이 포스트를 잠시 밀어두고 모더니즘을 더 움켜쥐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다. 소수이긴 했지만 다른 목소리도 있었다. 도창환은 “이 ‘이즘’은 이 시대의 새로운 개념의 발견이며 발명인 것이다. 이것은 한국적인 동시에 동양적이다”라고 말하며 포스트를 환영했다.▼5 「SPACE」를 비롯해 여러 매체에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해 입장을 개진한 목록은 꽤 길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 모두 점검하는 것은 이 지면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는 일이다. 단순화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개별적인 견해 차이는 있었지만 1990년대 초로 흘러가면서 한국 건축의 담론은 재발견된 모더니즘을 재편하기에 이른다.▼6 이 과정 속에서 건축의 포스트모더니즘은 전통 건축의 요소를 차용한 건축을 지칭하는, 좁고 분명한 의미로 축소된다. 모더니즘 이후의 사상사적·정치경제적 변동을 포괄하는 광의의 포스트모더니즘과의 연결 고리는 점차 흐려졌다. 포스트를 주변화하면서 재편된 헤게모니, 이와 함께 단조롭게 유지되는 담론 구도는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재해석이 비단 역사적 관심에 그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결산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종성,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적 수용과 건축가의 역할’, 「SPACE」 261호, 78~79쪽. 

 

 

다음 호에는 서재원이 「SPACE」 79호(1973년 10월호)에 게재된 조성렬의 ‘한남동 송씨댁’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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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편집부, 장기기획, 「한국의 근대화 과정과 환경문화」를 시작하며’, 「SPACE」 251호(1988년 7월호), 89쪽.

2 이희봉, ‘포스트모던 건축: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SPACE」 261호(1989년 5월호), 65쪽.

3 유걸, ‘포스트모더니즘 소고’, 「플러스」, 1988년 6월호, 97쪽.

4 김종성,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판적 수용과 건축가의 역할’, 「SPACE」 261호, 79쪽.

5 도창환, ‘변화하는 세계관과 포스트모더니즘’, 「SPACE」 261호, 53쪽.

6 1990년대 초 건축 담론의 헤게모니를 확보해나간 4.3그룹은 구성원들의 입장 차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더니즘의 재발견으로 귀결되어 나갔다. 이에 대해서는, 박정현, ‘광장에서 규방으로: 1990년대 초의 분기점’, 『종이와 콘크리트』, 국립현대미술관, 2017, 50~57쪽 참조.​ 

 


▲ SPACE, 스페이스, 공간


박정현
박정현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를 비롯해, 『전환기의 한국건축과 4・3그룹』(이하 공저), 『아키토피아의 실험』,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 문화』 등을 썼다.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건축의 고전적 언어』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201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을 비롯해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 등의 전시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도서출판 마티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건축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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