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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비평의 불안

박정현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 205(1984 7월호)의 표지

 

「SPACE(공간)」 205호(1984년 7월호)는 특집으로 ‘건축비평’을 꾸렸다. 1세대 건축가이자 비평가인 원로 송민구(1920~2010)의 글 ‘건축비평에 대한 기대’가 첫 꼭지로 섹션을 연다. 송민구는 1980년대에 널리 회자된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론, 다의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포스트모더니즘 등을 언급하며, “합리주의에 젖은 우리들은 그것을 선뜻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상황을 지적한다. 당대의 흐름을 재빠르게 따라가던 송민구는 결론에 이르러 자신의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비평의 가치판단의 보편적인 근거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그는 “비평의 가치판단은 대전제를 적어도 민족문화 창달이라는 점에 두어야 한다”고 단언한다.▼1

이 특집은 1년 전 진행된 독립기념관 설계공모의 여파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다. 1960년대 중후반 국립부여박물관과 국립종합박물관(현 국립민속박물관)을 시작으로 1970년대 지방의 거점 국립박물관과 세종문화회관, 국립극장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전통·한국성 문제가 정리되기는커녕, 더 퇴행적인 방식 ‐ 발주처의 원안, 거대한 기와지붕 ‐ 으로 귀결되자 이를 ‘비평의 부재’라는 문제로 재점검하는 기획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송민구의 진단은 논의를 새롭게 설정하고 다른 물꼬를 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지금도 때마다 불거지는 한국성 논의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한국에서 현대건축의 재현과 표상이라는 복잡한 문제를 훨씬 더 복잡하고 첨예한 ‘민족’으로 해결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송민구는 신진 필자들의 면면에 무게를 더해주었지만 1980년대 비평이 처한 상황을 짚어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사실 이 특집을 이끌고 있는 목소리는 송민구의 것이 아니었다. 약 1년 전인 1983년 3월 ‘건축사 및 비평의 과학성 문제에 대한 고찰: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2에서 역사결정론적인 비평을 날카롭게 추궁하며 비평가로서의 일성을 고한, 김경수(1951~)가 이 일련의 특집 기사의 에디터였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김경수는 건축 비평의 일신을 꾀하고자 했다. 그는 “우리 건축계에 비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은 긍정적인 것이기는 하나 그 자체로서 생산적인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며 비평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이들을 논박하며 특집을 소개한다.▼3 비평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는 비평이 없었기 때문이며, 비평의 근거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았다는 진단이다. 이는 두 달 뒤 1984년 9월 건축전문지를 표방하며 창간된 「건축과환경」의 주간을 맡아 본격적인 비평 활동을 펼치는 김경수의 행보를 예견하는 것이기도 했다. 당시 지령이 이미 205호에 달하는 「SPACE」에 글을 실으며, “변변한 건축잡지 하나” 제대로 없는 현실이라고 말하는 30대 비평가의 탄생을 선언하는 글이었다.▼4​

 


 


김경수의특집 건축비평의 발문(SPACE 205, 53)과 부속 기사들의 시작 페이지송민구의건축비평에 대한 기대’(54), 강혁의건축비평의 방법과 유형’(58), 정만영의찰스 젠크스의 비평이론’(62), 안성호의로저 스크루의 건축미학’(66)과 이상헌의만프레도 타푸리의 건축론’(69), 김경수의한국건축비평의 논리와 당위’(72~73).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김경수보다 더 젊은 필진들이 기존 비평을 점검하거나 새로운 비평론을 소개한 뒤, 다시 김경수의 글로 해당 특집은 마무리된다. 강혁은 건축 비평의 종류와 방법론을 분류해 소개하는 ‘건축 비평의 방법과 유형’을 기고했고, 안성호는 ‘로저 스크루톤의 건축미학’을, 정만영은 ‘찰스 젠크스의 비평이론’을, 이상헌은 ‘만프레도 타푸리의 건축론’을 소개하는 글을 각각 실었다. 필진의 면면과 소개된 이론과 다루는 방식 모두 징후적이다. 강혁, 정만영, 이상헌 등 지금까지 건축 역사 및 이론 분야의 대표적인 필진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이 잡지의 지면에 등장하는 최초의 기점 가운데 하나로 비평의 세대교체를 알렸다. 다른 한편으로 당시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으나 미국에서 유행하는 이론을 먼저 접하고 국내에 요약, 소개하는 관행이 시작되는 기점이기도 했다.▼5 실제로 이 특집에서 소개한 이론을 한국에서 찾아보는 것은 쉽지 않았다. 로저 스크루톤의 『건축미학』은 이듬해인 1985년 김경수의 번역으로 출간되었으나, 찰스 젠크스의 책은 『현대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언어』로 1987년에, 만프레도 타푸리의 『건축과 유토피아』는 1991년에야 한국어로 번역되었다.▼6

예상 독자들이 아직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최신 이론을 빠르게, 그래서 대개는 충분히 소화하지 못한 채, 소개하는 일은 이후 건축 잡지의 주요 역할 중 하나였고, 건축 잡지는 최신 이론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무대였다. 이 과정에서 건축계 독자들은 포스트모더니즘, 해체주의, 자크 데리다, 질 들뢰즈 등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접하는 즐거움과 당혹감을 느낄 수 있었다. 비평과 이론이 최신 담론의 독해 주위에서 표류하며 공회전하는 현상, 1980년대 중반 이후 비평과 이론에 대한 갈급은 불안감의 표출이었다. 건축 비평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불안감, 판단의 근거가 비교적 명확했던(명확했다고 믿고 넘어갈 수 있었던) 모더니즘의 교의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다는 것은 직감하지만 안심하고 따를 수 있는 대체재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 불안감의 반영이었다. 최신 이론을 누구보다 빨리 소화하고자 하는 욕망과 소화불량, 그 속에서 새롭고도 확고한 판단 근거를 찾으려는 시도 등이 뒤엉켜 있었다. 이 불안감 자체, 판단의 최종 심급(審級)이 사라진 것이 시대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불안감과 암중모색의 징후는 당시 한국 건축계의 세대교체와도 맞물려 있다. 1984년 7월, 「SPACE」 205호의 특집을 직접적으로 촉발한 독립기념관 설계공모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광복 후 최대의 국가 문화시설 프로젝트였던 독립기념관은 일제식민지기에 교육받은 이들을 설계공모에 응모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김중업과 김수근은 자연스럽게 배제되었다. 대신 이들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6개월 전 「SPACE」 199호(1984년 1월호)에 공개된 독립기념관 설계공모 심사 채점표에 따르면 1, 2차 및 최종 심사에서 김중업과 김수근은 김기웅의 당선안에 좀처럼 점수를 주지 않았다. 김중업이 6명 가운데 3명을 선택하는 1차 투표에서 한 차례 김기웅을 꼽았을 뿐이다.▼7 김기웅의 당선은 윤승중과 동년배였던 김석철과 김원의 지지 때문에 가능했다. 두 거장은 더 현대적인 설계안을 지지한 반면, 그 후속 세대가 노골적으로 전통 양식을 재연한 안을 선택했던 것이다.​


 

‘독립기념관 현상설계’, SPACE 199(1984 1월호), 53~54.

 

 

모더니즘에 대한 회의, 세대교체의 여파, 되풀이되는 전통 재연 논란 속에서 김경수는 비평의 토대를 되묻고자 했다. 특집의 마지막 글 ‘한국 건축비평의 논리와 당위’에서 그는 정인국, 윤일주, 김홍식, 김중업, 엄덕문 등의 건축가와 역사학자들이 남긴 전통 논쟁 관련 글을 비평적 언어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일종의 메타 비평을 시도한다. 흔치 않은 비평에 대한 비평의 결론은 다소 평이하다. 전통 논쟁을 일거에 끝낼 수 있는 논리나 방법이 존재할 수 없음을 모르지 않았던 김경수는 한국 전통 건축에 대한 지식이 더 축적되고 비평의 언어가 더 정교해져야 하며, 교의적 주장보다 근거를 따져 묻는 분석적 글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제안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정작 이 글에서는 왜 당시 40대 젊은 건축가들이 다시 전통 양식을 모방하는 기념비를 지지했는지, 지지할 수밖에 없었는지 묻는 일이 빠져 있었다.

37년이라는 시차에도 불구하고 이 글들은 현재에도 묘한 익숙함을 자아낸다. 등장인물, 대상이 되는 건축물, 도구가 되는 서구 이론 등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평이 작동하는 방식과 비평을 둘러싼 불안은 되풀이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비평의 판단 기준은 여러 이론의 교체 속에서 계속해서 유예되었고, 비평이 “작가에게는 자기를 재정립하게 되는 창조적 계기이며 평자에게는 건축문화의 역사에 가담하는 기회”▼8가 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37년 전보다 더 다원적인 이론적 상황, 건축 생산방식과 잡지 및 매체의 변화 속에서 비평의 가능성은 더 위축되어 있다. 그러나 「SPACE」의 아카이브에 쌓인 비평의 더미 속에서 어쩌면 비평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바꾸어 말하면 개별 건축물 리뷰에 연연하지 않는 비평, 비평과 담론 자체의 비평으로서의 역사 말이다. 비평이 미래를 밝히지는 못해도 과거를 구원할 수는 있기 때문이다.​ (글 박정현 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다음 호에는 서재원이 「SPACE」 58호(1971년 9월호)에 게재된 ‘박대인의 집’을 다룬다.

 

 

 

1. 송민구, ‘건축비평에 대한 기대’, 「SPACE(공간)」 205호(1984년 7월호), 57쪽.

2. 「SPACE」 189호(1983년 3월호), 81~87쪽.

3. 김경수, ‘특집 건축비평’, 「SPACE」 205호, 53쪽.

4. 위의 글.

5. 「SPACE」는 199호(1984년 1월호)부터 ‘근대건축문헌해제’라는 일련의 기사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강혁과 정만영은 이 기사의 필진이기도 했다.

6. 해당 원서의 초판 발행은 각각 다음과 같다. Roger Scruton, The Aesthetics of Architectur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9; Charles Jencks, Modern Movements in Architecture, NY: Anchor Press, 1973; Manfredo Tafuri, Progetto e utopia: Architettura e sviluppo capitalistico, Bari; Laterza, 1973. 타푸리 책의 영어 번역서는 다음과 같다. Architecture and Utopia: Design and Capitalist Development, trans. Barbara Luigia La Penta. Cambridge, MA: MIT Press, 1976.

7. ‘독립기념관 현상설계’, 「SPACE」 199호, 53쪽.

8. 김경수, 앞의 글.

 


▲ SPACE, 스페이스, 공간


박정현
박정현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를 비롯해, 『전환기의 한국건축과 4・3그룹』(이하 공저), 『아키토피아의 실험』,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 문화』 등을 썼다.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건축의 고전적 언어』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201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을 비롯해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 등의 전시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도서출판 마티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건축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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