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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건축, 도시, 잡지가 한 덩어리이던 시절의 흔적

박정현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 11호(1967년 9월호) ▶ e-매거진보기

 

 

1967년 세계는 비틀스의 ‘페퍼 상사’가 뿜어내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에 빠져 있었고, 서울은 중장비의 기계음과 땅을 파헤치는 공사 소음에 취해 있었다(페퍼 상사는 뒤늦게 10년 뒤 오아시스 라이선스 음반으로 발매된다). 5월 3일 6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과반 이상의 득표로 당선되었고, 산업구조 근대화와 자립경제 확립을 목표로 내건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시작되던 때였다. 이에 호응하듯, 9월 발간된 「SPACE(공간)」 11호(1967년 9월호)는 ‘도시계획’을 특집으로 삼았다. 창간 이후 건축가와 특정 유형의 건축물 등에 초점을 맞춰온 「SPACE」의 지면과 비교하면 이례적이었다. 같은 해 4월에는 ‘박길룡 추모’ 특집이 꾸려졌고, 5월에는 ‘정부종합청사 설계경기’가, 6월에는 ‘문화센타’가, 7월에는 ‘일본의 현대건축’이, 8월에는 ‘르 꼴뷰제’가 특집 기사였다. 도시계획에 따라 생겨난 여러 건축 프로젝트가 아니라 도시계획 자체는 건축 전문 잡지의 일차적 관심사는 아니었다. 이는 시야를 1970~1980년대로 확장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집 ‘서울·1967’의 시작 페이지, 「SPACE」 11호, 5쪽.

 

특집은 ‘서울·1967’이라는 제목 아래 묶은 사진으로 시작한다. 세종로, 서울시청, 명동, 을지로 일대, 시민회관과 조흥은행 같은 고층 빌딩, 한창 공사 중인 비계가 설치된 현장, 유네스코 빌딩 등의 커튼월과 오양빌딩의 파사드, 타워호텔, 공사판인지 폐허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혼란스러운 판잣집, 신세계백화점 앞에 설치된 육교와 육교를 가득 채운 흰옷 입은 시민들, 공사 중이거나 완공된 고가도로, 공사 전후의 삼일로와 양화대교, 만리동 달동네, 한옥밀집 지역과 홍은동 국민주택단지 등 다양한 서울의 현장을 전했다. 사진의 대상뿐 아니라 사진의 기법 역시 다채로웠다. 헬기 동원이 쉽지 않았던 시절 예외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서울 전역의 항공사진, 건물의 높이를 강조하는 시점, 보행자의 눈높이에서 포착한 스냅, 건물을 주 피사체가 아니라 도시환경을 고발하는 듯한 르포르타주의 시선, 공사 전후를 대조한 배치, 풍부한 계조와 깊은 심도 등. 이 사진들은 1967년 서울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하나하나 설명하기보다는 감각적으로 제시한다. 그래서일까, 이 사진에는 캡션이나 크레디트가 전무하다. 누가 언제 어디를 찍었는지 ​정보를 주지 않는다. 당시 독자들은 쉽게 그곳이 어딘지 알았겠지만 말이다. 이 사진들은 서울이 변하고 있고, 더 변해야 한다는 것을 전했다. 

 

「SPACE」 11호, 6~7, 16~21쪽. 

이어 공사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은 채 오른팔을 치켜들고 현장을 가리키는 김현옥 서울시장의 사진이 등장한다. 박정희, 김종필, 장동운, 김현옥으로 이어지는, 저 멀리 (공사장이 선사할) 미래를 지시하는 이 도상은 경제개발 신화를 진두지휘하는 지도자라는 3공화국의 대표적인 프로파간다 이미지였다(이런 사진들을 모으면 전시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과 함께 김현옥은 ‘새로운 도시환경의 탄생을 위하여’라는 선언적인 글을 실었다. 서울시장이 건축 전문 잡지에 인터뷰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직접 기고한 일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1년 전 출간된 이호철의 소설 『서울은 만원이다』는 당시 서울 상황을 압축하는 문장이 되어 있었다. 김현옥은 여기에 반발했다. “그러나 흔히들 말하듯이 「서울은 만원」이라고 포기해버릴 수는 없다. 아니 그보다도 서울은 얼마든지 숨구멍을 뚫을 수 있고 또 뚫릴 여지도 수다(數多)하다.”▼1 도시개발을 전쟁 상황에 빗대곤 한 수송장교 출신 시장은 ‘돌격’해야 할 곳으로 ‘기성 시가지 재개발’과 ‘미개발지 개발’을 잡았다. 서울의 시계를 확장하고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통해 주변의 미개발지를 시가지로 편입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이어져온 수법이었다. 1967년 새롭게 제기된 방법은 기성 시가지 재개발, 즉 도심재개발이었고, 이를 위한 주요 수단은 서울의 고층화와 입체화였다. 이 중 먼저 염두에 둔 것은 입체화다. “내가 할 일은 우선 기성 시가지의 재개발로서 폭증하는 교통의 번잡을 방지키 위해 사람과 차량의 분리를 서두르려고 생각한다.”▼2 육교와 지하도, 고가도로 등은 고층 빌딩이 들어서기 전, 발전하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이었다.▼3 그리고 두 달 뒤 준공하는 세운상가에서 보차분리와 공중 보행 데크는 수직으로 도시의 면이 확장하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는 실례였다. 1965년 아시아재단의 후원으로 설립된 건설부 도시계획과 소속의 ‘주택, 도시 및 지역 계획연구실’(HURPI), 소위 HURPI의 주요 프로젝트에서도 보차분리는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4 현실적인 이유와 정서적인 측면에서 무리였던 주거의고층화보다 도로의 입체화가 상징적인 면에서나 실제 효과 면에서 더 유효했다.

 

 

김현옥 시장의 글 ‘새로운 도시환경의 탄생을 위하여’와 차일석 부시장과의 ‘대화’, 「SPACE」 11호, 28~31쪽.

 

이어지는 기사, 차일석 제2부시장과의 ‘대화’는 김현옥과 미묘한 입장 차이를 드러낸다. 도시행정학을 전공한 차일석은 당시 서울시의 도시계획을 전담하고 있었다. 차일석은 서울시의 기본계획을 수립한 도시계획위원회에 도시경제학과 도시사회학을 전공한 ‘행정직’ 위원이 충원되었음을 강조했다. 기존에는 건축과 토목을 전공한 ‘기술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어 아파트만 짓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 어린아이가 이 아파트 5층에서 태어나 자라났다고 가정했을 때, 이 아이가 얼마만큼 사물에 대한 정상적인 개념을 가진 건강한 아이가 될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4년 전 쿠데타 세력이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격전에 가깝게 밀어붙인 6층짜리 마포아파트가 군사정권 최대 치적 중 하나로 홍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층 아파트에 대한 우려는 컸다. 이는 정동, 이화동, 동대문, 홍제동, 정릉 등 서울 일대에서 건립되고 있던 아파트 대다수가 서민 아파트였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박철수에 따르면 “도시의 인구집중과 심각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모든 것에 우선해 토지 이용 효율화와 저렴한 주택 공급에 치우쳤고 거주성 확보는 뒷전이었다.”▼5 대한주택공사가 공급하고 있는 서민 아파트에 대해 서울시 부시장이 이곳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정상으로 자랄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하는 장면에서 당시 지어지는 아파트의 부실함을 엿볼 수 있다. 2년여 뒤 마포구에 위치한 와우지구 시민아파트가 준공 4개월 만에 붕괴해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김현옥은 서울시장에서 물러나게 된다. 차일석의 우려가 다른 방식으로 현실로 나타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행정 관료였던 차일석은 현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미개발지역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측량을 통하여 구획정리화시키고 개발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단기간 내에 성과를 극적으로 과시할 필요가 있는 정치인과는 다른 접근이었다. 

서울 시장과 부시장의 목소리를 전한 뒤 특집 기사는 서울시 도시계획과가 제공한 ‘서울 도시계획의 현황과 전망’, 서울대학교 윤정섭의 ‘메트로포리탄적인 도시형성과 서울 도시기본계획의 방향’을 싣는다. 구체적인 통계자료와 서울시의 계획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두 글 모두 건축 잡지에 어울리지 않는다. 뒤이어 윤승중, 유걸, 김석철의 ‘서울시 불량지구 재개발의 일례: 종묘-남산, 3가-4가지구’가 소개된다. 이 글은 같은 해 1월 서울시에 김수근도시건축연구소의 이름으로 제출된 「원남로-퇴계로, 영천 지구재개발을 위한 조사 및 기본계획」의 일부다. 이미 건설 중이던 세운상가 동서 일대, 종묘에서 남산에 이르는 지구 재개발계획과 불량 주거 밀집 지역이었던 서대문구 영천동 재개발계획이 함께 수록된 보고서였다. 보고서의 담당자로 윤승중, 유걸, 김석철 이외에 박성규, 강태석, 전상백, 이창남, 정창수, 김보국의 이름이 올라 있었다. 지금까지 재개발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세운상가 주변 블록은 세운상가가 공사에 들어간 1966년에 이미 재개발계획이 수립되고 있었다. 북으로 종묘, 남으로는 남산, 서로는 종로~을지로 3가, 동으로는 종로~을지로 4가에 이르는 거대한 블록이었다. 김현옥은 앞의 글에서 이 계획을 의식해 종묘의 담장을 헐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서울특별시, 「원남로-퇴계로, 영천 지구재개발을 위한 조사 및 기본계획」, 1967. 1.

 

 

특집의 마지막은 ‘지역(도시) 개발계획 노오트’로 저자는 타리크 카림(Tarik Carim)이었다. 카림은 HURPI의 고문이었다. 2년 뒤 1969년 정부는 UN과 함께 프랑스의 기술 용역회사 오탐 메트라(OTAM-METRA)에 국토종합개발10개년 계획을 의뢰하는데, 카림은 UN 측 담당관이었다.▼6 기고문의 내용은 지역계획에 대한 개념과 계획 과정 등에 대한 일반론이었다. 조사와 연구에서 실행과 건설에 이르는 체계적인 도시계획이 드물었던 한국 정치가와 계획가에게 서구 전문가가 총괄적인 소개를 하는 식이었다.

 

 

「SPACE」 11호, 32~52쪽.

 

1967년 9월호 「SPACE」 도시계획 특집은 관료와 공무원의 글로 구성되어 있었다. 윤승중, 유걸, 김석철 등 낯익은 이름이 보이지만, 이들 역시 국영기업인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와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특집은 「SPACE」, 서울시(산하 도시계획위원회), 건설부(산하 HURPI),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인적 네트워크가 뒤엉켜 있던 시절의 증언이다. 이들 사이의 길항관계를 추적하고, 여기서 건축, 도시계획, 저널리즘 등의 갈래가 어떻게 분기해나갔는지 연구하는 이라면 이 특집을 수시로 펼쳐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는 아직 이 관계를 충분히 알지 못한다. (글 박정현 / 진행 김정은 편집장)

 

다음 호에는 박정현이 「SPACE」 216호(1985년 6월호)에 게재된 ‘모더니즘의 진화와 김종성’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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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현옥, ‘새로운 도시환경의 탄생을 위하여’, 「SPACE(공간)」 11호(1967년 9월호), 28쪽.

2 위의 글, 29쪽.

3 장옥연, ‘김현옥 시장과 시정 1: 1966~1967’, 『돌격 건설!: 김현옥 시장의 서울 1: 1966~1967』,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2012, 270쪽.

4 HURPI와 이 조직을 이끈 오스왈드 네글러에 관해서는 이현제, 「1960년대 비판적 디자인론과 한국 도시 설계의 출현: 주택, 도시 및 지역 계획연구소(HURPI)의 작업 방식에 대한 오스왈드 네글러의 영향 분석」(서울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18)을 참조하라.

5 박철수, 『한국주택 유전자2』 , 마티, 2021, 347쪽.

6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50년사 편찬위원회,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50년사』 , 대한국토도시계획학회, 2009, 169쪽.

 


▲ SPACE, 스페이스, 공간


박정현
박정현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건축은 무엇을 했는가?』를 비롯해, 『전환기의 한국건축과 4.3그룹』(이하 공저), 『아키토피아의 실험』, 『중산층 시대의 디자인 문화』 등을 썼다. 『포트폴리오와 다이어그램』, 『건축의 고전적 언어』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2018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을 비롯해 <종이와 콘크리트: 한국 현대건축 운동 1987~1997> 등의 전시 기획에 참여했다. 현재 도서출판 마티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건축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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