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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 안병의

서재원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 31호(1969년 6월호)의 표지 

단독주택은 시대의 정치적, 사회적 프로파간다에 비교적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는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한 건축가의 솔직하고 내밀한 창작 의지와 집주인의 사회적 통념이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응축되어 나타나는 매우 철학적인 이데올로기의 산물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방점을 찍은 건물이 빌라 사보아(1931)와 바나 벤추리 하우스(1964)라는 점을 생각하면 한 시대의 단면을 주택 작업을 통해 살펴보는 것은 무엇보다도 본질적인 접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연유로 가장 국가적인 건축이 창궐하던 박정희 정권 시기 내에서 건축가의 주관적 개성이 강하게 엿보이는 건축가 안병의▼1의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SPACE(공간)」 31호(1969년 6월호) 게재]을 이번 원고의 대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필자의 주관적 취향이 완전히 배제될 수는 없었음을 밝혀두는 바이다. 이 주택은 당시 특집으로 다뤄진 20채의 주택 중 하나인데, 단 한 면의 지면밖에 할애되지 않아 관심 깊게 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제목 그대로 우산 형태의 지붕과 상당히 모던해 보이는 평면 형식이 미묘하게 어긋나며 호기심을 끌고 있기 때문이다.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이라니, 참 순박하면서도 대범한 듯한 이 주택은 특집에 같이 실린 여타의 주택들과도 이름부터 확연히 다른데, 보통은 ‘K씨댁’, ‘홍회장 댁’ 같은 집주인의 성을 딴 것이 대다수인 데 반해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은 그 이름에서부터 건축 자체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며 작가 의지를 부각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짤막한 설계소묘는 건축가의 인간미가 넘쳐흐르고 설계 당시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게 되어 미소까지 지어지는 정감 어린 집이다.​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 「SPACE」 31호, 36쪽. 

 

이 집은 13×13m(44×44ft) 남짓의 정방형 지붕에 35평 면적을 가졌는데, 당시 「SPACE」에 실린 다른 단독주택들이 평균 80평 정도인 것으로 미루어볼 때 비교적 작은 집이다. 건축가가 평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서민주택 규모로 정한 것도 같지만 동시에 우산 구조를 적용하려다 보니 규모가 제한되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2 애석하게도 이 주택은 실현되지 못한 계획안일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준공 사진이 당해 호뿐만 아니라 추후에도 게재되지 않은 점, 평면도와 지붕 스케치, 그리고 스터디 중에 찍은 듯한 모형 사진이 서로 각기 미묘하게 다른 점은 그러한 추측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에 의하면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는 서울에 ‘문화식 주택’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불란서식 주택’이 유행하던 시기이고, 이미 아파트가 정부 주도하에 대량으로 공급되던 때였는데 오히려 그러한 시대 상황이 건축가 안병의로 하여금 이 작은 집을 설계하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3 당시 흥미로운 것 중 하나는 서민들을 대상으로 한 주택 취향 조사인데 대다수가 구운 기와, 시멘트 기와, 석면 슬레이트 등의 지붕 재료에 경사 지붕을 선호한다고 밝힌 점▼4은 이러한 지붕 스타일이 이미 부(富)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시기에 「SPACE」에 소개된 주택들에서 연와조 내력벽 구조에 목조 트러스로 경사 지붕을 얹히고 기와로 덮은 집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주택의 특징은 벽식 구조의 특성상 지붕의 형태가 벽체 모듈에 종속되어 나타나므로 보통은 평면과 지붕 모양이 일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간혹 멋을 좀 낸 경우 약간의 분절과 통합의 기교를 더한 변형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불란서식 주택’이 유행을 휩쓸던 때 소개된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은 주류에서 벗어난 별종임에는 틀림이 없어 보인다. 당시 지면에 실린 ‘지붕틀 모양’이라 적힌 건축가의 스케치를 보면 부재들을 수학적으로 배치한 기하학적 완결성이 돋보인다. 지붕의 중심을 들어올린 우산대에 해당하는 기둥에 우산살의 역할을 하는 여덟 개의 구조 부재를 뻗어내고 그 사이가 점점 벌어지는 틈을 보강하면서 메운 형식인 듯하다. 지붕 끝단에서 두 번째 수평으로 사각형을 이루는 부재(a)는 지붕을 받치는 들보 개념의 부재로 보이는데 그 아래의 내외부를 경계 짓는 벽체가 지붕이 쓰러지려고 하는 것에 대한 보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우산을 폈을 때 안쪽에서 보이는 우산살을 받치는 사선부재(b)의 경우 우산살을 직접 받칠 것인가 아니면 들보 형식의 수평부재(c)를 통해 받칠 것인가의 문제가 애매하다. 두 가지 방법 모두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들보 방식으로 부재가 지나가게 될 경우 내부에서 우산살에 해당하는 부재들이 조각조각 끊어져 보여 공간을 경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우산’ 아래 있다는 직관적 느낌이 덜 할 것이다. 게다가 사선부재의 완만한 각도로 인해 힘의 흐름에 낭비가 있어 보인다는 점에서 우산살을 직접 지지하는 방식을 택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스터디 모형으로 보이는 사진에는 수평부재 위에 지붕 사선부재들이 올라타 있어 이 또한 확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기둥과 가장 가까운 수평부재(d)와 ‘지붕틀 모양’ 스케치와는 다르게 추가된 수평부재들이 수직하중에 대한 구조적 역할이 없는 점, 건축가가 유독 우산의 공간감을 강조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우산 구조를 직설적으로 차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볼 뿐이다.(그림1)  

 

그림1. 지붕틀 구조 개념(작도: 선우욱) / 그림2. 지붕과 평면의 관계(작도: 선우욱)

그림3. 기둥을 제거한 평면 형식(작도: 선우욱) / 그림4. 실에 따른 처마 깊이의 변화(작도: 선우욱)

 

 

그림5.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 엑소노메트릭(작도: 선우욱)

그림6.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 단면도(작도: 서재원)

 

 

이 주택을 보다 보면 거의 동시대를 산 일본의 건축가 가즈오 시노하라(篠原一男, 1925~2006)가 1961년에 완공한 ‘から傘の家(Umbrella House)’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5 8년여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같은 우산을 모티브로 한 두 건축가의 작업을 통해 건축가 안병의를 보다 가깝게 읽어낼 수 있다면 의미 있는 과정이리라 생각한다. 두 주택 모두 가운데 모임지붕을 가진 정사각형의 지붕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유사하지만 안병의의 것보다 가즈오 시노하라의 것은 10×10m로 약간 더 작고,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지붕을 받치는 방식이다.(그림7, 8) 쉽게 말해 안병의의 주택은 우산대가 있는 반면 시노하라의 주택은 우산대, 즉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없다. 그렇다고 기둥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기둥은 평면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으며 허공에 십자형으로 지나는 들보를 교차점에서 지지할 뿐이다. 즉 ‘Umbrella House’가 일본 전통 종이우산(から傘, karakasa)의 구조를 텍스트적으로 해체, 차용하면서 일본성을 획득하고 있다면,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은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콘텍스트적으로 재현하는 실존적 태도에 방점이 있다고 봐야 한다.▼6 

 

그림7. ‘Umbrella House’ 지붕틀 평면도(작도: 서재원) 

 

그림8. ‘Umbrella House’ 1층 평면도(작도: 서재원)

이는 안병의가 설계소묘에 적은 대로 “비 오는 거리에 몸을 의지하는 단 하나의 공간”인 우산을 집 안에 그대로 옮겨놓고자 한 문학적 센티멘털의 ‘정다움’에서 기인한 것이다. 대칭의 완결적 지붕 아래 평면의 조직 역시 일본의 건축가와 한국의 건축가는 각기 다른 구성을 취했는데 ‘Umbrella House’는 완전한 정사각형 볼륨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은 불완전한 비대칭의 볼륨을 취하고 있다.(그림4) 특히 안병의의 주택은 평면에서 기둥을 지운다면 쉽게 지붕 모양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붕 형식과 평면이 어긋나 있는데,(그림2, 3) 필자인 나는 이러한 태도가 얽매이기 싫어하는 전형적인 한국인의 정신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닫힌 결말보다는 열린 결말을 선호하고, 소위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은 정(情)이 없다”고 하던 우리의 모습 말이다. 안병의가 1996년에 낸 에세이 집 『달팽이는 왜 집을……』에는 ‘낙천적으로 삽시다’, ‘미(美)보다는 멋을’ 같은 제목이 붙은 장(章)이 등장하는데 이로써 많은 상황들이 이해가 간다. 엄격한 지붕의 형식을 만들고 스스로 부정하는 듯한 평면을 의도적으로 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현재의 포스트모던적 미학으로 보면 오히려 상당히 흥미롭다. 다만 그것이 의도된 것이라면 ‘디자인’으로 불리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미숙함으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은 지금 이 주택을 접하는 우리들에게 어려운 숙제로 남는다. 자세히 보면 이 집에는 르 코르뷔지에는 물론, 미스 반 데어 로에뿐 아니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알바 알토까지 보인다. 이 주택을 설계할 때 그의 나이 43세, 한창 ‘젊은 건축가’로 자신의 건축을 찾기 위해 새벽 세 시에 제도판 앞에 앉아 담뱃불을 붙이는 그의 모습에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필자가 태어나기도 전인 이름도 모르던 선배 건축가의 작업을 1969년 「SPACE」에 실린 한 페이지의 자료만을 가지고 나름의 관찰과 조사를 통해 가정하고 추론해 보면서 돌아가신 분께 행여나 실례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다. 여기 서술된 내용이 사실인지 소설인지는 아마 돌아가신 안병의 건축가만이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어 이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지금까지 우리의 근현대 건축의 역사를 너무 등한시하고 납작하게만 치부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물음에서였다. 어느 날 학생들이 주택 설계 케이스 스터디로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을 들고 오는 날이 온다면 이 글이 더 없이 의미 있는 기획으로 남을 듯하다. (글 서재원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 / 진행 김정은 편집장)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의 거실에서 바라본 식사 공간의 모습. 1:30 모형(제작: 전준호, 사진: 서재원)

 

 

 

‘우산을 주제로 한 주택’의 식사 공간에서 바라본 거실의 모습. 1:30 모형(제작: 전준호, 사진: 서재원) 


 

다음 호에는 조현정이 「SPACE」 93호(1975년 2월호)에 게재된 ‘건축, 조각, 시 그리고 민중’을 다룬다.​

 

 

 

1. 건축가 안병의는 1927년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태어나 2005년에 사망하였다. 1952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교통부 시설국, 김중업건축연구소, 대한주택공사에서 근무하였고, 네덜란드에서 건축학을 배운 후 귀국하여 향건축을 차리고 약 50동의 주택을 설계하였다. 1975년 미국 LA설계사무소에 근무, 3년 후 귀국하여 다시 향건축을 열고 하얏트 리젠시 부산 등을 설계하였다. 그 후 김중업건축연구소 대표이사를 지낸 것으로 확인되나 정확한 임기는 알 수 없다. 안병의, 『달팽이는 왜 집을……』, 정우사, 1996. 

2. 안병의는 1969년 3월에 열린 개인전에서 사회생활을 ‘스트레스’로 규정하고 도피 장소로서의 가정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으며 그가 선보인 주택들 중에는 15평, 24평의 서민주택들도 포함되었다. ‘자라나는 집|안병의 주택전에서 본 증축요령’, 「중앙일보」, 1969년 3월 13일.

3. 안병의는 ‘주거론’에서 한국의 다가올 미래 주거인 아파트를 인간의 삶을 획일화하는 고단한 공간으로 언급하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마지막 결론에서 너구리의 굴이나 새의 둥지를 거론하며 인간의 거처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안병의, ‘주거론’, 「건축」 10.23(1966. 12.), 4~9쪽.

4. 박철수, 『박철수의 거주박물지』, 도서출판 집, 2017. 44쪽.

5. 자세한 자료는 다음을 참고. ‘Kazuo Shinohara Houses’, 2G 58/59 (Sep. 2011); ‘Kazuo Shinohara’, JA 93 (Spring 2014).

6. 두 건축가는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비슷한 주제로 글을 발표했는데, 안병의는 ‘주거론’ (앞의 논문, 1966)을 통해 현실적 소회를 드러낸 반면 가즈오 시노하라는 ‘주택론’(「신건축」 42.7, 1967)에서 이상적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서재원
서재원은 단국대학교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현재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다. 현대사회의 다면적 상황을 ‘비판적 수용’의 관점 아래 애증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부조화와 조화, 합리성과 비합리성, 풍자와 농담 등의 모순적 병치를 통해 한국 사회의 ‘동시대성’을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7년에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며 올해의 주목할 만한 건축가로 선정되었고,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와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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