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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1971년 10월호: <김중업 건축전>의 삼일로 빌딩

김현섭
사진
윤준환
자료제공
김중업건축박물관,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 59호(1971년 10월호)의 표지
  

김중업의 대표작이 주한프랑스대사관(1959~1962)임은 모두가 인정하는 바다. 이 건물은 김수근의 공간사옥과 더불어 한국 현대건축의 최고작으로 거론되곤 한다.▼1 하지만 이 밖에도 김중업의 작품 리스트에 뜻 깊은 디자인이 다수임은 물론이다. 그중 ‘삼일로 빌딩’(1969~1971)은 특히나 두드러진다. 이유는 여럿이다. 거시적 관점에서 보면, 준공 당시 서울에서 최고층 건물이었기에 한동안 대한민국의 경제성장과 기술발전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작동했다. 빌딩 앞을 가로지르는 청계고가도로(1967~1971)의 이미지와 동반되며 말이다. 청계고가도로가 김수근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에 의해 계획됐다는 사실은 두 거장의 손길이 교차함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지점이다.▼2 건축가 개인의 범위로 좁혀 보자면, 삼일로 빌딩은 김중업의 경력을 나누는 분기점으로서 의미가 크다. 1971년 11월 정부와의 불화로 프랑스 망명길에 오른 것이 이 프로젝트를 급히 마무리하면서였으니,▼3 삼일로 빌딩은 그의 전반기 경력을 마감하는 시점에 놓인다고 하겠다. 그러면서도 이 건물은 그의 후반기 경력을 열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기서부터 유리 커튼월이 적극 사용됐기 때문이다.그런데 서양과 한국의 현대건축을 조망하는 독자에게 삼일로 빌딩이 눈에 띄는 이유는 또 있다. 이 건물이 전형적인 미시안(Miesian)이라는 사실, 더 정확히는 미스 반 데어 로에의 뉴욕 시그램 빌딩(1954~1958)을 본떴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르 코르뷔지에의 제자가 완전히 다른 건축가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른 것은 의외 아닌가. 미스의 강철-유리 마천루가 이미 고층 오피스 건물의 전범이 됐고, 클라이언트가 당시 철강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던 삼미그룹이었다고 해도 그렇다. 게다가 완결적 형식의 미스 건축이 전혀 다른 콘텍스트에 놓임으로써 공간과 비례와 디테일, 그리고 코어의 둔탁한 마감 등에 있어서 ‘이상적 모델’과의 차이를 야기하기도 한다.▼4 그럼에도 척박한 현실 속에 삼일로 빌딩이 이룩한 성과를 과소평가할 수는 없겠다. 예컨대, 전례 없던 초고층 건물을 철골조 유리 커튼월로 실현하기 위해 신공법을 도입하고 새로운 디테일을 고안한 것은 기술적 도약의 계기가 된다.▼5 (당초 이 건물은 26층의 철근콘크리트조로 설계됐었다.) 그리고 시그램 빌딩보다 창의 비례를 더 세장하게 함으로써 또 다른 미적 가능성을 보여준 점도 괄목할 만하다. 그 이면에는 110여 미터로 제한된 높이 속에 서른 한 개 층을 넣고자 했던 노력이 있다. 때문에 층고가 낮아졌고(기준층 3.3m), 이로 인한 입면의 비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창의 폭을 줄인 것이다. 낮아진 층고 탓에 철골 보에 구멍을 뚫어 덕트를 설치한 사실도 우리는 잘 알고 있다.▼6 이러한 눈물겨운 분투를 통해 삼일로 빌딩이 태어날 수 있었다. 

 

 

‘건축전 2제’, 「SPACE」 59호(1971년 10월호), 23쪽.

 

 

‘특집: 건축가 김중업’, 「SPACE」 141호(1979년 3월호), 36~37쪽.

 

 

그렇다면 「SPACE(공간)」는 당시 삼일로 빌딩을 어떻게 게재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쉽게도 「SPACE」는 이 건물을 진지하게 조명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 각 한 차례씩 김중업을 ‘특집’으로 다뤘으면서도 말이다. 「SPACE」 5호(1967년 3월호)는 아직 이 건물이 지어지기 전이니 논외이고, 「SPACE」 141호(1979년 3월호)는 귀국 후 해외생활 중(1971~1978) 수행한 프로젝트를 주로 소개했다지만, 마지막 「SPACE」 224호(1986년 3월호)의 경우에도 삼일로 빌딩은 개별 작품 소개란에 포함되지 않았다. [여기에 소개된 것은 주한프랑스대사관, 제주대학교 본관, 서산부인과의원(현 아리움 사옥), 한국교육개발원 신관, 한남동 이씨 주택 총 다섯 작품이다.]「SPACE」 141호와 「SPACE」 224호의 인터뷰 섹션에 사진이 한두 컷씩 실렸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SPACE」에서 삼일로 빌딩의 완공 직후 모습을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다. 「SPACE」 59호(1971년 10월호)의 〈김중업 건축전〉(1971년 10월 19~24일) 소개 지면을 통해서다. 총 네 쪽에 달하는 이 지면은 ‘건축전 2제’라고 명명된 섹션에 <김수근 범태평양건축상 수상 기념전>(1971년 8월 17~22일)과 함께 포함됐다.프랑스 강제 출국을 앞두고 김중업은 서둘러 전시회를 연다. 전시장인 신세계화랑에 내걸린 타이틀은 ‘김중업 건축작품전(金重業 建築作品展)’. 일간지는 이를 ‘건축사진전’이라는 이름으로 소개했다.▼7 건축물을 직접 전시하지 않는 건축전이 아직 생소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사진이 강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 전시된 것의 핵심은 프랑스의 폴 부롱이 촬영한 기록영화 ‘건축가 김중업’의 스틸로, 열두 건물에 대한 120컷 분량이었다(사진 피에르 카뮈). 전시회 마지막 날에는 이 영화의 시사회도 개최된다. 「SPACE」는 이 전시회를 별도의 설명 없이 스물두 컷의 사진으로만 소개했다. 전시회 현황 사진이 넷, 전시된 작품 사진이 열여덟이다. 그중 마지막 두 컷이 바로 삼일로 빌딩에 해당한다. 기사에 실린 사진 두 컷이 뭐 그리 대수일까마는, 나름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그중 한 장은 서울 도심 속에 이 건물이 놓여 있는 원경을 그린다. 나머지 하나는 주변 콘텍스트를 배제하고 1층부터 31층까지의 정면 파사드를 부각해 세로로 길게 촬영한 사진으로, 파사드 우측이 일부 잘린 모습이다.▼8

 

 

폴 부릉이 촬영한 영화 ‘건축가 김중업’(1971)

 

원래 의도가 그랬는지는 불확실하나 후자는 건물의 수직성, 즉 초고층의 면모를 크게 강조하고 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원경 사진이다. 똑같은 이미지가 위아래로 반복되어 하나의 도판을 이루는데, 위쪽 사진에는 프리핸드 스케치가 덧입혀 있다. 이 덧댄 그림은 장난스러우면서도 미스터리하기까지 하다. 좌측 상단에는 태양이 그려졌고, 삼일로 빌딩 뒤 배경 하늘의 하단은 짙은 펜 자국으로 채워졌다. 태양은 동화책에서처럼 눈·코·입이 있고 방사형으로 빛(혹은 열기)을 뿜어내는데, 그 눈이 삼일로 빌딩을 바라보는 듯하다. 이 건물을 밝게 비추고 있다는 의미일까? 그러나 흑백으로 작게 출판된 그림에서 그 뜻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조금 다른 버전이긴 하지만, 영화 ‘건축가 김중업’(1971)에 원색상의 그림이 잠시 등장하기 때문에 그 의도를 일부 추론할 수 있다.▼9 여기서 태양은 붉은 선으로 묘사됐고, 하늘 배경은 파란색으로 강렬히 칠해졌으며, 건물 주변은 초록으로 채워졌다. 삭막한 도시에 활기를 주기 위해서, 혹은 영화에서 ‘오만하고 고독한’ 작품의 사례로 묘사된 삼일로 빌딩을 위로하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 또는 영화 말미에 자신이 극구 거부한다 말했던 ‘강요된 현대화’나 삼일로 빌딩 클라이언트와의 갈등을 희화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원사진과 덧댄 그림의 구도는▼10 「SPACE」의 같은 지면에 배치된 ‘엠파이어 빌딩’▼11 도판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고층건물에 대한 김중업의 대비된 접근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이에 대해서는 더 논의가 필요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삼일로 빌딩 이후 그의 건축이 콘크리트 덩어리만을 강조하지 않고 훨씬 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유리 매스의 건축 유형을 시도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와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가 함께 리노베이션한 삼일빌딩(옛 삼일로 빌딩)의 현재 모습 ​​

 

시공 과정 중 로비의 1~2층 슬래브를 철거한 모습


그러나 시간은 흘러 삼일로 빌딩의 건축 경위와 의미도 반세기 전의 역사로 기록된다. 그 사이 건물 주인도 여러 번 바뀌었고, 건물 이름도 어느새 ‘삼일빌딩’으로 단순화됐다. 또한 건물 자체도 노후되는데, 최근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스와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리노베이션 공사를 완료할 수 있었다.▼12 커튼월의 I-형강 멀리언을 다시 제작한 점, 조명 디자인을 새롭게 한 점 등은 입면의 이미지를 일신한 시도다. 특히 유리면의 시각적 투과율이 높아져 건물의 수직성 못지않게 수평성이 부각된 점은 전체적 인상의 변화를 대변한다. 물론 코어의 둔중했던 콘크리트 입면을 금속패널로 감싼 것은 이전 건물의 아쉬움에 대한 개선책이라 하겠다. 실내로 들어서면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에 이르는 원형 계단이 하나의 커다란 조각처럼 분위기를 좌우하는데, 기존의 콘크리트 팔각기둥 하나를 남김으로써 옛 기억을 환기하기도 한다. 기준층에서는 천장을 노출해 높이를 확보한 점이 중요하다. 하지만 새로 태어난 건물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주변 콘텍스트와의 관계에 있다. 바로 앞의 고가도로가 철거되고 청계천이 되살아났으니 삼일빌딩은 이제 주변의 도시 공간과 보행자에게 완전히 열린 셈이다. 이에 대응해 정면 기단 아래에 선큰 공간을 두고 지하층을 외부에 개방했으며, 지상 1~2층의 연속된 유리면으로 저층부의 개방성을 높였다. 원오원이 강조하던 ‘그라운드스케이프’의 일면이다.▼13 선큰 공간의 도입은 주 출입구 위치에 변화를 줬는데, 이로써 코어의 엘리베이터 홀에 이르는 실내 동선에도 변화가 뒤따른다. 이처럼 재탄생한 삼일빌딩은 크고 작은 변화를 통해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깃든 김중업 건축의 유산과 대한민국 현대화의 상징성은 설계자들에 의해 최대한 존중됐던 것으로 보인다. 이제 건물 사용자들의 입주가 시작되는 듯하니, 앞으로 이들과 우리 사회가 이 건물에 어떤 역사를 덧입혀갈지 기대해보자. 「SPACE」 59호에 실린 ‘삼일로 빌딩’의 이미지도 그 누적된 역사의 한 페이지로 기억될 것이다. (글 김현섭 고려대학교 교수 / 진행 방유경 기자)

 

 

 

다음 호에는 박정현이 「SPACE」 205호(1984년 7월호)에 게재된 ‘특집 건축비평’을 다룬다.

 

 

 

​▼

1. 「SPACE(공간)」 638호(2021년 1월호) ‘리-비지트 「SPACE」 1’ 참고.

2. 손정목에 따르면 김현옥 시장은 이 청계고가도로 계획을 위해 제일 먼저 김수근을 찾았다(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5』, 한울, 2003, 192쪽). 그러나 ‘불도저 시장’으로 불리던 김현옥은 실상 김수근의 계획이나 서울시의 기존 도시계획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전해진다.

3. 삼일로 빌딩의 준공연도는 흔히 1970년으로 이야기되며, 실제 한국외환은행 본점이 그해 6월 입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부 층의 경우 준공검사 전 입주로 문제가 발생한 바 있다(‘고층 화재에 손든 진화’, 「경향신문」 1970년 9월 1일). 당시 설계팀을 이끌던 권태문은 건물 완공 시점을 1971년 10월로 본다[권태문, ‘삼일로 빌딩을 다시 본다’, 「건축」 55.1(2011. 1.), 60~61쪽]. 건물 완공 직후 신세계화랑에서 건축전을 열고 곧 프랑스로 출국했다는 김중업의 발언은 권태문의 정보와 일치한다(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열화당, 1984, 112, 286쪽).

4. 이 건물에 대한 비판적 논의로 필자의 다음 졸고를 참고. 김현섭, ‘신화를 넘어서: 김중업 건축 다시 보기’, 『김중업 다이얼로그』, 국립현대미술관·김중업건축박물관 엮음, 열화당, 2018, 304~319쪽.

5. 손종윤, ‘고층빌딩의 시공상의 제문제: 삼일로 빌딩을 중심으로’, 「대한건축학회지」 15.40(1971.5), 26~35쪽; 권태문, 앞의 글.

6. 김중업, 앞의 책, 112쪽.

7. ‘김중업 건축사진전’, 「중앙일보」 1971년 10월 19일; ‘김중업씨 건축사진전’, 「동아일보」 1971년 10월 21일.

8. 정확히 말해 4베이(bay)의 정면에서 베이 하나만큼의 폭을 잘라냈다. 원래 김중업은 이 정도의 비례를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9. 영화의 러닝타임은 22분 20초 정도이며, 말미에 이 그림이 두 차례 짧게 비쳐진다. 영화는 김중업건축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10. 이는 그가 영화에서 말한 ‘건축영화(Cine Architecto Graphie)’의 중요한 수단이었을까? 덧댄 그림은 실현하지 못한 디자인에 대한 갈구로도 보이는데, 서산부인과의원 사진 위의 스케치가 이를 말해준다.

11. 이 건물은 우리가 알고 있는 도큐호텔(현 단암빌딩)과 동일한 것으로 보인다.

12. 준공식은 2020년 11월 23일에 있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는 「Domus Korea」 (2020 겨울), 「건축」 65.2(2021. 2.), 「건축사」 623(2021. 3.) 등이 다루고 있다.

13. 원오원의 ‘그라운드스케이프’ 개념에 대해서는 필자의 졸고를 참고. 김현섭, ‘최욱의 건축, “감각의 형식”에 대한 커멘터리’, 「건축평단」 9(2017 봄), 269~279쪽.​ 

 

 


▲ SPACE, 스페이스, 공간


김현섭
김현섭은 영국 셰필드대학교에서 박사 및 박사후과정으로 유럽 근대건축을 연구했고, 2008년부터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건축 역사가이자 비평가로서 한국 현대건축에 관한 비판적 역사 서술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건축수업: 서양 근대건축사』(공저, 2016), 『건축을 사유하다: 건축이론 입문』(역서, 2017), ‘DDP Controversy and the Dilemma of H-Sang Seung’s “Landscript”’(2018), ‘The Hanok Paradox: Modernity and Myth in the Revival of the Traditional Korean House’(2019) 등 다수의 단행본과 논문을 국내외에서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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