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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매너리스트의 보석 상자: 유걸의 강씨댁, 1970

서재원
진행
김정은 편집장

 

「SPACE」 41호(1970년 4월호) ▶ e-매거진보기 

 

강씨댁, 이 범상치 않은 주택의 작가가 서울 시청 신청사를 설계한 유걸(1940년생)이라는 사실을 누구든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필자를 포함하여 30~40대의 젊은 건축가들에게 유걸의 작업은 얽매이지 않는 사고를 기반으로 한 자유로운 형태로 각인된 경우가 많은데, 이 주택에서 보이는 집착에 가까운 기하학적 엄밀함과 폐쇄된 형식적 체계는 오히려 우리가 그에 대해 알고 있던 자유 정신과는 거리가 먼 근본주의자의 것처럼 보인다. 스물 아홉 즈음 젊은 나이에 설계한 이 작은 주택이 이제는 한국 건축계에 여러 굵직한 반향을 남긴 ‘건축가 유걸’과 어떠한 연결점이 있을지 궁금증이 발동하는 지점이다. 

 

「SPACE」 41호, 43쪽.

 

 「SPACE(공간)」 41호(1970년 4월호)에 게재된 이 주택이 설계, 완공된 시기는 대략 1969~1970년 사이로, 누가 보더라도 미국의 건축가 루이스 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건축가 본인도 2020년 출간된 구술집에서 당시 루이스 칸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었음을 회고하고 있다. 서브드 스페이스/서번트 스페이스(Served Space/Servant Space)의 개념은 물론 트렌턴 바스 하우스(Trenton Bath House, 1955)의 9정방 평면, 그리고 제1유니테리언 교회(First Unitarian Church, 1969)의 지붕과 채광 형식이 변형되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더 원형으로 들어가자면 존 헤이덕의 텍사스 주택(Texas House) 연작이나 안드레아 팔라디오의 빌라 로툰다(Villa Rotonda)까지 간다. 하지만 당시 매우 제한적으로 자료를 접했을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거기에까지 직접적인 레퍼런스가 있었을지는 쉽게 단정 짓기 어렵다. 당시 유걸은 3년간 다녔던 김수근 건축연구소를 그만두고 1967년부터는 일종의 프리랜서로 김수근 건축연구소 일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던 시기였다. 1970년 미국 덴버로 이주하기 전까지 완공했던, 그러나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일련의 주택 연작은 그의 독자적인 건축적 관심사가 드러난 건축가 개인에게도 한국 현대건축사에도 유의미한 작업이다. 건축가 본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고했던 정릉 자택(1969), 성북동 K씨댁(1967) 그리고 명륜동 강씨댁(1969)은 당시 어느 누구보다도 형식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한 작업으로 앞서 말한 루이스 칸 이전에 김수근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짐작된다. 1965년 김수근 건축연구소에 입사해 처음으로 계획했던, 흙으로 빚은 제헌회관 모형을 보고 김수근이 “나는 이런 건 못 파니 나중에 당신 사무실 하면 하라”라고 했던 조언이 향후 몇 년 동안 유걸이 예술적 어프로치를 의식적으로 피하는 태도를 불러왔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화이다. 하지만 그 본성이 어디가랴. 원래 유걸은 예술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조각가로서의 예술의지를 불태울 수도 있었으나 실리적인 이유로 건축가의 길을 택했는데, 그래서인지 ‘조형적 빌라의 수학(the mathematics of the formal villa)’이라 불릴만치 수학적이면서도 조소적인 작업들을 내놓는다. 그리하여 명료한 형식과 조소적 형태를 모두 갖춘 강씨댁은 이성과 감성이 균형을 이룬 보기 드문 수작이 된다. 강씨댁은 정릉집의 연작인데 정릉집이 단층이라는 점이 크게 다르지만 근본적인 기하학적 질서에 대한 탐구는 같다. 다만 강씨댁은 본인의 집이 아닌 점, 3층의 규모를 가진 점, 건축주의 가족 구성이 복잡한 점이 더 풍요로운 집을 탄생시켰다.

 

 

「SPACE」 41호, 57쪽.

 

강씨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형식적인 평면과 형태인 점을 부인할 수 없지만 그보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집의 향이다. 집은 대지가 가진 부정형의 모양과는 별개로 동서남북에 정확하게 맞춰 놓여 있다. 게다가 대칭의 완결된 형태와 양 끝에 높이 솟은 굴뚝으로 인해 마치 이슬람 사원 같은 신전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태도에서 그간 한국 건축의 구태의연한 수사 ‘대지에의 순응(종)’을 찾아보기 힘든데, 이는 그가 가진 콘텍스트에 대한 가치관의 단초를 제공한다. 훗날 건축가는 목천문화재단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건축에서 도덕적으로 강요되는 ‘주변과의 조화’를 개성을 억압하고 동질화를 부추기는 좋지 못한 수단이라 말하는데 이는 평소 그가 신념처럼 말했던 개인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그렇다고 강씨댁의 배치가 불합리하거나 독선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대지 한가운데서 남북을 완전히 틀어막고 턱 하니 놓인 듯한 건물은 단번에 외부 공간을 기능적으로 분리한다. 북측의 후정에는 굴뚝을 비롯해 빨래터와 작업실, 식모방, 부엌, 창고 등의 서비스 공간을, 볕이 잘 드는 남쪽 정원으로는 그린룸, 거실, 안실 등의 생활공간을 배치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동선을 명료하게 분리함은 물론 펑퍼짐한 치마를 펼치듯 땅에 평안하게 안착한다. 

 

평면도 스케치(작도: 서재원)

 

 

분석 다이어그램(제작: 최장민) ©Suh Jaewon

평면이 취하고 있는 9정방 그리드는 생각만큼 단순하지 않다. 무엇보다도 45도 틀어져 놓인 다이아몬드 계단을 통해 연결되는 십자형 그리드(a)가 집 전체에서 서번트 스페이스를 담당한다면 네 코너의 방(b)들은 자연스레 서브드 스페이스가 된다. 그 둘 사이를 조율하는 일종의 세미-서번트 스페이스(a’)가 각 상황에 따라 어느 때는 방의 연장으로, 보이드로, 화장실로, 클로젯으로 대응하는 과정에서 건축가의 상당한 절제와 여유가 동시에 느껴진다. 특히 옥상에서 드러나는 십자형 공간에 물탱크가 놓이면서 지붕을 넷으로 가르는 지점에서 필자는 솔직히 감복할 수밖에 없었음을 고백한다. 이러한 내적 질서에 따른 완결적인 조형은 기능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형태와 시스템의 순수함이 깨지기 쉬운데 강씨댁의 경우 거실의 면적 확보에서 그런 문제에 면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건축가는 이 또한 합리적으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도 오히려 시스템을 더 풍요롭게 응용하는 여유를 부린다. 중앙 계단을 중심으로 한 기본적인 9정방의 그리드가 거실이 위치한 2층 평면에서 계단실을 편심에 두고 복제 이동하여 두 개의 9정방으로 중첩되는 모습이 그러하다. 이러한 체계는 1층까지 계속되고 서측은 차고로 채움으로써 이조차 합리성을 얻는다. 아마 차고 옆에 놓인 창고 공간은 운전수의 공간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렇게 틀어진 두 중첩된 그리드는 비로소 3층에서 가장 순수한 모습을 드러낸다. 2층까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달라붙은 부차적 덩어리들을 이제는 덜어내고 진짜 몸통을 드러내며 45도의 경사지붕 하나로 귀결될 법도 하지만 무자비하게 지붕을 네 등분하는 매저키스트적 조형은 루이지 모레티의 일 지라솔레(Il Girasole, 1951)만큼이나 매너리스트적이다. 덧붙은 조형은 통일성을 위해 3층 지붕과 같은 각도의 경사지붕을 가지며 실내에서도 보이드 볼륨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로 인해 생긴 두 개의 기둥은 평면 전체를 통틀어 나타나는 유일한 점 요소로 공간을 풍요롭게 하는 포인트가 된다. 다만 메자닌의 각 방에서 연결되는 경사지붕 아래 공간은 형식과 형태를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긴 창고로 보이는 점과 현관 위의 빛이 들지 않는 보이드는 약간 아쉬운 부분이다. 이 집은 전반적으로 클로젯이 유난히 많고 깊은데 이 또한 모듈을 맞추다 보니 생긴 어쩔 수 없는 결과일 것이다. 특히나 3층 남서측에 위치한 학생 침실의 폭이 좁은 클로젯과 메자닌의 화장실 구성에서 욕조를 돌려 사선 배치한 점은 형식과 기능 사이에서 조율된 결과임이 명백하다.

 

2층 거실 모습. 1:20 모형(제작: 박순민) ©Suh Jaewon 

 

3층 가족 거실. 1:20 모형(제작: 박순민) ©Suh Jaewon

이 집은 외부에 창을 내는 방식에서도 상당히 고심하였다. 이마저 조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임과 동시에 지붕의 고측창에서 떨어지는 빛의 극적 효과를 얻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특히 3층의 경우 학생 침실에 난 코너창과 화장실 창을 제외하면 외부에서 보이는 창은 없고 큰 창들의 경우 모두 지붕 안으로 파고든 테라스 쪽으로 생김으로써 조형성을 해치지 않는다. 따라서 빛이 절제된 어스름한 방들은 오로지 경사 천장 꼭대기의 고측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공간 전체에 은은하게 확산됨으로써 마치 예배당 같은 성격을 부여받는다. 집주인이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역시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계단실을 규정하는 솔리드한 벽이 경사지붕까지 맞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로써 고측창에서 내려오는 빛은 서번트 스페이스의 것도 아닌 서브드 스페이스의 것도 아닌 것이 된다. 그렇게 철저히 지켜낸 형식적 질서를 종국에는 빛으로 누그러뜨리며 하나의 공간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조각난 지붕은 필연적 조형이면서도 의외성을 더하는 고수의 전략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집은 주변과 마찬가지로 벽돌과 타일, 그리고 기와지붕으로 이루어졌다. 대칭적 형태도 한몫하겠지만 벽돌이 주는 묵직함으로 인해 분황사 모전석탑 같이 보이기도 하고 보석 상자 같은 오브제로도 보이기도 한다. 이 집은 오늘날의 ‘건축가 유걸’의 작업과 표면적 유사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 집이 가진 개성적 작가성과 저항정신은 우리가 알고 있는 유걸과 같다. 필자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건축가에 대한 글들을 상당수 접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어떠한 문장으로도 규정할 수 없었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 이러한 작업을 남긴 선배 건축가에게 고마움과 존중을 표하는 것 이상은 없을 듯하다. (글 서재원 / 진행 김정은 편집장)

 

다음 호에는 조현정이 「SPACE」 9호(1967년 7월호)에 게재된 ‘일본의 현대건축’을 다룬다. 

 

* 참고

강씨댁의 주소는 서울 종로구 명륜동4가 206-2번지이다. 2013년경에 완전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철거 전 실제 모습은 마티에서 출간된 『유걸 구술집』 107쪽에서 흑백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대략의 입체적 형태는 카카오 지도의 3D 스카이 뷰와 에스맵(S-Map)에서 3D 건물과 영상지도를 2013년으로 설정하면 3차원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필자가 그린 평면 스케치는 「건축사」 지 1970년 4월호에 실린 도면 자료를 참고하여 보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참고로 3층 평면을 기준으로 전체 외곽 박스는 8.7m × 8.7m이며 계단실은 3.5m × 3.5m이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서재원
서재원은 단국대학교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였고 현재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다.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여러 층위의 모순적 상황에 관심을 가지고 망원 빌라, 서교 근생, 망원동 단단집, 홍은동 남녀하우스 등을 완공하였다. 2017년에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젊은건축가상을 받으면서 올해의 주목할 만한 건축가로 선정되었고 2021년에 TSK 크리틱 펠로우십의 수혜자가 되었다. 현재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에 있으며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 출강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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