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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sit SPACE] 1975년 6월호: 공간사옥 구관 다시 보기

김현섭(고려대학교 교수)
사진
진효숙
진행
방유경 기자

「SPACE(공간)」는 55년 동안 한국 건축의 현장을 기록한 대표적인 매체였다. 켜켜이 쌓인 기사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재조명하기 위해 건축사가 김현섭, 비평가 박정현, 건축가 서재원, 건축사와 미술사를 아우르는 조현정 네 사람을 한 자리에 모았다. 이들은 바톤을 넘겨가며 과거의 기사로부터 오늘의 건축 담론을 위한 이야기를 발굴해낼 것이다. 재발견된 기사가 수록된 호는 VMSPACE 아카이브에서 한 달간 무료로 공개된다.

 

 

1975년 6월(통권97호) ▶ e-매거진 보기

 

1970년대 지어진 김수근의 공간사옥은 이제 하나의 전설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나 싶다. 까닭은 여럿이다. 좁은 대지에 다변화된 공간을 높은 밀도로 짜넣은 벽돌집 자체의 탁월함은 물론이요, 김수근(1931-1986)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당대 주도한 건축계 및 예술계의 활동 흔적이 건물 곳곳에 스며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공간사옥이 한국 현대건축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면서도 더 이상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지 못함에 있을 것이다. 인걸이 간데없음은 자연스러우나 건물마저 의구치 않으니, 그 기억은 전설로 남을 수밖에…. 우리가 잘 알고 있듯 공간사옥은 2013년 말 공간그룹의 손을 떠나 이듬해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재탄생했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야 할 점은, 김수근의 공간사옥이 자체만으로 완결적일지 모르지만, 시간의 적층과 함께 자라나 더 온전한 전체를 이뤘다는 사실이다. 1990년대에는 장세양의 유리 신사옥이 김수근의 공간을 확장하더니, 2000년대 초에는 이상림이 앞 필지의 한옥을 공간사옥 영역에 편입해 리노베이션한다. 일종의 ‘공간 콤플렉스(SPACE Complex)’를 이룬 셈이다. 이 같은 건물군으로서 공간사옥은, 필자가 언젠가 적었듯 “크게 세 개의 시공간적 덩어리로 구성되는데, 제각각 그 리더십의 시대상을 반영함과 동시에 묘한 긴장 속에서도 유기적 공존을 꾀하고 있다”고 하겠다.▼1 이리 볼 때 공간사옥은 고딕적이다. 지속적 덧댐으로 자라왔고 그러한 성장 과정이 부분-전체의 조화를 배가하기 때문이다. 더함과 뺌을 불허하는 알베르티의 고전적 미의식과는 사뭇 대조된다. 아라리오에 이양된 공간사옥은 바로 이 공간 콤플렉스인데, 현재 벽돌 건물은 갤러리로, 유리 건물은 레스토랑으로, 한옥은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

 

이렇듯 공간사옥이 40여 년에 걸쳐 시간의 층을 더하며 더 너른 의미를 획득했지만, 그럼에도 이 건물군의 핵심이 김수근의 벽돌집임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1970년대 김수근의 공간사옥은 그 자체로 구관과 신관으로 구분되며 나름의 역사를 갖는다. 지금까지 구관과 신관에 대한 독립된 이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 이 둘의 결합체에 익숙한 우리에게 공간사옥 최초의 모습, 즉 ‘구관’만의 모습은 다분히 낯설 것이다. 1970년대 초 이곳을 드나들던 ‘올드 보이’들이 아니라면 말이다.▼3 최근까지의 기록과 회고를 종합하건대, 공간사옥 구관은 1971년 6월 착공해 그해 말 부분적으로 공사를 마무리했고, 4층 설계실부터 사용하며 추가 작업을 진행해 1975년 5월에야 비로소 완공되었다. 착공 4년 후의 일인데, 다시 1년이 지난 1976년 6월 신관 공사를 시작해 이듬해 11월 준공을 보았으니,▼4 실상 구관과 신관을 따로 구분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공간사옥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최초의 출판물인 일본 SD(Space Design)의 『現代の建築家: 金壽根』(1979)이 자연스레 둘을 하나의 융합체로 묘사했고 특히 도면에 있어서 그랬는데,▼5  수개월 후 김수근 및 공간그룹 특집호로 꾸며진 「SPACE(공간)」 1979년 12월, 1980년 1월호 합본(통권150·151합본호) 역시 유사했다. 

 

이런 맥락을 주지한 연구자에게 「SPACE」 1975년 6월호(통권97호)의 발견은 값지다. 네 쪽의 지면에 공간사옥 구관을 게재하고 있기 때문이다.▼6 이제까지의 공간사옥 논의에 이 기사를 참조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든데, 저자든 제목이든 검색 조건에서 살짝 벗어난 데 연유한다. 이 지면은 김원석을 저자로 하며, ‘「우리 집」 — 「空間의 집」’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당시 공간의 실장이던 김원석(1937-)이 공사다망한 김수근을 보좌해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했음과 이 건물이 김수근의 (공간)​ 것임은 다 아는 바니, 그의 이름이 네 쪽 지면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음은 그다지 이상치 않았으리라. 게다가 기사 영문 제목 ‘S. G. K. BLDG.’이 ‘Space Group of Korea Building’(공간사옥)에 더해 ‘Swoo Geun Kim Building’(김수근 건물)을 중의하고 있지 않은가. 한편, 기사 제목에 (마찬가지로 이 지면 어디에도) ‘공간사옥’이라는 건물명이 들어가지 않음은,▼7 공간의 구성원들이 이를 회사 건물이기보다 ‘우리 집’이자 ‘내 집’으로 여겼음을 보여주는 바이기도 하다. 김원석의 최근 회고에서처럼 당시 13명이던 공간 식구들은 자신들의 첫 보금자리를 짓는 데 깊은 애정으로 참여했고, 야근과 철야 작업이 일상이던 이들에게 5층에 추가된 온돌방은 집 같은 안식처나 다름없었다.▼8

 

 


1975년 9월호 81~84쪽에 게재된 「우리 집」 — 「空間의 집」기사

 

 

그렇다면 네 쪽의 지면은 공간의 첫 건물을 어떻게 제시하는가? 첫 면은 제목과 건축가 김원석의 이름 및 사진, 그리고 공간사옥 대표 이미지로서 전경 사진을 싣는다. 또한 ‘「空間의 집」 — 「芸術의 空間」’이라는 소제목 아래 건축 개념을 다소 관념적 텍스트로 술회하고 있다. 둘째 면은 출입구 사진, 김원석의 개념 스케치, 건축 개요를 실었다. 건축 개요는 ‘設計’를 ‘空間그룹’으로 표기함으로써 이 건물이 단일한 창작자의 산물이기보다 구성원 모두가 함께 노력한 결과임을 넌지시 암시한다. 그리고 지하 1층 지상 5층의 건물이 대지 40평에 27평의 건축면적과 128평의 연면적을 가짐도 명기한다. 다만 건축 기간에 대한 정보가 빠진 것은 아쉽다. 다소 불명료했던 공사 기간 탓일지도 모르지만, 최근까지도 국내 건축잡지에서는 건축 개요에 건축 기간(설계 기간과 공사 기간)을 누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사의 나머지 두 면은 단면도와 1-4층 평면도, 네 컷의 실내 사진을 분배해 적절히 구성했다. 지하 1층과 지상 5층 평면도가 빠져 유감이나, 짐작컨대 제한된 지면이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일련의 평면도는 여기에만 실린 희소 자료라 하겠는데, 그간 신관과의 관계성 속에서 부수적으로 읽혔던 구관만의 독립적 공간구성을 명쾌하게 나타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단면도와 함께 읽을 때 더욱 분명해진다. 1층 평면도는 건물이 뭉툭한 L자형 대지에 맞춰 두 개의 수평 켜가 결합된 형국임을 보여준다. 남북 방향 도로 쪽이 기다란 켜인데, 여기에 출입구가 있다. 이를 통해 건물에 진입하면 지하의 ‘공간화랑’과 일부 오픈된 현관홀을 마주하게 되며, 반대편 짧은 켜 공간(암실과 리빙아트 코너)으로 가거나 왼쪽의 계단실로 돌아 반 층 아래(커피 바)나 반 층 위(행정실)로 이동할 수 있다. 남북 경사에 기인한 스킵플로어 방식은 3층까지 이어진다. 1.5층에서 2층으로 오르면 리셉션과 공간지 편집실이 나오는데, 이곳에는 건물 바깥에 설치한 목재 계단으로도 진입할 수 있다. 사실 공간화랑 방문자가 아니라면 주로 2층 현관을 이용하게 된다. 2.5층은 회의실, 3층은 김수근의 영역으로 할애됐다. 회의실은 1.5층 높이의 천장고로 스크린에 이미지를 투사할 수 있도록 고안됐는데, 이 건물에서 가장 여유 있는 공간감을 주는 곳이다. 3층에서는 비서 공간을 거쳐 대형 회전문을 지나야 김수근의 집무실로 진입이 가능하며, 회전문은 상황에 따라 열거나 닫아둔다. 이 레벨에서, 결국 건물 전체에서, 제일 상징적인 곳은 (일부가 침식한) 원형의 공간으로, 3층 평면도는 이곳을 명확히 ‘Womb Space’ 즉 ‘모태 공간’이라 칭했다​. 이는 김수근이 당시 주창했던(1971년 범태평양건축상 기념강연​) 여유와 해프닝을 머금은 ‘궁극 공간(Ultimate Space)’의 개념쌍이라 하겠는(1980UIA 도쿄회의 기조논문), 이후 출판물에서는 그저 ‘私室(private room)’ 정도로 표기되면서 의미가 상실되었다. 한편 설계실이 있는 4층 및 온돌방과 옥상정원이 있는 5층은 공간 효율을 위해 나선형 계단으로만 출입하게 했다. ‘나선 계단실’과 ‘모태 공간’, 이 두 곳의 원형 요소는 공간의 수축과 이완을 각각 내포하는 셈이다. 5층의 온돌방은 전술했듯 직원들의 휴식 공간이었는데, 그 기능은 건물 증축과 함께 신관으로 이전하고 대신 좀 더 여유와 멋을 만끽할 문방(文房)으로 꾸며지게 된다.▼9 하지만 구관의 단면도는 이미 이 온돌방에 병풍과 들어열개문과 목재 보를 묘사하며 전통의 정취를 발산하고 있다. 비좁은 공간 내에서도 여유와 멋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뚜렷하다. 그리고 도면에서는 읽기 어렵지만, 이런 노력은 외벽의 정갈한 전벽돌과 내부의 투박한 적벽돌을 대비한 점이나 창호를 비롯한 각종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처리한 점에서도 잘 나타난다. 또한 두 컷의 외관 사진이 보여주듯 외벽에 담쟁이넝쿨을 심어 자연의 요소를 가미한 점도 여유의 표현이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실 맞은편에 마련된 회의실의 현재 모습

 

들어열개문과 목재 보가 있는 5층 온돌방의 현재 모습

 

공간사옥의 나선 계단실

 

 

지금까지 평면과 단면을 중심으로 간략히 독해한 구관의 구성은 김원석의 개념 스케치를 통해 이해를 더할 수 있다. 이 스케치는 건물의 적층 구조를 수평적으로 펼쳐놓은 모양새인데, 두 곳의 출발점(1, 2층 출입구)에서 시작한 공간 흐름이 어떻게 만나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가는지 ‘시퀀스’를 묘사한다. 우리는 여기서 ‘휴먼스케일’에 바탕을 둔 각 공간이 내외부에서 적절히 ‘열리고 닫히는’ 가운데 일종의 ‘드라마’가 만들어지길 바랐던 건축가의 의도를 분명히 읽게 된다. 그것이 이 개념도의 표제어인 ‘우리 집의 이야기’이자 ‘건축의 詩’인 것이다. 이 스케치에 비해 좀 사변적이지만, 머릿면의 글 ‘「空間의 집」 — 「芸術의 空間」’도 건축을 “空間을 創造하는 것”으로 규정하며 ‘공간의 집’ 즉 공간사옥의 ‘生命力​’이 ‘空間​의 詩’에 있음을 다시 강조한다. 공간사옥 구관이 ‘공간의 시’를 창조해두었기에, 증축된 신관이 구관과 얽히며 더욱 역동적이고 다변화된 시적 공간을 창조할 수 있었으리라. 이것이 공간사옥이 한국 현대건축의 기념비로 기억되게 하는 요인이며, 현재 다른 공간으로 변모한 이 건물을 우리가 다시 되돌아볼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공간사옥 전설의 밑자리를 간직한 「SPACE」 1975년 6월호 기사는 소중한 발견이다.

 

 

 

 

공간사옥의 현재 외관

 

 

'리-비지트 「SPACE」' 다음 기사는 「SPACE」 1972년 3월호 '보부르센타 시안공모전'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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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현섭, '공간의 깊이, 시간의 적층: 공간사옥의 발자취', 건축가 (2013.11/12), pp. 4 - 11. ‘공간 콤플렉스’라는 말에 필자는 공간(공간건축, 공간지, 공간사옥)에 대한 많은 이들의 복합적 감정도 중의적으로 담는다.

2) 정인하, 『김수근 건축론』, 미건사, 1996, pp. 150-155. 김현섭, 앞의 글. 두 문헌의 구관 묘사에는 각각 수정 보완의 여지가 있다.

3) 케네스 프램튼의 『현대건축 : 비판적 역사(Modern Architecture: A Critical History)』의 최근 증보판(5th edition, 2020)에 ‘한국 장(chapter)’을 넣은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공간사옥과 공간지 등에 대해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그만을 나무랄 수는 없다.

4) 대개의 기록이 4월을 준공 시점으로 적는다. 그러나 김원석의 회고에 따르면 4월은 소극장을 개관한 때이고, 11월 11일 공간연구소 창립 17주년과 공간지 발행 11주년을 겸해 성대한 준공식을 개최했다. 김원석, '공간사옥 건설과 김수근 타계의 순간', 『#SPACE60』, 공간그룹 기획, 공간서가, 2020, pp. 382 - 403.

5) SD 編集部(編), 『現代の建築家: 金壽根』, 鹿島出版会, 1979, pp. 67 - 85. 

6) 「SPACE」 1975년 6월호(통권 97호)는 ‘環境 속의 芸術’ 섹션에 '空間設計 그룹 篇'을 게재했다(pp. 47 - 66). 그중 작품으로 김원석이 담당한 공간사옥과 오기수가 담당한 창암장 및 세이장이 수록되었다. 이들 작품 소개에 앞서 김수근을 포함한 건축가들과 평론가들의 ‘空間設計팀’에 대한 좌담을 정리해 넣었고, 작품 지면 뒤에는 조영무의 김수근 건축론을 게재했다. 좌담 원고와 조영무의 글에는 각각 이른바 ‘자갈리즘’ 등을 언급한 ‘공간사옥’에 대한 논평이 포함됐지만, 본고의 고찰 대상은 51 - 54쪽까지 공간사옥 소개에 국한한다.

7) 하지만 이 건물명은 이미 사용되고 있었다. 앞서 언급한 좌담 원고와 조영무의 글을 참고하라.

8) 김원석, 앞의 글 및 필자와의 대담(김원석 용인 자택, 2020년 11월 16일).

9) 김원석, 앞의 글 및 필자와의 대담.

 

 


김현섭
김현섭은 고려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셰필드 대학교에서 서양 근대건축을 공부했다. 현재 고려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건축 역사, 이론, 비평의 교육과 연구에 매진하고 있으며, 한국 현대건축의 비판적 역사 기술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작으로 『건축수업: 건축물로 읽는 서양 근대건축사』(공저, 2016), 'DDP Controversy and the Dilemma of H-Sang Seung’s “Landscript”'(2018) 등이 있으며, 조나단 헤일의 『건축을 사유하다:건축이론 입문』(2017), 『건축표기체계』 (공역, 2020)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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