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MSPACE는 국내 최고의 건축 포털 매거진입니다. 회원가입을 하시면 보다 편리하게 정보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Login 회원가입
Naver 로그인


[건축설계업을 크리틱하다] 유연하고 단단하게 조직을 이끌기 위해: 소장 이야기

진행
김정은 편집장, 방유경 기자

「SPACE(공간)」2022년 11월호 (통권 660호) 

 

유연하고 단단하게 조직을 이끌기 위해: 소장 이야기

 

고영성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 기현철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김정임 서로아키텍츠, 오신욱 라움건축사사무소

×​ SPACE​

 

 

SPACE  건축설계 조직을 이끄는 위치에 있다. 각자 어떤 길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왔는지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오신욱(오)  2001년에 부산에서 설계사무소를 개소한 뒤 현재까지 20년 넘게 운영하고 있다. 직원 두 명으로 시작했던 회사는 16명까지 커졌다가, 현재 나를 포함해 아홉 명이 근무 중이다. 가급적 몸집을 키우지 않고 여덟 명으로 움직이는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사무실에 직원 자리를 여덟 개만 만들었다. 육아휴직자와 해외여행을 떠난 휴직자가 있어 자리가 부족하지 않게 일하고 있다.

김정임(김)  유걸 선생 사무실에 17년 정도 근무했고 2004년부터는 공동대표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더 늦으면 독립하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어 마흔 다섯, 비교적 늦은 나이에 사무소를 차렸다. 2012년 9월 개소해 올해로 딱 10년이 됐다. 얼마 전 내가 실장이었을 때 신입사원으로 만났던 친구를 파트너로 영입하고, 현재 직원 열 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나는 프로젝트의 구석구석을 직접 챙기고 싶어 하는 성향이라, 이 방식으로 유지할 수 있는 규모가 15명이 한계라고 생각한다. 

고영성(고)  솔토건축사사무소를 다니다 2011년 말 아틀리에를 시작했다. 그러다 2016년에 이성범 소장을 영입해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지금 7년차인데 꾸준히 인원이 늘어나 현재는 소장 두 명과 정직원 14명, 인턴 세 명을 포함해 총 19명이 일하고 있다. 15명 규모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일이 늘어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인원수가 늘어났다.

기현철(기)  프랑스 보르도 건축학교를 졸업하고 베르나르트 뷜러 사무실에서 근무했다. 현재는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정림)의 NID(Next Integration Design) 본부에서 본부장을 맡고 있다. 정림 전체 직원은 920명인데, 그중 설계 부문은 420명 정도며, 비슷한 인원이 CM 부문에 근무하고 있다. NID 본부는 여러 프로젝트가 함께 진행되는 조직이다 보니, 정림의 정체성이 모든 프로젝트에 유지되는 데 필요한 기술적 기반, 디자인 디렉션, 데이터 아카이빙을 총괄하는 부서다. 업무 특성상 경험이 필요한 자리라 20여 명 내외의 고연차 직원들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탈건축 현상, 지금은 변화의 시점?

 

SPACE  최근 인력난을 호소하는 설계사무소가 많다. 긴 시간 설계판에 몸담았던 입장에서 설계인력이 이탈하는 현상과 설계업을 둘러싼 변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소위 탈건이란 표현 자체가 낯설긴 하지만 설계인력의 이탈은 늘 있었던 일이다. 다만 예전에 비해 업무 강도, 근무환경이나 복지 등 비교할 대상이 많아지면서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에는 업무 자체가 고되서 체력과 건강에 한계를 느껴 설계업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클라이언트로 만나는 대기업과 IT기업 등 설계를 계기로 타 분야에 대한 내밀한 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설계업 자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탈건의 실질적인 비율은 예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30년 전, 함께 건축을 공부했던 동기, 선후배들 중에 현재 남아있는 사람은 건축사 자격을 딴 몇 명뿐이다. 저임금, 높은 업무 강도를 견뎌가며 일했지만, 결국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지 못한 대다수가 시간차를 두고 설계업을 떠났다. 반면 건축사 자격증 취득이 쉬워진 MZ세대들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자신들의 진로(탈건 여부)를 빨리 결정하는 추세다. 하지만 일단 건축사 자격을 딴 인력의 경우 이탈하는 비율은 현저히 줄어드는 것 같다. 우리 회사도 작년에 직원 여덟 명 중 네 명이 건축사 자격을 취득하고 회사를 떠났다. 독립하기 위해 떠나는 것을 탈건이라 부를 수는 없지 않나.

  IMF외환위기 직후 대학에 입학했던 세대로서 스스로 낀 세대라 생각해왔다. 그런데 탈건 문제는 세대에 따라 다른 프레임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우리 윗세대는 건축을 고유의 가치를 지닌 숭고한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건축은 곧 설계’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면 도태되고 배제된다는 인식이 강했다. 설계를 하고 싶지만 (건강, 경제력 등) 불가피한 사유로 설계업에서 ‘탈출’하는 것이 윗세대의 탈건이라면, MZ세대는 다양한 직업의 선택지 중에서 건축설계가 아닌 다른 분야로 ‘이탈’하는 상황이다. 탈건하는 비율도 과거와 비교해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주변에서 보면 변호사나 간호사들도 “요즘 일할 사람이 없다”는 얘기를 똑같이 하더라. 세대도 사회도 바뀌는 시대인데, 이런 현상은 직업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지 비단 건축산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오히려 이를 언어화하고 명제화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원인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고 본다. 인력 수급이 안 되는 근본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아닐까. 다만 이런 상황을 두고 ‘MZ세대는 직업의식이나 열정이 낮다’고 표현하기에는 조심스럽다. 선배들이 지적하고 혼낼수록 위축되고 자기 마음을 숨기게 되는데, 이들은 우리 세대가 자신들을 그렇게 인식한다는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나의 저연차 시절과 비교해도 이들은 훨씬 좋은 기술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 조건이 좋은 직장을 놔두고 이 급여를 받으며 일하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열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 젊은 세대들이 예전처럼 아틀리에에 와서 건축가 밑에서 배워서 나도 그와 같은 방식으로 독립해서 일을 해야지 이런 생각은 안 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한다.

 

세대도 사회도 바뀌는 시대인데,

이런 현상은 직업에 대한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지

비단 건축산업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인력 수급이 안 되는 근본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아닐까.

 

사무소 운영 시스템과 노동환경

 

SPACE  설계인력은 언제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가? 또 이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회사 규모가 크다 보니 퇴사 관련 자료를 데이터화해서 관리하고 있다. 통계를 보면 전체 이직률이나 퇴사율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눈에 띄는 현상이 있다면 실무 숙련도가 높은 고연차 직원들이 외부 기업에 스카우트되어 빠져나가는 상황이다. 올해 기준으로 보면 가장 많이 이직하는 곳이 시행사와 자산운용사다. 연봉 차이가 주요 원인이었는데, 우리를 비롯한 대형 설계사무소들이 비슷하게 겪는 일이다. 대형 건축사사무소는 큰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시작해서 끝을 내고 성과물을 보기까지 오래 걸리는 프로젝트들이 많다. 요즘 세대는 정보에 민감하고 결과물을 빨리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프로젝트별로 인력을 안배한다. 장기 프로젝트가 소강 상태에 있을 때 다른 프로젝트로 옮겨주는 식이다.

  아틀리에는 건축사 시험 결과가 발표되는 10~11월에 긴장한다. 4~6년차 직원들이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면 오래 지나지 않아 퇴사하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여덟 명 직원 중에 4~5차 직원 네 명이 한두 달 사이에 퇴사했다. 급히 5년차 직원을 뽑아도 우리와 손발을 맞추지 않았던 직원은 1년간 신입이나 다름없다. 건축사 자격증 취득 조건이 실무 경력 5년 이상이고, 합격 비율이 낮을 때는 7~8년 단위로 이런 퇴사 주기가 찾아왔는데, 지금은 3~4년차에 다들 시험을 치르니 그 주기가 훨씬 빨라진 것이다. 이에 우리는 비슷한 연차의 직원 여럿을 두고 한두 명 퇴사해도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했다. 실장, 과장, 대리를 세 명씩 두는 식인데 이를 유지하느라 고정비 지출이 늘었다. 한편 현재 대학에서 5학년 설계스튜디오를 맡고 있는데 열세 명 전체가 서울행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의 사무실로 취직을 준비하는 경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특히 서울의 사무실별 특성과 정보를 정확하게 몰라도 막연하게 서울을 지향한다. 또한 대형 설계사무소에 대한 쏠림 현상도 뚜렷하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우수한 신입직원과 저연차의 직원은 매우 귀하다. 반면에 서울에서 개인 형편에 따라 다시 회귀하는 고연차의 인력들은 상대적으로 조금 더 있는데, 그들은 오히려 갈 곳이 없다고 한다. 지역의 전반적인 사무실 정보가 제대로 전달될 필요가 있다.

  우리도 비슷한 상황인데 팀장과 부팀장을 각각 세 명씩 두고 그 아래에 나머지 여덟 명 직원들을 배치한다. 신입 직원이 퇴사하기까지 주기를 3년으로 잡고, 그들이 나간다는 전제 아래 매년 신입을 뽑고 있다. 충원이 필요하지 않은 경우라도 만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다. 어차피 경력 사원은 구하기도 힘들다.

  직원들의 퇴사 주기가 빨라지면서 불거진 문제가 우리가 납품하는 도면의 수준이 딱 3년차에 멈춘다는 거다. 납품 이후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작업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핵심인력이라 할 수 있는 고연차 직원을 스카우트하는 방법밖에 없다.

  나도 예전에는 경력직을 뽑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바뀌었다. 경험상 직원들이 대개 입사 4~5년차에 퇴사하는데, 이는 회사에 5년차 이상 직원이 별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6년차 이상의 실장급은 인당 한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하는 시스템이라 프로젝트 수에 맞춰 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프로젝트 단위로 실장급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것이다. 나와 오랫동안 손발을 맞췄던 우리 사무실 출신의 인력풀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퇴사하고 나서 인연이 끝나는 게 아니라 이들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여러모로 도움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신입을 붙여주면 자연스럽게 업무 진행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무소 특성도 유지가 된다. 상주 인력으로 채용하려면 고정비가 많이 들지만,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나 급여 등 서로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조율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육아를 하는 사람들은 10시 출근 4시 퇴근으로 근무시간을 조정하기도 하고, 자기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주 2~3일 출근하는 식으로 상황에 맞게 협업을 하고 있다.

 

SPACE  직원교육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대체로 3~4년 주기로 직원들이 물갈이되는 현실을 인정하고 있다면, 회사의 디자인 정체성이나 완성도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가?

  아틀리에의 경우 1년차를 제외하고는 연차별 교육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은 가르칠 필요가 없고, 우리 사무실에서 추구하는 디테일 디자인에 대한 교육은 1년차든 10년차든 프로젝트별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똑같이 가르쳐야 한다. 우리 회사의 전략은 프로젝트 다이어리와 이슈 정리를 운영하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발생한 모든 협의 사항과 지시 사항을 다이어리에 빠짐없이 기록해 공유한다. 프로젝트 담당자가 바뀌어도 다이어리에 적힌 사항들만 학습하면 업무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슈 정리는 한 주간 동안 발행한 주요 사안들, 예를 들어 법규나 공무원의 요구, 누락 사항 등을 월요일에 회의할 때 담당자가 정리해 발표한다. 이때 가져온 내용들은 연차에 상관없이 모두가 주목해야 하는 이슈다. 이런 내용을 데이터화해서 학습하면 그것만으로도 큰 교육이 된다. 일종의 통합 교육인 셈이다. 나름대로 많은 시행착오 끝에 찾은 방법이다.

  유걸 선생은 “사무실은 배우는 곳이 아니라 자기 일을 하는 곳”이란 이야기를 많이 했다. 회사에 배우러 나오는 태도가 잘못됐다는 걸 지적한 말이었는데 거기에 십분 공감한다. 나는 저연차에게는 프로젝트를 직접 맡기지 않는다. 실장급 밑에 한두 명으로 팀을 짜고, 클라이언트를 컨택하는 것부터 팀 안에서 스스로 배우도록 하되 과거에 진행했던 프로젝트 자료를 서버에 체계적으로 정리해두고 어떤 폴더에서 어떤 자료를 찾을 수 있는지 링크를 공유해준다.

고 따로 교육을 하지는 않는다. 작은 규모이다 보니 바로 실무에 투입되는 구조다. 앞의 두 사람 이야기에 동의하면서도, 가급적 스스로 디자인을 해보도록 기회를 주는 편이다. 혼자 고민하다가 다시 안되겠다고 해서 가지고 오면 나중에라도 자기들이 참여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더라. 그런 부분이 담당자가 프로젝트에 애착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내년부터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교육 아닌 교육을 실시해볼까 한다. 신입 사원에게 바로 프로젝트를 주는 것이 아니라 팀장 밑에서 6개월 정도 서포트 하는 역할을 주고 어느 정도 실무에 적응이 되었을 때 개인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하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

  대형 설계사무소는 여럿이서 조직설계를 한다. 특정 리더의 디자인을 따르는 게 아니기 때문에 팀 안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이때 정림이 추구하는 디자인 경계 안에서 자율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리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디자인 리뷰부터 설계도서에 대한 기술적인 리뷰까지 긴 체계적인 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시스템 안에서 이 프로세스를 잘 따르지 않으면 시간 내에 업무를 완수할 수 없다. 그래서 교육이 필수적인데, 기존에 정림이 쌓아온 성과물을 자산으로 활용하기 위해 분야별로 정리된 아카이브 속에서 자료를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한편 회사 내 전문 부서(친환경, 기계, 구조, 견적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가이드해준다. 디지털화되지 않은 오래전 프로젝트들은 메타버스와 3D스캐닝 기술을 활용해서 데이터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SPACE  최근 워크-라이프 밸런스(이하 워라밸)를 중요시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어떤 노동환경과 복지를 제공할 것인지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불과 얼마 전까지 ‘꼰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최근 2~3년 사이에 급격하게 바뀌었다. 전에는 업무량이 많아 야근을 하면 추가 수당도 받고 일을 많이 배울 수 있으니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법적 기준에 맞춰 주휴수당, 연장근로수당도 다 지급했더니 초봉 3000만 원인 신입 직원의 실수령액이 4000만 원을 넘기더라. 하지만 직원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워라밸을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3개월 전부터 모든 야근을 없애는 대신 팀별로 프로젝트 마감일을 지키도록 했다. 공모전팀의 경우 제출을 못하면 연대책임을 묻겠다고 자율성을 줬더니 알아서 잘 돌아가더라. 물론 절대적인 업무량을 주간 시간 안에 소화해야 하니 인력을 더 투입했다. 결국 2주에 할 일을 3주에 끝내는 것을 보고 불가능한 게 아님을 느꼈다. 일상에서 여유 시간이 생긴 직원들은 스스로 작품 답사를 다니고 독서를 하면서 자기계발을 하더라. 최근 시행한 복지 중 하나는 사무실에서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기 시작한 것이다. 고양이가 온 이후로 회사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사소한 일들이 직원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고양이를 돌보느라 나는 주말에도 출근하고 있다. 하지만 사무실이 잘 돌아가고 직원들이 내 말을 잘 따라주는 것이 나의 워라밸이라 생각한다. (웃음)

  우리는 조금 다른 경험을 했다. 예전에는 사무실이 대학의 설계스튜디오 같이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그런데 집중해서 일하는 시간이 짧아지니 점차 업무 스케줄이 늘어지더라. 그래서 ‘꼰대’ 소리를 듣더라도 이를 통제할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리 얘기해도 지각하던 친구들이 지각사유서를 제출하도록 규칙을 세우니 1주일 만에 지각생이 사라졌다. 요즘 세대는 공식적인 기록이 남는 데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또 불이익을 받거나 손해 보는 일에 상대적으로 민감하다. 내가 회사생활에서 겪었던 불합리한 일들을 고치기 위해 야근 수당이나 택시비 등 기본적인 비용을 지원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런 부분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회사의 매출이나 개인의 기여도와 상관없이 인센티브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때 서운하기도 하다.

  직원 복지 가운데 직원들이 무엇보다 선호하는 것은 시간이더라. 정림은 필수근무제를 도입했다. 집중 업무시간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근무시간을 지키면 주 40시간 기준으로 업무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출퇴근이 자유롭고 각자 타임리포트를 작성해서 관리하기 때문에 개인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다만 팀 리더들은 아침 일찍 출근해 업무를 챙길 수밖에 없다. 리더들은 그만큼 업무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이런 시스템이 전체 인원이 증가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지난 해 일정 기간 야근을 많이 한 시즌이 있었는데, 그때 힘들었는지 여러 명이 퇴사를 했다. 프로젝트 계약 시부터 일정을 팀장이 세우게 하고 클라이언트 회의나 과정을 늘 함께 하기 때문에 팀에서 필요한 때 알아서 야근을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야근 수당을 따로 지급하지는 않지만 초과근무 시간과 비교해 손해 보지 않게 휴가일자를 조정하고 연말에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마감 때문에 휴일근무를 하면 끝나고 그만큼 쉬게 해주는 거다. 회사에 회계나 운영관리를 따로 하는 사람은 없고 개인이 업무시간을 엑셀의 타임 시트에 작성하게 한다.

 

 

고양이가 온 이후로

회사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사소한 일들이 직원들을

행복하게 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고양이를 돌보느라

나는 주말에도 출근하고 있다.

하지만 사무실이 잘 돌아가고

직원들이 내 말을 잘 따라주는 것이

나의 워라밸이라 생각한다.

(웃음)

 

SPACE  건축학교육 인증제도가 도입되고 대부분의 대학이 5년제로 바뀌면서 설계 중심 교육이 시행됐다. 실무 현장에서 이런 교육 시스템의 실효성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나?

  사실 그다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커리큘럼에 공학적 내용을 빼고 설계에 시간을 더 할애하고, 건축학 관련 소양교육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실무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다. 5년제 도입 후 실무수련 3년을 채우면 건축사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데, 4~5년의 경력만으로 설계사무소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4+2년제를 도입하거나 실무수련 기간을 늘리는 식으로 제도의 보완책이 필요하다.

  사용자 입장에서는 그 말에 동의하지만, 교육은 사용자 입장에서만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나도 4년제를 졸업한 뒤 대학원에서 이론을 공부했는데, 그때 읽고 배운 것들이 생각을 넓고 깊게 하는 데 큰 자양분이 됐다. 5년제 역시 독립된 건축가로 갖춰야 할 소양을 키우기 위한 제도라 생각한다. 실시도면이나 디테일 도면을 작성하고, 설계사무소 운영에 대한 커리큘럼이 생긴 것을 보면, 건축교육이 많이 내실화되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설계하지 않는 학생들이 다른 진로를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없다는 점은 아쉽다. 영국은 3+2년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3년을 채우면 학사를 인정해주고, 다른 과로 편입도 가능하다. 이런 합리적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 대학을 나와도 화장실의 스케일을 이해하고 설계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많다. 실무에 대한 교육이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진로를 일찍 결정할 수 있게 커리큘럼 안에서 한번 끊어주는 단계가 있으면 좋겠다. 보다 전문적인 교육은 설계로 진로를 결정한 사람들에게는 집중돼야 한다고 본다. 6개월이나 1년 정도 현장에서 실습을 하며 학점을 받는 등의 방법도 있을 수 있다.

 

 

건축가의 미래

 

SPACE  오랫동안 건축가로서 활동해왔는데, 지금 단계의 고민은 무엇인가?

  계속 건축을 하고 있는 자체로 의미 있고 소중하다고 느낀다. 나 스스로도 진심으로 좋아하는 공간을 열 곳 정도 설계하는 게 일단 목표다. 농담처럼 “나의 바람은 가늘고 길게 가는 것”이라 했는데, 사무소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업의 특성상 건축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다.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걸 종합해서 문제를 풀어야 하고, 그 사이에 갈등도 생기지 않나. 여기에서 오는 피로감도 극복해야 이 일을 할 수 있다.

  그 말에 동의한다. 우리도 나름 다작을 하는 회사인데 모든 작업이 매번 새로워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보니 에너지가 빨리 소진되는 것 같다. 내년이면 나도 마흔넷인데 오십도 되지 않은 지금부터 이 일을 언제까지 이렇게 계속할 수 있을지 고민이 밀려오더라.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좋은 자극을 계속 받으면서, 완급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 느낀다.

오 50대가 되니 주변에 함께 설계하던 사람들이 사라졌음을 체감하게 된다. 구조적으로 보면 40대에 젊은 건축가로 주목받았던 사람들도 자신들의 철학을 유지하지 않으면 50~60대까지 일을 꾸준히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클라이언트나 현장 소장도 연령대가 낮아지고 있는데 젊은 태도로 유연하게 일하려면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생각한 돌파구는 국내외 설계공모다. 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나의 능력을 검증받으면서 일하려면 공모전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림에는 20~30년 근속하는 사람들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 이때가 건축설계에 대한, 건축을 사랑하는 콩깍지가 벗겨지는 시기인 것 같다. 건축의 관념이나 공간, 빛에 매료되던 색안경을 벗고 현실을 바라보는 총체적 식견과 예술적 포용력이 확장되는 것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다른 차원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SPACE  건축계나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현실적으로 보면 건축가가 일하기 어려운 직접적인 원인이 심의, 인허가 제도다. 행정에서는 건축 담당 공무원들조차 소화할 수 없는 수준의 설계도서와 심의를 요구한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전문위원들한테 요청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늘어난다. 결과가 중복되고 상치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부수적인 일에 업무가 과중하게 치중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설계공모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공공 건축의 품질을 향상시키고 공정한 심사를 하기 위해 긴 시간 고생하여 공공건축제도를 만들었는데, 제도만 만들 게 아니라 그것이 건강하게 실행되도록 관계자, 감독자들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설계비를 제대로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회사로 설계 문의가 들어오면 처음부터 우리 기준의 설계비를 공개하고 있다. 이를 높다고 느낀 분들은 자연히 신생 사무소 쪽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발주처가 민간이든 공공이든,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느 정도 대중에 알려진 사람들이 받는 대가 기준이 올라가야, 신생 건축사들이 진입할 수 있는 설계 시장의 단가도 올라가지 않겠나.

  큰 문제 중 하나는 대형 건축사사무소와 아틀리에 사이에 중간 규모의 사무실들이 사라지는 것이다. 사실 양극화와 불균형은 건축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자본주의가 심화되며 나타난 현상이라 뚜렷한 타계책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피라미드 구조라 하더라도 모든 계층이 존재하는 건강한 산업생태계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함께 고민할 시점이다.​​ (진행 김정은 편집장, 방유경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고영성
고영성은 한양대학교 대학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솔토건축사사무소를 거쳐 2011년 디자인연구소 이엑스에이를 개소했다. 이후 2013년 포머티브 건축사사무소로 이름을 변경해 현재까지 다수의 감성적이고 실험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공간의 표면보다 그 본질의 진정성에 주목하는 건축을 지향한다.
기현철
기현철은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와 프랑스 보르도 건축학교 EAPBX를 졸업했다. 베르나르트 뷜러 건축사무소를 거쳐 2008년부터 정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디자인과 기술의 융합, 조직설계 프로세스 고도화를 담당하고 있다.
김정임
김정임은 주식회사 서로아키텍츠의 대표이다.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건축가 김인철, 서혜림, 유걸의 사무소에서 20여 년간 다양한 실무를 경험하고 2012년 서로아키텍츠를 설립하였다. 현대사회를 구성하는 요소들 간의 상호작용과 관계성을 고찰하고 다양한 사용 풍경을 담는 총체적 환경을 만드는 것에 흥미가 있다.
오신욱
오신욱은 주식회사 라움건축사사무소의 대표로, 현재 동아대학교 겸임교수 및 부산시 공공건축가로 활동 중이다. 동아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고, 「건축설계 과정에서 스키마의 의미와 작용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들띄우기와 흰색건축’에 대한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최근 『자존감건축』을 출간하면서 지방 건축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하고, 지역 건축의 자존감을 올릴 수 있는 건축 풍토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