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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설계업을 크리틱하다] 직업인으로서의 건축가를 생각하는: 5년차 이상 이야기

진행
박세미 객원기자, 이화연 기자

SPACE(공간)2022 11월호 (통권 660)

 

직업인으로서의 건축가를 생각하는 : 5년차 이상 이야기

 

송재욱 건축사사무소 송곳, 이세나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임세라 네리&후 디자인 앤드 리서치 오피스, 최유미 매스스터디스

×​ SPACE 

 

 

설계업에 몸담기까지

 

SPACE  모두 건축 관련 학과를 졸업했다고 알고 있다. 졸업할 때 시공사나 유학 등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을 텐데, 그중에서 첫 직장을 선택하게 된 계기나 배경 등 이 업에 오기까지 경로가 궁금하다.

최유미(최)  설계판에 처음 발을 들일 때는 하나의 프로젝트를 전반적으로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 생각해 교수의 소개로 작은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사전에 전달받은 것보다 인원이 더 적었고 소장, 실장 두 분과 일하면서 배우기엔 쉽지 않을거라 판단해 6개월 만에 퇴사했다. 두 번째 회사는 12인 규모의 아틀리에인 제이와이아키텍츠였다. 그곳에서 실무를 2년 정도 익혔는데, 규모나 프로그램 측면에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싶어 중규모 아틀리에인 매스스터디스(이하 매스)로 이직해 현재까지 일하고 있다. 일한 기간을 모두 합하면 이제 7년차다.

임세라(임)  휴학 기간 중 일본의 소우 후지모토 아키텍츠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국내로 돌아와 매스에서도 인턴을 했고, 이후 미국 유학 준비를 마치고 입학절차만 남겨둔 시점에 결혼을 계기로 유학의 목적에 대해 다시금 고민이 생겨 유학을 미루게 됐다. 마침 남편은 사업차 중국으로 가야 했고 같이 중국으로 가게 됐다. 중국에 머무르면서 미뤄뒀던 미국 유학을 다시 가려고 고민하던 중 남편과 상하이에 휴가를 갔다. 이전부터 린든 네리와 로잔나 후의 건축을 좋아해 그들의 건축물들을 보러 다니곤 했다. 하루는 그들이 설계한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다 우연히 그들과 마주쳤다. 남편이 그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넸고 아내인 내가 건축을 공부했다고 소개하자 네리는 흔쾌히 다음날 그의 회사에 우리를 초대했다.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레 내가 이전까지 작업했던 것들을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고, 바로 그 자리에서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미뤄둔 미국 유학을 고민하던 중에 상하이에서 일한다면 남편과 떨어지지 않아도 되고, 건축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 상하이에 남기로 결정했다. 현재까지 네리&후 디자인 앤드 리서치 오피스(이하 네리&후)에서 6년 넘게 일하고 있다.

이세나(이)  어릴 때부터 건축가가 꿈이었던지라, 막연하게 설계를 할 생각이었지만 4학년을 마친 후 아직 취업하기에는 준비가 안된 것 같아 휴학을 했다. 휴학 중 은퇴한 교수 연구실에 용역 관련 일을 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책도 보고 공부를 하는 과정에 흥미를 느껴 대학원에 진학했고, 이론 연구실로 들어갔다. 당분간은 설계업과 멀어진다는 생각에, 미리 조금이나마 경험해보고자 5학년 때 인턴으로 작은 아틀리에에 들어갔다. 8~9개월 정도 지나니 프로젝트의 규모가 다소 제한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프로그램이 대부분 주택이었고,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큰 회사를 가야겠다는 결심이 들었고 대학원을 졸업할 때쯤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삼우)에 공채로 지원해 입사하게 됐다. 지금은 6년차다.

송재욱(송)  학생 때부터 설계업을 지망했지만 취업을 준비할 때는 사실 건축 말고 다른 길을 모색하려 했다. 그런데 5년이라는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그만두더라도 설계판이 어떤 곳인지는 알게 됐을 때 그만두고 싶었다.첫 직장은 중대형 아틀리에인 에스케이엠 건축사사무소(이하 에스케이엠)였다. 입사하자마자 연면적만 5만 평이 넘는 부산의 아난티 코브 현장으로 2년간 파견됐다. 큰 규모의 현장에서 배운 것도 많았지만 좀 더 손에 닿는 느낌의 경험을 하고 싶어서 사무소효자동(이하 효자동)으로 이직했다. 오랜 기간 동안 소규모 인원으로 운영함에도 불구하고 높은 퀄리티를 꾸준하게 만드는 곳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사무소를 차릴 생각도 있었기에 소규모 아틀리에는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지도 경험하고 싶었다. 효자동을 다니던 중에 건축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 후 1년 정도는 프리랜서처럼 일했는데, 당시 주변에 설계하는 동료들이 생각보다 일찍 독립을 하거나 작업실을 차리더라. 친구들이 비교적 가뿐한 마음으로 독립하는 걸 보고 ‘사업자등록증 없이 내 작업실을 마련해볼까’ 하고 내 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사업자등록증을 내어 건축사사무소 송곳(이하 송곳)을 차렸다. 설계업에 몸담은 지는 8년차고, 사무소를 운영한 지는 1년 조금 넘었다.

 

SPACE  대부분 6년차부터 8년차 정도 되었는데, 연차마다 갖는 고민이 각각 다르다. 이제는 중간 관리자의 위치를 갖게 됐을 것 같다. 이 기간을 지나오면서 어떤 고민과 변화를 겪었나?

  한국에서 건축교육을 받고 해외 설계사무소에 취직했기 때문에, 다양한 국적 배경의 회사 분위기 속에서 프로젝트 아키텍트 단계까지 어떻게 갈 수 있을지 걱정도 됐다. 회사 동료 대부분은 각자의 나라에서 석사 과정을 마친 후 취직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부분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내가 어떤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컸다. 다행히 첫 프로젝트로 서울의 설화수 플래그십 스토어를 맡아 한국인인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많았다. 두 번째는 중국 프로젝트였는데, 중국 문화에 적응도 해야 하고 현장도 컨트롤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능력이 점점 갖춰지다 보니, 일이 더 재밌어졌다.

  입사 초반에 납품이 끝난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업무 파악이 힘들었고, 동기보다 뒤처진 느낌이 들었다. 그때마다 선배가 시간이 지나면 실력은 다들 비슷해지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라고 위로해줬다. 그러다 인천공항 프로젝트팀에 들어가 기본설계부터 실시설계까지 참여했는데, 그림을 점차 건물로 정리해나가는 과정이 재밌었다. 다음으로 진행한 모듈러 프로젝트는 일반적으로 삼우에서는 담당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 그렇기에 참여 인원이 적었고 내 담당 비중이 높아지면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흥미를 갖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앞으로 제너럴리스트로 자리 잡을지,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할지와 같은 커리어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들더라.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흥미를 갖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됐다

이 과정에서 앞으로 

제너럴리스트로 자리 잡을지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할지와 같은 

커리어의 방향성에 대한 

고민이 들더라

 

설계업에서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나 

 

SPACE  한국 건축계를 들여다보면, 스타 건축가들이 존재하고 그 명성을 빌어 사무소를 키울 수밖에 없는 한계에 봉착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설계업에서 다른 생존 체계는 없는 것일까? 일하면서 잃은 것은 무엇이며, 그럼에도 이 일을 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팀원은 열 명 가까이 되고 내 위치는 중간 직급 정도다. 팀장들이 실무 관련 인허가 문제에 대해 결정해주면, 다른 직원들에게 일을 분배한다. 저연차일 때는 주어진 일만 했지만 중간쯤 되니 큰 그림을 고민하게 된다.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건축주의 의도를 어떤 식으로 구현하는지 등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매스가 가진 최고의 장점은 모든 프로젝트가 재미있다는 점이다. 프로젝트마다 개성이 있는데 그때마다 조민석(매스스터디스 대표)이 문제를 풀어가고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모두 다르다. 그 과정에서 대표가 말하고 싶은 의도나 해결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다. 일하면서 얻은 것을 꼽자면 목디스크다. (웃음)

  네리&후는 주니어 아키텍트, 시니어 아키텍트 그 위에 어소시에이트, 가장 위에 린든 네리와 로잔나 후가 있는 구조다. 보통 시니어 아키텍트가 프로젝트 관리를 맡고, 어소시에이트는 여러 프로젝트를 관리해서 나는 시니어 아키텍트로서 어소시에이트 감독하에 프로젝트를 이끄는 역할을 한다. 프로젝트 진행은 처음부터 네리와 후가 큰 방향을 정해서 우리에게 전달하기도 하고, 반대로 우리가 정해서 그들에게 제안하기도 한다. 일곱 명 정도 되는 어소시에이트들이 대부분 10년 넘게 일했기에 두 건축가가 사용하는 건축의 언어와 방향을 잘 파악하고 있고, 그렇기에 회사에서 많은 프로젝트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회사 시스템이 많이 바뀐 것도 한몫한다. 자신의 나라에서 재택근무를 하는 인원 비율이 10%나 된다.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팀원들도 상하이, 런던, 밀라노, 벨기에 등에 있다. 업무시간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기보다는 유연하게 일하는 편이다. 나는 아이가 있어 밤에 일하는 게 편한데 유럽에 있는 팀원과 시간이 잘 맞더라. 각자의 나라에서 유연하게 재택근무를 하는 업무환경이 현재 육아를 병행하는 내 상황과 잘 맞는다.

  삼우는 신사업이나 기술 개발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레빗이나 코딩 관련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직원들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는 거다. 더불어 공항과 같은 대형 규모의, 특별한 용도의 프로젝트를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공항은 일반인은 갈 수 없는 보안구역이 있는데, 그러한 내부 시스템을 알아가며 설계를 하는 부분이 재밌었다. 사내 프로젝트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여기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들을 최대한 다양하게 쌓고 싶다.

  에스케이엠은 해마다 꾸준히 신입을 뽑아, 15~20년 되는 연차부터 신입까지 고르게 분포되어 있었다. 반면 자유로운 분위기는 아니었고, 업무 강도도 높은 편이었다. 효자동은 내가 다닐 땐 네다섯 명 정도 있었고 비슷한 연차의 동료들이었다. 그래서 팀 작업보다는 크고 작은 다수의 프로젝트를 혼자 도맡아 진행해야 했다. 덕분이라 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효자동의 방식을 압축적으로 경험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SPACE  지금 다니고 있거나, 다녔던 사무소를 운영하는 건축가들의 어휘를 내재화하는 단계가 있는 것 같다. 이 과정이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알파벳을 알고 문법을 알아도 작가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 건축가가 좋은 작품을 완성했을 때, 이 작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까지 이해해야 알파벳을 넘어 문장 전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어휘를 내재화하는 건 그 과정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어휘를 내재화한다는 것은 일의 효율성 면에서는 유용하지만, 독립이 목표인 사람에게는 양면성을 가진다. 맹목적으로 비슷하게 될 가능성이 있고, 실제로 출신 사무소 소장과 표현의 결이 비슷한 건축사사무소가 많다. 설계 과정에서 어휘를 무조건적으로 습득하지 않고, 함께 고민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SPACE  5년차 이상이 되면 자신이 속한 조직을 넘어 설계업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생겼을 것 같다. 한국 건축계의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또한 어느 업계나 자신이 받는 연봉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마련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설계업이 돈을 더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먼저 매스의 업무환경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초과 근무시간에 대하여 야근 수당을 지급한다. 가능한 한 근무시간이 초과되지 않도록 하나, 설계공모 등 어쩔 수 없이 초과 근무시간이 발생할 경우 대체휴가를 지급한다. 입사 당시에는 야근시간에 대한 제한이 없었는데 1년 전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이 되면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설계업 특성상 야근이 필요해서 정시 퇴근을 할 수 없을 때가 있지 않나. 신입 때는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업무환경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공감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주 52시간 근무제와 같은 규제들이 생기면서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설계업에서 야근이 많은 원인은 결국 건축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업무환경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사회에서 건축 디자인을 바라보는 인식의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주 52시간 제도로 인해 예전보다 야근시간이 줄은 것은 맞지만, 여전히 편법을 이용해 과하게 야근을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야근과 관련한 업무환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설계업에 대한 건축주의 인식 자체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음악이나 영화 등에는 창의성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주는 분위기지만, 건축에 대해선 그런 인식이 적어 보인다. 요즘에는 인테리어 디자인을 직접 하는 추세도 생기다 보니, 설계비를 더 많이 주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낮은 임금으로 몸을 갈아 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게 아닐까.반면 설계비 상승과 관련한 긍정적인 흐름도 있다. 내가 참여했던 공항 프로젝트는 현재 시공 중인데, 2020년에 고시된 ‘공공건축 설계의도 구현 업무수행지침’에 따라 업무 수행에 대한 대가를 받으며 디자인 감리를 진행하고 있다. 지금은 이 제도가 공공건축에 국한되어 있지만, 더 확대되면 우리가 원했던 대로 구현되는 건축물이 늘어나고, 건축 퀄리티의 상승과 함께 설계인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전반적인 설계업의 노동환경에 대해 딱 잘라 하나의 표준으로 말하기에는 우리가 모르는 범위가 많아졌다고 생각한다. 브랜딩이나 시공 등 다양한 업무를 겸업하는 사무소가 많아지면서 업역이 확장됐다. 설계만의 부가가치보다는 브랜딩이나 시공에서 창출되는 이익이 훨씬 많으니 이런 쪽으로 기댈 수밖에 없게 된 것이 현재 설계업의 한계이지 않을까.

  일본의 소우 후지모토 아키텍츠에서 일했을 때 그곳의 업무환경에 다소 놀랐었다. 3일 내내 집에 안 가는 직원들도 있었고, 모두들 야근에 대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네리&후의 업무환경은 사뭇 다르다. 프로젝트의 마감이 있는 경우에는 물론 야근을 하지만 대부분은 정해진 시간에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하는 편이다. 더불어 한국에서는 연봉이 연차별로 정해져 있지만 네리&후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매년 연봉 협상을 한다. 신입도 회사에서 경쟁력을 갖춰 회사에서 꼭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된다면 자신의 연봉을 높게 제시해볼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다. 제도적으로 설계업에 바라는 점은 아이를 키우는 여성도 일할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이다. 다행히도 네리&후는 나처럼 워킹맘들이 많아서 회사에서 정시에 퇴근할 수 있도록 돕는 편이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지 궁금하다.

 

SPACE​  지역에 따라 업무환경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상하이는 건축업에 대한 평가나 설계비가 높게 책정되는 편인가?

  데이비드 치퍼필드 아키텍츠, 켄고 쿠마 앤드 어소시에이츠 같은 글로벌 건축설계 회사들의 아시아 본부가 상하이에 위치한다. 또한 유명 대형 건축설계사들도 중국에 본부를 많이 두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설계업의 초봉이 한국보다 높게 책정된 분위기다. 다소 오래된 얘기지만, 처음 상하이로 갔을 때 중국은 건축가를 고연봉의 전문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소규모 인테리어 프로젝트의 경우라도 중국은 설계비와 시공비를 구분하여 지불한다. 그만큼 설계에 대해 비용을 지불한다는 인식이 일반인에게도 깔려 있다. 그래서인지 상하이에서 독립한 친구들을 보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안정적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는 것 같더라.

 

SPACE  국내에서 설계업과 관련된 대표적인 제도로 ‘건축학교육 인증제도’나 ‘건축사 자격증’을 꼽을 수 있다. 이런 교육이나 제도적 시스템이 실무에 있어서 얼마나 뒷받침을 해주는가?

  학교교육이 실무에 치중되어 기능인을 배출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무에 어떤 내용이 구성되어 있는지 정도는 익힐 수 있도록 도와, 1~2년차 때 현장에서 느낄 당혹감을 완화시켜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건축학과에 지원한 학생 모두가 건축가가 되고 싶었을까? 건축가를 지망한 경우라면, 지금의 커리큘럼이 적절하다고 본다. 다만, 건축에도 다양한 갈래의 분야가 있는데 나에게 어떤 분야가 맞는지 파악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다. 소규모 아틀리에와 대기업의 업무환경도 다른데, 이런 정보를 접할 기회도 부족했다. 세부 분야에 대해 미리 접할 기회가 있다면, 진로를 결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대부분의 수업이 설계에 치중돼 있다. 건축의 시작과 끝에는 많은 과정이 있는데, 설계를 제외한 그 밖의 과정은 5년에 한 번꼴로 곁다리처럼 배운다. 때문에 점차 배움이 깊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발적으로 흩어지는 경향이 있다. 더불어 설계 수업은 교수의 주관적인 의견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교수의 스타일에 따라 프로젝트 평가의 편차가 커서 필요 이상으로 위축됐다. 학교를 다닐 때 ‘내가 진짜 건축을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오히려 회사에 들어와 많은 단계를 경험하고 나니, 그중에서 내가 잘하는 부분을 발견해 자신감이 생겼다.

  유럽이나 미국 건축에 비해 동아시아 건축에 대한 교육 내용이 미비하다. 현재 건축의 트렌드가 아시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해외에서도 아시아 건축에 집중하는데 오히려 우리가 그 가능성을 제대로 못 보는 것 같다. 한국 건축교육이 생각해볼 지점이다.

  나는 건축사 시험을 재밌게 준비했다. 방식에 대한 의문점과 비판은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 시험을 통해 얻은 것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3~4년차 정도 되면 뭔가를 할 줄은 아는데 정확히 어떤 개념인지 모른 채 어렴풋하게 가늠하는 상태가 된다. 건축사 시험은 이런 개념을 공식화해 주입시켜준다. 소위 ‘집장사’ 같이 우리가 비난하는 문제 상황들과 수많은 건물들이 왜 생기게 됐는지 구조적으로 이해하게 되는 등 새로운 관점도 얻게 된다.

  건축사 시험에는 대부분 작은 규모의 건물과 관련한 문제가 출제된다. 주로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다루는 내가 숙지해야 하는 법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나에게 건축사 시험 준비는 그저 시험을 위한 공부인 거다. 더불어 응시 요건을 위해 실무수련 기간을 증명할 때, 설계 단계별로 얼마의 기간을 할애했는지 기재해야 하는데 호흡이 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경우에는 해당 요건을 충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프로젝트 규모에 따라 하는 업무가 천차만별인데, 건축사 시험은 다양한 업무 상황을 수용하지는 못한 것 같다.

 

유럽이나 미국 건축에 비해

동아시아 건축에 대한

교육 내용이 미비하다.

현재 건축의 트렌드가 아시아에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해외에서도 아시아 건축에 집중하는데

오히려 우리가 그 가능성을

제대로 못 보는 것 같다.

한국 건축교육이 생각해볼 지점이다.

 

설계판을 조망해보면

 

SPACE  고민도 많고, 바뀌어야 할 것도 많은 설계판이다. 다시 나로 돌아와서 이 업을 대하는 나의 직업관은 무엇인가?

  이제는 어느 정도 이 업의 전문가로 자리 잡아,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게 됐다. 건축가는 생각보다 좋은 직업이다. 능력이 축적되기 때문에 잠시 쉰다고 해서 돌아오는 것이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아이를 키우면서 하나의 업을 오랫동안 이어갈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하다.

  뿌듯함을 주는 일을 하고 싶고, 설계업이 나에게 그렇다. 마치 하나의 작품처럼 완성하고 나면 느껴지는 보람이 있어 계속 설계를 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멸칭으로 ‘허가방’, ‘건축업자’라 불리기도 한다. 한때는 멸칭으로 불리는 부류와 나를 구분 지으려 했다. 그런데 건축가가 되기 이전에 건축업자부터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더라. 우리가 흔히 허가방이라고 이르는 업자들이 오히려 사회의 요구에 더 적절하게 부응할 때도 있다. 건축가가 되기 이전에 건축업자로서 내공을 잘 쌓아야 비로소 좋은 건축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질문인데 건축사사무소를 차리고 용도변경 업무와 같은 소위 허가방에서 진행하는 일이 의뢰로 들어왔을 때 수락하는가?

  숙련된 업무가 아니라서 원래는 거절했다. 최근에는 견적을 내드린다. (웃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건축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계기가 ‘러브하우스’였다. 건축가의 일이 사람들에게 공간을 통해 이로움을 베푸는 일처럼 보였다. 실제 현실은 이상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중에도 이로움을 베푸는 작업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이 일을 계속하게 될 것 같다.

 

SPACE  마침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 것인가?

  현재 나의 주 관심사는 육아와 병행하는 건축인의 삶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미래에 독립을 하든 어느 회사에서 일하든 육아와 나의 일을 조화롭게 또 지속가능하게 함께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매번 지나는 경험 중에 관심이 생기는 것이 있으면, 비록 그것이 설계와 관련이 없더라도 최대한 공부해보고 있다. 그러다 보면 건축이 갖는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 조금은 확장된 영역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건축을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속가능이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화두이지만, 이제 첫발을 내딛는 단계인 나에게는 깊게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다. 어떤 자리와 형태를 꿈꾸기보다는 나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직원과 후배들에게도 이 즐거운 일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는 것이 목표다.

  이 일을 좋아하는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고 독립하는 것이 목표다. 좋아하는 일도 업으로 하다 보니 종종 초심을 잊게 된다.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쉬운 답을 선택하지 않고 집요하게 고민하는 것이, 어려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처음 건축가를 꿈꿨던 때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바람이자 다짐이다.​ (진행 박세미 객원기자, 이화연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송재욱
송재욱은 졸업 후 에스케이엠 건축사사무소를 약 3년 다닌 뒤, 사무소효자동에 근무했다. 현재는 독립해 건축사사무소 송곳을 1년 넘게 운영 중이다.
이세나
이세나는 4학년을 마치고 휴학했다가 대학교 5학년 재학 중 소규모 아틀리에의 인턴으로 근무한 후 대학원에 진학했다. 현재는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에 6년 정도 다니고 있다.
임세라
임세라는 학교를 다니던 중 2년 정도 휴학했다. 휴학 중 소우 후지모토 아키텍츠와 매스스터디스에서 인턴을 했고, 유학을 가려던 차에 결혼을 계기로 중국에 가게 됐다. 현재 상하이에 있는 네리&후 디자인 앤드 리서치 오피스에서 6년 넘게 일하고 있다.
최유미
최유미는 교수의 소개로 작은 사무실에서 6개월을 일한 뒤 제이와이아키텍츠에서 2년여 간 실무 경험을 쌓았다. 현재는 매스스터디스로 이직해 3년 넘게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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