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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설계업을 크리틱하다] 기로에 선 핵심인력: 3~4년차 이야기

진행
박지윤 기자

SPACE(공간)2022 11월호 (통권 660


기로에 선 핵심인력: 3~4년차 이야기

전중섭 푸하하하프렌즈, 정은호 전 해안건축, 정필란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하혜림 전 매스스터디스 

×​ SPACE


회사 선택의 기준은 어떻게 변할까?


SPACE  설계업에 몸담은 지 3~4년이 흘렀다. 모두 첫 사무소를 거치고, 이직 혹은 퇴사를 한 상태다. 먼저 첫 사무소를 선택한 기준부터 이야기를 나누어보자.

정은호  2019년도에 명지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100명 넘게 입학을 하는데 80% 이상이 아틀리에를 가기에 나도 막연히 아틀리에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4학년 때 학부 연구생들과 함께 국내 젊은 건축가들이 독립하기까지 거쳐온 발자취를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미국 혹은 한국의 대형 설계사무소에서의 경험을 장점으로 꼽았다. 20년에서 많게는 60년 이상 지속된 대형 설계사무소에서 기획력 있는 디자인을 어떤 방식으로 구현하는지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때 생각이 한번 전환됐다. 비슷한 시기에 해안건축(이하 해안)의 장기임대 100만호 기념사업 설계제안서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대형 설계사무소는 사업성이 우선시된다고 생각해 디자인 부분을 기대하지 않았는데, 제안서에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방향과 디자인의 결과물이 설득력 있게 담겨 있었다. 그러다 5학년 때 LH 공모전에서 큰 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공동주택 프로젝트에 관심이 생겼고, 최종적으로 해안에, 그 설계제안서를 작성한 팀에 들어가게 됐다. 물론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했다. 해안 8본부( 3부문) 설계공모와 실시팀에서 4년간 실무를 하고, 유학을 결심하게 되면서 회사를 나오게 됐다.

정필란  1, 2학년 때 건축사무소 견학이나 멘토링 같은 프로그램으로 실무자와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때 경험했던 부산의 건축사무소 중 아이엔지건축사사무소(이하 아이엔지)의 분위기가 가장 좋았다. 한마디로 활기차고 밝은, 크리틱을 서로 자유롭게 주고받는 젊은 느낌이었고, 면접 때도 동일한 인상을 받았다. 풍기는 분위기가 그 회사를 가장 정확하게 대변해줄 때가 있지 않나. 실무를 해보니 실제로 수직적인 구조가 아니었다. 아이엔지 실시팀에서 4년간 실무를 하고 지금은 서울로 올라와 간삼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이하 간삼) 미래환경디자인본부에서 일한 지 4개월이 됐다

하혜림  학교도 늦게 들어갔고 휴학도 몇 번 한 상태여서 독일에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마음이 급했다. 구체적인 계획 없이 아틀리에 여러 곳에 지원을 했는데 몇 군데에서 연락이 왔다. 그런데 면접을 봤던 한 소장이 “우리 사무소도 괜찮지만 나는 네가 매스스터디스(이하 매스) 같은 조금 더 큰 아틀리에를 갔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친한 교수들도 하나같이 매스에 가라고 하더라. 모두들 커리어적으로 매스가 좋은 출발선이 될 거라 생각한 것 같다. 매스에 가서 맡은 첫 프로젝트는 밤섬 당인리 라이브였다. 열 명 정도의 인원이 투입된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담당하다 보니, 전반적인 일을 차근차근 배우기보다는 발전소 리노베이션이라는 특수한 프로그램의 작은 부분을 배우게 됐다. 그래서 가끔 매스보다 더 작은 규모의 사무실에 갔다면 프로젝트 전반의 프로세스를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기도 한다. 매스에서 일한 기간은 총 3 6개월이고, 지금은 회사를 쉬면서 독일 유학 준비와 건축사 시험 공부, NFT 아트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전중섭  인턴으로 근무한 첫 아틀리에의 정직원 연봉이 예상보다 낮아 놀랐다. 주변 아틀리에도 비슷한 사정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직원 전환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만뒀다. 그후 6개월 정도 쉬면서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했다. 카페에서 포트폴리오 작업을 했는데, 당시 인테리어 위주로 디자인하는 더퍼스트펭귄(이하 펭귄)이 작업한 카페에 자주 가게 됐다. 학교에서 만들던 흰색 벽이 아니라 구체적인 재료가 더해져 있었고, 감각적이기까지 했다. 이후 펭귄에서 일을 하다 보니, 인테리어 스케일에서 할 수 있는 것들과 건축 스케일에서 해야 할 것들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건축사사무소에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고, 2년 뒤 푸하하하프렌즈(이하 푸하하하)로 이직했다

 

SPACE  계속 다니던 회사를 옮기거나 그만둘 때는 첫 회사를 선택할 때보다 조금 더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움직였을 것이다.

전중섭  언젠가는 독립을 할 생각이다. 그래서 조금 더 많은 인원을 가진 사무소는 업무 분배를 어떻게 하는지, 운영의 관점에서 배우고 싶었다. 펭귄의 구성원은 열세 명 정도고 한두 명이 한 개의 프로젝트를 이끈다. 팀 내에 사람이 많아질수록 효율은 떨어질 텐데, 어떻게 운영하는지 경험하고 싶었다. 다양한 용도의 건축물을 다뤄야 한다는 기준도 있었다. 50명 정도 규모인 원오원 아키텍스나 매스 혹은 조금 더 작은 규모인 푸하하하를 생각했는데 그때 마침 푸하하하에서 구인을 하고 있었다. 푸하하하도 열세 명으로 펭귄과 규모는 비슷하지만 소장이 세 명이라는 점과 팀 구성 방식이 다르다. 소장 한 명당 두세 명의 직원을 두고, 직원들은 2년 단위로 돌아가며 다른 소장 아래에서 일한다. 사실상 4인 아틀리에가 세 개 있는 회사인 거다

정은호  대형 설계사무소는 3~4년차 시점에서 자신이 주력한 용도의 설계에 전문성을 가질지 혹은 다른 용도의 건축물로 영역을 넓힐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 대형 조직은 개인이 익숙하고 잘하는 것을 계속 더 잘해나가야 하는 구조다. 나 또한 공동주택을 4년간 담당했는데, 나는 내 이름을 가진 사무소를 언젠가 차릴 계획이니 영역을 넓혀야 했고, 자연스레 퇴사를 결정했다. 사실 최근에는 해안도 직원 개개인의 경험과 역량을 넓혀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 ‘본부’가 약 50명 단위로 운영됐는데, 본부 세 개를 합해 150명 정도로 꾸려진 ‘부문’을 작년에 만들었다. 부문을 만들고 나니 실제로 부서 간 이동이 원활하게 일어났다. 큰 사업의 경우에는 주거 프로젝트라도 주거의 용도만 들어가는 경우가 드물다. 다양한 분야의 인력이 한 팀을 꾸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구조가, 회사에서도 필요한 개선이었다. 중요한 변화는 관리자들도 실무자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는 거다

정필란  나 또한 업무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이직했다. 아이엔지는 관공서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주로 다루고, 나의 경우에는 학교와 운동시설 같은 한정적인 용도만 담당했다. 3년차가 되었을 때,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있었다. 아이엔지는 부산에서 규모가 크고 복지가 좋은 편에 속했다. 이보다 더 다양한 용도, 더 나은 복지 환경을 접할 수 있는 곳을 찾으니 서울에 선택지가 많았다. 정은호가 언급한 것처럼, 능력이 검증된 일을 시키기를 원하는 대형 설계사무소의 생태계를 알았기에 실시 경력을 어필했고, 현재 실시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 언젠가는 설계공모팀에 들어갈지도 모를 일이다아이엔지는 실시팀과 설계공모팀이 명확히 구분되었다면, 간삼은 적게는 25명 많게는 50명 정도의 인원으로 본부가 꾸려지고, 그 안에서 설계공모와 실시에 대한 인력 구성이 유동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혜림  졸업 후 1년 정도 쉬다가 독일에서 3개월 간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활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가고 싶은 사무소가 많지는 않았다. 명확한 스타일을 가지고 자신의 건축을 하는 곳이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입사하게 된 매스는 다양하고 유명한 건축주와 프로젝트를 만날 수 있었지만, 일 배우는 속도는 같은 연차의 다른 소규모 아틀리에에 다니는 친구들보다 더뎠다. 더불어 아무래도 이름 있는 건축가가 소장이다 보니 소장의 설계 스타일을 따르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주어진 방향으로만 일을 하다 보니 어렴풋이 건축사 시험을 응시할 수 있을 때쯤 독립이나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입사한 뒤로 해가 세 번 바뀌었고, 올해 7 1일부로 퇴사하게 됐다.

전중섭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사무실을 원했다면, 강한 건축 철학을 가진 건축가가 운영하는 사무실이 안 맞았을 거다. 푸하하하는 기존의 작가 사무실과는 비교적 다른 업무환경인 것 같다. 다른 소장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을 강요하는 스타일이라 한다면, 푸하하하 소장들은 싫어하는 것만 공유한다. 싫어하는 것만 합의가 되면 뭐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처음 기획부터 소장과 직원이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시작하고, 직원의 생각이 더 좋다고 판단되면, 소장이 직원의 안을 발전시키기도 한다. 내 주도권이 생각보다 많아 당황스럽기도 했다. (웃음)

 

대형 설계사무소는 3~4년차 시점에서

자신이 주력한 용도의 설계에 전문성을 가질지

혹은 다른 용도의 건축물로 영역을 넓힐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다.

나 또한 공동주택을 4년간 담당했는데,

나는 내 이름을 가진 사무소를 언젠가 차릴 계획이니

영역을 넓혀야 했고,

자연스레 퇴사를 결정했다.

사무소에 3~4년차는 왜 없을까? 

 

SPACE  설계업에서 ‘3~4년차가 사무소에 없다’는 말이 통용되고 있는데, 그 이유를 짐작해보고자 한다. 건축사 시험을 이유로 퇴사를 하는 3~4년차들이 있다. 일과 시험 준비를 병행하는 현실은 어떠한가? 이러한 여건을 사무소 차원에서 지원해주는 게 가능한가

하혜림  사무소를 다니며 건축사 시험을 준비하기란 체력적으로 쉽지 않다. 시험이 한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 이제는 정말 공부를 해야겠다는 압박감이 든다. 9시든 10시든 퇴근해 과제를 하나 풀고 나면 12시가 넘는다. 도저히 밤에 공부하기가 어려울 때는 아침에 한두 시간 더 일찍 일어나 공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과 시험 준비가 전부인 일상이 반복된다.

정은호  퇴사를 한 후 유학을 위한 어학 공부를 잠시 멈추고 건축사 시험 준비에 집중했다. 친한 건축사사무소에 가서 한 달간 실제 시험과 같이 1, 2, 3교시를 설정해 해당 과목의 문제들을 풀었다. 시험 준비를 위해 퇴사를 한 것은 아니고, 시기가 맞았을 뿐이다. 변호사나 세무사를 위한 시험은 고시원까지 들어가 소위 목숨을 걸고 준비하는데, 우리는 일을 하면서 준비한다. 그게 가능할 정도로 비교적 쉬운 시험이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여건이 되니 취득하는, 졸업장과 같은 느낌도 있다. 3년차가 되면 건축사 시험을 위해 학원 등록을 해주는 6인 아틀리에도 있다. 옆자리에 제도판을 두고 바쁘지 않은 시간에는 공부도 할 수 있단다. 소규모 아틀리에의 입장에서는 건축사를 취득한 직원들을 두면, 대표 건축사가 경고를 받아 건축사 자격이 일정 기간 정지 혹은 취소 됐을 때 대체할 여지가 생긴다고 한다. 시행사가 사무소와 계약할 때 사무소 내부 등록건축사의 인원수도 중요한 평가 요소인 것으로 알고 있다. 큰 규모의 프로젝트를 수주하려는 중규모 이상의 사무소에서 등록건축사를 환영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처럼 사무소 입장에서 건축사를 취득한 직원이 필요하다면, 시험을 지원해줄 이유는 충분하다. 그러나 시험 공부를 회사에서 지원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 단기적으로 준비해 한번에 합격하는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5년이 걸리면 5년 동안 지원을 해주어야 하는 셈이다. 오히려 취득 후 보상에 적극적인 것 같다. 재작년까지 어느 대형 설계사무소는 건축사를 취득하면 연봉을 올려줬고 지금은 인센티브처럼 현금으로 준다고 들었다


SPACE  해안과 같이, 연봉과 복지가 좋다고 알려진 특정 회사에 3~4년차가 몰려 있지는 않는가

정은호  해안 내에 ‘해안이 설계업의 무덤이다’라는 농담 같은 말이 있다. 설계를 하고 싶으나, 연봉과 복지로 인해 사무소를 전전하다 여건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해안에 마지막으로 오는 거다. 그럼에도 해안에서 같은 불만이 생기면, 건축 관련 직종인 시행, 건설, 투자운용 쪽으로 많이 이직한다. 실제 해안으로 3~4년차뿐 아니라 많은 연차들이 온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워크-라이프 밸런스가 좋지 않아 퇴사하는 경우도 많다. IT, 제조업에 종사하는 친구에게 물어 보니 그 분야의 인력 사정도 마찬가지더라. 3~4년차가 회사에서 사라지는 것은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며,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와 관련한 시대적 현상 같다

 

사무소를 다니며 건축사 시험을 준비하기란

체력적으로 쉽지 않다.

9시든 10시든 퇴근해 과제를 하나 풀고 나면 12시가 넘는다.

도저히 밤에 공부하기가 어려울 때는

아침에 한두 시간 더 일찍 일어나 공부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과 시험 준비가 전부인 일상이 반복된다.

 

설계를 계속할 나의 미래는 어떨까?

 

SPACE  이직과 퇴사, 그 이후의 미래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는가? 회사 내 선배나 소장을 보며 그려보는 자신의 커리어나 삶의 미래는 어떠한가

정필란  자격증을 취득하는 게 가장 가까운 계획이고, 그 이후의 계획은 없다. 부산에 비해 서울의 커뮤니티는 잘 형성되어 있기에 커리어에 대한 새로운 정보와 가능성을 발견할 거라 짐작하고 있다. 그래서 구체적인 계획은 조금 더 뒤로 미뤄두었다

정은호  대형 설계사무소에서 10년차 이상의 고연차가 회사의 생존을 위해 영업과 같은, 원치 않은 일을 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결국 나도 마주해야 하는 일이기에 기왕이면 내 이름을 걸고 기분 좋게 하자는 마음이 더욱 확고히 들었다

하혜림  내가 알기로 매스의 경우, 영업을 해야 할 일은 전혀 없다. 그런데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니 각자가 느끼는 삶의 재미는 다를 테지만, 다람쥐 쳇바퀴 굴러가는 듯 살아야 하는 회사원의 일상이 나에겐 잘 맞지 않았다. 지금 독일의 조소과로 유학을 준비하는 이유는 독일이 건축과 조소, 두 가지 모두를 하기에 적합한 나라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디테일에 집착하는 독일 건축이 나의 성향과 잘 맞고, 독일에는 좋은 사무소도 많아 혹시 건축으로 계속 일을 하게 된다면 그것 또한 흥미로울 것 같다. 건축학도로서 베를린 신국립 미술관과 같은 마스터피스를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 또한 크나큰 기쁨이다. 조소 쪽으로는 베를린에 있었을 때 주변 작가 친구들을 보니독일에서 아티스트 비자를 취득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고, 내 작품 성향이 독일의 미술시장에서 잘 받아들여지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레지던시 피날레 전시를 본 한 갤러리 관장이 개인전을 제안하기도 했다

전중섭  삶의 부분과 관련하여, 학생 때는 설계가 자신을 너무 소모해야 하는 일이라 건축을 위해 평범한 삶의 많은 부분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푸하하하에 들어와서는 그 생각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소장님들이 회사에 아이들을 데려와 함께 놀아주고는 하는데 너무 화목해 보이더라. 건축과 결혼 생활 모두 잘 꾸려나가는 걸 보니 둘 다 병행이 될 거라는 긍정적인 마음이 생겼다

정은호  해안에서는 다양한 금전적인 복지혜택을 통해 직원들의 결혼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다. 육아휴직의 경우에도 휴직에 대한 제재는 없다. 다만 프로젝트를 주도하여 이끄는 팀장급 이상의 남성이 육아휴직을 하는 것은 아직 문화적으로 자리 잡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오히려 여성이 오고 싶어 하는 회사인 것 같고, 실제로 임원급을 제외한 실무자급의 비율을 보면 여성이 더 많다. 여성에 대한 복지가 좋기는 하지만, 대표급 임원을 보면 여전히 모두 남성이다

 

 

설계업의 노동환경, 이대로 괜찮을까? 

 

SPACE  사무소의 노동환경과 관련해서는 전반적으로 만족하는 편인가

정은호  대형 설계사무소는 초봉을 높여주려 지속적인 노력을 하는 것 같고, 그 노력이 피부로 느껴진다. 다만 아틀리에에 비해 연봉 상승률이 비교적 낮아, 연차 간 연봉 차이가 크게 나지 않기도 한다

전중섭  푸하하하의 경우에는 복지 시스템이 따로 없다. 휴가 같은 것도 공유 캘린더에 적어놓는 식이다. 누구나 수정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며칠 정도 휴가를 더 쓴다고 해도 알 방법이 없다. 소장이 장난삼아 “누가 계속 휴가 쓴 기록을 지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제약을 걸지는 않는다. 개선할 부분에 관련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수용하는데, 소장이 기분이 좋을 때를 노려 말해야 한다. (웃음) 인간적으로 너무 친하다 보니, 체계적인 복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는 않지만 굳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직원들도, 소장들도 못 느낀다

하혜림  매스는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복지다. 게다가 맛있다. (웃음) 회사를 그만두고서는 하루에 두 번씩 직접 밥을 해서 먹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정필란  아이엔지 또한 직원 식당이 있었다. 복지 중 하나로 점심 제공을 고려하는 중대형 사무소가 꽤 있는 것 같다

전중섭  우리는 사무소에서 소장이 직접 삼겹살을 굽는다. 삼겹살을 구워 먹으려고 덕트도 설치했다. (웃음

 

푸하하하프렌즈의 경우에는 복지 시스템이 따로 없다.

개선할 부분에 관련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수용하는데,

소장이 기분이 좋을 때를 노려 말해야 한다. (웃음)

인간적으로 너무 친하다 보니,

굳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직원들도,

소장들도 못 느낀다.

 

SPACE  본인이 몸담은 사무소를 넘어, 설계업, 사회와 같은 큰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설계업의 노동환경이 개선될 가능성은 어디에 잠재해 있을까

정은호  한국 건축가로서 건축의 가치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기성 건축가들이 설계 노동이나 업무환경에 관해 목소리를 내어주면 좋겠지만, 각자의 삶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럼에도 기성 건축가들이 설계비를 받지 않고 설계를 하는 일종의 관행 같은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혜림  며칠 전 한 친구와 술을 먹다가 ‘너도 지금 아파트 살지 않냐’, ‘너는 오피스텔 살지 않냐’ 같은 이야기가 나왔다. 좋은 건축은 좋은 건축주로부터 탄생하는데 건축주가 될 가능성을 가진 사람이 모두 아파트에 사는 거다. 건축주 자체의 파이가 작으니 적은 돈으로 많은 일을 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다. 긍정적인 면으로는, 요즘은 카페와 호텔 같은 상업 공간에 많은 투자를 한다. 이렇게 조금씩 젊은 사람들이 좋은 공간을 경험하는 것에 익숙해지다 보면 상업 공간뿐 아니라 자신의 주거 공간에 대해서도 각자의 삶의 모양에 맞는 다양한 주거 형태를 고려할 것 같다. 너무 희망적인 사고가 아닐까 싶지만, 그렇게 된다면 건축주의 파이가 커지면서 설계비도 올라가고, 결론적으로 설계업의 노동환경도 비교적 나아지지 않을까? 그럼에도 설계를 하는 이유는 뭘까

 

SPACE  설계비 상승으로 노동환경이 개선되면 좋겠지만, 짧은 기간 안에 해결될 일은 아닐 거다. 그럼에도 설계를 하게 만드는, 설계의 매력은 무엇인가

정필란  끊임없이 배울 점이 있다는 게 매력적이다. 주거 프로젝트에도 재개발 주거와 LH 사업의 주거 등 다른 성격의 프로젝트가 존재한다. 오늘 알고 있던 법이 내일 되면 바뀐다. 계속해서 새로운 법령과 행정절차들이 생겨난다. 도면 부분에서도, 창호의 실시도면을 그린다고 하면 각 프로젝트의 상황에 따라 유리의 종류나 프레임의 두께가 달라진다. 그에 맞춰 대응을 잘 해내고 준공 시 반영이 되면, 발전했다는 느낌이 든다

하혜림  조소는 머릿속으로 한 구상을 그대로 구현해 작품을 완성한다는 점에서 만족도가 높은 반면, 설계는 하나의 프로젝트에 많은 사람들이 엮이니 나의 구상이라는 것도 없고, 구상과 구현 사이의 괴리가 비교적 크다. 그럼에도 큰 스케일을 실현한다는 점에서 설명하기 힘든 매력을 느낀다. 어떤 날은 조소만 해야지 하다가도, 또 어떤 날은 설계가 하고 싶다

정은호  학생 때 교수가 “건축과를 나오면 치킨집을 해도 성공한다”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기획력을 말하는 것 같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나가야 하는데, 학생 때만 해도 학기에 한 번씩 하면 최소 열 번을 한다. 사업으로 치면, 학생 때 이미 열 번의 사업을 해본 것이다

전중섭  설계는 잘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나의 생활과 삶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만들게 되더라. 삶의 기준을 공간에 구현할 수도 있다. 내 생활에, 내가 만족할 만한 삶의 요소를, 내가 직접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건축가라는 직업은 매력적이다. (진행 박지윤 기자)


▲ SPACE, 스페이스, 공간


전중섭
전중섭은 단국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인 더퍼스트펭귄에서 2년간 근무한 후, 현재는 푸하하하프렌즈에 몸담고 있다.
정은호
정은호는 명지대학교에서 건축학전공 학사를 마친 후 2019년도부터 2022년까지 (주)해안건축 공동주택본부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현재는 유학 준비와 함께 LH청년정책 자문위원, 한독건축교류회(KDAA)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정필란
정필란은 동명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부산의 아이엔지건축사사무소에서 4년간 실시설계를 담당했다. 휴식의 필요성을 느껴 짧은 방학을 보낸 후, 현재는 간삼건축종합건축사무소에 재직 중이다.
하혜림
하혜림은 한양대학교 건축학부에서 학업을 마친 후, 글로가우에어 아티스트 레지던시 베를린(GlogauAIR Artist Residency Berlin)에서 작가로서 첫 단체전을 열었다. 그 후 한국의 매스스터디스에서 3년 반의 실무를 경험했다. 현재는 NFT 아티스트 활동과 더불어 독일 미술대학원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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