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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보이지 않는 것들과의 대화

정수진
사진
남궁선
자료제공
에스아이 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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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은 소규모 건축물로, 계획 시에는 대지와 가족의 특성이 가장 중요하다. 대지의 위치, 조건 그리고 주변 환경 등은 땅 위에 건물이 어떻게 앉을지에 관한 형식의 실마리가 되고, 그곳에서 살아갈 가족들의 생활방식이나 성격은 집을 채우는 내용이 된다.

 

집에 관한 단상

가족은 혈연에 의해 이루어진 가장 작은 사회집단이다. 가족은 이해관계가 없는 본능적인 문제와 욕구, 감정 등으로 구성된 집단이며 그런 집단이 생활하는 곳이 집이다. 집에는 크게 가족이 모여 일상을 나눌 공용 공간과 그 누구도 모를 혼자만의 내밀한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여전히 방, 거실, 부엌, 화장실 등이 주공간으로서 관습적인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다. 그러나 집 안에는 그보다 좀 더 섬세하고 복합적인 내용들이 얽혀 있다.

집에서는 귀찮아서 떼지 않은 눈곱이나 팬티 차림이 허용되고, 얄미운 억지나 참을 수 없는 실수가 사랑이라는 명목하에 용서되는 특별한 곳이다. 대대로 이어지는 유년기의 기억과 노년의 추억은 가풍이라는 독특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가족은 울타리 밖에서 일어나는 사건들로부터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결속력을 가진다. 집은 밖의 세상에서 매일 귀가하는 장소이며, 돌아갈 시간이 멀어지면 그리운 고향 같은 회귀본능을 일깨우는 장소이다.

주택과 집은 다르다. 주택이 주거를 칭하는 막연한 건축적 단어라면 집은 그 안의 사람들이 이어온 특별한 정서를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오감을 작동시키는 물리적 실체이다. 어떤 주택이 우리 집이 되는 순간 주택의 일반적 기능과 주거의 보편적 개념은 한 가족의 개별적 통사가 반영된 고유한 장소로 치환된다. 마치 나라와 지역의 문화와 역사가 그들 고유의 것인 것처럼.

 

땅과 집

대지는 주택의 형태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통상 우리는 입지와 경관, 경제성이 좋은 반듯한 대지를 ‘좋은 땅’이라고 한다. 그러나 거미줄처럼 얽힌 현대의 주거 환경에서 그런 ‘좋은 땅’은 존재나 하는 것일까. 설령 그런 좋은 땅을 찾았다 하더라도 그 위의 건물이 무조건 좋은 집이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땅 혹은 좋은 집을 평가하는 척도에 절대적인 잣대란 없기 때문이다.

대지가 가진 좋고 나쁜 텍스트들은 땅의 역사이자 이야기이다. 하나의 대지에 주택을 짓는다는 것은 땅이 지나온 발자취와 가족의 인생사가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터를 마련하는 것이다. 땅과 가족의 합의는 그들의 만남으로 인하여 이제까지 지켜온 각자의 조건들이 어떻게 조율되고 재구성되는지를 집이라는 결과물에서 보여준다. 땅이 가진 장점과 단점이 부각되거나 역전되고, 이전에 존재하던 것들이 변화하고, 숨겨진 무언가가 드러나기도 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이 집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다. 땅이나 집은 직접 움직이거나 말하지 않지만 그 속에 담아낼 삶의 모습과 의지에 의해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가족의 기본 관계가 혈연이듯 땅과 집의 관계도 혈연 못지않게 끈끈하다.

 

집은 그 사람들과 닮는다.

부부가 오래 살면 닮는다고 한다. 한 집에 사는 가족들의 입맛과 취향이 비슷한 이유는 유전자라기보다 많은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함께 보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기호를 오랜 시간 공유하다 보면 그런 반복이 가정의 문화가 되고 물리적인 공간 또한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변해가는 것이 당연하다. 주택이란 어쩌면 이런 가족의 색깔을 좀 더 확연히 누리고자 하는 이들의 선택일 것이다.

2004년 시행된 주 5일제 근무나 대체휴일이 늘어나는 것도 가족과 집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휴일이라는 잉여의 시간에 대해 질문하고, ‘느리게 ㅇㅇ하기’ 라는 구호가 유행하는 이유도 사회의 빠른 속도에 가려진 일상의 의미를 되찾으려는 노력이라 볼 수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대표 주거는 아파트였다. 구분하기 어려운 개인적인 삶을 굳이 A・B・C 타입이라 규정 지은 아파트의 평면에 끼워 맞춰 빠르고 쉽게 살아왔다. 그러나 현재 주택에 관한 높아진 관심은 아파트나 개발업자가 만든 기성 주거의 일률적인 편리함보다는 자신들의 유전자와 생활에 좀 더 적합한 고유성을 찾고자 하는 욕구가 아닐까. 아파트에서 가능한 표현이 고작 벽을 조금 트거나 가구를 옮기는 정도였다면, 주택은 대지의 선정에서 문고리 하나의 선택까지 자신의 생활과 취향을 최대한 반영하여 만들어내는 엄청난 자기표현이며 유일성에 관한 애착이다. 마치 내 몸에 꼭 맞는 맞춤복을 제작하는 것처럼.

 

화장실에서 로맨스를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잊혀지지 않는 영화 포스터가 있다. ‘에펠탑과 지붕이 가득한 창 밖으로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크리스털 와인을 들고 거품 목욕을 하는 여배우’가 클로즈업 된 이미지. 집을 설계할 때마다 도면 위 화장실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이유가 어쩌면 이 포스터가 주었던 감성과 동경이 되살아나서인지도 모르겠다. 어릴 적 빨간 손이 튀어나올 것 같아 무섭고 불편했던 화장실에서 현재 내가 사는 아파트의 깜깜한 화장실까지 내가 경험한 화장실은 용변을 보고 더러움을 씻는 기능이 한정된 작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나도 우리 집 화장실에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즐길 수 있다.

주택에 관한 고정관념이나 살아온 방식, 고집스러운 습관은 새로운 집에 관한 상상을 방해한다. 중요도가 적거나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려운 공간은 쓸데없는 공간(dead space)이 될 뿐이고, 익숙하지 않은 방법은 무조건 불편하기로 작정하니 싫은 것이 된다. 그러나 로맨스 가득한 영화 포스터처럼, 화장실에 감성이 개입되어 삶의 감흥이 생긴다면, 다소 쓰임이 모자라거나 낯선 무엇이 되더라도 결코 그 존재가 주는 감동의 가치는 줄지 않을 것이다.

집은 건축가의 논리나 관습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되고 싶어 하는 주변의 관계에 귀를 기울인 결과이다. 집을 경험한다는 것은 형태가 아니라 공간에 잠재된 감성을 느끼는 것이다. 시간과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삶의 모습을 공간을 통하여 끊임없이 보고 듣고 만지는 오감과의 교감이다. 따라서 공간에 숨은 건축가의 생각은 비어 있는 이미지가 움직일 때 비로소 살아나고, 이런 이미지는 체험하는 이의 감성에 의해 더욱 풍요로워진다. 건축가는 눈에 보이는 재료로 집을 만들지만 집의 가치는 살아가는 이들에 의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작동하기 시작할 때 그 진가가 발휘된다. 건축가로부터 집주인에게 열쇠가 건네지는 순간 집은 자신의 성숙한 삶을 향한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집은 사람을 담는 소우주이다. 내가 있는 곳에 세상이 있고, 세상은 나를 따라 움직이고, 나와 집은 항상 그 세상의 중심에 있다.​ <진행 박세미 기자>

 

 

빅_마마

 

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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