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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세종살이 1년, 도시읽기 1년 5: 오늘의 세종 이해

진행
최은화 기자

<세종살이 1년, 도시읽기 1년>​

1. 생성배경과 현재상황

2. 계획도시의 면면 

3. 먹거리와 지역활성화 

4. 원도심과 주변부 

5. 좌담: 오늘의 세종 이해 ​ ​ 


 

​김아연(서울시립대학교 교수) × 박소현(건축도시공간연구소 소장) × 이은경(이엠에이 건축사사무소 대표) × 한서영(홍익대학교 교수) × 홍보라(갤러리팩토리 디렉터)  

 

이미지 제공: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도시 형성: 개념부터 구현까지​


박소현(박) 월간 「SPACE(공간)」에서 연재를 진행하며 느낀 점은 도시에 대해 아는 것은 대부분 착각이라는 것이다. 도시 현상을 분석하고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지난 연재에서는 세종이 가진 여러 가지 특이점을 짚으면서 개인적으로 궁금한 부분이나 의문점을 열거했다. 이번 좌담 또한 해답을 찾는 자리라기보다 세종으로 대변되는 우리 도시의 다양하고 복잡한 질문을 함께 던져보는 의미로 마련했다. 우선 세종의 출발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서영(한) 참여정부는 중앙집중에서 벗어나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글로벌리즘에 대응하여 네트워크 경제체제로 변환하는 등의 새로운 국정비전을 제시했다. 추진위원회는 이에 맞는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기 위해 도시 개념 공모전을 개최했다. 여기서 공모전이 ‘개념’ 공모전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시계획가들은 공모전 자체를 반대했고 이에 따라 공모전은 계획이 아닌 개념 공모전으로 축소되었다. 당선자의 후속 계획 참여는 의사소통의 어려움, 사업 지연 등 부정적 입장에서만 검토되었다. 공모전에 작품을 제출하는 사람들은 주로 건축가인데 건축가와 도시계획가의 입장 차가 크다. 건축가는 새롭고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려고 하고 도시계획가들은 이를 현실성이 부족한 계획이라며 비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둘 사이의 소통이 없다면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공모전에서 내걸었던 주요 개념은 ‘탈중심’, ‘자연 친화’, ‘세포’ 등으로 다양했다. 이러한 용어로 대변되는 도시 개념을 물리적인 환경으로 구축하는 과정에 있어서, 건축가가 그려놓은 그림과 계획가가 현실화하는 소위 실무기법이 잘 맞물릴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이라도 그게 가능하긴 할까? 

 소통의 문제 외에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기 위한 장애물은 관행이다. 두 가지 고착된 관행은 아파트 위주의 도시계획과 근린생활권 개념이다. 하나의 도시 블록이 하나의 아파트로 구성되는 상황에서는 어떤 훌륭한 개념과 계획이 들어서더라도 새로운 도시를 계획하기 힘들다. 아파트 단지가 도시 안에서 섬처럼 존재해 도시의 흐름을 끊기 때문이다. 미국의 클라렌스 페리가 1920년대에 제안한 근린주구 개념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단지 중앙에 보행로를 놓고 커뮤니티와 학교를 집중하는 방식이 현대 한국 사회에 유효한지에 대한 고민이 없다. 하지만 아파트는 이미 시장에서 인정받은 상품이며 아파트가 없는 도시계획은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공모전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아파트와 함께 어떻게 융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필요했지만 그런 과정은 없었다. 첫마을 마스터플랜이 이러한 융합을 한 중요한 사례이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세종이 다른 도시와 다른 출발점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가 보면 다른 신도시들과 똑같이 느껴진다.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은경(이) 개념을 물리적 형상으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간극이 발생한다. 유선형의 정부세종청사 건물이 과연 실제로 민주적이고 탈중심적으로 작동할까? 예로 유럽의 중세도시의 일부 구조인 성당과 광장 또는 시청과 시장이라는 위계가 담겨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대가 바뀌면서 광장의 역할이 시민들이 발화하는 공간이 되었고 기존 건물의 형태를 유지하되 다른 기능을 지속적으로 유입하며 새로운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다른 생각으로 만들어진 틀 안에서도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새로운 개념을 바탕으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할 때에 물리적 해법이 그 개념을 작동하게 할 수 있을까? 또한 세종은 도시 개념 공모전 이후로 지속적으로 공모전을 개최했는데 매번 당선작의 선정 기준이 관련되어 있었는지, 심사위원들도 매번 달라졌을 텐데 그 선정하는 기준이 연관되었는지 의문이다.

김아연(김) 오늘날은 공모전의 홍수다. 공모전을 통해 심사위원들이 선언적이고 이상적인 설계안을 선정하더라도 그 이후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많고 책임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적 장치도 미흡하다. 공모전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한계를 함께 성찰하면서 공모전을 진행해야 하는데, 공모전을 마치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하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듯하다.

 왜 우리는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당연히 공모전을 통해서만 답을 얻으려고 하는지, 이에 대한 성찰은 확실히 필요하다. 세종 이후에는 나아졌을까?

 3기 신도시 또한 기획력의 부재를 공모전으로 해결하고자 한다. 이제까지의 도시계획에서 대두되었던 문제는 도시와 건축이 분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에 대해서 공모의 형식으로 해결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공모전에서는 가치판단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한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실행해야 한다. 만약 새로운 패러다임을 달성하고자 한다는 목표를 세우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소통하는 절차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목표가 아니라면 시작부터 현실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에 따라 현실적인 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민주적이고 탈중심적이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도시를 만든다는 공모전의 방향이 있었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는 균형발전, 수도권 과밀해소라는 국가의 목표가 세종의 탄생에 큰 기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 국가 아젠다 아래서 새로운 행정수도를 빠르게, 아주 빠르게 조성한다는 것이 더 큰 외연의 목표였다면 다른 방법을 통해 다른 도시가 생성될 수 있었을까? 분당은 주택 200만 호 조성이라는 분명하고 일관된 도시건설의 정량적 목표가 있었다. 반면 세종은 그간 도시건설 관행과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 다양하고 정성적인 가치를 많이 내걸었다. 이것에 진정성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도시 개념으로 추구하는 바와 이것을 실현하는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괴리가 오히려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근원적인 질문이지만, 변화가 필요할 때 촘촘한 기획 없이 누군가의 재능과 아이디어에 기대어 갈 수밖에 없는 걸까?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택배가 하루만 늦어져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도시와 건축의 지난한 과정을 인내할 수 있겠는가?

홍보라(홍) 새로운 가치를 추구했던 사람들에게 나쁜 의도가 있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한 점은 오늘날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형평성, 공정함, 열린 사회, 민주적 절차 등으로 이동했다는 사실이다. 다만 해당 개념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가 사람마다, 세대마다 다를 것이다. 그 간극에서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신도시 건설에서 행동을 취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민주화란 무엇일까? 앞으로 도시와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10~20대들이 생각하는 민주화와 같을까? 가치 충돌이 일어나는 과도기에 처해 있는 이상,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다.

이전에는 빠르게 지어야 한다는 목표가 뚜렷했다. 추구하는 가치와 실제로 겪는 현상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 빠른 속도보다는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의 지속가능함, 탈중심, 자연회복, 생태주의 등 다르게 복잡하게 원한다. 여러 가치가 충돌하는 가운데 이것들이 어떻게 서로 조화, 조정되고, 더 나아가 공간으로 구체화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박소현

 

공원녹지율 50%: 의미와 이면

 

공식적으로 세종은 공원녹지 비율이 50% 이상으로 계획된 도시다. 지표면적의 절반 이상을 공원녹지로 할애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행정중심복합도시 공원녹지 특화전략 및 지속가능한 운영관리 방안’이라는 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다. 세종은 공원녹지율 52.3%의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체감하는 정도나 만족도는 크지 않았다. 연구할 당시에는 공원과 녹지가 절반 이상 조성된 상황이었다. 우선, 도시건설로 인해 자연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로 녹지율을 상승시킨다는 비판에 대해, 도시와 자연이 대립했던 근대적 도시 개념으로는 세종을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세종은 태생부터 공원을 중앙에 품고 있는 환상형 도시다. 세종은 자연과 도시의 관계, 나아가 국가가 지향하는 도시의 개념을 재정의하는 획기적인 기획임에 틀림이 없다. 세종은 공원의 양적 측면과 공원녹지의 구조 측면에서 다른 도시에서 흉내낼 수 없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두 번째의 논점으로 이어지는데, 공원의 양과 형태적 구조의 우수성이 반드시 질적으로 뛰어난 공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때 다시 짚어봐야 하는 것이 “도시 면적의 50% 이상이 공원녹지”라는 표현이다. 이 자체는 사실이지만 50%라는 수치 안에는 산과 구릉지가 포함되어 있고, 산을 제외하면 30% 정도이다. 물론 우리나라는 산을 즐기는 문화가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생활형 공원이나 평지형 녹지의 면적은 일산이나 분당 같은 신도시의 공원녹지율 27%와 비교해 차이가 크지 않다. 세 번째로 공원의 발주 방식에 문제가 있다. 공원의 약 80%가 입찰참가 자격 사전심사 방식(PQ)으로 만들어지고 20% 정도가 설계공모로 진행된다. 건축과 다르게 설계자 혹은 전문가가 시공 과정에 관여할 수 있는 별도의 감리 제도가 없다. 감독관 혹은 운영자의 취향에 맞게 식물 수종과 재료가 변경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PQ로 진행할 경우 낙찰된 업체가 낮은 가격에 다시 외주를 주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과연 대상지를 와 보고 설계했을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현장과 맞지 않는 설계안도 많다. 공공 사업의 특수성 때문에 카탈로그에서 고른 기성 제품들과 관급 자재, 그리고 내역으로 쉽게 풀 수 있는 판에 박힌 디테일을 조합하는 수준에 그치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러한 관행이 반복된다면 시민들이 공원에서 만족감과 감동을 느끼는 일은 요원하다.

이제는 사람들이 건물에는 민감도가 어느 정도 생긴 것 같다. 부수고 짓는 행위를 서로 감시한다. 반면 공원은 나무를 다 베고 새로 심고 해도 아무도 지적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도심재생이나 재개발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건물이나 기물을 위주로 생각하고 그 주변에 건물보다 훨씬 오랜 세월을 살아왔을 나무에 대해서는 아직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나 공사의 공원 담당 부서가 배타적으로 움직이는 데에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도시와 공원이 만나는 경계는 여러 분야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데 각 분야는 칸막이식 행정으로 소통하지 않는다. 사실은 그 경계가 생활의 질을 결정하는 데 말이다. 행정의 경계를 허물어야 도시의 경계가 살아난다. 생태학적으로도 경계부는 종의 다양성이 가장 높은 동적인 지역이다. 도시에서도 다양한 용도가 마주하는 경계부에 대한 고민을 함께 진행해야 한다. 또한 세종에는 환상형 도시 구조와 중앙 녹지를 연결하는 쐐기형 녹지가 계획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활성화되고 있지 않다. 호수공원을 포함한 중앙녹지 공간의 문제점 중 하나는 생활권과 도보로 잘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앙으로 수렴되는 쐐기형 녹지가 살아나는 것은 세종시의 공원녹지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도시의 선형 공원과 가로는 공원과 도시, 공원과 공원, 공원과 사람을 이어주는 경계이자 연결고리이다. 한 생활권과 분리 문제는 옥상정원에서도 나타난다. 결과물만 봤을 때는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건물 옥상에 올라갈 일이 얼마나 있을까? 도시 가로에 위치한 공원이 아닌 이상, 흥미 유발 요소를 넣어야만 사람들을 유입시킬 수 있다. 심지어 시민들이 “옥상정원에 미끄럼틀을 설치해주세요”라며 제안하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은 공원과 생활의 경계를 어떻게 하면 얽히고설키게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고 있을까?

세종은 도시 중앙부에 녹지를 두고 가장자리를 따라 환상형으로 도로를 설치했다. 그래서 계획가들은 도시 개념 공모전 당선작에 충실했다고 말한다. 아이디어를 받아들였다는 것과 그것을 특정 설계기법을 통해 구체화했다는 것 안에는 서로 매우 다른 층위가 뒤얽혀 있다.

도시 구조에서 녹지의 층위를 살펴보면 우선 도시 중심에 큰 공원이 있고, 거기에 붙는 쐐기형 공원, 그리고 아파트 단지 내부의 녹지가 있다. 아파트 녹지에 관한 규정도 구체화되어 있는데, 오히려 이 규정이 아파트를 도시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예를 들어서 공모전을 개최할 때 목표와 개념 자체는 열리고 연결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설계 조건으로는 녹지를 외곽으로 배치하게끔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외부에서 아파트 ‘단지’ 내부로 유입되기가 힘들다. 계획가 혹은 건축가가 지엽적인 부분을 설계할 때 도시적 차원에서 고려하기 위한 지침으로 만들어졌겠지만 오히려 그 반대로 건축을 도시에서 분리하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공원의 경쟁자는 아파트라는 말이 있다. ‘공원 속의 아파트’가 대세인 요즘, 아파트 단지 안의 녹지의 질적 수준을 공공에서 따라잡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공원은 아파트 단지에서 제공할 수 없는 녹지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일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공공의 경쟁력은 양보다도 질적 수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

사유화된 아파트 단지 안에 공공의 녹지를 또 넣는다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파트 재건축에서 단지 내에 공원면적을 늘리면 이에 대한 인센티브도 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 공원은 닫혀있는 단지 내에서 아파트 주민들만 이용이 가능하다. 우리나라 주거 유형의 절반 이상이 아파트인 현재 상황에서 단지계획, 단지설계의 디테일이 의도치 않게 초래하는 공공성 훼손에 대해 얼마나 성찰해봤는지 의문이 든다. 습관적으로 사용해온 도시 공간 설계 기법이 일상의 생활 행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우리는 정확히 이해하고 있을까?

건축, 도시, 조경은 각자 독자적으로 움직인다. 각각의 취지는 좋을지언정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제약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세 분야가 함께 심의하고 논의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심의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최소한으로 지키는 규제의 제한이 아니라 논의를 통해 조정할 수 있는 발전된 형태의 시스템으로 필요하다.

하나 더 보태자면 조경에서 토목과의 소통은 그 중요함에 비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도시에 있어 강과 하천은 매우 중요한 공간이자 경관이다. 그러나 도시 개발에서 자연 하천은 토목 분야에 의해 ‘치수’ 혹은 ‘수리’의 명분으로 기존의 지형적, 생태적 특성을 잃어버린다. 수리적으로 계산되고 기계적으로 정형화된 하천의 토목 구조에 조경은 시설물 설치와 녹색 장식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주기적으로 범람하는 금강의 자연적인 프로세스를 공원의 일부로 받아들이려던 중앙녹지 공간 현상설계 당선안 역시 치수의 관점에서 폐기되었다. 기존 생태계를 파괴하고 유사 생태계의 대체품을 만들더라도 과연 이전처럼 기능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빠르게 짓기라는 한국 건설 산업의 특성과 연결된다. 자연 경사를 최대한 살리면 좋겠는데, 기존의 것을 다 밀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방법을 가장 쉽고 빠른 방법으로 여긴다.

 

 

박소현

 

음식체계: 개인적 욕망과 도시 구조

 

세종 생활에서 발견한 특이점 중 하나는 로컬푸드의 활성화다.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도시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경험하게 한다. 맛있고 안전한 식재료를 원하는 개개인의 욕구가 공동체의 집합 수요로 발현되고 이것이 도시 작동체계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세종의 건설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읍과 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축산물이 세종시민들에게 활발히 소비되고 그 품질이 소비자들의 모니터링으로 높이 유지되고 있다. 일례로 세종의 대표적 커뮤니티인 ‘세종맘카페’에서 특정 과일이나 야채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면 품절되는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이마트와 홈플러스에 못지않게 로컬푸드 매장인 ‘싱싱장터’가 활발하게 이용된다.

이런 일이 발생하는 근원적인 배경에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추구하는 가치관이 달라진 데 있다고 본다. 개인성, 열린 사회, 투명성, 공정성 등. 예를 들어 요즘에는 사람들이 단순히 음식을 소비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식자재가 어디서 생산되었고 어떤 유통을 거쳐 식탁 위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런 측면에서 커뮤니티가 매우 중요하다. 커뮤니티화는 전 세계적 현상이다. 점점 개인화되어 가는 동시에 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커뮤니티는 필요하다는 두 가지의 다른 욕구가 커뮤니티에 담겨 있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오늘날에는 자신과는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만날 장소가 많지 않다. 성별, 나이, 종교, 정치적 성향 등에 관계없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 공간이 마트가 아닐까?

음식과 관련된 일들이 도시 구조 혹은 물리적 환경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살펴볼 필요도 있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는 작은 마트가 많다. 자전거나 보행으로 퇴근길에 들러 그날의 식자재를 구입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세종은 미국의 대형 마트처럼 큰 대지에 주차장과 건물로 서 있다. 지역의 농산물을 활발하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일은 좋지만, 도시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살펴보면 별반 다를 게 없는 결과물인 셈이다.

로컬푸드를 대하는 인식에는 변화가 생겼지만 이 음식체계를 공간으로 구체화하는 방식은 이전과 같다. 세종에서 재배한 당근을 산다고 가정할 때, 어디에 가서 구입하는 게 가장 편한지를 생각해보면 로컬푸드 마켓인 싱싱장터가 먼저 떠오른다. 자동차를 타고 가서 편하게 주차하고 식재료를 구매한다. 소비자의 요구가 많아 이런 싱싱장터는 곧 3호, 4호를 더 지을 예정이다. 로컬푸드이지만 작은 마트가 아닌 대형 마트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방식을 가장 편하게 이용하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주거 유형 중 아파트가 가장 인기가 많은 것과 같은 연장선상이다.

대형 마트가 아닌 작은 상점들이 발생하는 건 결국 신도시 발전의 마지막 단계다. 1인 마켓, 니치 마켓이 발생하는 건 지금 세종이 마주한 단계에서는 사실상 어렵다. 이제 조금씩 로컬푸드에 관한 이슈가 대두되고 있으므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발생할 거라고 예상한다. 이건 인간의 기본적 욕망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막을 수 없고, 그런 욕망들이 이제껏 도시를 변화시켜왔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모든 게 다 갖춰질 수는 없다. 불확실성을 어떻게 도시계획에 반영할 수 있을지를 애초에 염두에 두는 게 중요하다. 불안하고 부정적인 것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가능성으로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비워두고 가능성을 열어두면 자연스럽게 욕망들로 인해 채워지고 변화하고 발전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욕망은 분화하고 진화하며 이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욕망을 담아내는 도시와 건축은 이러한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고 있을까? 

예를 들어 홍대, 상수동, 연남동은 저층주거지가 연속적으로 형성된 도시 구조이기 때문에 작은 도시 조직이 뻗어나갈 수 있다. 반면에 아파트 단지가 연속되거나 경사가 있는 도시 구조라면 이러한 활력은 연속되지 않는다. 태생적으로 자동차와 단지로 이루어진 도시 구조에는 한계가 있다.

기존 환경을 바꾸기 힘들다면 마트 내부 공간을 조정할 수 있지 않을까? 싱싱마켓과 복합 커뮤니티센터 내부에 불확실성을 녹여내 공간을 계획한다면 어떨까? 과거의 3일장, 5일장이 안전, 청결, 이용성 등의 여러 문제를 고려해 마트라는 체계로 정착했듯이, 앞으로 발전된 형태가 나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은화

 

 

조치원과 세종: 오래된 것과 새것

 

오래된 것과 새것이라는 대비를 통해 도시를 해석해보는 시도는 이제껏 많았다. 하지만 조치원과 세종의 관계는 특이하고도 아주 미묘하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조치원이 출범한 지 10년이 채 안된 세종으로 편입된 것부터가 그렇다. 또한 도시재생 우수사례 순위를 매길 때 세종이 종종 우수상을 받곤 하는데, 그 배경에는 항상 조치원이 큰 역할을 한다. 오래된 조치원 사례로 새로운 세종이 각광을 받는 셈이다. 작년 말에는 조치원 정수장을 조치원문화정원으로 리노베이션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은경은 조치원에 대해 첫인상이 어땠나?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조치원역에 도착해서 도시의 경계에 있는 정수장 부지까지 걸어갔다. 그건 다시 말해서 도시의 주요 시설들이 보행권 내에 있다는 의미다. 도시 구조 또한 그리드 체계에 따라 조직되어 있다. 잠재력이 큰 곳이라고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에는 정수장 공원이라는 이름이었는데 공원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은 규모에 잡다한 시설물이 가득했고, 공원 퍼걸러에는 한두 명의 노숙자들이 있었다. 인접한 곳에 철책이 둘러진 정수장 시설, 그 옆에 노인요양병원, 청소년 시설도 위치해 있었다. 정수장 시설 일대가 공공의 땅이다 보니 소위 기피 시설이 한데 모여있지만 서로 관련성은 없었고 접근하기에도 꺼려지는 곳이었다.

어떤 요구 사항들이 있었나?

조치원 전체를 재생하고자 하는 취지를 가지고 ‘청춘조치원과’에서 두 개의 재생 프로젝트를 계획했다. 그렇게 선정된 두 장소가 한림제지 건물과 조치원 정수장이었다. 한 곳은 예술가가 작품을 생산하는 곳, 다른 한 곳은 정원과 문화시설을 연계시켜 시민들이 문화를 소비하는 곳으로 설정했다. 한림제지는 정현아(디아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진행 중이고 조치원 정수장은 내가 맡아서 최근에 완공하여 조치원문화정원으로 개장했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산책하러 많이 가더라. 유모차 끌고 다니는 모습도 종종 보이고. 하지만 아직 운영주체가 확정되지 않아서 활기를 띠고 있지는 않다. 한림제지 재생이 아직 남아있지만, 과연 외부 지역에서 유입된 청년 예술가들이 활동한다고 해서 도시가 활성화될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어떻게 그들이 지역민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을까? 오히려 근본적으로 구도심의 노후화된 주거 공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집중해야 하는 건 아닐까? 임대주택을 지을 때도 대부분 구도심이 아니라 구도심 주변부에 자리를 잡는다. 청년을 위한 행복주택도 구도심과 홍익대학교 조치원캠퍼스 사이에 지어졌다. 정작 손길이 필요한 구도심의 주거지역은 그대로이다. 구도심 재생 사업이라는 이름하에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블록을 새로 깐다고 다 해결될까? 문화시설만으로 재생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일어날까?​

꽃 심고 길 정비하고 문화시설 만든다고 도시가 재생되지는 않는다. 효용성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어 도시에 주입된다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그것이 쉽지 않다. 그렇다고 도시재생 사업이 가치가 없는 건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이 사는 마을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가치 있다. 그 활동이 커지고 단단해지면 밑에서부터 위로 하는 도시계획이 가능해질 것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청춘조치원과가 도시재생과로 바뀌었다. 행정 관계자들이 프로젝트에 관한 이해력이 높고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크다. 지금 이게 기회가 아닌가 한다. 구도심을 어떻게 재생할지에 관한 고민이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구도심의 노후화되고 비워진 주거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기존의 인프라스트럭처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화 장소, 주거지의 공급으로 구도심이 다시 설 수 있게끔 하는 데에 적절한 설계 기법과 기획은 무엇일까? 또한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할까? 

우선 조치원 구도심과 조치원에 위치한 대학교와 연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학생들을 도심으로 끌어들일 교통편조차 마련되어있지 않다. 밤에 버스가 일찍 끊기기 때문에 대학생들이 쉽게 구도심으로 갈 수 없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퍼걸러에 살던 노숙자는 다 어디로 갔을까? 프로그램으로만, 프로젝트로만 도시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실질적으로는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지, 어떻게 대할지에 관한 태도와 방법을 갖추는 게 우선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결국 건축과 도시를 짓는 행위는 우리가 어떤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삶을 영위하는가 하는 철학에 맞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종이라는 도시를 통해 우리는 어떤 것들을 다시 짚어봐야 할까? 어떤 질문을 스스로에게 또 우리 사회에 던질 수 있을까?

좋은 결과물은 좋은 프로세스에서 나온다.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면서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도시 건설 프로세스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고 있을까? 도시 개념 공모전이 진행되던 시기, 동시대에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도시가 탄생하여 성장하는 전 과정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사실은 공간 환경을 전공하는 내게 벅찬 설렘을 주었다. 그러나 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 특히 ‘공원의 도시’를 표방하는 세종에서 공원이 만들어지고 있는 현주소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하는 일은 그에 맞먹는 좌절감을 주고 있다. 결과물 만들기에 급급한 지금, 오히려 긴 호흡으로 앞으로의 50년, 100년을 위해 지난 10여 년을 되돌아보기가 필요하다. 제도와 행정과 조직이 미래 도시의 혁신과 진정성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또한 그에 따르는 실험과 시행착오를 두려워한다면, 즉 새로운 도시 만들기 프로세스를 스스로 갱신하지 못한다면 세종이 지향하는 이념과 가치는 결국 정치 구호에 그치지 않을까? 


김아연
김아연은 서울대학교 조경학과와 동 대학원 및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 건축대학원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조경 설계 실무와 설계 교육 사이를 넘나드는 중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도시 속 다양한 스케일의 조경 설계와 연구 프로젝트를 담당해왔으며 동시에 자연과 문화의 접합 방식과 자연의 변화가 가지는 시학을 표현하는 설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름다운 꿈과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일이 조경 설계라고 믿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하는 일을 중요시 여긴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 교수이자 스튜디오테라 대표, 그리고 조경 플랫폼 공간 시대조경 일원으로 활동한다.
박소현
박소현은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소장이자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우리 도시와 지역사회의 다양한 장소 특성과 의미를해석하고 보다 나은 생활공간을 함께 만들어가려고 노력한다. 도시보존, 근린보행, 공동체 계획을 주제로 하는 연구기반의 설계를 추구한다. 연세대학교에서 건축공학 학사와 석사, 미국 오레곤 대학교에서 역사보존학 석사, 워싱턴 대학교에서 도시설계·계획학 박사를 받았고, 콜로라도 대학교 건축도시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국가건축정책위원, 도시재생특별위원, 문화재위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을 역임했다. 주요 저술로 그동안의 보행 연구를 정리한 『동네 걷기 동네 계획』(공간서가, 2015), ‘아이러니 서울 길, 다섯 이야기’ (「SPACE(공간)」, 2017. 3. ~ 9.) 등이 있다.
이은경
이은경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건축사사무소 기오헌에서 실무를 익혔다. 이후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에서 건축도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자비에 드 가이터 아키텍츠, 리켄 야마모토 앤 필드숍 등을 거쳐 2011년 이엠에이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2015년 젊은건축가상을 비롯해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 농촌건축대전 대상, 대한민국공공건축대상 대상 등을 수상했다. 수년간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거주하는 장소로서의 도시에서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한서영
한서영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를 받은 뒤 미국 SCI￾Arc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프레데릭 피셔 아키텍츠, 리처드 마이어,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를 거쳐 현재 홍익대학교 세종캠퍼스에서 건축디자인전공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주로 1950년대 이후 건축 도시 실험에 대해 연구하였으며, 세종시 도시 형태에 관한 연구로 서울시립대학교 김성홍 교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또한 건축가로서 실무 활동도 겸하고 있다. 세종시 건축심의위원, 건축전 준비위원, 조치원 번암리 도시재생에도 참여하고 있다.
홍보라
홍보라는 예술행정을 전공하고 시카고 시 문화부의 국제예술교류 및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를 시작으로, 예술행정, 문화정책, 문화기획, 전시기획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와 기획을 병행해오고 있다. 예술과 사회, 그리고 개인의 관계에 대한 지속적 탐구를 바탕으로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커미셔너로 활동하고 있다. 2002년 비영리 전시 공간인 갤러리 팩토리를 열어 2017년까지 디렉터로 운영을 했고, 2018년부터 기획위원이자 자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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