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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의 미래를 포용하는 도시 만들기

이수민
자료제공
서울시립대학교 세운캠퍼스, 서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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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운상가의 궤적
포럼을 기획한 황지은(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은 세운상가가 과거에 근대적인 도시의 표상이었으나 현재에는 "아이러니하게 멈춰있는" 공간이라고 일컬었다. 세운상가는 과거에 근대적인 도시의 표상으로 개발의 압박을 견디는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1960년대 이후 유지된 오래된 산업영역은 도심에 그대로 위치할 수 있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세운상가군을 포함한 청계천-을지로에 유지된 도심제조업 네트워크는 근대 도시건축 자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세운상가는 1968년에 준공한 한국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다. 세운상가에는 보행데크, 보차분리, 인공대지, 공중광장 등 당시에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모더니즘 건축의 개념들이 도입되었다. 이 때문에 준공 이후에 세운상가는 최첨단의 고급 주상복합건물로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1970년대 강남 개발과 함께 상층부에 위치한 아파트 입주민들이 떠나면서 세운상가는 침체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용산전자상가로의 이주가 시작되면서 저층부를 차지하던 전기·전자 산업 또한 위기를 겪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거대상가군은 시간이 지날수록 도시 속 흉물로 인식되었다. 이에 1979년 도심부재개발사업계획연구, 1984년 세운상가구역 재개발사업 계획, 1988년 세운상가 및 세운 2·​3구역 재개발사업계획 등 세운상가 일대에 대한 재개발 계획들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세운상가 일대의 소규모 제조업 지대는 명맥을 유지했다. 그 결과 이 일대가 서울 도심 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서울시는 청계천복원사업을 계기로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종묘부터 남산까지 단절된 녹지축을 회복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서울시는 2006년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결정 등을 통해 2009년에 세운상가군의 첫 번째 건물인 현대상가를 철거했다. 같은 해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발표하면서 종로에서 퇴계로에 이르는 세운상가 주변의 여덟 개 블록 전체를 재개발하는 마스터플랜이 수립됐다.
세운상가를 보존하려는 방향으로의 선회, 즉 세운상가 일대를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의 관점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의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결정 고시를 통해 본격화되었다. 서울시는 2015년에 '세운상가 활성화를 위한 공공공간 설계' 국제공모를 진행하여 2016년 '다시 세운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다시 세운 프로젝트'는 이곳을 시민에게 보다 개방하고, 1970년대 이후 도심제조업과 세운상가 일대에 씌워진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세운상가 일대를 '메이커시티 세운'으로 인식하기 위한 사업이다.
제조업과 산업혁명, 그리고 도시는 역사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압축성장 시대를 통과하며 대량생산 체제의 제조업은 도시 경계 밖으로 밀려나고 도시는 소비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오늘날 저성장시대를 맞이하며 도시는 다시금 생산과 소비가 균형을 이루는 지속 가능하고 자급 가능한 단위로 재편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발전한 정보기술과 기술문화는 기존의 제조업을 혁신하고 있다. 오늘날 제조업은 도시에서 추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창의지식산업을 견인하면서 새로운 산업구조를 형성하고 도시의 활력을 제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바탕에서 기획된 이번 포럼은 기술변화가 제조업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생산공간으로서의 도시는 어떻게 조직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세운상가 전경, 2015 ©Roh Kyung 

도심제조업의 가치
첫 번째 세션은 '서울 도심제조업 인식의 성찰과 전환'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세션은 국내의 도심제조업 전반에 대한 인식을 검토하고 세운상가로 대표되는 청계천-을지로의 도심제조업의 가치를 제고했다. 이에 앞서 포럼을 기획한 심한별(서울대학교 아시아도시사회센터 선임연구원)은 도심제조업에 대해 변화한 인식에 대해 개괄했다. 그는 도심제조업이 1970년대에 '부적격기능'으로 분류되고 제조업이 기술변화로 인해 위기를 맞이했다는 인식은 산업과 제조업이 단계적 혹은 진화론적으로 발전한다는 인식에서 근거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도심제조업이 유연한 생산 방식으로써 혁신의 선구에 위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안했다.
첫 번째 세션에서 지속해서 언급된 것은 청계천-을지로의 산업 생태계였다.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청계천-을지로를 지탱하고 있는 네트워크에 주목했다. 소준철(도시상공업연구자네트워크 연구원)은 참여관찰 방법을 통해 실제 생산되고 있는 제품을 추적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청계천-을지로에서의 제작과정을 예증할 수 있는 제품을 제품X로 명명하고, 그 생산과정을 통해 청계천-을지로에서의 제작과정의 특징을 도출했다. 청계천-을지로의 제작과정은 주문자와 주문을 받은 기술자에 의한 기획으로 인해 일반적인 공장에서 제작된 상품과 차별성을 가진다. 주문을 받은 기술자는 각 공정 단계에서 다른 분야의 기술자에게 하청을 주거나 해결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자문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지역 내 여러 업종이 동시에 혹은 순차적으로 연루되고 서로 다른 분야의 숙련 기술이 개입한다. 박은선(리슨투더시티 디렉터)은 이러한 제작 과정이 상호 호혜성에 기반한 공유 관계라는 점을 최근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가 실시한 조사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청계천-을지로라는 도심제조업 지역의 특징이자 가치는 상호연결성과 순환 구조로 파악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이를 산업 생태계라 부를 수 있다.
이곳에 구축된 산업 생태계는 오랜 시간 동안 누적된 경험과 인적자원에 기반한다. 권규상(국토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금까지 도심제조업이 산업정책과 공간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강우원(세종사이버대학교 자산관리학부 교수) 또한 이 지점을 지적하며 서울의 도심제조업이 산업지구로서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서울의 도심제조업이 지식기반경제시대에서 지식창출의 공간으로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저를 갖추고 있으며, 청계천-을지로의 산업 생태계가 산업유산으로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앞서 박은선이 현재 청계천-을지로를 둘러싼 기존의 산업 및 공간정책을 비판한 데에 이어, 권규상은 현재 도심제조업이 직면한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산업정책과 공간정책이 결합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산업 생태계가 이동가능한가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는데, 보다 현실적인 정책 수립을 위해서는 각각의 공정을 분리하여 일부를 이동할 것을 제안했다. 도심에 반드시 위치해야 하는 공정과 그렇지 않은 공정을 구분하여 그렇지 않은 공정의 경우에는 도심 밖으로 이동시켜 도심 내의 압력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은선은 청계천-을지로 내 대다수의 점포가 이곳이 재개발되면 폐업할 예정이라 밝힌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반박하며 청계천-을지로의 점포들이 도심에 존재할 수밖에 없는 조건들에 대해 재고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세션에서는 청계천-을지로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제시되었다. 현재 세운상가 일대는 정치적으로 충돌하고 있다. 이는 공간의 경제적 가치와 사회문화적 가치가 충돌하는 상황이라고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국면 속에서 여기에 구축된 산업 생태계 또는 산업 클러스터의 가치를 어떻게 측정하고 무엇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지역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든 지역의 가치를 일방적으로 누군가가 가져가지 않고 공존하는 방식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

다시 세운 프로젝트는 1단계 구간(세운-대림상가) 연결을 완료하고 2단계 구간인 삼풍상가-진양상가-남산순환로 연결을 앞두고 있다. / Image courtesy of SMG

생산공간으로서 서울의 미래
첫 번째 세션이 제조업의 가치가 어디에서 오는가, 그리고 가치를 어떻게 민주적으로 분배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었다면 두 번째 세션은 제조업의 미래와 플랫폼의 가능성에 대해 모색했다. 두 번째 세션인 '도심제조업의 혁신: 스마트 팩토리 시티를 향하여'에서는 다른 도시의 사례를 통해 세운상가로 대표되는 청계천-을지로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이 다른 도시들과 공명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이드리안 비커리 힐(시티즈 오브 메이킹 프로젝트 코디네이터)이 소개한 브뤼셀, 런던, 로테르담의 사례와 아담 프리드먼(프랫 커뮤니티 디벨롭먼트센터 센터장)이 소개한 뉴욕의 사례에서는 공통적으로 도심제조업이 직면했던 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제조업은 도시의 실체를 구성하는 물질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 한때 제조업은 도시 내 네트워크 또는 활동의 근간을 이뤘으나, 경제 성장과 함께 토지 이용의 우선순위가 사무실이나 상업공간, 주택과 같이 단기간에 고수익을 내는 것으로 옮겨갔다. 여기에는 증가하는 인구와 주택의 부족, 약한 토지 정책, 제조업 분야의 비가시성이 영향을 끼쳤다. 에이드리안 비커리 힐은 21세기 유럽 도시들의 도심제조업을 탐구하는 프로젝트인 '시티즈 오브 메이킹(Cities of Making)'을 소개했다. 한때 고도로 산업화 되었던 유럽의 세 도시의 사례를 통해 도심제조업이 겪었던 위기가 최근 10년 동안 순환 경제에 대한 관심과 사회적 불평등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증가한 인식, 그리고 기술의 발전 등을 토해 전환되었다고 밝혔다. 오늘날 도심제조업이 21세기 경제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재평가되고 있다. 유럽의 도시들과 뉴욕의 사례를 통해 도심제조업이 도시의 자체 생산력을 향상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의 방식으로 도시에 기여하고 있으며, 사회적인 문제들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도심제조업이 기존의 이점들을 가져가면서 지속적으로 활기를 가질 수 있는 방법으로는 혁신의 가능성이 공통적으로 제시되었다. 특히, 크리스티안 크룩(VDI 테크놀러지젠트룸 컨설턴트)이 소개한 '플랫폼 인더스트리 4.0(Platform Industrie 4.0)'을 통해 제조업의 미래를 엿볼 수 있었다.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은 현재 독일 정부가 제조업 혁신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다. 독일 4차 산업혁명의 본산이자 정책 플랫폼으로, 스마트 팩토리 등 산업의 디지털화를 통한 보다 긴밀한 네트워크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추구한다. 이 세션에서는 최근 산업구조의 변화와 정책적 대안 대안 연구를 고유하며 도심제조업의 지향점이 무엇인가에 대해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 과정에서 도심제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다양한 방법이 소개되었다. 이 중에서 플랫폼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토론에서는 이미 독일과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시행착오가 있어 왔듯이, 국내에서도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행정기관과 민간, 크고 작은 기업들이 서로 어떻게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킹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시각을 공유했다.
세션에서 공통적으로 제시된 도심제조업의 활성화를 위한 요소로는 커뮤니티의 유지를 위한 연대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력도 포함되었다. 아담 프리드먼은 패션산업 집적지구를 재개발로부터 지켜낸 구체적 사례를 통해 도심제조업이 생존하려면 정치·​경제적 전략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발표자들은 행정기관과의 조율 방법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는 한편, 어느 도시일지라도 조율의 시간이 길고 힘든 과정일 것이라는 데에 동의했다. 서울시는 지난 1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의 개발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도시정비 및 주거공급 확대를 위한 고밀도 개발에 대해 청계천-을지로의 소상공인들의 강한 반발과 재개발 및 세운3구역 철거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 때문이다. 그러나 철거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서울시와 재개발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대치 상황에 있다. 이번 포럼은 청계천-을지로의 도심제조업을 둘러싼 맥락과 다양한 관점을 조명했다. 이를 통해 청계천-을지로의 산업 생태계의 미래와 그것을 포용하기 위한 생산공간으로서의 서울에 대해 고민하는 자리였다.

세운 글로벌 포럼 / Image courtesy of University of Seoul Sewoon Camp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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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홈페이지에 전체 발표와 토론 동영상이 업로드될 예정이다.


이수민
이수민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이론과 건축역사이론을 전공했다. <이월토크 ewoltorque>(오뉴월이주헌, 2017) 등의 전시를 만들었으며 목천건축아카이브의 ‘배기형과 구조사 아카이브’ 구축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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