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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공동의 삶을 채워가는 것들

이은경
사진
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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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재생

인구 감소 시대와 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소도시와 농어촌은 공동화로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낡고 오래된 지역은 외면받고 주변의 값싼 전답은 전원주택 단지로 바뀌고 있다. 스프롤은 대지 조성과 상하수도 구축 등 인프라 건설 비용뿐만 아니라 환경파괴라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수반한다. 도시 이주민들은 정착 지역의 배타적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기에도 서로 결속력이 약하다.

지역으로의 이주는 공동체와 함께 집합적 거주 계획으로 지역에 정착하고 활력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대안이 될 수 있다. 개인에게는 기존 삶이 있던 도시를 떠나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과정적 모델이기도 하다. 민간 프로젝트인 오시리가름 협동조합주택(이하 오시리가름)과 눈뫼가름 협동조합주택(이하 눈뫼가름)은 귀촌 희망자들이 모여 주택 협동조합이라는 공동체 단위로 지역에 이주한 경우다. 오시리가름은 기존 농촌 주거지 안에 이주했는데, 마을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지역과 교류 공간을 만드는 방식으로 밀도를 더했다. 눈뫼가름은, 타운하우스로 개발행위 허가를 받은 후 건설경기가 침체되면서 프로젝트가 중단된 대지의 용도를 변경해 세대 혼합으로 주거 밀도를 높인 곳이다. 의성 고운마을(활기찬농촌만들기 프로젝트)은 인구 유입을 목적으로 기획된 공공 사업으로, 귀촌할 사람들을 지원하는 주택, 지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주말농장, 기존 농촌 주민과 교류하는 커뮤니티 시설 등을 짓고 입주자가 시설을 운영하며 지역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통합 프로젝트다.

이러한 대안 모델들이 주거에 기반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지역 커뮤니티에 정착하는 과정을 통해 지역은 재생 가능성을 갖는다. 오시리가름에는 입주 후 4년이 지나면서 주변에 새로운 활력이 생겼다. 구멍가게가 슈퍼마켓이 되었으며 음식점과 게스트하우스도 생겼다. 주거 공동체 내의 사회적 관계 덕분에 입주자들은 지역사회에 별 탈 없이 정착할 수 있었다. 또한 닫힌 커뮤니티에서 벗어나 지역과 교류하려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주변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주거 공동체 

빈센트 스컬리는 필립 존슨의 글래스 하우스를 두고 “개별적 인간이 자신과 자연 사이에 놓인 모든 것을 없애고 전체 인간의 커뮤니티에서 완벽하게 해방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귀촌이라고 하면 흔히 자연경관 속에 오롯이 놓인, 커뮤니티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주택들을 떠올린다. 그런데 실제 전원의 삶은 사회적 관계가 없는, 평안하기보다 폐쇄회로 텔레비전으로 스스로 안전을 책임지며 사생활 보호에 집착하게 되는 불안하고 고독한 삶에 가깝다.

오시리가름, 눈뫼가름, 의성 고운마을은 모두 공동체 마을이다. 자연발생적 거주지, 신도시와 타운하우스 개발로 만들어진 정착지로의 이주와 달리 이곳 입주민들은 이전까지 사회적 관계가 없던 이들과 이웃하기를 결정한 뒤 주거 공동체를 결성했다. 눈뫼가름의 스물여덟 가구 주민들은 은퇴한 일흔의 노부부에서 갓 태어난 아기가 있는 젊은 부부까지 나이, 직업, 가치관, 문화적 취향 전반에서 서로에게 타인이다. 오시리가름의 열여섯 가구 주민들은 은퇴했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연령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의성 고운마을의 스물다섯 가구 주민들은 연령대, 직업, 출신 지역까지 다양성이 뚜렷하지만 저마다 귀촌하여 마을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다.

‘주거 공동체가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지금 이 시대에 타인과 이웃하며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공동체의 형성과 운영에는 그 구성원들이 서로의 관심과 지향을 공유한다는 점이 전제된다. 더 나아가 주거 공동체에서는 사적 영역과 공공 영역의 경계를 설정하는 일에 대한 인식이 첨예한 문제가 된다. 대도시 속 익명적 삶에 익숙한 이들에게 주거는 사적 공간으로 인식되며, 이웃은 자신의 일상적 삶을 침범하는 민원 대상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이 상식이 된 사회에 살고 있다. 내 집 앞 주차를 원하는 이웃과 아이들이 뛰놀 수 있도록 차 없는 길을 원하는 이웃은 갈등한다. 공동체 시설에 투자해 좋은 공간을 공유하려는 이웃과 비용 최소화를 원하는 이웃은 갈등한다. 태양광 패널을 부착하고 싶은 이웃과 그 반사광이 불편한 이웃은 갈등한다. 갈등은 모두 내 집 바깥의 일들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대도시와 아파트 공간이 대변하는 환경에서 살아온 우리들에게 타인과 함께 쓸 공간을 논의하고 설계하는 일은 익숙하지가 않다. 그런데 주거 공동체에서는 공간의 공유 형식에 대한 논의가 존재하며 대립되는 가치관을 대화와 협의로 해소하는 과정이 진행된다.

눈뫼가름은 최근 입주가 마무리돼 공동체가 형성되기 시작한 곳이다. 어른들은 이웃집 아이들이 자기 집에 스스럼없이 들어오는 것이 반갑다. 세대 혼합의 긍정적 측면이다. 오시리가름은 눈뫼가름의 미래다. 기존 농촌 주거지로의 집단 이주 이후 공동체를 위한 활동들은 구성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토론, 민주적 의사결정, 그 속에서의 리더십 발현으로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지어진 시기가 앞선 만큼 공동체도 단단해졌고, 길의 나무와 정원은 그 이상으로 풍성해졌다. 물리적 환경도 사회적 관계도 모두 시간이 필요한 것들이다.

 


 

(위) 오시리가름 협동조합주택 

(아래) 눈뫼가름 협동조합주택

 

집합의 형식 

세 프로젝트는 계획 유형으로 볼 때 타운하우스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전원주택 단지는 값싼 전답을 대지로 바꾼 뒤 차량 접근을 전제로 한 배치 계획, 동일하게 나뉜 대형 필지, 획일화된 이층집이라는 공식으로 개발된다. 개발자가 기획한 대지는 분양하기 쉽도록 최소의 공용면적과 최대의 개별 필지면적으로 분절된다. 신도시의 단독주택 필지 역시 같은 형식으로 조직되며 이에 따라 대지 위 건축은 더욱 개인화된다.

공동주택이든 타운하우스든 집합 주거에서 물리적 공간을 조직하는 일은 개인 영역의 규정, 공동체의 소통, 지역 커뮤니티와의 교류 방식에 개입하는 일이다. 개인과 주거 공동체, 개인과 지역, 주거 공동체와 지역이라는 상호 관계가 존재한다. 주거 공동체는 폐쇄적 커뮤니티(gated community)가 아닌 지역에 느슨하게 열려 공동의 시간을 경험하고 지역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자기 완결적 커뮤니티인 ‘단지’로서의 계획은 지양해야 하며, 오픈스페이스 조직, 건물 밀도 조절, 공유시설 마련은 이를 위한 계획적 요소가 된다.

오시리가름은 평지인 대지에서 ‘길’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소박한 살림집과 창고가 놓인 기존 촌락의 형식처럼 주택들은 특별한 방향성 없이 길을 따라 놓이며 각 집이 다른 집의 마당을 규정하고 거실이 길과 수직으로 만나는 마당 쪽으로 열리도록 했다. 길과 조용한 마을길이 만나는 곳에 주거 공동체를 위한 공동 주방을 두고, 길과 통행이 빈번한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는 작은 도서관을 두어 지역사회에 개방하였다.

눈뫼가름은 경사가 심한 북사면 대지에서 수평적 ‘단’을 통해 조직되었다. 단은 공유하는 수평적 옥외 공간으로서 머물 수 있는 대지이다. 주택들은 높이와 전후 면이 어긋나게 배치되어 서로의 마당을 규정한다. 직각의 질서는 중첩된 경관으로서 주거 밀도를 드러내는 장치다. 외부 도로와 만나는 가장 높은 단에 커뮤니티 하우스를 두어 구성원들이 오고 가며 자연스럽게 만나도록 하고 마을과 바다 경관을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

의성 고운마을은 복합 프로그램을 기존 주거지와의 관계를 고려해 밀도가 다른 세 개의 영역으로 분절·조직한 곳이다. 중심이 되는 커뮤니티 영역은 단층 건물들 사이에 옥외 공간들을 둔 느슨한 조직으로, 거주 영역은 이웃과 접하는 밀도가 높은 공간으로, 여가 영역은 특별한 방향성 없이 자연 지형을 따르는 길과 열린 옥외 공간으로 조직된다. 의성 고운마을에는 이주민, 방문객, 기존 거주민 등 서로 성격이 다른 사람들이 머문다. 이들의 일상과 비일상 동선이 독립되거나 교차되면서 복합적 커뮤니티의 관계를 이룬다.

 

삶의 다양성

현 주택 재고의 60% 이상을 점유하는 아파트는 거주환경의 질이 확보되는 주택 유형으로 인식된다. 한국에서 그 역사는 이제 40년이 넘었으며 출생 후 성장기를 보낸 주거 공간이 아파트가 유일한 세대들도 많아졌다. 아파트는 평면으로 인식되는 주거 공간이기도 해서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한 표준 평면과 발코니 서비스 면적이 클수록 상품성이 높다고 평가된다. 따라서 아파트에서의 주거 경험은 한정적이며 대개 현관문 내부의 실내 공간으로 집중된다.

그동안 가양동 육아 공공주택, 만리동 예술인 공공주택, 하의재 협동조합주택, 오시리가름, 눈뫼가름 등 공공과 민간의 거주자 참여설계를 전제한 공동체주택 프로젝트들을 진행해왔다. 이 과정에서 100가구 이상을 만나면서 개인의 삶이 아파트 평면에서부터 시작됨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은 주택에 대한 보수적 선입견과 상품적 가치로 만들어진, 개별화된 공동주택의 환경에 익숙한 것이다.

거주자 참여설계는 다양한 주택에 대한 대안으로서 설계 방법론이라기보다 주거 공동체가 공간을 함께 사용하며 가치관을 공유하는 일종의 프로세스여야 한다. 내 집 창의 방향, 문 바깥의 공간과 정원, 이웃과 만나는 복도와 길, 주차장, 커뮤니티 시설까지 공유와 사용의 원칙을 이웃과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거주자 참여설계와 부담 가능한 주택(affordable housing)은 서로 양립하기 어려운 관계다. 거주자의 요구 조건이 많아질수록 비용은 늘어나는데 예산은 한정돼 있어 결국 분배 문제로 귀결되곤 한다. 눈뫼가름, 오시리가름, 의성 고운마을 등 세 프로젝트에서 주택 내부는 주거에 대한 각자의 취향이 반영되고, 외관은 소박하게 형성돼 공동체의 집합성을 드러내며, 옥외 공간은 완성형이 아닌 거주자가 스스로 가꾸도록 하였다.

100가구의 생활은 저마다 개별성을 지닌다. 특정한 맞춤 주택으로 삶의 다양성을 충족한다는 것은 100개의 서로 다른 주택이 필요하다는 것과 동의어이다. 한 개인의 삶 또한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화하기에 ‘맞춤’ 주택은 맞춤 옷이 시간이 흘러 맞지 않듯이 어색한 상황을 만든다. 따라서 집은 살아가면서 채울 여백이 있는, 특정한 유형이 되기보다 최소한의 규정으로 삶의 다양성을 담을 수 있는 중성적 틀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은경
이은경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은 뒤 건축사사무소기오헌에서 실무를 익혔다. 이후 네덜란드 베를라헤 인스티튜트에서 건축도시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자비에 드 가이터 아키텍츠, 리켄 야마모토 앤 필드숍 등을 거쳐 2011년 이엠에이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했다. 2015년 젊은건축가상을 비롯해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 농촌건축대전 대상 등을 수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출강한 바 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수년간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했으며, 공동체가 중심이 되는 주택, 도시재생 공공 프로젝트 등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다양한 규모와 프로그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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