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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tique] 농촌 경관에 개입하기

강예린
사진
노경 (별도표기 외)
background

산업 주도로 형성된 도시와 달리, 농촌의 경관은 정부 정책 주도로 변화되어왔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함석지붕과 신작로가 생겼고, 1990년 중반 쌀시장 개방 이후에는 유통 경쟁력 확보라는 명목으로 농산물 간이 집하장 수천 개가 불과 2년 만에 전국에 들어섰으며, 2000년대엔 농촌 공동체를 강화하기 위한 커뮤니티 예술 정책이 시행돼 곳곳에 벽화가 그려졌다. 농촌 시설들의 벽면에는 이를 축조한 해당 사업명이 서명처럼 명기되어 있다. 행정안전부, 농림축산식품부, 문화관광체육부 등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시혜적 정책들은 이처럼 농촌 경관에 고스란히 쌓이고 있다.

민간의 경우도 농촌의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수행된다. 농촌을 대상지로 삼은 민간 건축 프로젝트들은 대부분은 ‘전원’주택이다. 1990년대 중반 준농림지라는 새로운 용도가 등장한 이래, 도시를 탈출한 이주민들은 농촌의 자연을 배경으로 목가적 삶을 꿈꿔왔다. 여기서 ‘전원’은 누군가 살고 있지 않은 비어 있는 자연의 공간으로 가정되는 듯하다. 이은경의 세 프로젝트는 이 전원주택이 가지고 있는 가정에 대한 반문처럼 생각된다. 공동주택이 내포하고 있는 ‘공동의 가치’를 이주 집단의 영역을 넘어서 주변 농촌 경관에까지 연장하는 태도에서는 건축가의 공공성이 보인다.

 

배치와 비례를 통한 밀도의 디자인

오시리가름 협동조합주택(이하 오시리가름) 단지 공사가 한창일 때, 나는 같은 지역인 제주 표선면의 현장을 오가고 있었다. 오시리가름이 표선면 번화가인 가시리에 위치하다 보니, 이 프로젝트가 지어지는 과정을 의도치 않게 지켜본 셈이었다.

이은경은 이 프로젝트에서 땅을 고르는 과정에서부터 개입했다고 한다. 토지 비용이 저렴한 외따로 떨어진 땅보다 가시리 중심에 있는, 당연히 더 비싼 현재의 대지를 선정하자고 건축주들을 설득했다. 은퇴한 혹은 은퇴할 건축주들이 모여 산다는 의미를 인근의 농촌 지역까지 넓히자고 제안한 것이다. 그 결과 오시리가름은 단지의 영역이 분명해서 새로운 블록이 세워지는 방식이 아닌, 마치 마을 사이에 비워진 공간이 채워지는 것처럼 자라났다. 서로 살짝 빗겨 앉은 열여섯 가구의 집들 사이에는 가시리의 풍경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있다.

주택들은 단지의 보행 동선으로부터 직각이 아닌 조금씩 틀어진 방향으로 배치되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경사지붕의 집들이 마치 자연부락의 배치처럼 땅에 앉아 있음으로써, 보행자는 하나의 유형에서 나온 집들의 다양한 입면과 마주하게 된다. 개별 가구가 가꾸는 정원과 1층 테라스는 공간 경험을 더 다채롭게 한다. 마을 초입의 공동 도서관은 보행로에서 45。 정도 틀어져 놓임으로써 주거 단지 구성원들만의 공간을 넘어 주변 마을과 공유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취한다. 예산 제약 때문에 최소화한 공동조경은 과하지 않게 주거 모듬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개별 주택의 정원은 건축가가 제안한 몇 가지 원칙하에서 거주자 취향에 따라 주호를 변별하고 있다.

대지 선정에 관여할 수 없었던 눈뫼가름 협동조합주택(이하 눈뫼가름)과 의성 고운마을 프로젝트에서는 밀도 디자인에 보다 초점이 맞춰졌다. “전원주택 단지가 덩그러니 놓이게 되는 걸 피하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대지와 배치를 우선순위에 두고 개별 주호가 계획되었다. 눈뫼가름은 개발업자가 제주도 이주 붐이 일던 시기에 타운하우스 용도로 조성한 대지를 물려받았다. 높이가 10m 이상 차이 나는 경사지는 개별 주호와 주도로의 연결 동선을 위주로 계획됐었는데, 건축가는 이를 경사지에 순응하는 수평적 동선이 놓이는 집터로 바꿨다. 개별 주거로 가는 도로가 우선되기보다 경관에 어울리는 모듬으로 마을의 단이 먼저 조성되었고, 단지 진입부의 공동 주차장에 주차한 뒤 걸어서 개별 세대로 접근하는 이동 방식이 제안되었다. 세대수와 면적은 건축가가 임의로 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다. 다만 배치와 평면을 세심하게 디자인해서 시각적으로 적정 밀도를 구현하려고 했다. 눈뫼가름 단지는 스물여덟 세대로 구성됐는데, 각 단의 세대들은 지그재그로 배치되면서 스물여덟 세대 이상이 들어선 듯한 밀도를 보인다. 엇갈림의 배치는 북사면이라는 대지 조건과 어우러지며 개별 주택에 빛을 끌어들이고 다양한 평면 유형을 유도하고 있다.

의성 고운마을은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 비용과 갈등 조정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용이한, 그래서 선정된 전답의 분지가 대상지다. 이 백지의 땅에는 생산(거주)·여가·커뮤니티라는 프로그램이 서로 다른 스케일과 밀도를 지니며 분산 배치돼 있다. 우선 거주지는 기존의 농촌 마을이 있고 마을길과 맞닿는 위치인 대지 북측에 자리 잡았다. 이로써 대지는 높이 차이로 기존 마을과 나뉘어 있지만, 단지와 마을의 일상에는 서로의 풍경이 연속하게 된다. 커뮤니티 공간은 거주지와 기존 마을, 캠핑장 사이에 놓여 완충 역할을 하고 있다. 주거와 캠핑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면적이 큰데, 웰컴 센터, 공방, 커뮤니티 홀 등의 시설이 서로 멀찌감치 놓여서 외부로 확장된 내부 활동이 주변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거주지의 주택과 캠핑장의 방갈로들은 자칫 헐거워 보일 수 있는 작은 규모지만, 맞벽을 두어서 개별적인 외부 공간을 정의한다. 캠핑장은 방갈로, 주차장, 주차장 마당에 차양이 되어줄 느티나무까지 한 묶음의 단위로 조직됐다. 캠핑장의 단위 모듬은 커뮤니티 공간에서 주차장으로 갈수록 성글게 놓여 경관을 채운다. 세심하게 조정된 밀도는, 생산 공간인 공동텃밭에서 성글고 주거지에서는 복닥거리는 농촌 경관의 문법을 따르고 있다.

 


의성 고운마을 ⓒtexture on texture 

 

건축 팔레트와 참여 디자인

한국에서 협동조합 주택이 정착되는 데에는 ‘부담 가능한  (affordable housing)’과 ‘참여 디자인’이라는 두 가지 기제가 작동했다. 오시리가름과 눈뫼가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프로젝트의 외장재는 예산 제약 때문에 렌더, 징크 등 경제적인 것들로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협동조합 주택이라는 프로젝트 특성상 디자인과 시공이 연계·통합되면서 개별 세대 유형은 가짓수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는데, 참여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의 다양한 요구가 설계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었다.

이은경은 같은 면적에 대한 볼륨의 탐구를 통해서, 이 제약 조건을 디자인의 영역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건축의 큰 유형을 먼저 제시하고, 개별 주호의 결정에 따라서 자연스러운 변형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는 워크숍과 설문조사를 실시해 가구 특성을 파악하고, 주거 타입을 나누고, 커뮤니티 건축과 공용 공간의 관계를 풀었다. 설문지에서 눈에 띄는 항목으로 ‘주거 내부에서 제일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 ‘가장 우선시 되는 공간’, ‘줄일 수 있는 공간’에 관한 질문이 있다. 이 항목들은 주거 공간에 대한 사용자들의 막연한 바람을 설계 과정에서 조정할 수 있는 범위로 제한하려는 것들로 보인다. 보이지 않는 가이드라인이다.

설문 결과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접지 층을 꽉 채우고 2층 공간을 일부 비워내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2층에서 비어진 부분은 주변 경관과 섞이고, 주거 디자인의 변주가 가능해졌다. 오시리가름의 주택들은 장방형의 직사각형 평면으로 내부 보행로에 면하는 쪽이 길다. 보행로에서 봤을 때 단지 밀도가 높아 보이는데, 보행로와 수직한 방향에서는 네 개의 켜를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주택 평면이 얇다. 이러한 평면 비율과 2층의 비워진 부분, 이를 채우는 박공지붕 등의 건축적 요소들은 낯익으면서도 새로운 유형의 경관을 형성하고 있다. 눈뫼가름은 상대적으로 입주자 유형이 다양하고 이에 따라 주택 면적도 27평, 30평, 35평 등으로 세분화됐는데, 상대적으로 큰 평형을 정사각형 평면으로 풀어내면서 함께 사는 단지에서 볼륨의 조화를 만들어냈다. 눈뫼가름은 다섯 개의 기본 유형에서 열세 개의 하위 유형까지, 오시리가름은 두 개의 유형에서 시작해 열여섯 개의 하위 유형으로 조절되었다.

이은경이 보여주는 특유의 감각적 배치는 평면도와 마스터플랜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다채로운 풍광을 만들어낸다. 이 다양함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개별 색채의 사용과 공용 공간에 대한 주거의 대응 방식을 통해 강조된다. 그는 답사 내내 차분한 목소리로 참여 디자인과 공공 건축의 긴 프로세스를 설명했는데, 막상 대지에 들어서니 서사와 프로세스의 논리보다는 건축가의 디자인 팔레트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침묵의 언어와 커뮤니티 디자인

이은경에게는 다수의 공동주택 설계 경험이 있다. 자신의 건축사사무소를 설립하기 전에는 강남보금자리주택 프로젝트의 실무자로, 만리동·가양동·남가좌동·고덕강일 공동주택 단지의 설계자로 참여했다. 20여 세대부터 수백 세대까지 다양한 규모의 공동주택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모여 산다’는 것에 대한 건축가의 언어와 기준이 형성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공동’, ‘공유’, ‘공존’에 대한 기준은 모여 산다는 존재론적 정당성을 넘어서 다양한 문화적 층위를 가지고 있다. 이은경은 함께 사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이주민들에게는 조금씩 내어놓아 함께 풍요로워지는 ‘공유의 의미’를, 함께 살 마음이 앞선 이주민들에게는 보다 넓은 땅의 맥락에서 ‘공존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그러나 제안은 일방향이 아니다.

세 프로젝트 모두 사용자 참여 디자인을 거쳤다. 참여를 통해 건축가와 사용자들이 가치관을 공유하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건축적 질서들은 역으로 언어적 힘을 획득한다. 모든 거주자들이 참여 디자인 과정에서 이뤄진 결정들에 항상 동의할 수는 없겠지만, 건물이 완공되고 그곳에서 살면서 공동 결정한 언어를 배우는 데는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건축의 힘은 여기에 있다.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은 시간과 공간을 침묵의 언어로 언급하면서 공간에 ‘의사소통 기능’이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이 공간의 언어는 그곳에 살면서 반복적으로 체득하게 되는 언어다. 오시리가름, 눈뫼가름, 의성 고운마을에는, ‘단지’와 ‘개별 세대의 문’이라는 이중 게이트 안에서 주택 내부의 인테리어에만 신경 쓸 수 있는 도시적 상황을 넘어 이웃과 함께 질서를 만들어가는 공동의 마당과 길과 커뮤니티 공간이 존재한다.

물론 내부 이외의 공간인 공공 공간을 디자인하는 데에는 갈등도 내재돼 있다. 눈뫼가름의 경우 건축가가 제안한 주차 원칙(개별 주호 앞 주차가 아닌 단지 진입부의 공동 주차)은 아직 조정 중이다. 아이가 있는 세대는 제안에 흔쾌히 동의하는데, 거동이 불편한 세대는 도시의 습속을 벗기가 힘들다. 주차할 일이 없는 주차구획에는 풀이 돋고, 도로로 계획된 곳에는 아이들의 장난감이 뒹굴고 있다. 공유의 공간이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그 매일을 체험한 이웃들은 공간의 쓰임에 대한 동의를 이뤄낼 수도 있으며, 저마다의 생활양식을 인정하며 서로 조절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기적의 도서관』 서문에서 도정일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건축이 탈산업사회 농촌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기능과 공간으로 포섭하고 자유로운 형태로 사람들을 유혹할 일이 아니라 근접성의 법칙과 체험에 각인되는 삶의 현실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체험은 정신적으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히며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갈등까지를 포함하는 ‘가까운 것들’. 사랑, 평화, 애정이 깃든 모든 것들은 근접한 데서 시작된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것들 사이에서 어떤 관계가 생길 수 있겠는가!’

모든 공간을 계획에 포섭하려 하지 않고 기조가 되는 부분만을 제안한 건축가의 의도는 매일의 체험과 일상을 통해서 다양한 언어로 변주되리라 생각한다.​ 


강예린
강예린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이자 현재 서울에서 활동 중인 건축가다.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 공동소장으로서 제주 생각이섬, 파주출판도시 스튜디오 M, 스페이스 소, 윤슬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제1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생산도시의 공동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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