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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의 재탄생: 코스모40 기획 이야기

성훈식(코스모40 디렉터)
사진
성훈식(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코스모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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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브라더스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졌던 초기의 매장 출점 전략, 사실 전략이라고 할 것도 없는 필연적인 선택은 한적하여 월세가 저렴하되 대중교통으로부터 아주 멀지 않은 곳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첫 매장이었던 서울 합정동 인근이 그런 곳이었고, 두 번째 매장이 위치한 인천 가좌동 또한 그런 장소였으며 강남에서는 건물 3층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코스모화학은 두 번째 매장 근처에 위치한 공장단지였다. 초창기 빈브라더스는 합정동에서 스몰배치 로스팅(어휘는 거창하지만 조그만 기계를 가내수공업으로 열심히 돌렸다는 이야기다)을 하고 있었는데, 이듬해 공단 건너편에 보다 큰 로스터리(커피를 전문적으로 볶는 제조시설)를 지을 계획을 세웠고, 로스터리의 신축에 따라 회사의 무게중심도 가좌동으로 조금 더 옮겨졌다. 새 로스터리가 가동된 해 공단이 나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삼십 년 가까이 가동되었던 2만 5천여 평의 작지 않은 공장단지였지만, 없어지는 데에는 몇 개월 걸리지 않았다. 

2016년 가을 추석 즈음 코스모화학 공장 40동에 처음 들어갔던 순간을 잊기 어렵다. 연휴에 몰래 들어갔기에 더 생생한 기억이다. 금방 무너져도 이상할 것 같지 않은 덜렁거리는 골강판 소재의 외벽을 지나 건물 내부로 발을 몇 발짝 딛는 순간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높게 뻗은 탄탄한 H빔들이 모아이 석상들처럼 서 있는 강렬한 모습에 압도됐다. 3층의 먼지 쌓인 캐비닛에서 찾은 손으로 그린 것이 분명한 1989년의 도면에는 크고 작은 기계와 다양한 굵기의 배관이 공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수십 년간 폐황산을 정제하는 화학 공정을 담당하던 설비들이 kg당 몇백 원의 고철로 팔려나가고 나니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H빔들이 빈 공장의 주인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이 건물 또한 곧 철거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건물이 어떻게든 살아남으면 좋겠다고 신진말 심기보 대표와 나눴던 이야기가 지금 와 생각해보면 코스모40 프로젝트의 킥오프 미팅이었다. 40동은 본래 철거 초기 없어질 예정이었으나 주거지와 가깝다는 연유로 철거 기간 방패막이 역할을 하기 위해 가장 마지막에 철거하기로 결정되었고, 생을 다하기 직전 수상한 동네 이웃들에게 발견되어 살아남은 것을 보면 건물도 하나의 생명체 같다는 생각이 든다. 

 

1989년의 도면에서 기계 설비로 가득했을 공장의 과거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굳이 무엇을 더하지 않아도 시간이 배인 자체로 무심하게 아름다운 폐허미(美) 가득한 건물의 어느 부분에 손을 댈지 결정하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가능한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되 필요한 상업 시설의 기능을 잘 배치할 수 있는 리모델링을 원했고, 공간을 사용하게 될 창작자 및 예술가의 입장을 대변하며 디자인할 수 있는 건축가를 찾았다. 건축가이자 예술가로서 다방면으로 작업을 해왔던 삶것건축사사무소의 양수인 대표에게 설계를 의뢰하게 된 것도 이러한 맥락이 가장 컸다. 양수인 대표와 국내외 여러 도시를 다니며 다양한 사례를 같이 보고 이야기했던 경험은 이후 설계 과정에서 큰 자양분이 되었다. 건축가의 바람과는 다르겠지만 욕심을 버리고 프로젝트를 담백하게 해야겠다고 결정한 것 또한 답사 여행의 쏠쏠한 소득이었다. 40동 건물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었고, 모든 것을 보존하고자 욕심을 내기보다는 사용자 지향적인 공간기획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올 수 있었다.

건물의 표면을 새로 씌우고 옛 건물을 실내화하여 보존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예산 문제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옛 공장 안으로 고리 형태의 신관이 삽입된 디자인은 예산은 물론, 오래된 건물과 재생 건축이 충족해야 하는 현행법 간의 괴리 문제를 해결하는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완벽하게 독립된 신관은 F&B 공간과 상점으로, 옛 공장은 다양한 이벤트를 수용하는 대공간(홀)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운영 면에서, 특히 지역성을 고려할 때 천 평 정도 되는 건물 전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 보았다. 먼저 필요한 기능들을 가볍게 갖추어놓고 이후 변화에 따라 대응하고자 했다. 예컨대 재생이 진행된 지역을 살펴보면 처음부터 상설 프로그램들로 가득 채워져 시작된 것이 아니라, 잘 활성화된 특정 프로그램들이 계기가 되어 조금씩 바뀌어 나갔다. 단일 건물의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유효하다고 보았다. F&B 면적은 운영하면서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얼마든지 증축 등을 통해 늘릴 수 있기에 처음부터 면적을 크게 잡지 않았다. 나머지 공간은 담백하게 두고, 대공간의 이점을 살려서 프로젝트 방식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가동할 때의 균형을 빠르게 찾고자 했다. 

 

©신경섭

©​신경섭​. 옛 공장의 기둥을 둘러싸고 새로이 형성된 기둥 묶음에 의해 지지되는 신관은 구조적으로 완벽하게 독립된 증축이다. 

©신경섭

 

한국에서 카페는 지역 활성화 관점에서 뜻밖의 모범답안 역할을 하고 있다. 아무것도 없던 외딴 지역에 카페가 들어서면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지역이 바뀌는 사례가 많이 목격된다. 과거 마트나 백화점 등이 담당했던 지역상권을 변화시키는 역할을 카페가 물려받은 셈이다. 프로그램 관점에서 보더라도 카페는 서점 다음으로 남녀노소 사랑받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지속가능성을 고려한다면 수익에 대한 고민이 큰 서점보다 인테리어 잘하면 운영이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카페가 대안으로 선택될 확률이 높다(10년간의 커피 회사 경험으로 감히 판단하건대 이 선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예술은 쉽사리 대안으로 선택되기 어렵다. 문화적 도시재생, 미학적 도시재생 등의 단어가 점점 더 잦은 빈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아직 한국에서 예술 관련 콘텐츠를 소비하는 층은 얇다. 서울을 벗어나면 그마저도 더 얇아지는데, 활성화가 필요한 지역들은 대부분 서울과 멀리 있다. 바꾸어 말하면 문화 프로그램은 민간사업으로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쉽지 않다. 

진입장벽이 낮은 카페는 작게는 그 건물, 크게는 그 지역에 대한 관심의 문을 여는 열쇠로 기능할 수 있다. 커피를 마시러 왔다가 건축사진전을 보게 된다면 커피는 새로운 경험의 매개가 된다. 빈브라더스에서는 커피를 2가지로 정의하곤 한다. 하나는 미식으로서의 커피, 다른 하나는 맥락으로서의 커피. 문화공간의 정체성을 위해 빈브라더스의 브랜딩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는 결정은 커피 회사로서는 아쉬울 수 있지만, 공간의 맥락과 장기적 관점을 고려했다. 대공간은 다양한 콘텐츠들이 넘나드는 일종의 생태계이고 이제 막 피어났기에 프로그램들은 서로 돕거나 경쟁하는 가운데 각자에게 맞는 규모를 지니며 균형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수익 극대화가 제1 목적은 아니고, 적정한 수익을 내면서 문화 공간을 충분히 큰 규모로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균형점이라 생각한다. 

두 개의 홀은 직접 추진하는 프로그램과 대관 프로그램으로 운영된다. 대관의 경우 지속가능성을 목적으로 적절한 선에서 대응하고 있다.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로부터 있는 그대로 두었을 때 활용도가 더 높을 것이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다. 자체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로, 개관전인 신경섭 건축사진전을 비롯한 전시 기획과 지역밀착형 프로그램이다. 지역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주, 월 단위의 정기적인 음악공연, 명상, 요가 프로그램, 미술 워크숍 등을 준비 중이다. 기능으로만 보면 주민문화센터와 비슷하겠지만 같은 내용이더라도 다르게 담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형태가 될 것이다. 

 

©유찬울

©김성일

옛 공장은 다양한 이벤트를 수용하는 열린 공간이다. 

 

만드는 사람이 일차적으로 무엇을 내고 싶은지를 결정하지만, 이 공간에서 무엇이 코어 프로그램인지는 결국 찾아오는 사람들이 결정한다. 코스모40이 계속해서 F&B를 중심으로 사랑받는다면 점차 F&B 공간으로 바뀌어 나갈 것이고, 전시 공간으로 사랑받는다면 전시장으로 좀 더 날카롭게 다듬어질 것이다. 여태껏 우리가 발견하거나 시도하지 못한 어떤 프로그램이 이 공간과 가장 잘 어울릴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시도되고 발견되는 플랫폼의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도시 생태계에서 새로운 유망 지역이 생겨나는 것만큼이나 정체되거나 낙후된 지역들이 생겨나는 것 또한 필연적이다. 후자의 지역들이 어떤 계기로 다른 변화를 맞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코스모40은 현재 공단 안에서 다른 공장들과는 전혀 다른 기능을 하는 공간이다. 처음이 어렵지만, 관련 인프라가 조금씩 붙어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으면 충분히 기존의 하드웨어 안에서 다른 맥락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좌동에 자리 잡은 신진말, 빈브라더스와 코스모40, 올 3월 완공되는 관해각 등은 점을 찍는 단계지만, 이러한 노력이 켜켜이 쌓이면 어느 순간 선으로 연결될 것으로 기대한다. 코스모40의 건축은 오픈 이후에도 몇 년간에 걸쳐 진행될 현재진행형 프로젝트다. <진행_오주연>

 


성훈식
서울대학교 응용화학부를 졸업했다. 재학 중 만난 남원일, 박성호와 에이블커피그룹을 창업해 빈브라더스 브랜드 디렉터를 맡고 있다. 경험으로서의 커피에 집중해 브랜딩과 프로젝트 기획을 진행하고 있으며 커피가 여러 콘텐츠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복합문화공간 코스모40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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