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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 보존된 건축의 현실

이성제 기자
사진
진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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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도상에 ‘들풀조각마당’으로 표기된 곳에는 자갈과 모래만 깔려 있었다. 공사용 가림막이 시야를 가리고, 안전모를 쓴 노동자들이 미술관 앞을 오갔다. 진입로에선 레미콘과 화물차량이 먼지를 날렸다. 연초제조창의 공장동-2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로 탈바꿈한 상태였지만, 바로 옆 공장동-1은 청주시 도시재생 사업으로 한창 공사 중이었다. 외벽마다 거미줄처럼 걸린 안전 그물망을 가리려는 듯이, 대형 현수막이 드리워져 하루 앞으로 다가온 미술관 공식 개관을 알리고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날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청주관 사업을 설명하고 질의를 받았다. 주변 시설이 마무리 안 된 채 서둘러 개관한 듯한 상황에 대해 질문이 나왔다. 박위진(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직무대행)은 “이 사업은 청주시와 함께 도시재생의 일환으로 추진됐다”며 “미술관 앞 잔디광장, 들풀조각마당, 후면의 주차시설 등은 조성 예정으로, 청주시의 도시재생 사업이 마무리되는 2019년 6월 무렵 갖춰질 것”이라고 밝혔다. 작품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 조사 연구 공간인 라키비움(라이브러리, 아카이브, 뮤지엄의 합성어) 등 관람객의 능동적 관람을 돕는 서비스들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사실상 수장고만 개방한 채 개관한 모양새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2012년 제18대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된 프로젝트다. 그는 임기 중점과제로 ‘국립 미술품 수장・보존센터’ 건립을 제시했고, 이어서 청주시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분원 건립 협약’을 체결했다. 청주시가 연초제조창 건물을 무상 제공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를 리모델링해 분원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이 발주한 연구용역 「국립미술품수장・보존센터 운영 및 공간계획 연구」(2012)를 보면, 건립 사업의 목적은 ‘국가 예술자산인 미술품의 안정적인 가치보존 및 관리를 지원하는 공간 인프라’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과천과 여주 등의 수장 공간이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 2013년 서울관 개관을 앞둔 상황인 만큼 미술품을 체계적으로 수장・관리하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청주관 설계공모는 같은 해 10월 실시됐다. 연초제조창 시설 중 단지 가운데에 위치한 공장동-2와 식당동, 후생동(아이디어 제안)이 대상이었다. 대지 계획은 전체 부지에서 서측 출입구를 기준으로 남측 부분이 그 범위였다. 연초제조창 전체 마스터플랜은 청주시에서 수립할 계획이었고, 설계공모 당선자에게는 ‘청주시에서 진행할 후생동 및 주변 대지의 설계 및 공사에 자문 등의 방식으로 참여’하는 권리가 부여될 예정이었다. 2013년 2월, 설계공모 당선작으로 원도시건축과 팀텐건축사사무소(현 강산건축)의 ‘연초제조창, 존재하다’가 선정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마침내 청주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이는 수장고, 조율되지 않은 공간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장변 120m, 단변 33m, 5층 규모의 기다란 건물을 리모델링한 시설이다. 노동자들이 담배를 포장하던 공장에는, 다른 산업시설에서 발견되는 벙커, 소각로 등 눈길을 사로잡는 흔적이 남지 않았다. 건축물은 기둥-보 구조로 단조로웠고, 역사적 사건이 깃든 근대 유산과도 거리가 멀었다. 그렇지만 이 연초제조창은 한때 3,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의 일터이자,​ 해외 각국으로 수출될 담배가 생산되던 청주의 대표 산업기지였다. 반세기가 넘도록 자리를 지켜오며 지역민들의 기억이 담기고, 건물은 세월을 이겨내며 그 자체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지상 층인 1층에 청주관 메인 프로그램인 개방수장고가 자리를 잡았다. 유리로 설정된 1층 외벽은 한 켜 물러 회랑을 형성하고 있다. 건물 상단에서부터 내려온 구조체가 지상에 이르러 모습을 드러내는데, 건물의 구축 질서가 입면 장식에 머무른다는 인상을 준다. 내부의 인공 조명보다 강한 자연광에 의해 유리벽이 불투명해지면서 회랑을 이루는 기둥열만 도드라진 탓이다. 미술품 도난 등을 이유로 1층 후면에 두꺼운 벽을 세운 지금과 달리, 초기 계획에서는 1층 벽 대부분이 유리로 설정됐다. 미술관 앞의 들풀조각마당, 개방수장고, 후정이 시각적으로 연결되는 가운데, 기존 건물의 기둥열이 연초제조창의 구축 질서를 드러내며 강렬한 장면을 연출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수장고 프로그램은 1층에서부터 4층까지 관통하고 있다. 수장고 하단부에서 벽을 사선으로 만들고 수장고 매스와 기존 건물의 사이를 벌려 내부가 보이도록 했다. 지상에서부터 4층까지 이어지는, 3m 남짓한 폭의 이 보이드는 2층 관람객 쉼터와 3층 브리지에서 인지된다. 틈 사이로 1층 개방수장고가 언뜻 보이는데, 구조체가 담길 만큼의 시야는 확보되지 못했다. 수장고 매스는 원래 건물 중앙에 배치됐다. 설계 변경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치게 되면서 기둥열이 복도 가장자리 쪽으로 내려오게 됐다. 그 결과 기존 건물이 지닌 격자 체계를 공간적으로 보여주려는 의도가 구현되지 못했다.

산업시설의 반복적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을 장치들은 이처럼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점은 완성도에 있다. 각 층 수장 공간의 비례, 어정쩡한 복도 간격 등 덜 다듬어진 듯한 공간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외부로 난 창 하나 없이 답답한 2층 관람객 쉼터는 이름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염려된다. 2층 회랑의 경우 바닥에서 천장까지 커다란 유리창으로 막혀 있는데도, 그 앞에 철제 난간이 설치돼 멀리언과 시각적 충돌을 일으킨다.

기둥과 보, 벽체만 남아 힘을 발하던 옛 공간은 시멘트 블록으로 구획됐다. 그 위에 하얀 페인트가 칠해졌다. 격자 체계를 드러내던 보들이 천장 마감 뒤로 모습을 감추고, 그 자리에 관공서에서 쓰일 법한 원형 LED 조명이 빛을 발산하고 있다. 자연광을 들이고 국부조명으로 공간의 질을 조절하려는 시도가, 이 같은 미술품 수장 · 보관 시설에서 사치라고 말하는 듯하다. 공공건물의 만듦새는 건축가의 노력뿐만 아니라 건축에 대한 발주처의 인식, 담당 주무관의 역량 등에 좌우된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은 구현된 상태보다 ‘국가를 대표하는’ 미술관과 건축가의 협업이 이와 같다는 데 있다.​

 

 

 


중단된 연계, 부재하는 콘트롤타워

시선을 건물 외부로 돌려보자. 2019년 2월 현재 연초제조창 전반을 대상으로 ‘청주 구 연초제조창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 중이다. 공장동-1과 그 앞의 부대시설 등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와 함께 내부 마당을 둘러싸고 있다. 청주시는 이 시설들을 리모델링해 ‘비즈니스센터, 호텔, 복합 문화 레저시설을 유치’하고​ ‘쇠퇴한 구도심을 문화 업무의 부도심으로 활성화’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부지를 소유한 청주시가 현물을 출자하고, 주택도시보증공사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현금 출자로 특수목적회사를 설립해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다만 2016년 이 계획을 발표한 뒤 민간사업자 유치에 실패하면서, 현재 진입로와 주차장 등 기반시설 정비와 공장동-1 리모델링만 진행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건물은 과거 주변 시설과 상호 연결돼 있었다. 공간 구조가 유지됐던 2011년 청주공예비엔날레 때만 해도, 방문객들은 오래된 산업단지 내외부를 두루 경험할 수 있었다. 현재 청주관은 공장동-1과 단절된 상태다. 앞으로 들어설 주변 시설로 진입할 수 있는 출입구, 엘리베이터와 계단실 정도만 마련됐다. 청주관 설계공모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회랑을 통한 단지 전체의 통합은 계획 도면에 존재하지만, 어떻게 구현될지 불확실하다. 설계공모 당선자에게 주어진 ‘주변 대지의 설계 및 공사 자문’ 등의 참여 권리는 사실상 실현되지 않았다. 시설 연계에 대해 국립현대미술관은 관할 범위를 넘어섰다는 입장이다. 청주시는 ‘도시재생 사업이 마무리되면 원활하게 될 것’이라는 원론적인 대답을 내놓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와 연초제조창의 관계가 구체적으로 설정될 현 시점에 이를 중재할 콘트롤타워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청주관 프로젝트가 진행된 6년 동안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턱없이 모자랐던 사업비가 증액되는 사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 직위해제 돼 1년 넘도록 공석이 됐고, 프로젝트 담당자들은 자의든 타의든 자리를 옮겼다. 사업 파트너인 청주시는 시장이 바뀌고 주무관들이 교체됐다. 건축물은 무산 위기를 수차례 넘기며 간신히 태어났다. 출생에 얽힌 속사정을 아는 이들은 이 건축물의 탄생을 마냥 즐거워하기가 어렵다. 계획 대상이었던 식당동과 후생동 등은 건축가뿐만 아니라 지역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철거됐다. 이해관계자들을 조율할 건축가는 건축물이 제 모습을 갖출 시기에 자리를 비웠다. 설계 변경이 미적, 건축적 가치를 고려하기보다 법적, 행정적 절차만을 준수하며 진행됐고, 설계사무소는 빠듯한 예산 내에서 납품 기한을 맞추는 데 급급했다. 그 결과 과거의 산업 유산은 곳곳이 정리되지 않은 채 꼴만 겨우 갖추고 재등장했다. 건축에 대한 인식이 낮고 직능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나라에서 건축가의 부재가 빚은 안타까운 결과다. 그런데 안타까움은 더할 가능성이 높다.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주변으로 연초제조창 재생 사업이 여전히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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