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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의 방이 열리다: 미술관 패러다임의 변화와 국립현대미술관 청주

박남희
사진
진효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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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 고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학자를 위한 도서관이자 연구기관, 명상적 은신처인 뮤제이온이 생겨났다.▼1 최초의 박물관으로 거론되는 뮤제이온은 이후 다양한 오브제를 수집해놓은 공간이자 특권층의 서재인 스투디올로 또는 호기심의 방 등을 거쳐 근대 박물관으로 진화했다. 이처럼 왕, 귀족 등이 특별히 애호하는 예술 작품이나 사물 등을 모아 감상하기 좋게 진열하고, 상하지 않게 보존, 연구했던 호기심의 방은 프랑스 혁명 이후 1793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최초로 공공에 개방됐다. 근대 국가의 이상과 공공재로서의 문화를 시민과 함께 나누겠다는, 루브르 박물관의 설립 취지는 오늘날 많은 미술관의 정체성에 투영돼 있다.

최근 호기심의 방이 청주에 열렸다. 2004년 폐관된 청주 연초제조창에 1만 1,000여 점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이 선보인 것이다. ‘공공재의 공유’라는 미션을 ‘보이는 미술관’으로 활짝 연 국립현대미술관 청주는 서울 인근이 아닌 지역에 자리하면서 지역의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4관 시대를 맞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미술관은 등장 이후 오늘날까지 시대적, 지역적, 미학적 관점의 변화를 수용하며 진화를 거듭해왔다. 청주관은 그 동안 한국에 설립된 여러 미술관과 차별화되는 패러다임과 트렌드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여기, 미술관은 무엇으로 사는가

미술관의 사회적 영향력이 확장되는 가운데, 20세기까지의 미술관에 대한 비판적 자성과 새로운 패러다임을 ‘포스트 뮤지엄’이란 개념으로 모색한 이는 에일린 후퍼-그린힐이다. 그에 의하면, 21세기의​ 미술관은 예술 작품이 불러일으키는 기억, 정서, 대화, 담론, 논쟁을 포함해 관람자들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미술관의 경계를 확장한다. 이는 미술관에 카페테리아, 서점, 아트 숍 등 시민 편의시설이 마련되고, 콘서트, 무용 공연, 영화 상영, 시민 강좌 등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등 복합 문화 공간화로 이어졌다. 미술관의 활동이 전시 기획, 연구, 교육 등 고유 영역에서 홍보, 관리, 경영 등으로 확장되는 기업화도 수반했다. 또한 1980년대 이후 정보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효과적 운영을 위해 멀티미디어 및 기술 기반의 새로운 장비와 도구들이 도입됐으며,▼2 큐레이터 이외에 에듀케이터, 소장품관리전문가, 전시 디스플레이 디자이너, 기록물관리전문가, 미술품보존전문가, 전시 테크니션 등의 전문 인력이 상주하게 됐다.

이 같은 변화는 미술관 패러다임의 변화를 시사한다. 다시 말해 “유물에서 체험으로, 보존 중심에서 교육 중심으로, 계몽에서 학습과 놀이를 병행하는 에듀테인먼트로, 공급자 중심에서 이용자 중심으로, 국가 중심에서 지역 중심으로, 표준화에서 특성화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결합으로, 관료주의에서 경영합리화로, 학예원 중심에서 전문 인력 중심으로, 기억의 축적에서 미래의 창조로 전환을 이루어갔다.”▼3 이러한 기능적 조직적 변화의 구심점이 미술관의 실질적인 행위 주체인 ‘관람객’과 ‘전문인력’에 맞추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는 미술관이 전문화와 대중화라는 본질적 기능에 균형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기도 하다.

자넷 마스틴은 『새로운 미술관 이론과 실천』에서 이러한 사회적, 의식적 변화의​ 지점들이 중첩되고 있음을 역설한다. 그는 미술관을 메타포-성지(shrine), 시장주도 산업(market-driven industry), 식민지적 공간(colonizing space), 포스트-뮤지엄(postmuseum) 등 네 유형으로 구분한 바 있다.▼4 현실에서 이 유형들은 독립되기 보다 서로 얽힌 모습으로 드러나는데, 특히 동시대 미술관은 호기심의 방으로서 성지라는 고전적 전통뿐만 아니라, 산업화 이후의 시장 논리, 식민지적 관점, 그리고 탈 제도적 영토화의 포스트 뮤지엄 시각 등이 복합적으로 혼재하고 있다. 포스트 뮤지엄 유형이 보다 강화되고 있는 오늘날, 미술관은 관람객에 대한 배려와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확충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이 같은 고민을 가장 절실히, 가장 앞서 하며 새로운 미술관 모델을 찾는 곳은 국립현대미술관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장고의 기능을 전시와 보존으로 대별하여 그 중심에 관람객과 전문 인력을 안배하는 특색을 만들고 있는 청주관은 분명 깊은 사유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올레 보름의 ‘호기심의 방’을 그린 『보름 역사박물관』 속표지 그림 

 

담배공장의 변신, 미술관이라는 연금술?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가 자리한 연초제조창은 2000년대 폐쇄된 이후 2011년 1월까지 비둘기가 점령하던 곳이었다. 문화적 변화의 물꼬가 트인 것은 2011년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 공간으로 선정되면서였다. 당시 (그리고 현재) 청주 시장인 한범덕의 결정은 정준모(2011년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감독) 이하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존중하여 진행된 특별한 역사로 기억해야 한다. 모든 일에는 계기가 있는 것으로, 2011년의 이 결정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의 주춧돌이 됐다.

오랫동안 방치된 폐공장은 낮에도​ 손전등이 필요할 만큼 어둡고 출입이 어려운 위험한 장소처럼 보였다. 하지만 건물 자체가 ‘근대성’을 담보한 특별한 공간임에는 틀림없었다. 르 코르뷔지에, 몬드리안, 말레비치, 솔 르윗, 도날드 저드의 작업에서 보이는 직각 체계가 반복, 연속되는 연초제조창은 유휴 공간의 문화 공간화를 이미 실현한 유럽의 미술관 공간과 오버랩되면서 문화기지로의 변신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2018년 마침내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가 개관했다. 청주시 주도로 청주공예비엔날레 행사장의 리모델링 공사도 한창 진행되고 있다. 청주관 프로젝트가 2012년부터 시작됐지만 주어진 기간이 넉넉했던 것은 아니다. 청주관 구현의 한 축인 리모델링 공사와 또다른 축인 청주관의 특색 확보와 운영이 긴밀하게 결합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자면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이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동일하게 겪는 문제인, 행정 소요 시간과 사안 이행 시간의 간극 때문일 수 있다. 하드웨어 구축에 모든 시간과 예산을 집중하는 반면, 소프트웨어 확충에는 무관심한 관행도 작용했을 것이다.

더군다나 청주관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실제 소프트웨어로서의 소장품이 공개되는 공간으로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소장품을 어떻게 수장할 것인지, 어떻게 관리하고 연구할 건지, 그리고 교육할 것인지 등의 질문이 뒤따른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 소장 정책, 소장 방향의 추이에서부터 현재까지 수장하고 있는 작품들의 분류는, 미술관의 대표적 작품군, 대표적 주제와 작가 연구, 독자적 교육 프로그램 등을 설정하기 위한 토대로서 반드시 진행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를 통해​ 미래의 소장 정책의 방향 수립, 국제적 브랜드화와 마케팅 등이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프레임 아래 청주관의 중장기 비전을 수립, 실행해야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이와 관련된 계획은 보이지 않는다. 1976년 개관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의 인류학 박물관은, 스위스의 샤울라거와 함께 보이는 수장고형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전시형 수장고 미술관은 작품, 유물 보관 이외에 관람객을 대상으로 전시, 교육, 정보 제공, 체험 공유 등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보이는 미술관’으로서 청주관 역시 전시가 일련의 기능들과 정치하게 연계돼야 한다. 교육 프로그램은 보다 독특한 아이디어로 구현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네덜란드 라익스 뮤지엄의 드로잉 프로그램이나 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뮤지엄의 도자 갤러리 워크숍, 영국 테이트 브리튼의 청소년 토론 등 다양한 워크숍은 미술관의 고유 기능과 교육을 긴밀하게 연계하고 강화한 사례들이다. 시간을 두고 고려해야 할 것이지만, 가능하다면 청주관의 특색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점을 전제하고 싶다. 개관과 함께 강화된 다른 기능으로서, 보존과학실도 단순한 정보의 게시에 그치기보다 일반인과 전문가를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등 보완이 절실하다. 물론 작품 상태나 보존 처리 방식에 따라 보존과학실의 비공개가 필요할 수 있지만, 보존과학은 미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콘텐츠로서 주목할 만한 잠재력이 있다.

청주관의 주된 특성이 ‘보이는 미술관’임에는 이견이 없다. 연초제조창의 기본 골조를 살린 리모델링으로 공간이 구축됐다 하더라도,​ 전시 · 안내 · 정보 · 교육 · 휴게 등 기본적인 기능형 공간 안배와 수장고 내 전시 동선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 현재 밀려드는 관람객으로 분주한 로비, 소장품과 관람객 동선이 위험하게 조우하는 전시 공간 등은 개선안을 마련해야 한다. 인접한 비엔날레 행사장과의 공간 공유, 1층에서 5층까지 이어지는 관람 동선의 정리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점은 작품과 관람객 간의 거리가 확보되지 않아 작품 개방이 작품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관람객이 불편하더라도 소지품 검색이 수행돼야 하며, 에어 크리닝과 같은 장치를 거쳐 수장고에 입장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기획전시실 이외에 수장형 공간은 관람객과 개방 기간을 제한하는 방안도 모색할 필요가 있다.

 

 

 

 

4관 4색의 국립현대미술관 청주,호기심의 방을 너머

유휴 공간이 미술관으로 공간화되는 일은 마법처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이고 치밀하게 계획돼야 한다. 한국은 특히 공공기관에서 사유와 계획의 시간에 인색한 경향이 있다. 청주관의 공간구성을 보면 작품 수장과 보존과학에 역점을 두는 것 같다. 보이는 수장고, 전시 교육 프로그램의 운영, 미술품 보존과학의 산실 등 과제를 내 건 바와 달리, 현재는 호기심의 방 개방에 무게가 실린 모양새다. 보이는 보존과학실, 라키비움 등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으려면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교육 프로그램 역시 특별한 계획이 수반되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개선 작업이 국립현대미술관 내부에 산적한 일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현재 미술관 관장 공모가 진행 중이며, 국립현대미술관 4관을 한 명의 학예실장이 관할하는 상황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개관 이래 한국 현대미술의 산실이자 아카이브로 또한 아시아의 대표적인 동시대 미술 플랫폼으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미술의 동시대성과 확장성을 강화하기 위한 특별한 공간을 마련하고 한국미술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소장품이 지닌 가치를 전략적으로 브랜드화하는 일이 절실한데, 청주관은 그런 계기를 만드는 초석이 될 수 있다. 산업시대의 기억과 아우라를 지닌 장소의 가치를 기반으로 소장품 전시를 기획하거나 상설 수장 전시실을 담론의 장과 연동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이는 과거나 기억에 천착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를 통해 변화의 가능성과 힘의 기원을 잊지 말자는 것으로, 담배공장으로서의 역사와 기억이 미술관 로비에 걸린 사진 한 장으로 이야기되고 있는 상황이 아쉽다. 미술관이 된 담배공장이 호기심의 방을 너머 ‘보이는 현대미술의 장’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

 

1. 전진성, 『박물관의 탄생』, 살림, 2004, p.12.

2. 앤 민츠, ‘미디어와 박물관: 박물관의 전망’, 『가상과 실제: 박물관의 미디어』,셀마 토마스와 앤 민츠 편집, 미국박물관연합회, 1998.

3. 양현미 외, 「박물관 미술관 중장기 발전방안 연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2002, p.14.

4. 자넷 마스틴, ‘서문’, 『새로운 미술관 이론과 실천』, 블랙웰, 2006, pp. 8-21. 

 


박남희
박남희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예술학으로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전시기획과 미술비평을 하며 1998년부터 2015년까지 홍익대, 단국대, 서울과학기술대, 숙명여대, 상명대 등에서 후학들과 함께 동시대예술과 사회적 변화를 고민했다. 홍익대학교 메타디자인센터 박사후연구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겸임교수, 서울교육대학교 미술영재교육원 책임연구원, 2011 청주공예비엔날레 총괄큐레이터, 2013 청주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을 거쳐 2016년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시아문화원 교육사업본부장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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