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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마당집의 계보를 잇다

조정구
자료제공
구가도시건축
진행
이성제 기자
background

우리가 짓는 집은 마당집이라 생각하고 있다. 도시답사와 실측을 하면서, 때로는 건축가들이 내어놓은 작업을 보면서, 이 땅의 사람들이 지어왔고 자주 짓는 집은 마당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사는 집, 바로 ‘마당집’이라 믿게 되었다. 북촌의 도시한옥 작업을 시작으로 많은 수의 한옥을 짓고, 대구, 판교, 제주 등 여러 지역의 주택을 설계해왔다. 건축가로서 스스로의 역할에 대하여 한옥을 비롯한 보편적인 집들을 지금 그리고 미래에 우리의 삶을 담는 집으로 만드는 일, 다르게 말하면 ‘마당집의 계보를 잇는 일’이라 여기고 있다.

 

서대문 우리 집, 나의 건축의 기점

서대문에 있는 한옥에 살면서 많은 것을 느끼며 배울 수 있었다. 살아 보니 한옥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티 나지 않는 평온한 건축임을 알았다. 또한 정교하여 미묘한 높이와 레벨을 잘 다루고 있었다. 빛과 바람이 들도록 지붕 높이에 차이를 주고, 밖에서 안까지 자연스럽게 레벨을 올려 사람을 맞이했다. 무엇보다 마당은 집으로 들여온 자연의 조각이며, 마당에 지붕을 덮어 밝은 마루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벽으로 감싸 포근한 방이 됨을 알았다. ‘자연-마당-마루-방’으로 이어지며, 거칠고 때론 무서운 자연이 점차 친밀하고 온순한 사람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한편 마당에서 천천히 변해가는 빛과 그림자를 보며, 위대한 건축만 그런 것이 아니라 보통의 건축인 우리 집에서도 빛과 시간의 극적인 운행이 이루어짐을 알았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나의 건축의 기점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서대문 한옥_ 여름 풀장 ⓒCho Junggoo

 

 

다양한 마당을 보다

답사를 다니며 많은 마당을 보았다. 2009년 왕십리에서, 벽만 남은 공장에 들어가 사는 17가구를 발견하고 그 안에 지은 집들을 살펴보았다. 마당 위로 높게 지붕을 덮고, 그 사이로 빛과 바람이 통하는 ‘높은 지붕 마당’이나, 실내화하여 빛만 들이는 ‘아트리움 마당’ 등이 있었다. 가장 인상에 남은 집은 구석에 있던 작은 집이었다. 비닐 슬레이트로 마당을 덮어 빛을 들이고, 시멘트 블록으로 지었음에도 대청과 부엌 심지어 부엌 위에 다락까지 있었다. 놀랍게도 대청, 부엌의 폭이 모두 1m 밖에 되지 않았다. 공장 속을 차지하고 아무렇게나 집을 지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마당을 놓고 집을 짓는 ‘강력한 원형의 주거’가 사람들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삼일아파트 실측조사에서는 편복도 한 켠에 창고와 화단을 두고, 현관과 별도로 드나드는 부엌문이 있었다. 초기에 지어진 아파트에서는 부엌과 마당의 관계가 그대로 이어져, 편복도를 마당과 같이 생각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삼선동의 어느 할머니댁 2층에서는 방 앞에 쪽마루를 두르고, 수돗가와 세탁기, 주방기구 등이 함께 있는 ‘실내화된 마당’을 발견하였다. 삶이 가는 곳 어디에나 마당이 같이 있음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장수마을 할머니집 ⓒCho Junggoo

 

판교에서의 실험: 운중동 m, 함양재 

북촌, 서촌의 도시한옥이나 아현동 산비탈의 시멘트 블록집, 삼선동의 작은 2층집이나 성북동의 슬래브 저택까지, 우리의 집들은 모두 마당을 생각하고 지은 마당집임을 알게 되었다.

운중동 m(2012)은 이러한 보편적인 마당집을 생각하며 지은 최초의 주택이다. 남쪽으로 크게 마당을 두고 길 쪽에 캐노피를 두어 감쌌다. 2층의 작업실과 부부침실에도 마당처럼 쓰는 데크와 발코니를 붙여놓았다. 캐노피 위의 데크에는 관통해 올라온 월계수 나무가 있어, 나와서 쉴 수 있는 그늘과 함께, 집의 외관을 인상 깊게 만들고 있다. 또한 부부침실에서만 들어갈 수 있는 발코니를 친밀한 스케일의 목구조 공간으로 계획하였다. 계절에 따라 열고 닫으며, 바람을 쐬거나 목욕을 할 수 있는 프라이빗한 공간이자 실내화된 마당이라 하겠다. 한편,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방’을 만드는 일이었다. 모던한 공간 속에 어울리는 ‘사랑방’을 설계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그만큼 우리에겐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형식임을 깨달았다.

판교에 두 번째로 지은 집은 함양재(2012)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한옥과 양옥이 같이 있는 집으로, 정확히 말하면 현대주택 내부로 한옥이 ‘끼어들어간' 구조이다. 거실과 다이닝, 주방은 양옥에, 가족실과 부부침실, 욕실은 한옥에 들어있다. 서로 다른 건축유형이지만 이들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마당을 둘러싼 ‘처마’이다. 지붕아래 형성되는 중간영역으로 처마는, 그 아래 쪽마루를 두어 걸터앉아 쉬거나, 여러 작업이나 놀이를 할 수 있는 ‘기능적이며 정서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함양재를 통해 서로 다른 건축 유형이 결합하고 라이프스타일도 공존할 수 있음을 알았다.

 

운중동 m_ 부부전용 발코니 ⓒYoon Joonhwan

 

 

마당의 건축: 선음재, 임재양 외과, 공방주택 열달나흘

우리의 건축이 마당을 먼저 놓고 집을 짓는 마당의 건축임을 북촌 선음재(2007)를 작업하면서 알게 되었다. 장방형 대지에 여유 있는 사랑마당과 안마당을 갖추었지만, 집의 두께는 2.7m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품격 있는 마당을 확보하려고 집을 얇게 둘렀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대구의 임재양 외과를 하면서 원래 자리에 있던 한옥과 일식가옥, 마당을 자세히 실측하고 기록했다. 병원과 문화 공간을 계획하면서, 기존 마당의 크기와 방향을 고려한 마당의 건축을 실현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한옥병원과 기존 일식가옥의 거실을 구현한 문화공간을 마당과 같이 만들어내면서, 근대기에 형성된 동네의 풍경과 기억을 이어갈 수 있었다. 

한편, 도시적 맥락이 없는 곳에서 마당의 건축을 실현한 예가 이천 공방주택 열달나흘이다. 두 개의 공방 사이에 중정을 두고, 회랑과 텃밭, 작업마당 등 다양한 마당을 펼쳐놓았다. 비어있는 공간이 아니라 ‘쓰는 마당’으로 어떤 느낌으로 어떻게 쓸지 고민했다. 2층에 자리한 주거에도 마당을 실내화한 아트리움을 가운데 두어 생활의 중심이 되게 했다. ‘삶이 가는 곳에 마당이 따라간다’는 마당집의 원칙이 여기서도 적용되었다.

 

한옥의 경계를 넘다: 천연동 한옥, 은평 낙락헌

마당은 이래야 하고, 한옥은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가게 되었다. 무조건 다르고 특별한 것을 찾으려 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누릴 수 있는 새로움을 찾으려 했을 때 비로소 그 경계를 넘을 수 있었다.

천연동 한옥(2016)은 1939년에 지어진 도시한옥으로 아름답고 정연한 모습이 그대로 잘 남아있는 집이었다. 가족에게 필요한 공간과, 박물관 입면이라 부를 만큼 상태가 좋은 입면을 보존하기 위해, 마당 한쪽을 덮어 ‘아트리움-거실’로 만들었다. 한옥은 비어있는 마당이 중요하다는 생각의 틀을 넘어, 자연을 즐기는 마당이면서 거실이기도 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보았다. 다른 한옥에서는 편리성을 고려해 화장실은 모던한 공간으로 모두 바꾸곤 하였으나, 이 집에서는 60년대 스테인리스 욕조와 바닥타일을 다시 사용하면서, 시스템 창호와 최신 설비 등을 함께 갖추어 쓰임에 불편이 없도록 하였다. 오래된 것들과 어메니티가 공존하는 집을 만들고 싶었다.

은평 낙락헌(2016)은 북한산의 전경을 어디서나 누릴 수 있는 한옥이다. 웨이터가 접시를 받치듯 들어올려, 그 아래로 주차, 현관, 거실 등의 현대적 공간을 둔 집이다. 위쪽 한옥이 사랑채를 닮은 외향적인 공간이라면, 아래의 모던한 공간은 도시한옥과 같이 마당-선큰을 감싸는 내향적인 공간이다. 서로 다른 공간 구조의 결합, 그리고 서로 다른 두 개의 라이프스타일의 공존이 현재 우리 삶의 방식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한옥의 경계를 넘어 현대생활에 불편함이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한옥을 제안하고자 하였다.

 

천연동 한옥 ⓒPark Youngchae 

 

 

풍경을 담은 집: 토산리 주택

제주의 작업을 하면서 자연과 풍토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거친 자연 속에 자리한 민가로부터 골목과 마당에 돌담을 쌓고, 낮은 지붕아래 안락함을 느끼는 ‘풍경 속의 집’을 생각하게 되었다. 바다가 보이는 산비탈에 자리한 토산리 주택(2016)은 제주의 민가를 모티브로 하면서, 방과 누마루 등 한옥적 공간을 모던한 공간 속에 넣은 집이다. 두 개 밭의 높이 차를 그대로 안에 들여와 위로는 거실과 방, 아래에는 부엌과 다이닝이 있는 크고 여유로운 공간을 만들었다. ‘깊은 처마와 하나의 지붕’ 그것으로부터 나오는 ‘편안한 공간’이라는 제주 민가의 개념을 현재의 삶에 맞게 새롭게 구현하였다. 한가운데 자리한 방은, 한식 방의 실체성은 바꾸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맞게 제 모습을 바꾸는 ‘적응과 진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방의 스케일, 기둥과 인방, 한지와 창호 등은 그대로이면서, 풍경을 향해 열고 휴식을 위해 닫는 유연함을 지닌 ‘정자와 같은 방’을 만들어 보았다.

 

토산리 주택 ⓒYoon Joonhwan 

 

 

한옥을 대체하는 마당집의 출현: 파주 K 주택

마당집을 주제로 해왔던 다양한 생각과 작업들이 하나로 결실을 맺은 것이 파주 K 주택(2019)이다. 120여 평의 넓은 대지에 일조 등을 고려하여 남쪽에 마당을 두고 대지를 따라 동서로 길게 집을 놓아, 어디서나 빛이 풍부하고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집이 되었다. 밖으로는 모던한 파사드를 구성하고, 안으로는 처마를 두어 마당과 사이에 부드러운 생활 영역을 만들었다. 건축주가 원했던 ‘한옥이 아니면서 한옥의 정서가 느껴지는 집’을 가장 잘 구현한 곳은 거실이다. 시원하게 열려있는 한옥의 3칸 대청을 생각하며, 현대식 중목구조로 공간의 형상과 부재를 바꾸어 3칸 거실을 만들었다. 그 결과 안팎의 경계가 없는 투명하고 여유로운 공간감을 얻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한옥적인 요소를 가미하지 않고, 구조적 조형미로 전통적 미감을 표현함으로서, 전통공간인 ‘한옥을 대체하는 마당집’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마당집의 미래

어쩌면 우리의 작업은 1930년대 도시한옥의 출현에서 2020년 현재에 이르는 100년 가까운 시간을 압축하여 ‘마당집’이라는 원형의 주거를 우리 시대의 집으로 바꾸어온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식민지배와 전쟁에 의한 단절, 급격한 시대 변화로 잊어버리거나 채 거두지 못한 것들을, 새롭게 인식하고 조심스럽게 담아내는 작업이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한옥의 이슈와 같이 고정된 관념이나 경계를 하나하나 부수어 새로운 영역으로 넓혀가는 작업이기도 하였다. 앞으로의 미래를 짧게 말한다면, 마당집의 계보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좀 더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우리 시대의 보편적 공간성과 아름다움을 지닌 집을 만들어내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

 

 

 


조정구
조정구는 1966년 서울 보광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도쿄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거쳤다. 2000년 구가도시건축을 설립하고 ‘우리 삶과 가까운 보편적인 건축’에 주제를 두고 지속적인 답사와 설계 작업을 하고 있다. 20년간 진행한 ‘수요답사’를 통하여 서울의 수많은 동네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찬찬히 관찰하고 기록해왔으며, 그 속에서 발견한 다양한 삶의 형상을 바탕으로 ‘우리 시대의 집’을 찾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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