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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건축, 그리고 여성 건축인: 빌딩롤모델즈

자료제공
여집합

작년 한 해 사회 곳곳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다. 건축계도 예외가 아니다. 여집합이라는 여성 건축인 집단이 ‘빌딩롤모델즈’(이하 BRM)라는 목표를 내걸고 동료이자 선·후배 여성 건축가들의 성취를 이야기했다. 지난 6월, 16명의 여성 건축인과 대담을 진행했으며 이를 책으로 엮은 『빌딩롤모델즈-여성이 말하는 건축』​이 최근 출간됐다. 출간을 계기로 여집합과 BRM 활동, 그리고 「​SPACE(공간)」​ 419호 여성 건축가 특집을 함께 돌아보고 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여성 건축가 상을 확인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인터뷰 여집합(김그린, 김자연, 이다미, 이보름, 정유리, 주명현) X 오주연  

 

빌딩롤모델즈 대담 현장(사진_가내손)

 

오주연: 2002년의 대담에는 여성 건축가를 응원하는 남성 건축가 3인이 함께 했다. 최근 이 발언권을 남성이 먼저 가지는 것도 기득권이며 여성의 서사는 여성이 직접 이야기하자는 움직임 있다. 건축계에서는 아무런 이야기조차 없어서 여집합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아니면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담론과 다른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각성이 있었는지 활동을 시작한 계기에 관해 말해 달라. 

 

이다미: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간 건축주 미팅에서 여성스러운 디자인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마주치며 여성으로 일하는 것이 정말 다른가, 내가 하는 건축이 여성적인 건축인가 질문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6년 문화계 성폭력 고발이 터져 나왔고, 성차별 문제가 대두되며 가까이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출판과 전시▼1​를 통해 성의 이슈를 전면화했다. ‘우먼 인 아키텍처’ 등 영미권 건축계의 여성운동도 활발해지고 전 세계적으로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커지는데 한국 건축계에서는 이 문제를 누가 어떻게 다룰지 궁금해하며 지켜보았다. 2018년에 들어서도 소식이 없자 친구들과 직접 기획을 꾸리게 되었다. 

2018년 한국 건축계에 크게 세 가지 여성주의 활동이 있었다. 3월 공간학생기자단의 『SPACE of W-Architects』가 출판됐고, 6월 여집합이 ‘빌딩롤모델즈’ 대담을 열었으며 비슷한 시기 오픈하우스서울의 ‘W 인터뷰’ 시리즈가 게재를 시작했다. 방향을 잡아가는 과정에 다른 두 활동의 개요를 접했고 이들과 상보적인 관계를 맺을 것을 염두에 두고 계획했다. 세 기획 주체들이 20대 대학생(공간학생기자단), 30대 실무자(여집합), 40대 전문기획자(오픈하우스서울)의 스펙트럼을 가지는 만큼, 우리는 우리의 위치에서 건축인으로서의 성장에 관한 우리의 고민을 질문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보름: 경험이 쌓인 후 진로나 일에 대해 다시 고민할 때가 있지 않나. 학교와 직장에서 경험한 것 중에 의문을 품었던, 혹은 돌이켜보고 의문을 품게 된 것들이 늘어갔고 그 연장선에 여집합이 있다. 

건축과 여성의 이미지를 결부시킬 때의 묘한 간극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남성 건축인의 참여는 처음부터 논의되지 않았다. 경험을 비교하며 그 차이나 문제를 드러내거나, 타자의 눈으로 현상을 보는 것은 우리의 의도와 거리가 멀다. 행사와 책을 통해서 우리가 원했던 것은 여성 건축인들의 개인적인 작업과 작업세계에 대한 발언이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어떻게 건축인의 상을 여성의 모습으로 만들어갈지가 결국 중요한 문제다.

  

오주연: 건축 설계 외에 친환경 건축, 소셜 벤처, 출판, 사진 등 다양한 방향, 다양한 세대의 여성 건축인들을 만났다. 여집합의 구성원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이들을 모으고 분류하는 방향을 잡았는지 궁금하다. 

 

정유리: 우리 모두 설계를 전공하였지만, 지금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건축을 하고 있다. 나는 건축 설계를 하고 있으나 건축은 더 다양한 형태로 할 수 있어야 하고, 성공한 건축인의 이미지 또한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본다. 건축에서 확장된 영역, 건축과 협력하는 영역, 그리고 창작에 관련된 다른 영역의 상황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영역을 비교하기보다는 창작자라는 보편성을 가지고 다른 직능에서도 이입할 수 있는 주제로 이야기를 끌어내려고 했다.

 

이보름: 설계 업무를 거쳐 최근에 건축 기획 일을 시작했다. 건축계에 포진한 모두를 설명하기에 건축가의 정의는 협소하다. 여성에 대한 이슈를 내세우지만, 한편으로 건축을 주제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인들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것이 중요했다. 건축인이라는 포괄적인 단어로 설정한 이후에는 인테리어, 구조와 시공, 더 나아가 발주처와 클라이언트인 여성의 모습까지 모아서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났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어느 정도 한정 지어야 했고 실제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못한 분야도 있다. 

 

김그린: BRM은 여집합 구성원 각자가 현재 대면하고 있는 상황과 고민에 가까이 있다. 학교를 마치고 사무실에 소속되어 어느 정도의 사회생활을 했고, 우리 중에 몇은 결혼을 하기도 했다. 다음은 무엇일지, 어떤 길이 있을지 궁금한 때다. 소주제의 방향을 정하고 참여자들에게 던질 질문을 만들 때 우리 각자의 목소리가 담겼다. 나는 도시와 건축 관련 주제로 문화 프로젝트 기획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설계 외의 건축 활동을 하는 인물들을 다루는 부분에서 특히 개인적인 궁금증과 감정을 많이 쏟아내었다. 건축 담론을 쌓기 위해서는 설계 외의 분야 또한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이다미: 나는 설계 위주의 일을 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함께 일하는 여성 건축인들이 궁금했다. 전화로만 일을 같이 해 본 적산 업체 소장님이 한 분 계시는데 많이 혼나면서도 엄청나게 배웠다. 기획 초기부터 이분 생각이 났지만 주제의 짝을 못 맞추어 섭외 요청을 드리진 못했다. 건축가, 시공자, 학자, 관련 디자이너와 같이 다소 고전적인 업무 영역들로 분류를 시작했는데 이런 무딘 구분으로 쉽게 재단할 수 없을 만큼 건축이라는 것이 크고, 커졌고, 더욱 그러리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빌딩롤모델즈 대담 포스터

 

오주연: “여류 운운하는 시대가 더 이상 아닌데 여성 건축가라는 타이틀이 필요한가?” 2002년에 던져진 질문이다. 성에 얽매이지 않고 동등하게 일하면 동등한 결과를 가질 것이라는 희망적인 대화다. 하지만 2018년의 여집합은 단체명에서부터 여성임을 자각하고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여성 건축가 서사를 구축했다. 여성 건축가 프레이밍에 관한 생각을 듣고 싶다. 

 

이보름: 여성의 이미지가 어디에 위치하는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여류라는 단어는 여성이 주류가 아닌 아류가 되는 위계를 암묵적으로 상정하고 있다. 여류로 구분 지어지는 시대는 지났지만, 그 상태를 벗어났다고 바로 평등의 시대가 도래한 것도 물론 아니다. 아직은 동등하게 일하면 동등한 결과를 가질 것이라는 전제에 의문을 품게 된다. 

마찬가지로 건축인의 이미지는 남성에 고정된 경우가 많다. 건축가를 검색했을 때 여성의 얼굴은 스크롤을 한참 내려야 찾을 수 있다. 이미 여성들의 활동이 충분히 커지고 있다 해도 이 이미지가 고정된 문제 또한 우리가 싸우거나 변화시킬 큰 이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한 첫 번째 방법이 여성 건축인의 서사를 구축하고 많이 알리는 것이다. 이렇게 멋진 작업을 하는 여성 건축인이 있다고 즐겁게 떠드는 자리를 만들고 싶었다. 결국 여성 건축인이라는 상이 바뀌는 것과 기회, 조건, 결과의 평등함이 함께 가야 한다. 

 

김그린: 여집합 활동 이전과 이후에 생각의 변화가 있다. 전에는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내거는 프로젝트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다. 드러내어 구분 짓고, 그렇게 해서 제약이나 우대의 대상이 되는 것이 꺼려졌다. 남녀가 다르지 않으며 다만 개개인이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살았는데, 다시 보면 마주한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한 주문을 걸었던 것 같다. 또한 내가 많은 것을 문제의식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어느 시점에 나는 여성임을 드러내지 않으면 나아질 방법이 없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보름 씨의 이야기처럼 여성의 이미지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여성 건축가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따라 문제가 다르겠으나, 여성으로 건축하는 데서 나타나는 어려움과 한계를 드러내는 것은 중요하다. 

 

김자연: 아직도 같은 이유로 많은 건축인들이 여성 건축가라는 타이틀로 묶여 드러나는 것을 꺼린다. 사실상 같은 급으로 뛸 수 없다, 전문적이지 않다는 식으로 흔히 쓰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여성이기 때문에 드러내놓고 차별을 받는 사회는 아니라고 하지만 숨어있는 구별 짓기가 여전히 많은 것 같다. 

 

정유리: 좋은 건축가가 되려고 노력하는 여성 건축인은 있어도, 좋은 여성 건축가로 알려지길 희망하는 여성 건축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가의 이미지가 성별과 관계없이 균형을 이루거나 혹은 여성이 동등한 기회를 얻고 건축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여성 건축가 프레이밍은 유효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간 건축 서사에서 여성은 분명히 소수였고 여성의 목소리는 희박했다. 지금의 사회적 환경과 우리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여 드러내고 싶었고, 그 안에서 여성 건축인의 빛나는 작업과 활동을 널리 퍼뜨리고 싶었다. 

 

오주연: 여성 건축가 대담이라고 하지만 여집합이 준비한 질문을 보면 ‘여성’이라는 단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참여자들도 담담히 자신의 일에 관해 설명할 뿐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이나 과거의 대담에서부터 지적된 오랜 문제인 가사, 양육을 병행하는 부담 등을 크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다미: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 유리천장, 성폭력 등은 기획과정에서 비중을 두고 고민한 이슈들이지만 우리가 마련한 대담과 인터뷰라는 포맷에서 깊이 있게 다룰 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했다. 문제를 하나하나 드러낼 수 없을 때 우리가 대신 선택한 키워드가 협업이다. BRM에서 여성이라는 키워드만큼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함께 일하기, 즉 관계 맺기의 방식이다. 건축에서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해낼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타인과 또는 조직에서 함께 일해야 한다는 것에 주목하면 여성들이 당면했던, 그리고 당면한 구조적인 문제가 불가피하게 녹아난다고 보았다. 동시에 협업이라는 것이 점점 확장되는 건축의 외연을 드러내기에도 좋은 프레임이라고 보았다. 관계 맺기의 구조적 낙오자가 아니라 주체적인 수행자이자 확장자로서 여성 건축인들을 조명할 수 있었다.  

 

주명현: 여성 건축인 대담에 대한 선입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여집합의 입장에서 진정 궁금한 이야기는 앞서나간 세대가 어떻게 건축을 해왔고, 현재 여성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BRM에서는 실재하는 이야기를 발견하고 각 세대의 관계망 속에서 공유하여 희망을 찾고자 했다. 이에 여성이 화자라는 점이 중요했지만 질문은 중성적이고 보편적인 방향에서 했다. 그리고 대답은 더 자유롭게 여러 방향에서 진솔한 모습으로 나왔다. 황지은 교수가 대담에서 한 이야기에 동감하는 바다.

“사실 저는 역설적으로 이 자리에서 젠더 얘기를 직접적으로 안 하게 된 게 너무 좋은 현상이었다고 생각하고요. 이 대담의 패널이 여성들로만 구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기 때문에 못했던 것 혹은 감당해야 했던 것을 분별해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리에서 그냥 하고 있고 느끼는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자리가 되어 매우 기쁩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유리: 부제 ‘여성이 말하는 건축’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온전히 여성이 화자가 되어 여성의 목소리로 채워진 이야기를 퍼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여성이 말하는 여성 건축가의 이야기가 아닌, 여성이 말하는 건축, 건축하며 살아가기를 담고자 했다. 그렇기에 우리가 던진 질문도 중성적이었다.

 

빌딩롤모델즈 대담 현장(사진_가내손)

오주연: BRM 소식을 듣고 참여할 만한 여성 건축가를 떠올려 보았다. 개인사무소를 운영하는 인물들 못지않게 여러 부부 건축가들이 떠올랐다. 과거의 대담에서는 부부 건축가를 성의 협력이 끌어낸 경쟁력의 성공사례로 칭했는데, 전문인의 길을 가기 위해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아니지 않나.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많은 사례가 눈에 띈다. 이런 현상에 관해, 또한 여성 듀오, 혼성 그룹과는 다른 이 집단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했는지 궁금하다. 

 

이보름: 업무 영역, 조직의 형태와 규모 등에 따라 유형을 나누기는 했지만 이 분류가 성별의 차이처럼 개인을 단순하게 규정지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가능한 중립적인 상태에서 분류를 시작해서 질문하고 주제를 만들어 가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설계사무소를 운영하는 경우, 조직의 형태는 혼자 운영하거나 부부 건축가인 경우로 양분되었다. 우리끼리 질문했다. “이 현상 자체도 불균형 아닌가? 남성 건축가를 이야기할 때 혼자 운영하거나 부부 건축가로 활동한다고 나눌 수 있을까?” 그래서 나온 주제가 책 세 번째 장인 ‘우리가 기다리는 몇 가지 서사들 – 여성 듀오, 여성작가론의 부재와 기대'에 반영되었고, 두 번째 장에서 ‘혼자 하시겠습니까 함께 하시겠습니까? – 파트너 찾기의 다양한 방향들’로 좀 더 일반적인 질문을 던졌다. 어떤 종류의 협력이든 개인마다 특별한 업무 관계가 있고 각자의 업무 방식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낀 점도 협력의 방식과 관계의 이야기는 너무 다르고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부부 건축가라는 이슈는 그 안에 협동의 방법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다. 

 

정유리: 기획 초기부터 건축인의 유형에 관해 고민했고, 특히 건축가의 경우 파트너십을 통해 관계 맺는 형태에 주목했다. 남성 건축가 듀오, 그룹, 혹은 남성이 다수인 그룹은 손쉽게 찾아볼 수 있었으나 여성 건축가 듀오나 그룹은 찾기 힘들었다. 각 그룹의 구성 의도와는 별개로 이 현상 자체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성별을 떠나 다채로운 구성과 배경을 가진 건축인 유형이 나타나길 희망하고 기대한다.

 

주명현: 2002년 대담에 등장한 자하 하디드의 사례나 성공한 부부 건축가 사례는 여성 건축인들에게 대안이 되기 어렵다. 건축이 남성 중심사회여서 여성 건축인들이 (남)성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시점은 지극히 편향적이다. 우리는 질문의 방향을 부부가 아니라 개별 여성 건축인으로 초점을 맞추고, 부부 건축가의 여성 건축인을 다른 여러 파트너십의 모습 속에 하나의 타입으로서 위치시켜 보았다. 그리고 보통 부부 둘이 공동대표로 ​사무소를 ​이끄는 경우를 부부 건축가로 칭하지만, 이 기획을 통해 좀 더 다양한 구성을 발견했다. 부부와 다른 대표가 함께 활동하는 혼성 그룹, 부부가 각각 자신의 사무소를 가진 경우 등 여러 가지 조합이 있었다. 부부 건축가라고 통칭하였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구성 속의 여성 건축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다미: 부부 건축가를 완전체처럼 그리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 직업, 경제, 육아 공동체로서 부부 건축가의 구성원은 평등한 관계로 지내고 있을까? 외부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언제이고 누가 도와줄까? 사례들이 있었지만, 파트너를 지시 가능하기도 하고 사생활을 노출해야 하는 만큼 구체적인 내용이 대담과 책으로 이어지지는 못해 아쉬운 부분이다. 

 

오주연: 여성건축가협회 2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된 2002년의 특집에서는 여성 건축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기구의 역할, 소수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이 논의된 바 있다. 정보를 정리하고 교환하는 데서 나아가 여성 건축인의 목소리가 모여 제도적인 부분까지 영향을 주는 것을 생각해보았나? 또는 다수의 여성 건축인들이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 부분이 있는지 알고 싶다.

 

김자연: 이번 기획에서는 제도적인 보완이나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 등에 대해 피해간 부분도 없지 않다. 좀 더 보편적인 입장에서 여성 건축인을 보고 싶었고 성토대회 같은 느낌을 피하고 싶었다. 이번 기획의 한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성이 모여 건축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여성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고 나아가 제도적 보완도 논의될 수 있는 시작점이 되리라 기대했다. 

대담에서 임신과 육아를 거치면서 자신이 좀 더 천천히 가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공감했다. 나 자신도 앞으로 있을 생의 이벤트가 두려운 것이 사실이다. 여성 개개인이 감당해야 할 이런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도움이 있으면 좋겠다. 

 

주명현: 대담에 참여한 한 여성 건축인은 사전인터뷰에서 사무소의 직원이 일과 출산, 육아를 병행할 수 있도록 탄력근무제를 자체적으로 시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틀리에 규모의 사무소에서 개인이 방안을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2002년과 2018년, 16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떤 제도적 장치들이 확보되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특히 중소규모의 사무소도 제도의 울타리 안에 포함되길 바란다. 사무소 내부에서도 사무소의 성격에 따라 업무수행 방식을 잘 고려하여 그 시기의 여성 건축인의 자리를 찾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다미: 제도의 측면에서 여성 건축사 수의계약▼2​에 대한 긍정적 의견을 다수 접했다. 프로젝트 수주는 건축가의 커리어에 발판을 만드는 문제다. 소규모의 수의계약뿐 아니라 주요 프로젝트 지명공모 시 여성 건축가 초청 제도가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의 여성 교원 비율은 반드시 조정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모으는 와중에 직장 내 성폭력으로 인해 직장을 옮겨 다닌 사례를 접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인데 우리도 다루지 못했고 문제를 토로할 가까운 창구도 없을 듯하여 안타깝게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건축협회 등 이익단체나 기관 차원에서 성의 문제를 정기적이고 다양한 관점으로 주시하고 감시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참고할만한 사례로 「아키텍처럴 리뷰」​와 「​아키텍츠 저널」​의 협력 활동인 ‘우먼 인 아키텍처’는 매해 설문통계를 내놓는다. <진행_오주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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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년 『한국, 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11 출판을 시작으로 2017년 WOO(여성 그래픽 디자이너 정책 연구 모임)의 ‘WOOHOO’ 행사와 출간, 서울시립미술관 SeMA 창고에서 열린 < W쇼-그래픽 디자이너 리스트> 전시 등이 있었다.

2. 지방자치단체가 수의계약 할 수 있는 상한선이 일반기업은 2천만 원이지만, 여성기업과 장애인기업의 경우 5천만 원으로 상향 조정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여집합
여집합은 건축을 공부하고 각자의 방향에서 실무를 쌓아나가고 있는 30대 여성 6인이 모여 만든 기획집단이다. 여성 건축인의 서사를 구축하고 확장하는 기획 ‘빌딩롤모델즈’ 대담과 출판을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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