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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삶을 직조하는 장인으로서의 건축가

정재헌 × 김정은 편집장
사진
박영채
자료제공
모노건축사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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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려 살기

김정은(김): 주택은 사적인 공간이지만 도시나 마을 속에 자리 잡고 함께 어울려 산다는 측면에서 공공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주변의 풍경과 맥락을 거스르지 않고,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길가에 땅을 내놓아 풀과 나무를 심는 일들을 당신은 ‘이웃만들기’라고 표현한다. 혹은 이렇게 이웃과 공유하는, 대지 내의 외부 공간은 건축주에게 어떤 경험을 선사하는가?

정재헌(정): 동네를 거닐다 보면 우연히 만나는 집 앞의 공간이 있다. 화분이 놓여 있기도 하고, 잠시 머물 여유를 주기도 한다. 여기서 사람들은 일종의 인사, 혹은 환대를 느낀다. 그 집에 사는 사람의 표정이 전해진다. 그래서 나는 건축주에게 처음부터 총 공사비의 5~10%는 조경에 투자하라고 말한다. 대부분 실내 면적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에만 몰두하고 담장 밖의 공간에 관해서는 관심이 부족하다. 그런데 오히려 담장 너머의 풍경을 잘 만드는 것이 집의 영역을 외부로 확장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렇게 집집마다 집 밖의 공간을 조금씩 내놓고 풍경을 만든다면 동네는 오래된 마을처럼 편안하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그래서 늘 건축주에게 말한다. ‘담장을 조금 안으로 들이고, 길가 정원을 잘 가꾸어놓으면, 당신에게도 집이 인사를 건네고 삶의 풍경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 땅이 어디로 가지 않는다.’

 

김: 신도시인 판교의 경우, 마을이나 단지의 풍경을 만들어내는 공통적 요소를 찾기 어렵다. 비슷비슷한 형태와 면적의 필지에 갖가지 재료와 형태가 모여 있어 마치 주택전시장과도 같은 이곳에서, 판교주택은 화강석의 질감을 미묘하게 변화시켜 사용했다. 이 집이 어떻게 보이기를 기대했는가? 

정: 판교는 계획된 주택단지이다 보니 대부분 필지가 작게 나누어져 있고, 인위적이다. 자연도 인위적이다. 배경과 어우러지지 않은 채로 건물이 들어가니 마치 모델하우스나 세트장 같다. 나는 프로젝트마다 되도록 하나의 재료만 쓰려고 노력한다. 대신 한 가지 재료를 다른 방식으로 사용한다. 판교주택에서는 화강석을 썼다. 우리에게 친숙한 재료인 갈색 톤의 화강석을 지금까지 화강석답게 쓰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강석의 색감과 질감을 편안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담장 너머의 풍경을 잘 만드는 것이 집의 영역을 외부로 확장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삶을 직조하기

김: 아파트가 우리 주거문화를 점령하면서 생활의 격조, 혹은 주택 안에서의 삶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일례로 내밀한 공간이 바로 보이는 아파트에서 과연 손님초대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답사 과정에서 만난 건축주들은 아파트에 살 때에는 하지 않던 요리를 즐기고, 집에서 산보를 하고, 손님을 초대한다. 어떠한 요소가 이러한 집 안에서의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한다고 생각하는가?

정: 한옥의 경우 사랑채와 안채와 같이 영역이 나누어져 있기 때문에 삶의 여유가 있었다. 아파트는 칸만 나누어져 있지 고유한 영역들이 만들어져 있다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수험생이 있는 집에 손님을 초대할 수 있겠는가? 한옥에서는 사랑채에 손님이 다녀가도 안채는 별도로 작동된다. 전체적으로 통합되어 있기는 하지만, 긴 여정을 만들어내며 영역들이 분화된다. 내외부의 관계도 중요하다. 목적지로 가는 여정에서 빛의 변화를 느끼고, 숨겨진 자연과 조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외기와의 접합 지점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초기 작업에서는 그런 것까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은 삶의 섬세한 부분들을 담으려고 한다. 예를 들어 양평 펼친집에서는 거더를 만들어서 물을 빼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낙수가 되도록 했다. 물이 떨어지는 풍경과 바닥에 닿는 소리는 언제나 정겹다. 건축주들이 그런 풍경들을 경험하고 이야기를 전해줄 때 행복하다. 

 

김: 지난 20년간 20채의 주택을 설계해왔다. 그 사이 주택문화도 조금씩 바뀌어왔을 것이다. 건축주의 요구 사항에서 그러한 변화를 체감할 텐데. 

정: 가장 큰 변화는 주방의 위상이다. 두물머리 주택의 주방은 제일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지금은 주방이 오픈되고 온 가족이 모이는 공간이 됐다. 과거에는 벽에 붙은 형식의 프랑크푸르트 부엌이었다면 지금은 아일랜드식이다. 이제는 기능을 넘어 소통을 위한 공간으로 부엌이 변한 것이다. 또한 거실의 경우 과거에는 중성적인 성격이었던 반면 요즘은 사람마다 자기 취향에 맞게 거실을 만들려는 욕구가 있다. 거실을 서재처럼, 혹은 카페처럼, 확장된 주방처럼 만들어달라는 등 요구가 조금 더 선명해졌다.  

 

김: 당신은 집 안에 감춰진 수납공간을 많이 만든다고 강조한다. 최근 주택이나 아파트에서 수납공간을 많이 만드는 것이 새로운 일은 아니다. 당신이 만드는 붙박이장들은 단순히 수납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기능 외에 건축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가?

정: 나의 경우 붙박이장을 벽처럼 느껴지도록 만든다. 공간 속에 녹아들어 존재감 없이 만들려고 한다. 특히 외벽 쪽에 설치한다. 두 가지 이유다. 하나는 통로에 주로 설치하는데, 그러면 단순히 지나가는 기능만이 아니라 수납이라는 기능이 더해진다. 또 하나는 실의 외벽에 붙박이장이 설치되면 두께감 있는 벽이 된다. 외부에서 실내로 약 1m 정도의 두께가 생기면서 완충과 단열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빛이 들어오거나 내부에서 외부를 볼 때도 깊이가 생겨 편안하다. 하나의 디자인으로 여러 가지 변화가 시작된다.

 

김: 판교주택, 광주 왕버들집, 청주 문의주택에서는 공통적으로 복도를 만들고, 그 복도는 대지의 경사를 받아들였다. 다른 건축가라면 경사를 만들지 않거나 계단을 두어 레벨의 차이를 극복했을 것이다. 좁고 긴 복도의 미세한 경사는 기능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닐 텐데, 어떤 경험을 원했던 것인가?

정: 나의 주택 작업은 다 홑집이다. 우리나라 환경을 담고 외부 공간을 자유롭게 만들기 위함이다. 집 내부에서 여정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사로가 나오게 됐다. 땅의 작은 차이들을 표현하고 싶었다. 예를 들어 거실의 바닥 레벨은 조금 높다든지, 방의 층고는 좀 낮다든지 하는 높이의 변화를 주고 싶었다. 경사로의 경우 발의 감각에 의해서 공간의 전이를 극적으로 느끼도록 한다. 물론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미세한 차이다. 보통은 1:12 정도의 기울기를 사용하는데, 특히 아이들이 좋아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집이 좋은 집이라고 생각한다. 

 

김: 풍경을 프레임하는 창문의 높이, 문의 비율, 복도의 폭과 높이 등, 네 채의 주택에서 정재헌만의 고유한 비례감이 느껴진다. 그밖에 주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의 치수나 스케일은 무엇인가?

정: 한 공간에서 어떤 재료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용자가 느끼는 치수, 혹은 스케일감은 상대적이다. 같은 폭의 복도라도 마감 재료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폭을 다르게 느낀다. 아치울 주택의 경우 계단에서 한쪽 벽은 벽돌, 다른 쪽은 철판을 사용했다. 거친 벽돌이 밀어내는 느낌을 매끈한 철판이 받아준다. 

또 창문의 높이도 많이 고민한다. 빛이 어떻게 들어오고, 풍경이 어떻게 보이고, 사람이 어떻게 편안하게 느낄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한다. 무조건 창이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공간이 사라지고 편안함이 없어지기도 한다. 나의 경우 창문의 높이를 최대한 낮추는 편이다. 빛이 바닥으로 스며들어오고 풍경 또한 아래로 깔리도록 하면서 편안함, 차분함을 만든다. 어떤 장소는 수직으로 빛이 흩어지게 해서 특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창마다 적합한 빛이 있다. 재료, 빛, 장면을 통합적으로 고민한다. 젊었을 때는 그런 치수들이 어려웠다. 내공 있는 건축가는 치수를 빈틈이 없게 극단적으로 쓴다. 정확한 곳에 빛을 떨어뜨리는 것. 그런 공간을 잊을 수가 없다.

 

집 내부의 경사로는 발의 감각에 의해서 공간의 전이를 극적으로 느끼도록 한다. 

 

재료를 새롭게 사용하기

김: 같은 재료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일련의 실험이 끝나면 가차 없이 폐기하고 새로운 재료를 실험한다고 했다. 이번에 소개되는 왕버들 집과 아치울주택의 벽돌은 과거 도천 라일락집에서 상당 부분 실험된 것들로 보인다. 그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정: 도천 라일락집에서 파벽돌의 느낌을 실험했다. 아치울 주택의 경우, 3층 규모로 도로폭에 비해 높이가 꽤 높다. 만약 일반적인 벽돌쌓기 방식으로 마감하면 가로변에서 너무 답답해 보일 것 같았다. 수직 쌓기로 수평 띠를 만들고 그 사이에 파벽돌을 쌓아서 스케일감을 줄였다. 파벽돌의 질감은 마치 수많은 공극에 공기나 물이 스며드는 것처럼 가로 풍경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인다. 이곳에 오래 있었던 집처럼 보이길 원했기 때문에, 동네와 어울리는 붉은 고벽돌을 선택했다. 고벽돌을 깨서 사용하면 시간의 층위가 보인다. 새로 만들어진 벽돌은 1,0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 강도가 높아지고 흙의 성질이 변한다. 반면 고벽돌을 깨면 흙 맛이 있다. 왕버들 집에서는 담장에서만 사용했는데, 담장의 역할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역시 스며드는 벽을 만들고자 했다. 해가 비추는 각도에 따라 다른 표정을 갖는 벽을 만들고 싶었다. 

 

김: 그렇다면 다음 실험 재료는 무엇인가?

정: 일상에서 흔하게 만나는 재료를 어떻게 다르게 쓸 것인가에 관심이 많다. 아치울 주택에서도 건축주가 붉은 벽돌의 고전적인 이미지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나쁜 재료, 좋은 재료는 없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흔하여 무시당하는 재료들을 그 사회와 시대에 맞게 변주해 사용하고 싶다. 타일 같은 재료 말이다.

 

김: 당신이 싫어하는 재료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정: 싫어한다기보다는 나이 먹지 않는 재료를 보면 당혹스럽다. 초기에 지은 전주 자운당주택에 징크 지붕을 사용했는데, 20년이 지나 가 보니 다른 재료들은 세월을 탔는데 징크만 그대로였다. 나이를 먹지 않아 느껴지는 고통스러움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재료도 우아하게 늙었으면 좋겠다. 

 

정재헌은 도천 라일락집(위)에서 파벽돌의 느낌을 실험했다. 왕버들집(아래)에서는 담장에만 사용했는데, 스며드는 벽을 만들어 담장의 역할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시공과 디테일의 완성도 높이기

김: 당신의 주택은 상당히 정교한 시공과 디테일을 통해 완성된다는 특징이 있다. 벽돌 줄눈의 두께까지도 조절해 벽면의 텍스처에 변화를 준다. 섬세한 시공을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비용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충분한 비용을 투자할 수 없는 경우, 어떻게 건축물의 완성도를 만들어내는가?

정: 예산에 맞추어 재료와 구법을 다르게 하면 된다. 시공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공정을 줄이면 예산을 줄일 수 있다. 또한 단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의 경우 몇 가지 포인트를 잡는다. 예를 들어 현관, 화장실 같은 공간이라든지 문손잡이처럼 몸으로 직접 만나는 곳을 섬세하게 한다. 마치 닭을 크로키할 때 부리와 발톱을 정확하게 그리는 것과 같다. 표정을 드러내고 싶은 곳에 집중하는 것이다.

 

김: 완성도 있는 시공의 비결이 무엇인가?

정: 젊은 시절에는 현장에서 살았다. 한 현장에 백 번 이상 갔다. 도천 라일락집의 경우 실제로 벽돌 쌓는 방법까지 함께 고민했다. 그리고 작업자들을 존중하며 함께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본의 경우 기본적으로 작업자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작업자들 또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일한다. 우리나라는 작업자들의 자존감이 낮아 젊은 작업자가 없다. 불행한 이야기다. 

또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건축가가 시공 과정을 인지하고, 건축가가 원하는 디테일과 요소들이 무엇인지 미리 짚어주어야 한다. 나의 경우 시방서에 어떤 부분에서 목업을 진행할 것인지 명시한다. 재료의 크기, 질감, 다듬 방법, 쌓기 방법, 색상 등을 여러 실험과 목업을 통해 선택하는 것이다. 현장도 설계의 일환이라고 생각한다. 도면으로 디자인해야 할 부분이 있고 현장에서 목업을 통해 완성해야 할 부분이 있다. 

 

김: 주택에서 가구는 공간을 완성한다. 당신은 기성의 제품을 그대로 쓰기보다 의자와 테이블 등을 직접 디자인하기도 하고, 가구 디자이너와 협업하기도 한다. 당신이 추구하는 가구 디자인의 방향은 어떠한가? 

정: 모든 건축물을 인테리어까지 한다. 내가 생각하는 분위기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내부를 디자인할 수밖에 없다. 가구를 직접 제작하지 못한다면 집에 어울리는 가구의 모습을 그려준다. 아치울주택 건축주의 경우집에 어울리는 가구를 자문하여 구입했다. 주택에서는 벽에 거는 그림 하나까지 집의 분위기를 좌우한다. 건축가는 집의 절반을 만들고 절반은 사는 사람들이 만들어가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조언한다. 공간에 어울리는 가구를 찾아내고 선택하는 데에도 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구는 삶의 배경이 되는 것이 좋다. 좋은 디자인의 가구란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는 듯하지만 필요할 때 늘 정확하게 거기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좋은 작가들과 협업하려고 한다. 조경처럼 건축가가 다 할 수 없는 부분들을 전문가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특히 가구는 국내 환경에 잘 어울리는 브랜드를 찾기 어렵다. 소위 엑스포용 가구가 아니라 삶이 묻어날 수 있는 가구를 디자이너와 함께 만드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정재헌의 주택들은 상당히 정교한 시공과 디테일을 통해 완성된다는 특징이 있다. 벽돌 줄눈의 두께까지도 조절해 벽면의 텍스처에 변화를 준다. 

 


정재헌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 벨빌국립건축대학교에서 앙리 시리아니의 지도를 받았다. 미셸 카강 사무실에서 근무하다가 귀국하여 1998년 아틀리에를 열었다. 현재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다음 세대를 이끌 건축가 양성에 힘쓰고 있으며, 모노건축사사무소와 함께 삶을 짓는 건축가로 열정을 쏟고 있다.
도천 라일락집으로 서울시건축상 대상, 한국건축가협회상(2015)을 받는 등 완성도 높은 작품들로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주요 작품으로 양평 펼친집, 호시담, 이인디자인 사옥, 판교 요/철동, 오륙도 가원 레스토랑, 동검리 주택단지, 제로원 디자인센터, 두물머리 주택 등이 있고, 『매스매티크 센티멘트』, 『도천 라일락집』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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