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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시대의 일상의 건축(가)

이종건(경기대학교 교수)

들어가면서

「SPACE(공간)」가 필자에게 요청한 글의 과제▼1는 다음 질문으로 집약할 수 있다. 한국의 1980년대 출생 건축가(이하 ‘80 건축가’)는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 지금 여기 우리 건축 사회의 초기 실무 건축(가의 삶)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지 묻는 질문이다. 한국은 사회변화의 속도와 역동성이 세계 최고라는 데 누구도 이견을 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문화 영역에서 ‘세대론’은 특히 사회적 변동과 맞물리는 담론을 견인하기에 매우 유효하고 적실하다. 뻔한 말이지만, 자본주의사회는 경제가 삶의 초월적 자리를 독차지한다. 그래서 경제는 세대론을 구성하는 핵심 상수다. 그런데 문화적 변화는 대개 10년을 주기로 순환▼2하는 경기변화에 동시성으로 맞물리지 않는다. 문화는 개인이나 집단이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전략에 따라 복합적으로 형성하고 유지하고 바꾸는 일종의 아비투스▼3여서 그렇다. 게다가 적지 않은 자본, 그리고 상당한 양의 물질과 노동의 투여로 일정 시간이 지나야 결과물이 나오는, 그뿐 아니라 근본적으로 일상 공간에 속해 가장 보수적인 건축은 특히 더 그렇다. 우리 사회에서 건축의 뚜렷한 ‘질적’ 변화는 세대▼4 차이와 맞물린다. 필자와 1980년대생은 한 세대가량 떨어져 있으니▼5, 필자에게 1980년대생은 차원이 다른 건축가인 셈이다.

 

뉴노멀 시대의 일상의 건축(가)

오늘날 우리 삶은, 탁월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이 ‘유동하는 현대(Liquid Modern)’의 견지에서 해명했듯, 구조, 제도, 풍속, 도덕 등 견고한 작동 원리가 모두 해체되어 불확실성이 지배한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자면, 기술이 독재적 형이상학이 됨으로써 ‘대지 없음’이 초래하는 경악이 근본 기분(기운)을 형성하는 세계인데, 한국에서는 특히 ‘N포세대’▼6에 속하는 80년대생의 현실이 정확히 그렇다. 10년 전에 발생한 리먼 브라더스 파산이 초래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보다 10년 전 발생한 IMF사태와 연동되어, 과거가 집적된 토대(부모의 경제)와 미래가 동시에 불확실성에 휩싸여 불안이 내면화되고 구조화된 ‘뉴노멀(New Normal)’▼7 시대를 개시했다. 저성장과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잠복된 경제위기가 일상화된, 그리하여 지속가능한 삶이 일차적 걱정거리로 자리 잡은, 앞 세대와 전혀 다른 생활환경이다.

대학시절부터 뉴노멀 시대를 살아온 ‘80 건축가’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창업 시점이 빠르다는 것, 혼자 창업하지 않는다는 것, 업무 영역을 넓히고자 애쓴다는 것▼8, 그리고 일상적인 것에 온 힘을 쏟는다는 것 등인데, 이것들은 모두 지속가능한 건축가의 삶을 위해 도모하는 전략이다. 그런데 넓게 보면, 건축(문화)이 척박하기 그지없는 땅에서 (과거든 현재든) 어느 건축가인들 건축가로서의 삶을 지속하는 것이 일차적 문제가 아니겠는가? ‘80 건축가’가 앞 세대와 다른 것은, (다른) 세상에서 존재하는 (다른) 방식이다. ‘건축은 50살부터’▼9라는 말을 금언처럼 여긴 앞 세대가 보기에, 실무를 제대로 익힐 만한 좋은 건축적 환경이 거의 사라져버린 형국에서, (충분한 실무 경험 없는) 소년소녀 가장 처지로 각자도생의 건축가 삶을, 그것도 혼자 살아내는 것은 무척 버거운 일이다. 그들이 도모하는 전략은 작금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건대, 충분히 이해할 만할 뿐 아니라 심지어 필연적인 것 같다. 따라서 ‘80 건축가’의 삶의 전략에 대해 시시비비하기보다, 일단 그것을 당위지사로 삼고 거기에 내포된 건축적 특이성에 주목하자.

‘대침체(Great Recession)’▼10의 뉴노멀 시대는 네트워크화된 개인이 간헐적으로 파토스 덩어리를 형성해 정치력을 분출하는 포퓰리즘 시대▼11다. ‘불편한 용기’가 주도하는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 시위’가 대표적인데, 불안한 개인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동물적 믿음(alief)’으로 결사(結社)를 이루는 새로운 대중문화 시대다. 세상은 이제 ‘자본 대 노동’이나 ‘보수 대 진보’의 균열에, ‘99(을) 대 1(갑)’, ‘엘리트 대 대중’, ‘타자와 나(부족)’의 균열까지 더해져, ‘이름 없는 사람들(das Man)’이 핵심 작인(作人)이다. 이로써 (대문자) 건축(Architecture)은 배경으로 밀려나고 일상의 건축(architecture of the everyday)’▼12이 전경화된다. 기념비적인 것, 영웅적인 것, 개념(철학, 미학)적인 것의 자리에, 보통의, 평범한, 일상적인 것이 들어선다. 

‘80 건축가’는 일상의 건축가다. (아직은) 대중의 일원인 그들은 인간실존의 필수 양식(糧食)인 ‘빵과 장미’▼13를 현재적 삶에서 구한다. 그들은 빵을 위해 창업하고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워라밸(work / life balance)의 장미를 쥐고자 한다. 숭고하거나 아름다운 건축이 아니라 감각에 맞는 건축을, 우발적 프로그램이 아니라 기능적인 공간을, 텍토닉이 아니라 이미지를, 그러니까 행운이 찾아들 때 멀리 떨어진 미래로부터 도래할 무겁고 심원한 장미(진/선/미)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이론적 탐구 없이 찾을 수 있는 색다르고 경쾌한 일시적 장미를 쫓는다. 오랜 보살핌과 기다림으로 피어나는, 그리고선 곧이어 시들고 소멸하는, 앤디 워홀이 그토록 싫어했던 생명의 장미가 아니라, 자신의 미각에 따라 언제든 버리고 다시 만들 수 있는, 결코 소멸하지 않는, 앤디 워홀이 일상에서 즐겼던 가벼운 종이 장미다. 그리고 그 장미는 일차적으로 자신의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지만, ‘80 건축가’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경계가 흐릿해진 프로슈머 상품사회 일원인 까닭에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들의 감각이나 지식은 대개 대중 내재적인 것이며 오직 일부만 직접적 경험에서 온다. ‘80 건축가’의 장미(건축)는 대중(의 끊임없는 새로운 욕망)에서 출현해 대중 속으로 명멸(소비)한다. 

‘80 건축가’가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결정적 운명은 일상성의 (무)의미다. 내가 짓는 일상의 건축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 일상은 하나의 역설이다. “우리는 가장 익숙한 것에서 소외된다.”▼14 일상은 잘 낡은 청바지처럼 편리하고 쾌적하지만 정확히 바로 그러한 까닭에, “세계에 대한 관심을 증대하고, 가장 흔한 일상의 삶의 표면 바로 아래 놓여 있는 이상함과 경이로움을 보여주는 질문”▼15을 묻는 힘을 잃게 한다. 의미가 “자신이 경험한 것에 주목하는 특정한 방식”▼16이라면, 몸소 경험한 것에 대한 반성이야말로 의미의 지반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직, 일상성 곧 생활세계에 일상적으로 참여하는 현실의 존재 방식이 작동하기를 멈출 때 촉발된다. 모순, 낯섦, 기대 배반에 직면하지 않고서는 발생하지 않는다. 일상성에 불현듯 침범하는 부정성(죽음, 허무, 무의미성)에 주목하지 않는 한, 일상성의 반성은, 따라서 일상적 삶의 의미는 심지어 문제로 떠오르지도 않는다. 

일상적 삶의 정수적 비평 이론가▼17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에 따르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일상에서 소외되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가 닦달하는 은폐된 운동구조 때문이다. 더 나은 삶의 스타일에 대한 거짓 약속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을 소비하게 만드는 운동, 바로 그것 때문에 거듭거듭 지겨움과 낙후감의 두려움에 처하게 만드는, 그리하여 결국 개인의 스타일이 부재한 브랜드의 삶으로 끌고 가는 구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한 사상가나 구체적인 실천행동을 내놓은 이론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희미한 실마리나 추상적 개념만 제시할 뿐인데, 필자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일상성을 되돌아보게 하고, 곰곰이 생각하도록 만드는 계기의 중요성 말고, 딱히 생각해낼 것이 없다. 그러므로 필자가 ‘80 건축가’에게 제안할 당장의 조언은 이것이다. 앞 세대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찍 창업했으니, 게다가 목전의 사태가 중요하니▼18 돈 안 되면서 어려운 공부는 뒷전일 수밖에 없겠지만, 일상의 삶을 살되, 때때로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그리할 뿐 아니라 일상성을 반성할 수 있을 생각의 힘을 키우기 위해 기어이 공부의 끈을 붙잡는 것이다. 일상에 매몰되는 순간 곧바로 건축업자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나가면서

마케팅 자본주의가 틀 짓는 일상은 빵을 위해 필요하다. 빵은 삶의 필수다. 삶의 나머지 빈 공간은 장미가 채운다. 건축가는 빵으로써 혹은 빵을 위해 장미를 만든다. 중요한 것은 장미의 건축적 의미다. 건축이라는 이름의 장미는, 그것이 상품 세계의 무의미성으로 소비되지 않기 위해, 대중적이면서 그와 동시에 대중적이지 않은 일종의 모순 혹은 적대성의 거리가 필요하다. ‘일상의 건축가’에게 대중적인 것은 테제이자 배신해야 할 안티테제다. 그로써 생산해야 할 초과분을 위한 재료다. ‘80 건축가’는 대중의 내재적 존재라는 점에서 현실을 공고히 하​는 데 복무하거나 현실 혁명의 작인이 될 분기점에 놓인다. 그들이 실천하는 건축의 길은, 새로운 공간을 미분적으로 창조해나가거나, 일상의 공간을 반복적으로 생산하거나 두 개로 갈라진다. 르페브르가 꿈꾼 ‘일상의 삶을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의 가능성은 이제 대부분 앞 세대가 아니라 그들에게, 그들의 삶의 결단에 달렸다​.

 

1. 필자에게 보낸 「SPACE(공간)」의 기획 가제는 ‘1980년대생 건축그룹들이 나타나다’다.

2. 1862년 클레망 쥐글라가 7~11년 정도의 기간마다 발생하는 것으로 식별한 고정된 투자순환을 일컫는 쥐글라 순환은, 스펙트럴 분석을 사용한 2010년 연구에 의해 세계의 GDP역학에서 확증되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Juglar_cycle.

3. 프랑스 저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창안한 개념인 아비투스는 특정 유형의 환경을 구성하는 조건에 따라 생산되는 문화적 실천과 재현의 원칙(성향체계)으로서, 본질적으로 지속적이지만, 생존 환경의 조정에 따라 변동 가능하다. 

4. 네이버 사전은 세대를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30년 정도 되는 기간’으로 풀이한다.

5. 이 글은 필자가 규정의 대상으로 삼는 건축(가)을 한 세대 떨어진 입장에서 조망한 것이다.

6. 2011년 경향신문 기획시리즈 ‘복지국가를 말한다’의 특별취재팀이 만든 신조어다.

7.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새롭게 나타난 세계경제 질서를 통칭하는 말로서, IT 버블이 붕괴된 2003년 이후 미국의 벤처투자가인 로저 맥너미가 처음 사용했다. ‘뉴노멀’ 시대는 세계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면서 가계들은 부채를 줄이고 기업들은 소비와 투자를 축소해 저성장, 저소득, 저수익 등 3저 현상이 새로운 표준을 형성한다. 그에 따라, 금융시장은 탐욕보다는 절제, 고속성장보다는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 관심사로 삼는다.

8. 확보된 자료가 적긴 하지만 「SPACE(공간)」가 수집한 실태자료에 따르면, ‘80 건축가’가 개입하는 업역이 앞 세대에 비해 딱히 더 넓지는 않다.

9. 건축가는 75살까지 배워야 하기 때문에 150살까지 살아야 한다고 한 렌조 피아노의 통찰에 따르면, 건축은 70대 중반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10. 2008년 금융위기를 다르게 일컫는 이름이다.

11. 대의민주주의의 ‘항구적 그림자’인 포퓰리즘은 자본의 정치 압도, 마케팅의 선거 지배, 신자유주의의 민주적 가치 억압 등이 엮인 탈민주화의 산물로서 엘리트를 기득권으로 간주한다. 민족주의와 방어적 개인주의(페미니즘)를 생산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12. D. Berke and S. Harris, Architecture of the Everyday, Princeton Architectural Press, 1997.

13. ‘빵과 장미’는 정치 슬로건이자 그것과 연관된 시와 노래, 그리고 영화의 제목인데, 대개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섬유공장 노동자들이 벌인 ‘빵과 장미 파업’이라는 성공적인 시위와 연관된다.

14. Charles Olson, The Special View of History, Oyez, 1970, p. 3.

15. Gareth Mattews, Philosophy and the Young Child, Harvard University Press, 1980, p. 2.

16. Alfred Schutz, The Phenomenology of Social World, translated by G. Walsh and F. Lehnert,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67, p. 42.

17. Michael Gardiner, Critiques of Everyday Life, Routledge, 2000, p. 71. 

18. 그나마 「SPACE(공간)」가 특집 대상으로 삼은 이들은 매체에 충분히 노출된, 그러니까 일정 부분 안정을 도모한 건축가들이니, 그렇지 않은 80년대생 건축가들은 더 그럴 것이다.​

 


이종건
이종건은 조지아 공과대학교 건축 대학에서 역사・이론・비평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8년부터 경기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5년 건축 비평지 『건축평단』을 창간하여 편집인 겸 주간을 맡고 있다. 『텅 빈 충만』, 『문제들』, 『건축 없는 국가』 등 여러 권의 건축 비평서를 냈으며, 에세이 『인생거울』, 장편소설 『건축의 덫』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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