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생들은 열여덟에 IMF를 겪었고, 21세기로의 전환 시기에 대학 교육을 받았으며, 서른이 되기 직전에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맞았다. 2018년, 그들은 서른 아홉이다. 그들에게는 형제가 있지만, 그들의 자식은 형제가 없을 가능성이 높고, 어쩌면 마지막 대일 수도 있다.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났다면, 조금 더 어린 나이에 이 상황들을 지나왔을 것이다. ‘밀레니얼 세대’라고 지칭하기도 하는 이 세대가 딛고 있는 한국의 건축 시장과 문화는 앞 세대의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1980년대생 건축가들의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 우선 참조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처한 사회・문화적 토양이다.
이 기획은 건축계의 현재와 미래를 보여주는 지형도를 그린다든지, 한 세대를 향한 비평적 자리를 만들겠다는 식의 큰 포부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태어나 비슷한 사회・문화적 사건들을 통과한, 건축을 전공하고 사회로 나온 한 기자의 개인적인 관심에서 출발했음이 더 솔직하다. 나와 같은 세대의 건축가들이 어떤 유형의 작업들을 해나가고, 어떻게 조직을 운영하는지, 무엇보다 ‘건축’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했고, 우리의 앞 세대와 차이가 있다면, 사소한 것이더라도, 긍정적으로 읽어보고 싶었다.
제일 먼저 기성 건축가 혹은 건축사사무소들과는 다른 조짐을 보이는 1980년대생 언저리의 건축사사무소들을 적어 내려갔다. 목록에서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것은 공동대표 체제 사무소가 많다는 것과 대체로 업무 영역이 넓으면서도 각 사무소마다 주력하고 있는 영역이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생으로 현재 혼자 독립해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는 오히려 드물었고, 건축・도시 관련 스타트업 그룹의 목록은 한없이 길어졌다. 아쉽지만, 기존의 개소 형태를 따라 혼자 독립한 건축가, 교수직을 겸하고 있는 건축가, 건축사사무소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은 그룹들은 제외했다. 결과적으로 총 열일곱 팀의 건축가그룹을 이번 지면에서 소개하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면의 한계로 미처 소개하지 못한 그룹이 많다.
기획을 시작할 때 걸었던 임시 제목은 ‘1980년대생 건축가그룹이 나타나다’였다. ‘젊은’이라는 수식어는 기존 건축계에서 통용되고 있는 의미와 그 모호성 때문에 가능한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내용을 가다듬으며, 이 세대 건축가들을 어떻게 호명할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성급하게 공통점을 뽑아 하나의 집단으로 단정짓기보다는 이 세대에게 새로운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으니 있는 그대로 주목해보자고 결론 짓고, 조금 거칠지만 처음 가제를 그대로 가져가기로 했다. 물론 몇몇 건축가그룹 대표 중에는 1970년대 후반생도 포함되어 있음을 밝힌다.
이번 기획을 통해 새로운 시대의 건축가그룹들이 어떠한 현실을 딛고 출현했는지 이해하고, 그들이 어떤 세계를 열어갈 것인지 그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덧붙이자면, 섣불리 그들의 건축이나 건축적 성취를 재단하기보다는 그들이 존재하는 방식과 태도에 관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자 했다.
이른 독립, 영광도 함께 고난도 함께
열일곱 팀의 마흔세 명의 건축가가 독립한 평균 나이는 32.6세다. 개소는 2013년 전후에 주로 이루어졌다. 요즘 시대에 30대 초반은 일반적인 창업 전선에서 결코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국내 대학 졸업 후 해외 석・박사 수료 후 5년의 실무 기간을 거쳐서 건축사 면허를 취득하는 것이 공식처럼 자리 잡았던, 그래서 40대의 젊은 건축가들과, 50, 60대의 중견 건축가들이 중심이 되었던 기존 건축계 분위기 속에서 서른 두 살이 독립을 한다는 것은 눈총 받기 쉽다. 그러나 어느새 30대 초반의 건축가들이 등장했고, 그들은 이미 끼리끼리 모여 그들만의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렇게 빨리, 그리고 또 같이 독립하게 됐을까? 사전 인터뷰에서 건축가들에게 동업 형태로 개소하게 된 이유를 물었을 때, 거의 한결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혼자는 힘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한진(푸하하하프렌즈 공동대표)은 이를 “참치가 떼로 다니면서 마치 몸집을 크게 보이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에 비유했는데, 어린 나이의 건축가들이 동업을 했을 때 재정과 인력 부분에서 실질적으로 부담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동업에는 암묵적으로 ‘영광도 함께, 고난도 함께한다’는 일종의 약속이 내포되어 있다. 한편 빨리 독립을 하게 된 데는 건축학교육인증제도가 시행되면서 3년간의 실무기간을 마치고 나면 건축사 면허 취득이 가능해져 평균 2년정도 빨리 독립을 할 수 있게 됐다는 형식적인 이유가 있다. 하지만 이보다는 소규모 건축 시장의 확대와 새로운 시대의 상황과 요구들, 그리고 조직에 대한 불만족 등과 같은 근본적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건축을 소비하는 계층의 연령대가 낮아졌으며,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소규모 주택 시장도 확대되었고, 이에 동시대성을 가진 젊은 건축가그룹이 유연한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는 전략이 통하기 때문이다. 유명한 기성 건축가를 찾아갔다가 ‘건축을 모른다’는 식의 타박을 받고 젊은 건축가그룹을 찾아오는 클라이언트들도 많다는 이야기가 들릴 정도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건축가의 건축 어휘가 녹아있는 형태나 공간감만이 아니라, 클라이언트의 다양한 취향과 생활방식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것을 비물리적인 것부터 물리적인 것까지 함께 엮어 구현해 줄 건축이다.
대형 건축설계사무소나 아틀리에에서 일정 기간 수련하고 그 계보에 자신을 위치시키고자 했던 기성 세대와 달리, 급변하는 사회・문화와 연동되어 시장을 개척하고자 하는 1980년대생 건축가그룹들이 출현한 것이다.
건축에서 벗어나 건축을 증명하기
‘경계없는작업실’, ‘비유에스(By Undefined Scale)아키텍쳐’라는 사무소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새로운 시대의 건축가그룹들은 물리적인 공간을 구축하는 건축뿐만 아니라, 부동산 기획, 브랜딩, 교육, 전시, 출판, 공간 운영 등 건축이라는 경계 없이, 규정 없이 다양한 작업들을 하고 있었다. 업무 영역의 확장 범위가 이전 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 프로젝트 안에서의 그 비율이 월등히 높고, 이를 대하는 건축가의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줄어든 신축 작업 기회의 대체적 수단, 타개책으로 업무 영역을 넓힌다는 측면 이상으로, 건축이 아닌 듯 보이는 작업들을 건축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다양한 전문성을 연결하면서 역으로 건축을 증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개발 시대가 저물고 인구감소 시대,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면서 짓는 건축의 수요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리모델링이나 소규모 건축의 수요가 늘어났다. 열일곱 팀으로부터 받은 프로젝트 리스트 348개 중 신축이 192개, 리모델링이 127개, 그 외 프로젝트가 29개로, 전체 프로젝트 중 신축은 55%에 머물렀으며, 그중에서 67%가 주택이었다. 결국 열일곱 팀의 프로젝트 가운데 주택을 제외한 신축은 18% 정도였다. 그에 비해 설계 이전에 경영, 부동산, 프로그램 등의 기획이나 설계 이후 운영까지 포함된 프로젝트는 17%를 차지했다. 또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들을 통해 건축적 실천을 선보이기도 한다.
상도동에 공유 공간 네 개를 운영하고 있는 김지은(블랭크 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은 “대형 건축사사무소에서 5년간 근무하면서 공간을 누가 어떻게 쓰는지 이미 정해진 상태에서 설계를 했고, 지어지고 난 후 실제로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는 경험할 수 없었다”며, “일명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떤 장소에 어떤 쓰임의 공간을 만들지 사용자와 함께 고민하여 물리적 공간을 구현하고, 이후의 운영까지도 관여하는 것은 건축 밖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건축의 통합적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토털 디렉팅을 기반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노경록(지랩 공동대표)은 “우리는 하다못해 숟가락, 젓가락까지 디자인한다”며, “미감에 의존한다기보다는 공간에 내재되어 있는 본질과 가치를 사람들에게 직접 전달하기 위해 디테일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에 우리는 보람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윤한진은 “건축을 조형이 아닌 메시지로 이해하고 그것을 해석하고 생산해내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와이드AR」 스페셜에디션 1)고 말한 바 있다.
새로운 시대의 건축가그룹들은 그 작업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건축이다’, ‘건축이 아니다’를 판단하기보다는 건축이라는 빗장을 풀고 나와 건축 밖의 것들을 어떻게 건축적으로 작업할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자문하며, 건축가의 직능을 다시 재범주화하고 있다.
삶은 무겁고, 건축은 가볍게 “잘 먹고 잘 자자”. 이것이 우리 세대의 꿈이라고 말하면 과장일까? 연애, 결혼, 출산도 포기하고 내 집 마련, 인간관계마저도 포기하는 N포세대는 ‘멀고 불확실한 큰 행복’ 대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소확행)’을 움켜잡는다.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건축 시장의 호황기였던 198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파주출판도시나 헤이리예술마을처럼 큰 규모의 신축 건물을 통해 건축적 실험을 할 수 있는 장이 사라졌기 때문에 이제는 ‘스타 아키텍트’ 또한 없다. 이 세대에게 ‘하나의 건축이 도시와 사회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던 때가 있었다’는 식의 노스탤지어로, 이미 검증된 과거의 건축적 성취의 잣대를 들이대며 언제쯤 자신만의 건축 언어를 이룩할 것이냐고 묻는 일은 소용이 없다. 그들은 스타 아키텍트가 될 수도, 될 생각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N포세대라 불리는 1980년대생 건축가들은 건축마저 포기한 것인가? 그들은 단지 동시대의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먼 미래의 불확실한 예술적 성취를 조금 내려두고, 소소하고 확실한 건축을 잡았을 뿐이다. 그들은 인간다운 삶의 요건만 빠르게 불어나는 저성장 시대 속에서, 물려받은 세계관과 경험의 불일치 속에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아티스트의 자리에서 통합적 건축의 지휘자 또는 현장과 소통하는 자리로 스스로를 옮겨 앉히고, 보다 합리적이고 보다 가벼운 언어로 작업하고자 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앞서 이야기한 충분한 숙련 기간을 거치지 않고도 독립한다는 것, 개인의 이름을 내걸고 등장하는 것이 아닌 그룹의 이름으로 활동한다는 것, 하나의 프로젝트를 타 분야의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진행한다는 점, 소비재로서의 건축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박지현(비유에스 아키텍쳐 공동대표)은 “외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독립하여 활동하는 건축 스타트업 그룹들도 많다. 그들의 유머러스하고 재치있는 건축도 인정해주는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30대 건축가들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첫 세대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또한 이주한(피그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은 “건축에 대단한 권력이 있고, 건축이 모든 것의 답이라고 여기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좋은 공간을 만들어간다는 인식이 더 크다”고 했다. 조성학(비유에스 공동대표)은 “콘텐츠와 공간이 잘 결합되어 있는 사례들이 많아지고, 대중들이 쉽게 공간을 소비하게 됐다. 이제 대중들이 건축을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건축이 쉽게 소비되고 사라진다는 우려도 있는 반면, 대중과 건축이 소통하는 창구가 많아졌다는 점에서 건강한 문화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일상의 작은 건축부터, 건강한 사회를 향하여
기성세대는 독자적인 건축 언어를 구축하는 데 몰두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건축가로서 작업을 쌓아가는 데 장벽도 높았다. 자본이 있는 특정 계층만이 건축을 향유할 수 있었고, 건축가와 소위 말하는 집장사의 영역이 뚜렷하게 나누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테리어, 리모델링, 소규모 상업 공간, 개인주택 등으로 건축 시장이 확대되었고, 대중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집을 짓기 위해 건축가를 찾는다. 기업에 국한되었던 브랜딩이나 토털 서비스 분야에도 개인이 자유롭게 접근 가능해졌다. 이렇게 작은 건축, 일상의 건축에 건축가들의 손이 닿기 시작하면서 대중들의 삶에도 자연스럽게 건축이 침투하게 됐다. 새로운 시대의 건축가들은 기성세대가 구축해놓은 도시 계획, 큰 규모의 공공 공간, 사회적 제도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일상의 공간들을 만지고, 다양한 형태의 삶을 뒷받침하면서 공공성을 꿈꾼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이 말이다. 에어캡과 폴리카보네이트를 통해 저소득층 주거환경을 개선하고(제이와이아키텍츠, 저비용 주택 시리즈), 지역을 기반으로 공유 부엌을 운영하면서, 지역 커뮤니티의 플랫폼을 자처하며(블랭크, 청춘플랫폼 / 이타, 로프트), 임대인보다는 실제 거주자의 거주 감각을 중요하게 여기고(피그건축, 밝은다세대주택), 건물 외부에 어울리지 않는 장식을 해달라는 건축주와 의견 대립을 할 수 있고(푸하하하프렌즈, 언빌드), 초등학교의 교실을 리모델링하여 기존의 획일화된 교실 공간에 도전장을 내밀며(디자인밴드요앞, 꿈을 담은 교실), 지방 도시의 새로운 전환을 모색하기 위해 연구 및 기술 용역을 수행하고, 기초 조사·기록을 꾸준히 해나가는 것(건축사사무소아키텍톤, 북성로일원 도시재생활성화계획, 대구 중구 문화재 기초조사). 이런 일들이 사소해 보이는가?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떤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사회적인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무너지지 않게 하고, 흉물스럽지 않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용할 때 불편함이 없어야 된다.”
이 외에도 1980년대생 건축가그룹들이 취하는 존재 방식이나 태도의 특징 중에는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한다는 점, 조직 내에 다양한 분야의 구성원을 두고자 한다는 점, 위계 구조의 조직이 아니라 역할 분담 체제의 수평적 구조의 조직을 지향한다는 점 등이 있다. 이러한 특징들이 모든 1980년대생 건축가들에게 나타난다고 일반화 할 수는 없으나, 새롭게 발현되고 있는 사소하고 작은 차이들이 다음 한 걸음을 만든다고 믿는다.
‘일상’이라는 터전에서 ‘탈건축’이라는 수단을 통해 ‘건축’이라는 이상에 도달하려는, 새로운 시대의 건축가그룹들을 통해 한국 건축의 미래를 예감해보면 어떨까. 물론 앞 세대와 구별되는 건축 자체의 미학적, 구조적, 이론적 운동성을 획득했느냐는 지금은 의문으로 남겠지만, 아직 그들은 30대이고 언젠가 기성세대가 될 것이다. 그 길목에서 이 세대가 건축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이 발화점에 다다르는 순간 자연스럽게 앞 세대와 분리되는 분명한 건축적 모멘텀 또한 생길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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