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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건축가] 객체로 존재하는: 이윤정, 전필준

사진
김산(별도표기 외)
진행
윤예림 기자

​​「SPACE(공간)」 2023년 10월호 (통권 671호) ​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인터뷰  이윤정, 전필준 스튜디오李心田心 공동대표 × 윤예림 기자​

 

​자리잡기

 

윤예림(윤): 스튜디오李心田心(이하 이심전심)의 가장 따끈따끈한 공간에서 뵙게 됐네요.

전필준(전): 리안갤러리의 본관 옆에 새로 건축한 전시 공간이에요. 내일이 개관 행사라 준비가 한창인 것 같아요.

이윤정(이): 한번 같이 둘러볼까요?

 

윤: 내부에 들어오니 공간의 규모가 꽤 큰 것 같아요. 외관의 볼륨으로는 그리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입면의 재료가 한몫하는 것 같아요. 알루미늄 패널로 감싸진 건물이 하나의 큰 스크린처럼 주변을 비추죠. 

 

윤: 노출콘크리트로 지어진 본관과는 사뭇 다르네요.

전: 본관 건물은 1990년대에 이곳 대구지역에서 거의 최초로 지어진 노출콘크리트 건물이에요. 처음 봤을 때 콘크리트의 날것 같은 물성이 이 건물의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건물에는 그 물성을 그대로 가져오기보다, 거기에 담긴 의도를 해석해 이어오고 싶었어요. 말하자면 의미적 연속성이죠. 제 생각에 당시 설계자는 세부적 비례나 공간의 성격 등이 아니라 거친 물성을 가지는 순수한 형상 자체로서 건물을 보여주고 싶어한 것 같아요. 신관도 그에 따라 물성이 분명하게 부각되는 방법을 택했어요.

 

윤: 대구에서 활동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이전 사무실이 서촌에 있던 걸로 알고 있었거든요.

이: 2020년 초에 내려왔으니 아직 얼마 되지 않았어요. 이제 4년 차네요. 

전: 대구가톨릭대학교에 전임 교원으로 임용이 되면서 대구에 내려와 자리를 잡았어요. 때마침 리안갤러리의 대표님도 만나게 됐죠. 

 

윤: 대구에 와서 좋은 점이 있나요?

이: 사실 저는 고향이 대구예요. 가족들이 있어 편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거리에 차가 없다는 게 제일 좋아요.

전: 한편으론 지역에서 일어나는 급진적인 변화들을 보게 돼요. 예를 들어 대구에서는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구성원 간의 대립이 일어나고 있죠. 김해 같은 도시는 구도심의 상당 부분이 외국인 타운으로 변해 있고요. 서울에서 알아채지 못하는 크고 작은 변화들이 지방 곳곳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더라고요. 우리 사회가 내재한 핵심적인 문제들이 먼저 발화하기 시작하는 곳이 지방인 것 같아요. 지금은 이곳만의 현상일지라도 언젠가는 사회 전체로 확산되겠죠. 그런 변화를 먼저 알아채고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림과 건축

 

윤: 이심전심은 각각 순수미술과 건축을 전공한 두 소장님으로 구성돼 있죠.

전: 건축가인 저와 판화를 전공한 이윤정 소장이 함께 제품과 가구, 인테리어와 건축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품과 가구 분야는 李心田心디자인이라는 브랜드를 따로 설립해 이윤정 소장의 주도로 운영하고 있고요. 서로 전문 분야가 다르고, 각자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지만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건축이나 제품이나 구분 없이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이: 집에서든 작업실에서든 늘상 ‘이건 어떠냐’, ‘이건 이런 것 같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디자인 크리틱이 이뤄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아이디어가 구체화되고 제작 단계에 접어들면 각자의 영역으로 가져가 전문성을 발휘하죠.

 

윤: 두 분의 협동은 유학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들었어요.

전: 이윤정 소장은 순수미술을 전공했지만 건축과 도시에 관심이 많았어요. 둘의 졸업 작품을 보면 이윤정 소장 작업이 건축 같고, 제 작업이 그림 같아요. (웃음) 서로 분야를 중첩시키면서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고 자연스레 이심전심이 만들어졌죠.

 

윤: 이윤정 소장님의 프로필에 ‘도시 공간이 필요로 하는 사물들을 제작하고 있다’는 표현이 인상 깊더라고요. 순수미술을 전공하면서 도시와 건축에 눈길을 두기 시작한 이유가 뭔가요?

이: 서울로 대학교를 진학하면서 이전까지 제가 살던 곳과는 다른 도시 풍경을 보게 됐어요. 도시가 마치 진열대의 대량생산품 같더라고요. 다른 많은 나라를 여행해 봐도 ‘도시’라는 것이 하나의 문화인 양 언어만 다를뿐 똑같은 건축이 반복된다고 느껴졌고, 모든 도시 풍경이 동일한 모습으로 구조화돼 보였어요. 그런 도시와 상품 사이에서 발견되는 유사한 시각적 구조를 주제로 주변 풍경을 그려내 보고 싶었죠. 그때는 건축과 도시를 주제로 다루며 2차원적인 작업을 했는데, 지금은 3차원적인 작품과 가구의 제작에 집중하고 있어요.


윤: 전필준 소장님은 반대로 그림에 관심이 많았고요. (웃음) 두 분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은 어디였나요?

전: 이심전심의 건축과 제품에서 공통적으로 읽을 수 있는 언어는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원형이에요. 좋아하는 작가 중 마이클 웨슬리라는 사진작가가 있어요. 조리개 값을 아주 작게 하고 몇 개월, 몇 년 단위로 장노출 사진을 촬영하는 작가예요. 그럼 사진에 오래된 것이 뚜렷이 남고, 새로 만들어진 것들은 흐릿하게 나오거든요. 무엇보다 태양의 궤적이 단순하고 또렷하게 보여요. 대개 자연을 아주 복잡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랜 시간 관찰하면 남는 것은 결국 아주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인 거예요. 그런 자연이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원형의 형태를 추구하고 있어요.

 

윤: 삼정방(「SPACE(공간)」 627호 참고) 같은 이심전심의 건물들이 기하학적인 형태를 띠는 이유겠네요.

전: 저희는 건축물과 사람을 포함한 주변 환경의 모든 요소를 하나의 객체로 보려고 해요. 건축물뿐만 아니라 건물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균등한 객체라는 관점에서 그 건물의 성질과 존재감을 생각하죠. 그러면 맥락으로 접근할 때보다 훨씬 확장된 사고가 가능해요. 예를 들어 삼정방의 천창은 일반적인 건축에서 말하는 풍경과 빛을 받아들이는 도구가 아니에요. 빛의 투사성을 이용해서 기하학적인 도형을 생성하는 시각적 장치의 역할을 하죠. 천창을 통과한 빛이 공간의 중심에서 1년 365일 변화하고 자취를 만들면서 공간에 리듬을 부여해요. 이런 식으로 각각의 요소가 공간을 점유하고 지배하면서 순수한 존재감을 가지는 방법을 고민하는 편이에요.

 

 

李心田心디자인, ‘ljus – 소반’, 2021 ©李心田心Design

 

맥락이 아닌 객체

 

윤: 이심전심에게 건축이냐, 제품이냐는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디어가 구현되는 스케일과 매체가 다를 뿐, 객체로서의 존재감은 그와 관계없이 가질 수 있으니까요.

전: 주변의 건축가들에게서 “이심전심의 디자인은 주변 맥락에 무심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맥락에 묶여 있기보다 개성 있는 건물들이 훨씬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맥락이라는 건 목표로 삼을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죠.

 

윤: 새로워요. 예술 작품과 달리 건축물은 주변의 맥락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중요한 미덕으로 삼는 경우가 많잖아요.

전: 한국의 건축 역사가 짧고, 그 사이 많은 유산들이 파괴되고 사라졌기 때문에 가지게 된 일종의 부채의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럽의 경우 의미 있는 건축유산들이 참 많지만 그들의 역사는 정말 길었잖아요. 수백 년 동안 선택되고 또 선택된 건축물들이 남아서 현시대의 사람들이 찾는 장소가 된 거예요. 그만큼 건축물의 의미와 역할이 명확하고, 그들의 맥락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 또한 분명하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한국에서 맥락이 절대적인 규범과 가치로 중시할 만한 기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요.

 

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전: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에서 실무를 하면서 건축적 생각이 많이 정리된 것 같아요. 건축의 형상을 정의하는 그곳만의 방식이 인상 깊었어요. 건물의 기하학적인 도형과 형태가 만들어지는 과정, 말하자면 형상의 DNA를 기록하는 일이죠. 누구든지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면 같은 형태의 건물을 생성해낼 수 있을 정도로 상세한 궤적을 만들어요. 건물이 조합되는 질서를 먼저 세울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더라고요. 

 

윤: 이심전심의 다이어그램에서도 형상의 DNA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전: ‘정의될 수 있는 형상’에 대한 그때의 관심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것 같아요. 건물의 기능이나 프로그램의 배열에서 디자인을 시작하지 않고, 단순한 건축적 요소들을 어떤 형상으로 결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부터 다이어그램을 도출하고 설계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고요.

 

윤: 소장님에게 설계를 배우면 재미있겠어요. (웃음) 

전: 재미있어 하기도, 어려워하기도 해요. 작년에는 대구의 경상감영공원을 사이트로 과제를 냈어요. 서울의 탑골공원처럼 어르신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인데, 사이트를 분석하기보다는 흥미로운 사물을 하나씩 찾아오도록 했어요. 어떤 학생은 고물상에서 오래된 카세트 테이프를 찾아오기도 하고, 어떤 학생은 전축을 가져오기도 했죠. 거기에서부터 설계를 시작하는 거예요.

 

윤: 전축으로 어떻게 설계가 시작될 수 있을까요?

전: 보통 사이트의 맥락과 인접 건물을 분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에 익숙하겠죠. 하지만 저는 더 넓은 범위에서 시각적 구조를 탐색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해요. 물건과 건축 등의 형상들이 가지는 시대적 동질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가령 옛날의 디스크, 카세트 테이프나 전축 등 제품에서 발견되는 형상과 당시에 지어진 건축물의 디자인에는 묘하게 닮은 부분이 있어요. 원형으로서 유형은 시대와 장소, 환경에 따라 변주되고 있지만 때마다 상통하는 무언가가 분명 있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이 그런 지점을 발견했으면 하는 거죠.

 

윤: 그렇다면 소장님이 발견한 이 시대의 시각적 구조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요.

전: 미니멀리즘 예술가들이 객체를 바라보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은 어떤 대상과도 연결되지 않는 순수한 형태를 만들죠. 그래야 작품의 객체적인 성격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해요. 최근 국내외 여러 건축가의 작업에서도 반복적이고 기하학적인 형상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이 인접 예술 분야의 실험과 무관하지 않은 공통된 문법이라고 생각해요.

 

 

2IN1 주택 모형 ©Studio李心田心

 

같지 않은

 

윤: 이야기를 들을수록 두 소장님의 그림 같은 건축, 건축 같은 그림의 졸업 작품이 다시 떠올라요. (웃음) 두 분이 계속 함께인 이유를 알겠어요.

전: 존재감을 가지는 객체로서 설계의 강조점을 찾아갈 때면, 되려 건축이 아닌 예술 분야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건축가마다 도시와 건축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듯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모두가 동질화돼 있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맞춰 프로그램과 동선, 기능, 구체적인 공간의 사이즈 등을 조정하다 보면 결국 ‘건물 같은 건물’에 가닿기 쉽거든요. 이윤정 소장과 대화를 통해서 ‘건물 같지 않은 건물’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이: 이심전심이라는 이름과 달리 생각이 다를 때가 많아요. (웃음) 하지만 그런 의견 충돌이 각자가 갇힌 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전환의 계기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결과물을 실재화하는 것은 각자가 온전한 영역으로 가지고 있지만, 생각을 공유하는 듀오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예요. 아이디어를 나누며 발전시키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윤: 지금과 같은 운영체계로 쭉 나아갈 계획인가요?

이: 저의 경우 한동안 소반이라는 구체적 사물을 제작하다가 요즘에는 다시 오브제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지금처럼 전필준 소장의 건축 작업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저의 아이디어를 건축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도 이심전심의 목표예요.

전: 스튜디오의 형태에 대해 고민되는 부분은 있어요. 지금은 디자인 이후의 실무적인 부분에서는 다른 건축사사무소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일을 분담하고 있거든요. 앞으로 더 많은 설계 의뢰가 들어와 개인적인 수준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시기가 오면 어떤 방식으로 생산을 해나가야 할지 고민이 들어요. 그렇다면 그에 걸맞은 환경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고요. 작업 방식과 디자인 철학은 유지해나가겠지만, 작품 바깥의 영역을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지는 계속 탐색해야겠죠.

 

윤: 그렇다면 다음에는 대구가 아닐지도, 어쩌면 둘이 아닐 수도 있겠네요.


이윤정, 전필준은 2023년 12월호에서 김명재, 최여진(플롯건축사사무소 공동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월간 「SPACE(공간)」 671호(2023년 10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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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이윤정은 홍익대학교와 영국 왕립예술대학(RCA)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존 퍼셀 퍼체이스 프라이즈, 프린트 벨트 올해의 작가, 2012 한국현대판화 공모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2016년 스튜디오李心田心을 공동 설립하고 공예품을 제작해오고 있으며, 2019년부터 나무 소재의 가구 및 소품 브랜드 李心田心디자인을 운영하고 있다.
전필준
전필준은 홍익대학교와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을 졸업하고 르웰린 데이비스 양, 포스터 앤드 파트너스 등 런던과 베이징에서 다년간 실무를 맡았다. 귀국 후 나우동인건축사사무소에서 디자인 디렉터로 활동하다가 2016년 이윤정과 스튜디오李心田心을 설립했다. 대한민국 건축사이며 현재 대구가톨릭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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