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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건축가] 상상한 대로 징검돌을 놓으며: 박형우

사진
김산
진행
윤예림 기자

​「SPACE(공간)」 2023년 9월호 (통권 670호) 

 

‘오늘의 건축가’는 다양한 소재와 방식으로 저마다의 건축을 모색하는 젊은 건축가를 만나기 위해 기획됐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탐색하고, 고민하고 있을까? 「SPACE(공간)」는 젊은 건축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들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기보다는 각자의 개별적인 특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인터뷰는 대화에 참여한 건축가가 다음 순서의 건축가를 지목하면서 이어진다. 

 

WAAM 실험 모형 

 

인터뷰 박형우 비에이티 파트너스 대표 × 윤예림 기자 

 

유용한 손을 찾아서

윤예림(윤): 사무실이라고 해야 할까요? 공간이 넓어요. 분위기가 공장 같기도 하고요. 

박형우(박): 이런 사무실은 처음이죠? (웃음) 서울에도 연구실이 있는데, 작업 공간을 소개하고 싶어 이렇게 구석진 곳까지 초대했어요.

 

윤: 안쪽에서 열심히 로봇을 만지고 있는 분은 고민재 소장님이죠? 

박: 맞아요. 납품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일이 있어서요. 열중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인터뷰는 제가 맡으려고요. 

 

윤: 그렇군요. 신동한 소장님은 해외에 가 있다고 들었어요.

박: 지금 캐나다에 있어요. 휴가차 떠난 것이긴 한데, 마침 캐나다의 로봇 업체와 파트너십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중이었거든요. 간 김에 업무도 보고 오라고 했어요. (웃음) 

 

윤: 각자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네요. 세 분이 역할을 어떻게 분담하고 있나요? 

박: 제작 과정에서 어떤 공법을 이용할지, 디테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구상하는 일이 주로 제 몫이라면 신동한 소장은 그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고민재 소장은 실제로 소프트웨어를 적용해 로봇을 운용하는 식이에요. 순서랄 게 없이 전부 맞물려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완전히 분업화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처음에는 모든 걸 셋이서 다 같이 했거든요. 그랬더니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아 중심이 되는 업무를 나눴어요.

 

 

 

윤: 지금의 세 멤버는 비에이티 파트너스(이하 비에이티)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잖아요. 함께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박: 저와 신동한 소장은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함께 다닌 사이예요. 둘 다 무엇이든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저는 목수 일부터 시작해 제작에 관한 건 다 해보려 했고, 신동한 소장은 소프트웨어를 더 연구했죠. 그러면서 늘 아쉬웠던 건 건축을 표현하는 도구는 점점 늘어나고 발전하는데, 상상한 모습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기술은 제한적인 거예요. 이런 지점에서 다른 건축사무소와 변별력을 가져보자고 뜻을 모았어요.

 

윤: 그 해답을 로봇에서 찾은 건가요?

박: “디자인하고, 만들기까지 한다.” 이걸 가능하게 하는 설비나 기계를 찾으니 로봇이 제격이더라고요. 저희는 로봇 전공자도 아니고 개발자도 아니니 공부가 많이 필요했죠. 건축에 로봇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고민재 소장은 그 과정에서 진행했던 워크숍에서 만났어요. 눈에 띄는 참가자였거든요. 워크숍에 왔다가 저희에게 걸려 들었죠. (웃음)

 

윤: 단순히 제작을 위해서라면 상상해볼 수 있는 수단은 많을 텐데, 왜 하필 로봇팔이었나요? 

박: 시공이 다 사람 손으로 하는 일이잖아요. 그러니까 손과 가장 가까운 것을 찾았어요. 로봇팔은 6축으로 움직여서 사람 팔처럼 제어가 가능하고, 말단의 가공장치를 갈아 끼우며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어요. 우리 손이 연필을 잡으면 글씨를 쓰고, 망치를 잡으면 조각을 하듯이요. 일반적인 기계는 하나로 한 가지 일만 할 수 있어서 각각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야 하는데, 로봇팔은 하나로 적층, 절삭, 쌓기 등 여러 공법이 다 가능하죠.

 

윤: 잠깐, 6축이라는 게 뭐예요?

박: 팔을 펼치고 돌려 보세요. 이렇게 돌아가는 어깨가 1축, 그 다음 팔꿈치 쪽 관절이 2축, 손목이 3축, 그리고 손가락에 마디 하나, 둘, 셋이 4, 5, 6축이에요. 로봇팔도 똑같이 여섯 개의 축이 있죠. 그런데 사람 손보다 훨씬 섬세한 작업이 가능해요. 건축은 한마디로 종합 제조업이라 할 수 있잖아요. 그러니 많은 재료를 다양한 방식으로 다루는 로봇팔만큼 건축에 딱 알맞은 게 없다고 생각해요. 프레임에 갇힌 일반적인 3축 장비에 비해 큰 스케일의 작업이 가능하다는 점도 건축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죠. 여기 있는 대형 의자는 플라스틱 소재의 적층을 실험한 거예요. 이 정도 크기의 작업을 하려면 3축 장비로는 여러 조각을 인쇄해 조립해야 하는데, 로봇팔로는 한번에 제작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윤: 그럼 6축 이상으로는 더 많은 것이 가능하겠어요.

박: 그 이상은 부가장치를 부착해 축을 늘릴 수 있어요. 도자기 물레처럼 돌아가는 포지셔너를 이용하는 거죠. 훨씬 자유로운 형태를 구현해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아직은 한계가 있어요. 수직으로 쌓아 올렸을 때의 품질에는 못 미치더라고요. 개발이 더 필요한 부분이에요.

 

 

 

모두의 만들 권리

윤: 이쯤에서 비에이티가 개발하는 기술이 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요.

박: 산업용 로봇을 제어하는 ‘거티(GERTY)’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제공하고 있어요. 간단히 말해 로봇이 쥐는 연필, 망치 같은 도구를 말단장치라고 하는데, 그런 말단장치들과 말단장치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해요.

 

윤: 산업용 로봇을 제어하는 기술이 건축 분야와 어떻게 연결되나요?

박: 이 기술의 특징은 표준화되지 않은 디자인의 자동화가 가능하다는 점이에요. 산업용 로봇은 오랫동안 제조업의 생산라인에서 활발히 활용돼왔지만 주로 단순하고 반복적인 공정 일부에 사용되는 것에 그쳤어요. 그 로봇들은 대부분 ‘티칭’이라는 프로그래밍으로 움직여요. 사람이 로봇에게 이동 경로와 동작을 알려주면 그대로 움직이는 식이죠. 반면 거티는 형상을 기반으로 로봇을 제어해요. 3D 디자인 툴로 자유롭게 형태를 디자인하고, 모델링 데이터를 기반으로 형상을 뽑아내는 거예요. 디자인을 위한 캐드(Computer Aided Design)와 제작을 위한 캠(Computer Aided Manufacturing)을 통합한 캐드캠 시스템이죠. 데이터를 입력하는 대로 손쉽게 형상을 구현해내기 때문에 고도로 섬세한 작업과 비정형의 제작에 필요한 인력과 비용 부담을 낮출 수 있어요. 건축 디자인 분야에서 잠재력이 큰 기술이라 생각해요.

 

윤: 학생 때를 떠올리면, 모델링 툴을 자유자재로 다루던 친구는 비정형 설계에 거리낌이 없었어요. 같은 의미에서 거티를 활용하는 디자이너는 창작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걸 경험할 것 같아요. 

박: 보다 확장된 생각과 표현이 가능해지리라고 봐요. 현재 적층, 절삭 등 용도별로 세분해 소프트웨어팩을 제공하고 있어요. 관심이 있으면 원하는 방식으로 커스텀해 사용할 수도 있고요. 다만 라이노, 그래스호퍼 같은 툴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아야 하니 진입장벽이 있긴 해요. 

 

윤: 일반 사용자들에게 더 널리 활용되려면 시간이 필요한 걸까요? 

박: 범용으로 쓰이려면 아직 소프트웨어 시장도, 저희 기술도 발전이 필요한 상황이에요. 언젠가는 건축가, 미술가 누구든 쉽게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해요. 비에이티의 운영 철학을 ‘디자인의 민주화’라고 말하곤 해요. 누구나 자신의 디자인과 그림을 직접 제작할 수 있게 하고 싶죠. 

 

 

 

상상을 실현하는 중간자

윤: 로봇팔로 플라스틱, 금속, 타일, 벽돌 등 익숙한 재료의 기존과는 다른 사용을 보여주고 있죠. 익숙한 재료에서 새로움의 단초를 어떻게 얻는지 궁금해요.

박: 건축물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비정형 건물을 보면, ‘우리의 방식으로 짓는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고 묻죠. 외국의 사례도 많이 찾아보고요. 하지만 재료는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요. 저희가 재료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웃음) 다만 활용 폭을 넓히는 방안을 상상하는 거죠.

 

윤: 디자인과 제작은 유기적이잖아요. 둘을 통합한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비에이티의 작업 프로세스가 궁금해요. 무엇이 먼저인가요?

박: 디자인이 있어야 어떻게 제작할 수 있을까 고민이 시작돼요. ‘이렇게도 만들 수 있어’라고 제작 방식을 먼저 생각한 다음 그걸 활용한 디자인을 구상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반대로 누군가가 마음껏 그림을 그린 다음 “이거 가능해?”라고 했을 때 제작 방식을 고민을 하는 쪽이 더 재미있어요. 지금 비에이티의 목표는 디자이너와 제작자 사이의 중간자 역할을 하는 것이에요. 디자인과 제작 사이를 막고 있던 무언가가 저희의 존재로 인해 탁 튕겨지면서 연결이 되는 거죠. 

 

윤: 삶것(대표 양수인)과 작업했던 위례 작업실 주택(「공간(SPACE)」 616호 참고)처럼요. 하지만 중간자가 아니라 디자인부터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나요? 

박: 설립 초기에는 그런 마음이 있었어요. 디자인하는 대로 다 만들어내는 것, 한편으론 뛰어난 건축가의 그림을 실현하는 역할을 모두 상상했어요. 그런데 디자이너는 어느 정도 독재자적 성격이 있잖아요. 독재자가 되면 중간자 역할은 제대로 할 수 없겠더라고요. 건축가가 구상한 디자인이 우리 기술로 인해 시도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꿈과 우주와 건축

윤: 최근 독일에서 3D 프린터로 유럽 최대 규모의 건물을 건설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박: 기술은 같지만 비에이티가 지금 가고 있는 방향과는 살짝 비껴 있어요. 장비가 현장에 직접 나가 건물을 쌓아 올리고 있을 테죠. 하지만 저희는 로봇을 현장에서 직접 제어하는 작업에 확신이 없어요. 일정한 컨디션에서 운용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거든요. 아직 저희 기술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요. OSC(Off-Site Construction)처럼 사전 제작해 반출하는 방식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고는 있어요.

 

윤: 그럼 비에이티의 현재로선 큰 스케일의 건축물을 실현하는 데 한계가 있겠네요. 

박: 사실 넓은 사무실 공간을 구한 이유가 당시만 해도 로봇이 이 안에서 직접 건축물을 쌓는 모습을 상상했기 때문이에요. 바닥에는 레일을 깔고 로봇들이 그 위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요. 그런데 개발을 할수록 현실과 맞부딪히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우선은 엔지니어링에 집중을 하고 적용 가능한 분야를 넓혀가보기로 했죠.

 

 

 

윤: 현실의 어떤 벽과 부딪혔나요? 

박: 우리 기술을 건축물에 적용하려면 다방면의 실험이 필요한데, 문제는 건축업계, 특히 시공업계가 보수적인 편이라는 거예요. 재료, 구조, 시공 방법 등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는 전제하에 로봇 제어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에요. 시공사와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실험, 확인, 연구하고 개발하는 R&D 과정이 필요하죠. 그렇지만 현장에서는 누구도 R&D 기간을 주려 하지 않아요. 단번에 결과물이 나오기를 바라죠. 결국, 선행 연구 없이는 구조적 해결이 필요 없는 외피적인 것에만 관여할 수밖에 없게 돼요. 함께 기술을 키워나가면 좋겠지만 쉽지가 않네요.

 

윤: 새로운 시도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환경인 거죠. 비용 문제도 있을 거고요. 

박: 오히려 먼저 관심을 보이는 곳은 제조업 쪽이에요. 독창적인 건축 디자인을 위해 맞춤형에 특화된 프로그램을 만든 것인데 이것이 제조업의 필요와도 맞물리더라고요. 특히 아크 용접을 이용한 금속 적층 기술(WAAM)은 자동차 산업에서 엔진 몰드 등을 제작하는 데 활발하게 이용되고 있어요.

 

윤: 그런 면에서는 활용 가능한 분야가 무궁무진하겠네요. 요즘 가장 관심 있는 것은 뭔가요?

박: 금속과 플라스틱 적층에 가장 집중하고 있어요. 친환경 재료인 펠렛 형태의 PLA 플라스틱을 가지고도 여러 실험을 해보고 있고요. 플라스틱은 건축 분야에서 콘크리트 거푸집으로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여요. 다만 강도라든가, 기화열로 팽창하는 콘크리트를 버텨내기 위한 디테일 같은 것에 스터디가 필요해요. 역시 R&D가 필요한 거죠.

 

윤: 언젠가 현실의 제약이 허물어진다면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가요?

박: 자동차 산업을 넘어서 조선업, 그리고 우주 산업으로까지 뻗어나가고 싶어요. 최근 미국에서 저희와 유사한 기술을 가진 업체가 미국항공우주국의 투자를 받아 우주선을 쏘아 올렸거든요.

 

윤: 기술만으로는 이미 우주까지도 날아갔군요. 

박: 기술 자체는요. (웃음) 무엇보다 건축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싶어요. 건축 시장의 보수적인 성격이 누그러지길 기다리는 마음이에요. 현재로서는 쉽게 진입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때를 기다리면서 가능한 한 건축계에 발을 담그고 있으려 해요. 언젠가는 건물 전체를 로봇만으로 지어보고 싶은데요. 이건 다음 생에도 힘들지 모르겠어요. (웃음)

 

박형우는 2023년 10월호에서 이윤정, 전필준(스튜디오李心田心 공동대표)의 오늘을 듣고 싶어 했다.

 

 

 

월간 「SPACE(공간)」 670호(2023년 09월호) 지면에서 더 많은 자료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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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우
박형우는 고민재, 신동한과 함께 건축 실무 및 다양한 건축 패브리케이션 디자인 경험을 바탕으로 비에이티 파트너스를 설립했다. 6축 로봇팔을 이용한 디자인-제작 통합 시스템을 개발 및 적용하며 건축 디자인과 제작의 가교가 되려 한다. 건축뿐 아니라 현대엔지니어링, 현대로템, 기아자동차 등 각종 산업 부문에 활용되면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는 건축 분야에서의 활용과 산업 분야의 확장을 위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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